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처럼 자비하라
누가복음 6:32~36
Entrance Prayer
2 내가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께 부르짖음이여 곧 나를 위하여 모든 것을 이루시는 하나님께로다 3 저가 하늘에서 보내사 나를 삼키려는 자의 비방에서 나를 구원하실지라(셀라) 하나님이 그 인자와 진리를 보내시리로다 (시편 57:2~3)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수많은 고통과 고난의 소리들 가운데서도 우리를 지키시고 인도하심을 감사합니다. 한 주간 동안 주님께서 맡기신 삶의 현장에서 최선을 다하다가 오늘 주의 전에 모였습니다. 충성하노라 했지만 돌이켜 보니 부끄러운 것, 죄스러운 것 뿐입니다. 우리의 부족함과 어리석음을 꾸짖지 마시고, 주의 은혜로 채우시옵소서. 예배하려 합니다. 먼지터럭 하나까지라도 주관하셔서 오직 하나님 만이 영광을 받으시고, 우리들 위에 한없는 은총의 시간이 되게 하옵소서.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 아멘 -
Introduction
날씨가 쌀쌀하지만 주님의 은혜를 사모하시므로 예배에 참여하신 여러분들에게 우리 하나님의 축복이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가정과 생업 위에, 모든 비전들과 계획들 가운데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채우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성도는 큰 은사를 사모해야 합니다. 큰 축복을 사모해야 합니다. 은혜를 받되 작은 은혜에 안주해서는 안됩니다. 더욱 큰 은혜로 나아가야 합니다. 축복을 받되 작은 축복에 머물러 있어서는 안됩니다. 큰 축복으로 나아가며 또한 쟁취할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성경에 등장하는 인물 중에 엘리사는 큰 축복을 사모했던 사람입니다. 그는 하나님의 은혜를 얼마나 귀하게 여겼는지 모릅니다. 그의 선생 엘리야가 하나님의 부름을 받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그를 불러 이 땅에서 천국으로 데려가려고 하셨습니다. 사람들을 엘리야에게 작별인사는 하는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엘리사는 달랐습니다. 엘리야와 함께 하신 하나님께서 자신에게도 역사하기를 소망했습니다. 엘리야에게 나타나신 하나님의 능력이 자기에게서도 나타나기를 바랬습니다. 그래서 죽기 살기로 엘리야를 따라다녔습니다. 엘리야가 여리고로 가면 여리고로 갔습니다. 그가 광야로 가면 엘리사도 광야로 따라갔습니다. 엘리야가 엘리사에게 물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데려가시려고 한다 너는 내게 무엇을 원하느냐?” 엘리사는 주저없이 말했습니다. “당신의 영감이 갑절이나 내게 있기를 원합니다.”(열왕기하2:9) 어떻게 생각하면 건방진 이야기입니다. 선생 앞에서 당신보다 배나 뛰어난 영적 능력을 소유하고 싶다고 했으니 말입니다. 그러나 엘리사가 원한 것은 당신보다 더 우월하고 싶다는 말씀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는 은혜로 풍성하기를 사모했고, 하나님께서 엘리야와 함께 하심처럼 함께 하시고, 또 엘리야의 사역 못지 않는 놀라운 사역을 감당할 수 있기를 사모했던 것입니다. 엘리야는 이것을 나무라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더욱 기뻐했습니다. 하나님도 엘리사의 소원을 기뻐하셨습니다. 그리고 갑절의 영감을 허락하셨습니다. 더욱 큰 은혜와 축복을 허락하셨던 것입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면서 영적 욕심을 가져야 합니다. 여기에 욕심이라는 말을 바른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표현을 쓰자면 그렇다는 것입니다. 