아직도분이 풀리지 않았는가?
요즘 글을 읽는다는 것은 짜증난다. 글다운 글을 찾아보기 힘들기 때문이다. 사랑과 희생의 고귀함은 쓰레기로 버려지고 있기 때문이다. 가끔식 신문을 들여다 보면 그곳에서는 시니컬한 조소들만 가득하고, 온갖 저주와 원망들로 뒤덮여 있다. 네가 잘났다 내가 잘났다 하면서 떠드는 소리들 때문에 귀가 아프고, 그 글을 읽는 눈은 뻘겋케 충혈될 뿐이다. 네티즌들의 한마디 마디에는 독설스런 욕들만이 가득하고, 어디에서 사랑이나 희생, 등의 고귀한 정신은 찾아보기 힘들다.
사랑하며 살아야 할텐데... 복수가 마무리 되지 않았기 때문에 사랑할 수 없다니...그것이 논리에 맞는 것인지 통 모르겠다. 복수는 복수를 낳을 뿐인데... 우리가 너무나 잘 알 고 있지 않은가? 콩 심은데 콩나고 팥심은데 팥난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런데 복수를 심어 어떻게 사랑을 거둘 수 있다는 말인가? 그것은 어불성설이다. 절대로 되지 않는 일이다. 사랑을 거두려면 반드시 사랑을 심어야 한다. 희생을 심어야 한다. 그렇게 될 때만이 그곳에 사랑이 꽃피고, 열매를 맺는 것이다. 지금 우리나라는 온통 욕설로 가득하다. 이쯤 하면 되었을텐데.. 그렇게 떠들고도 아직도 분이 풀리지 않았다는 말인가? 그렇다면 더 떠들어야겠지... 아니면 칼을 품고 복수를 감행하던지...
그러나 성경은 복수는 우리의 몫이 아니라고 한다. 복수는 내 몫이 아니요, 하나님의 몫이다. 하나님의 복수하심을 믿으라고 한다. 하나님의 복수는 우리가 하는 복수보다 훨씬 더 매섭고, 철저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늘 블레셋이라는 나라에 괴롭힘을 당했다. 블레셋은 옆구리에 가시와 같았다. 그들은 자기들의 힘이 약할 때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비굴하게 종살이하면서도 생명을 연명하려 했고, 자기들의 힘이 조금이라도 강하게 되면 이스라엘 제거하려고 했다. 유구한 역사를 이어오면서 단 한 번도 이스라엘을 편하게 하지 않았다. 아마도 이스라엘은 그들에게 크게 보복하고 싶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국운은 점점 쇠퇴하여 가고, 블레셋은 더욱 그들을 괴롭혔다. 그 때에 하나님은 예레미야 선지자를 통해서 말씀하셨다. 내가 복수하겠다는 것이었다. 내가 그들을 진멸하겠다는 선언이었다.
지난해 태풍 매미의 위력을 경험했을 것이다. 나는 우리 교회의 성도들과 함께 정선을 방문했다. 가는 길에 보니 길이란 길마다 박살이 나있었다. 어느 전쟁이 이보다 더 처참할 수 있을까? 도무지 상상할 수 없는 장면들이 눈 앞을 스치고 지나가는 것이었다. 복구활동을 하기 위해서 방문한 곳은 차마 끔찍하다는 말로 밖에 설명할 수 없었다. 그리고 물의 위력 앞에 자못 두려움을 느끼게 되었다.
그런데 하나님은 블레셋을 진멸하시는데 그렇게 진멸하신다고 했다. 큰 물이 블레셋을 휩쓰는 것처럼 철저하게 진멸하고 복수할 것이며, 블레셋은 그들의 자식들이 물에 휩싸여 감에도 전혀 손을 쓰지 못하고 발을 동동 굴리며, 옷을 찢고 자기의 몸을 자해한 체 주저앉아 있을 뿐이라는 것이다.그 뿐인가 하나님의 복수의 칼을 쉬지 않고그들을 공격해서 한순간도 편히 쉴 수 없게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 복수는 하나님이 하실 때 가장 완벽하다. 우리의 복수는 미흡할 뿐이다. 그리고 그 복수는 또 다른 복수를 낳을 뿐이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맡기신 아름다운 역할이 있다. 악역은 하나님이 하실테니, 선한 역할의 주인공을 우리가 하라는 것이다. 항상 착하고 성실하고, 또 축복하는 사람이 되라는 것이다. 참으로 신기하다. 하나님은 이처럼 선한 역할, 좋은 역할을 우리에게맡기셨는데 우리는 왜 미흡한 복수의 역할을 감당하고 싶어하는가?
난 우리 나라에 사랑이 가득했으면 하고 기도한다. 복수는 역사의 중심에서 계신 하나님께 맡기고, 우리는 역사의 주 무대에서 사랑을 실천하며, 그것으로 씨를 뿌려 사랑이 가득한 행복한 세상을 만들었으면 좋겠다. 천국이 다른 것이겠는가? 바로 사랑이 가득하면 천국이 아니겠는가? 그렇다. 우리 나라는 이렇게 되어야 한다. 예수님이 복수를 뒤로하고 십자가 위에서도 축복하셨듯이 우리 서로 축복하며, 온 나라를 축복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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