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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ble & Church/Shema Isreal

사자가 포효하는 소리


사자의 포효하는 소리

베드로전서 5:8~11

Introduction

어떤 목사님의 설교에서 외국에 나가면 불편한 것이 하나 있다고 합니다. 저는 그 말을 들으면서 외국어 때문에 고생을 많이 하시는가 보다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목사님의 말씀은 그것이 아니었습니다. 외국에 나가면 다른 것은 큰 문제가 없는데, 우리나라에서처럼 인터넷을 자유롭게 할 수 없어서 그것이 매우 불편하다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아직 외국에 나가보질 않아서 잘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다녀오신 분들의 말씀을 들으니, 세계적으로 우리나라처럼 인터넷이 많이 보급되어 있는 나라가 없다는 것입니다. 물론 인터넷이 갖고 있는 폐해도 크지만, 인터넷은 우리에게 많은 좋은 것을 제공해 줍니다. 한국의 명 설교를 다 들을 수 있습니다. 중요한 정도를 신속하게 얻을 수 있습니다.

요즘은 UCC라는 것이 있어서 인터넷 상에 개인 동영상을 마음껏 올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저도 UCC를 이용해서 주일 설교 동영상을 올리고, 원하는 사람이면 누구나 시청할 수 있게 해 두었습니다. 얼마나 좋은지 모릅니다.

언젠가 UCC를 통해서 아프리카 사자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사자 사냥꾼들이 총을 겨누고 사자를 잡으려고 옆으로 쭉 늘어섰습니다. 모든 사람이 사자를 향해 조준을 하고 있었습니다. 이것을 눈치 챈 사자가 사냥꾼들을 향해서 맹렬한 기세로 달려드는 것입니다. 그리고 높이 뛰어올라 한 사람을 때려 눕히고 사라지는 것이었습니다. 정말로 눈 깜박할 사이에 일어나는 일이었습니다. 함께 있던 사냥꾼들도 몇 발의 총을 쏘았을 뿐 아무 것도 하지 못한 채, 그저 바라볼 뿐이었습니다. 저는 그것을 보면서 분노한 사자가 얼마나 무서운가를 보았습니다.

저는 바다사자나 물개나 비슷한 줄 알았습니다. 다들 온순한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렇지가 않았습니다. 바다사자가 얼마나 사나운지 모릅니다. 그저 던져주는 물고기만 받아먹는 그런 친구가 아닙니다. 예전에 동물원에 갔을 때입니다. 구경꾼의 안전을 위해서 바다사자와 관람객 사이에 깊은 골이 만들어져 있습니다. 그런데 그 골짜기에 바다사자 숫컷이 누워있었습니다. 대개의 사람들은 그 녀석이 잘못해서 거기에 떨어진 줄 알았습니다. 구경꾼 가운데 한 사람이 돌을 들어 바다사자에게 던졌는데, 벽력같이 소리를 지르면서 벌떡 일어나더니 자기의 물속으로 뛰어 들었습니다. 그리고는 관람객들을 바라보면서 고래고래 소리를 지는 것이었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깜짝 놀랬습니다. 그런데 그 소리를 듣고 사람들이 더 모여오는 것이었습니다. 도망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습니다. 와 무섭다. 대단하다 하면서도 사람들이 모여옵니다.

동물원에 갇힌 사자나 바다사자는 우리의 구경거리입니다. 그것들이 크게 울부짖으면 울부짖을수록 흥미를 더해줍니다. 그러나 만약에 사자나 바다사자가 그처럼 무섭게 포효하면서 우리 밖으로 뛰쳐나온다면, 어느 누구도 감탄만하고 구경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모두 혼비백산 도망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 때 가장 필요한 것은? 스피드입니다.

저는 우리민족에게서 포효하는 사자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교회와 성도들을 향해서 무서운 이빨을 드러내고, 날카로운 발톱을 드러내고 있는 사자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어디에서도 예수 믿는 사람임을 드러내는 것이 두려울 정도입니다. 세상은 교회와 복음에 대하여 무서울 정도로 반감을 드러내고, 이제는 노골적으로 공격을 감행하고 있습니다. 독설을 서슴지 않습니다. 저주를 퍼붓습니다. 조금도 자비가 없습니다. 독해도 그렇게 독할 수가 없습니다. 아프칸에서 희생 당한 두 사람의 성도들의 숭고한 죽음을 조롱합니다. 잘 죽었다고까지 합니다. 이렇게 독할 수가 없습니다. 무시무시한 사자들의 포효소리를 듣는 듯합니다.