영적인 은혜에 대한 간절한 소망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세상 것을 얻기에는 욕심을 냅니다. 풍성한 물질을 얻는데도 욕심을 내고, 성공하고 출세하는데도 욕심을 냅니다. 그러나 정작 하늘과 땅의 모든 것 가운데 가장 귀한 것인 영적인 축복을 얻는 데는 욕심을 내지 않습니다. “예수 믿고 구원 받았으면 되었지 더 이상 필요한가?” 하면서 신앙생활에 적극적으로 나서기를 주저합니다. 뒤로 물러설 때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목사가 강단에서 철저한 신앙생활을 설교하게 되면 그”것은 목사님이나 하는 것이고, 장로님들이나 하는 것이지 나같은 평신도가 뭐 그렇게 까지 유난을 떨 필요가 있느냐?” 하면서 적극적인 신앙생활을 주저합니다. 교회 생활을 하면서 새벽기도도 해야 하고, 철야기도도 해야 하고, 예배에도 빠짐없이 참여해야 하고, 십일조도 해야 하고 선교헌금도 해야 한다고 강조하게 되면 그런 것은 목사님이나 장로님, 연세 많으신 권사님들이나 하는 것이지 먹고 살기 바쁘고, 할 일 많은 우리 같은 평신도는 할 수 없는 것이라고 일찌감치 포기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전혀 신앙생활에 욕심이 없습니다. 영적 은혜에 대한 갈구함이 없습니다. 되는대로 신앙생활 합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세상의 욕심을 벗어버리고 신령한 은사를 사모하라고 말씀하십니다. 큰 은사를 사모하라고 하십니다. 성령으로 충만하라고 말씀하십니다. 간신히 구원받을 정도의 신앙인이 아니라 하나님의 상급을 받을 수 있는 영적 축복의 사람이 되라고 말씀하십니다. 이왕이면 큰 은혜, 큰 축복을 받는 사람들이 될 수 있기를 앙망하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되는대로 신앙생활하다가 간신히 구원만 받을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되지 말기를 바랍니다. 이 땅에서 편안하게 사는 것으로 만족하지 말기를 바랍니다. 큰 은혜를 받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허락하시는 영육간에 큰 축복을 받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Main Subject
1.
예수를 믿었으면 큰 은혜, 큰 축복을 사모해야 합니다. 그런데 누가 큰 은혜 받기 싫은 사람 있습니까? 다 큰 은혜, 큰 축복 받고 싶지요. 그런데 문제는 그것이 모든 사람에게 거저 주시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큰 은혜를 받고, 큰 축복을 받기 위해서는 조건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 조건은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랑거리, 하나님의 칭찬거리가 되기만 하면 됩니다. 그래서 금년에 표어가 우리 교회도 한번 큰 은혜로 부흥하고, 성도들의 삶에도 큰 축복으로 행복할 수 있기 위해서 “자랑스런 성도, 자랑하고픈 교회”라는 표어를 정한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랑거리 칭찬거리가 되기만 하면 하나님께 큰 은혜와 축복을 받을 수 있습니다.
1.1.
본문에서는 결코 하나님의 자랑거리, 축복거리가 될 수 없는 경우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본문 32절 말씀을 함께 보겠습니다.
너희가 만일 너희를 사랑하는 자를 사랑하면 칭찬받을 것이 무엇이뇨 죄인들도 사랑하는 자를 사랑하느니라 (누가복음 6:32)
하나님의 자랑거리가 될 수 있는 사람은 어떤 사람입니까? 사랑할 수 없음에도 사랑하는 사람, 용서할 수 없음에도 용서하는 사람, 바로 그런 사람을 하나님은 사랑하시고, 그런 사람을 자랑하시는 것입니다. 칭찬하는 것입니다.
초대교부 가운데 어거스틴이라는 분이 계십니다. 그는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보답하는 세가지 법이 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첫째는 선은 선으로, 악은 악으로 갚는 것으로 이것은 인간적인 법칙이라고 했습니다. 둘째는 선을 악으로 갚는 것입니다. 이것은 마귀의 법입니다. 세째는 최고의 법인데 악을 선으로 갚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법이요, 우리 주님께서 자기를 따르는 모든 제자들에게 명하신 명령입니다. 성도는 단순히 인간의 법을 따르는 존재가 아닙니다. 그래서는 안됩니다. 더구나 마귀의 법을 따라서 선을 악으로 갚는 경우가 있어서는 안됩니다. 배은망덕한 사람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항상 감사함을 알고 은혜를 기억하는 사람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를 향해 베풀었던 사랑과 후의를 기억하고 그것에 항상 감사할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지난 수요일에도 말씀을 드렸는데 옛말에 은혜는 돌에 새기고 원한을 물에 새기라는 말이 있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은 은혜를 기억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것을 항상 기억할 때에 그는 하나님이 자랑할 수 있는 사람, 하나님 칭찬하시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우리의 앞길을 가로 막는 원수들이 있습니다. 사사건건 우리가 하는 일을 방해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직장생활을 하면서도 그런 사람이 있습니다. 가정생활에도 그런 사람이 있습니다. 사사건건 괴롭히는 사람이 있습니다. 하물며 교회 안에도 그런 사람이 있습니다. 사사건건 방해합니다. 괴롭힙니다. 교회에서 봉사를 하고 섬기는 일을 하는데 사사건건이 못잡아 먹어서 안달인 사람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어떤 목사님께서 목회를 하시는데 교인 가운데 정말로 사사건건 방해하시는 분이 계셨다고 합니다. 제직회를 하면 항상 목사님의 목회 방침에 반대를 하는 것입니다. 이래도 반대 저래도 반대인 사람입니다. 그 사람을 볼 때마다 목사님이 얼마나 괴로웠는지 모릅니다. 그래서 이렇게 기도했답니다. “하나님 벼락을 어디에다 쓰시려고 하십니까?” 저는 그 이야기를 듣고는 얼마나 웃었는지 모릅니다. 한편으로 목사도 인간인지라 그런 생각을 할 때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때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오더랍니다. “나는 저를 위해서 십자가를 졌단다. 너도 저를 위해서 십자가를 질 수 없겠니?” 목사님은 그 음성을 듣고는 회개했다고 합니다.
사사건건이 방해하는 사람, 괴롭히는 사람이 있습니다. 물론 밉지요. 꼴보기 싫지요. 간혹 저주하는 기도가 나올 수도 있지요. 그러나 그래서는 안됩니다. 그것은 멋진 신앙인의 모습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칭찬할 수 있는 그런 모습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사사건건이 방해하는 그 사람을 위해서 기도하고, 축복하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절대로 저주해서는 안됩니다. 항상 축복해야 합니다. 참된 사랑으로 섬길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법칙으로 사는 성도입니다. 성숙한 신앙인입니다. 하나님의 자랑거리, 칭찬거리가 되는 것입니다.
금요일 심야기도를 마치고 집에 들어가서는 TV를 켰습니다. “아내의 반란”이라는 제목의 SBS 금요드라마가 나오고 있었습니다. 세 쌍의 부부 이야기입니다. 여기에 등장하는 세 여자가 있습니다. 나름대로 독특한 캐릭터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TV를 보는 중에 저를 감동시킨 내용이 있었습니다. 바람둥이 남편 때문에 늘 마음 고생을 하던 장진애라는 여인이 그칠 줄 모르는 남편의 바람끼에 대하여 분노했습니다. 남편과의 이혼을 결심하게 되었습니다. 결국 남편은 아내에게 모든 것을 다 맡기고 속초로 떠났습니다. 이 부부가 이혼을 하게 되었다는 소식을 친정아버지께서 들으셨습니다. 상심한 딸을 찾아 위로도 하고 권고도 하기 위해서 찾아오셨습니다. 친정아버지의 손에는 배가 한 봉지 있었습니다. 딸은 그 배를 깎으려 했습니다. 그런데 배가 고약한 것이었습니다. 여기 저기 썩어있고 흠집이 나 있었습니다. 딸은 “아버지에게 뭐 하러 이런 걸 사오셨어요?” 하면서 노인에게 썩은 배를 판 장사꾼을 욕하고 있었습니다. 그 말을 듣고 있던 아버지는 아주 퉁명스럽게 “썩었으면 내다 버려라.”하는 것이었습니다. 딸은 사태를 수습하기 위해서 “썩기는 했지만 썩은 부분만 도려내고 먹으면 됩니다.”라고 합니다. 이 말을 들은 아버지는 딸에게 말합니다. “썩은 배는 도려내고 먹어야 한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아는데, 사람은 못된 부분이 있으면 그것을 도려내고 살아야 한다는 것을 모른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최대의 복수가 무엇이냐? 그것은 용서라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그 말을 들으면서 얼마나 감동했는지 모릅니다. 인생을 살아가면서 가장 힘있는 것은 바로 용서입니다. 때로는 용서하는 것이 어리석은 것처럼 보일 수도 있고, 약한 자의 변명처럼 보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용서하게 될 때에 비로소 가장 강한 자가 되어지고 능력있는 자가 되어지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의 신앙은 선은 선으로 악은 악으로 갚는 수준에 머물러 있어서는 안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 칭찬을 들을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인정함을 받을 수가 없습니다. 주님께서는 죄인들도 그렇게 한다고 말씀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죄인 수준의 신앙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칭찬을 받는 사람이 되고, 하나님의 자랑거리인 성도와 하나님이 자랑하고 싶어서 안달하는 교회가 되기 위해서는 선으로 악을 갚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원수에게 은혜로 복수할 수 있는 교회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칭찬을 받을 수 있는 온 교회와 모든 성도들이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2.
우리가 하나님의 칭찬거리가 될 수 있는 방법이 또 하나 있습니다. 본문 34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너희가 받기를 바라고 사람들에게 빌리면 칭찬을 받을 것이 무엇이뇨 죄인들도 의수히 받고자 하여 죄인에게 빌리느니라 (누가복음 6:34)
바라지 말고 섬겨야 한다는 것입니다. 바라지 말고 도와주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가난한 사람 불쌍한 사람이 있으면 바라지 말고 도와주어야 합니다. 그렇게 되면 하나님께서 축복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 나라의 좋은 전통 가운데 “품앗이”, “두레”, “부조” 같은 것이 있습니다. 이것은 모두가 함께 협력하는 것입니다. 좋은 전통이긴 하지만 여기에는 보이지 않는 이기심이 있습니다. 내가 도와주었으면 반드시 나중에 도움을 받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한 사람의 집안에 큰 일을 당하게 되면 그를 알고 있는 지인들이 여러 가지로 부조를 합니다. 그런데 재밌는 것은 받은 대로 갚는다는 것입니다. 참으로 재밌는 것은 전에 큰 일에 3만원을 부조로 받았으면 그 사람의 큰 일에 꼭 3만원만 부조를 합니다. 더 줄 수 있는 경제적인 여력이 있음에도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이것이 일반적으로 부조를 행하는 풍습입니다. 그러나 성도는 그렇게 해서는 안됩니다. 받기를 바라고 부조해서는 안됩니다. 도울 수 있는 만큼 도울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예수님 당시에 바리새인들은 자기의 잔치자리에 존귀한 사람들만을 초청했습니다. 가난한 사람이나 불쌍한 사람은 청하지 않았습니다. 이런 것을 보시면서 주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사람을 대접할 때에 존귀한 사람이나, 권세있는 사람이나 힘있는 사람을 대접하지 말라. 그들은 너희의 대접을 받고 후에 그것에 대하여 갚을 것이다. 그러나 가난한 자들을 대접하라 그러면 그들은 대접을 받기는 하지만 아무것으로도 갚지 못할 것이다. 그런 사람을 대접하게 될 때에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하늘에 상급을 준비하신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주변에 가난한 자가 있습니까? 고통 가운데 있는 사람이 있습니까? 우리의 인생에 도무지 도움이 되지 않는 힘들어 하는 사람이 있습니까? 그들을 힘써 도울 수 있기를 바랍니다. 지난 번에 말씀드린대로 쓰나미로 힘들어 하는 동남아시아의 여러 사람들을 힘써 도울 수 있어야 합니다. 그들은 우리에게 아무런 도움을 줄 수 없는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동남아 사람들만 이야기를 했더니 꼭 그들만을 도와야 한다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 주변에도 얼마나 힘들어 하고 고통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는지 모릅니다. 이들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도울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 성도들 중에도 하루 하루를 힘들어 하며 눈물로 나날을 보내시는 분들이 계십니다. 그들에게 아무런 조건없이 도움을 줄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렇게 되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칭찬하시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랑거리인 성도와 교회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2.
2.1.
우리가 사랑하고 용서하며, 조건없이 주어야 하는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 때문입니다. 본문 35~36절 말씀을 함께 보겠습니다.
오직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고 선대하며 아무것도 바라지 말고 빌리라 그리하면 너희 상이 클 것이요 또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 되리니 그는 은혜를 모르는 자와 악한 자에게도 인자로우시니라. 너희 아버지의 자비하심 같이 너희도 자비하라. (누가복음 6:35~36)
여기에 우리가 왜 용서하고 사랑하며, 조건없이 나누며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하는지 설명하고 있습니다. 왜 이런 사람이 되면 하나님이 칭찬하시는지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성품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아직 죄인되었을 때에 우리를 사랑하신 분이십니다. 우리가 갚을 능력이 없지만 아무것도 바라지 않으시고 우리를 위해서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기꺼이 내어주신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이와같이 우리를 사랑하셨고, 우리를 위해서 가장 귀한 것을 조건없이 아무것도 바라지 않고 내어주셨다면 우리 역시 하나님처럼 자비로워야 하는 것입니다.
자녀는 아버지를 닮게 되어 있습니다. 매주 금요일 MBC TV에서 하는 것이 있습니다. “꼭 한 번 만나고 싶다”라는 프로그램입니다. 오늘 TV에 대하여 두번이나 이야기를 하니 목사는 책도 안보고 허구한 날 TV만 보고 있는 거 아니냐고 생각하는 분들이 계시겠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거의 TV를 보지 않지만 고정적으로 몇 개의 프로그램을 시청을 합니다. 그런데 “꼭 한 번 만나고 싶다”는 프로그램을 볼 때는 눈물없이는 못 봅니다. 어릴 적에 헤어졌던 어머님을 다시 만나는 장면을 보게 될 때 가슴이 뭉클하고 울컥 눈물이 쏟아져 나오곤 합니다. 그런데 지난 주 금요일에 어떤 여자 청년이 8살 때 헤어진 엄마를 만나고 싶다고 나왔습니다. 그 청년의 말에 의하면 거울을 보면 자기의 얼굴이 못생긴 얼굴이기에 성형수술을 하고 싶은 생각이 든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얼굴은 일찌기 돌아가신 아버지의 얼굴과 어릴적에 헤어진 엄마의 얼굴을 닮고 있는 가족사진이기에 그럴 수 없고, 너무나 사랑스럽다고 하는 것입니다. “내 얼굴은 우리집 가족사진이예요.”하는데 얼마나 감동을 받았는지 모릅니다. 어린아이들을 보면서 신기한 것은 묘하게 부모를 골고루 닮았다는 것입니다. 부부는 전혀 안 닮았는데 아이들은 신기하게도 어떻게 보면 엄마 닮았고, 또 어떻게 보면 아빠 닮았습니다. 묘한 일입니다. 저와 제 아내는 닮은 구석이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 아이들을 보면서 어떤 사람은 엄마를 꼭 닮았다고 합니다. 또 어떤 사람은 아빠를 꼭 닮았다고 합니다. 이렇듯 자녀는 묘하게 부모를 닮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면 하나님을 닮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자비하십니다. 은혜로우십니다. 노하기를 더디하십니다. 사랑이 많으시고 철저하게 용서하십니다. 그 뿐입니까? 우리를 위해서 모든 것을 아낌없이 조건없이 주십니다. 그런데 우리는 계산하고 있고, 용서하지 못하고 사랑하지 못해서 되겠습니까? 안됩니다. 아버지의 자비하심처럼 자비할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사랑해야 합니다. 용서해야 합니다. 조건없이 나눠주어야 합니다. 다른 것 때문이 아닙니다. 우리 하나님 때문입니다. 우리의 감정이 용서할 수 없고, 우리의 계산이 도무지 줄 수 없을지라도 우리 주님 바라보시면서 기꺼이 사랑하고 용서하며, 조건없이 나누어 줄 수 있기를 바랍니다.
2.2.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처럼 자비한 자가 되면 우리를 칭찬하십니다. 우리를 자랑거리로 삼으십니다. 우리 교회가 사랑과 용서가 가득하고, 또 후히 나누어 줄 수 있는 교회가 되어지면 하나님께서는 우리 교회를 자랑하시고 칭찬하십니다. 하나님의 자랑과 칭찬은 말뿐인 것이 아닙니다. 축복이 동반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사랑하고 용서하며 조건없이 주어야 하는 것은 바로 하나님의 축복이 약속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본문 37~38절 말씀을 함께 보겠습니다.
비판치 말라 그리하면 너희가 비판을 받지 않을 것이요 정죄하지 말라 그리하면 너희가 정죄를 받지 않을 것이요 용서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용서를 받을 것이요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주리라 너희의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도 헤아림을 도고 받을 것이니라 (누가복음 6:37~38)
우리가 용서하고 사랑하면 하나님께서도 우리를 용서하고 사랑하십니다. 우리가 주면 하나님께서도 우리에게 주십니다. 그런데 단순히 주는 정도가 아닙니다.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주리라” 얼마나 멋진 축복의 말씀입니까? 우리는 우리의 수준으로 용서하고 사랑하고, 우리의 수준으로 나누어주게 되면 하나님은 하나님의 수준으로 우리를 용서하고 사랑하고 축복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크고 놀라운 축복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큰 은혜를 받게 되는 것입니다.
Conclusion & Blessings
이제 말씀을 맺겠습니다. 오늘 우리는 하나님의 축복을 받으며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받으며 살아야 합니다. 간신히 구원만 받는 은혜가 아닌 크고 놀라운 은혜와 축복을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어떻게 이루어집니까? 우리가 하나님의 칭찬거리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자랑거리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 교회와 성도들이 자랑스런 성도들이 되고, 자랑하고픈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큰 복을 주십니다. 하나님의 큰 용서와 사랑, 하나님의 손으로 후히 되어 흔들어 넘치도록 우리의 품에 안겨 줄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저와 여러분은 사랑하고 용서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조건없이 나누어 줄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러므로 주님의 칭찬거리, 주님의 자랑 거리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향해서 큰 은혜와 큰 축복을 베푸시고, 우리의 삶에 넘치는 기쁨이 충만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Benediction
여호와는 네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 얼굴로 네게 비취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과
성령님의 보호 인도 교통하심이
하나님 아버지처럼 자비한 사람들이 되어
사랑하고 용서하며, 조건없이 나누어 주므로
후히 되어 흔들어 넘치도록 채우시는 큰 은혜, 큰 축복을 받기로 소망하는
주님의 백성들 위에 이제부터 영원까지 함께 계실지어다. - 아멘-
'Bible & Church > Shema Isreal'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가나안 여인의 큰 믿음 (마 15:21~28) (0) | 2005.02.09 |
---|---|
다시 없을 큰 믿음 (눅7:1~9) (0) | 2005.02.01 |
복음과 함께 자랑 된 여인 (마가복음 14:3~9) (0) | 2005.01.16 |
우리가 친히 너희를 자랑함은 (살후 1:1~4) (0) | 2005.01.12 |
하나님의 자랑거리인 성도 (욥기 1:1~8) (0) | 2005.01.0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