Main Subject

1.

세상과 마귀가 이처럼 교회를 향해서 포효하고 있습니다. 그 울부짖음 앞에 두려워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앞으로 교회가 세상 속에서 어떻게 설 수 있을까에 대한 불안감마저 듭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우리 믿음의 사람들은 어떻게 해야 합니까? 본문 8절 말씀을 함께 보겠습니다.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베드로전서 5:8)

주님은 베드로 사도를 통해서 세상은 무섭게 포효하는 우는 사자와 같다고 합니다. 호시탐탐 공격의 기회를 엿보고 있는 것입니다. 교회와 성도들에게 작은 빈틈만 보여도 그것을 공격하며, 교회를 무너지게 하고, 성도들의 영혼에 치명적인 상처를 주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지금 우리 나라의 상황이 그렇습니다. 교회와 성도들의 모든 행동에 대하여 비난을 퍼붓습니다. 상처를 줍니다. 예수 믿음을 부럽게 만들어갑니다. 베드로는 이런 상황에 놓인 성도들을 향해서 깨어 있어야 하고, 근신해야 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근신하다는 말은 헬라어 네포(nhvfw)라는 말로서 술에 취하지 않다. 맨 정신이다.라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깨어있다는 말은 그레고레오(grhgorevw)라는 말로서 지켜보다, 망보다, 경계근무를 서다라는 뜻입니다. 이 말씀들은 무엇을 뜻합니까? 악한 마귀가 무서운 기세로 교회와 성도들을 공격하게 될 때에, 최적의 방어를 위해서 정신을 바싹 차리고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조금도 헛점을 보이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철저한 대비책을 갖고, 마귀의 공격으로부터 교회와 성도들의 믿음을 지켜내야 한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씀 드리면 세상이 우는 사자와 같이 맹렬한 기세로 교회와 성도들을 공격해 올 때에, 하나님이 주시는 영적인 지혜로 그 모든 공격을 무력화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맹렬한 마귀의 공격을 피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지혜가 필요합니다. 그러므로 우리 주님은 사랑하는 제자들을 세상으로 보내시면서 너희는 비둘기같이 순결하고, 뱀같이 지혜로와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성도는 거룩해야 합니다. 순결해야 합니다. 주께서 맡기신 사명을 감당함에 있어서 용기도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절대로 간과해서는 안되는 것이 있습니다. 지혜입니다. 지혜롭게 행해야 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아름답고 귀한 일이라도, 순결과 열정으로 이루는 대단한 역사라도 그것이 지혜롭게 행해지지 못하면, 마귀의 공격으로 엄청난 영적 피해를 보게 되어 있습니다.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계속해서 진군해 가는 것도 필요할 것입니다. 그러나 지혜롭지 못하면, 아무리 용맹스런 군대라 할지라도 싸움에 패할 수 밖에 없습니다. 공격할 때가 있고, 후퇴할 때가 있습니다. 그 때를 분간해서 가장 적합하게 행동하게 하는 것이 지혜입니다. 시기를 분간할 수 있는 능력이 지혜입니다. 가장 뛰어난 전술을 구사하는 것이 지혜입니다. 무식하게 힘 자랑하면서 칼만 휘두룬다고 승리하지 않습니다. 지혜가 있어야 승리할 수 있는 것입니다.

아프칸에 단기선교를 갔던 믿음의 젊은이들이 피랍된 후에 한국교회의 선교사역은 크게 위축되었습니다. 게다가 국내에서도 교회에 대한 반발로 복음을 전하는 것이 쉽지 않은 상황이 되었습니다. 왜 그렇게 되었습니까? 많은 분석을 할 수 있지만, 지혜가 부족한 탓이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도 여전히 지혜롭지 못하게 행동하는 그리스도인이 있습니다. 공격이 능사라고 외치고, 무조건 선교를 더욱 세게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열정은 아름답습니다. 존경할만합니다. 그러나 지혜가 모자라면 선교하러 가지만, 오히려 선교의 길을 막는 결과를 초래할 것입니다. 복음을 전하지만 복음전파의 길을 차단하는 일이 될 것입니다. 바울 사도는 복음을 전하므로 모든 사람이 그리스도 안에 온전케 되는 일을 위해서 모든 지혜로 가르쳤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열정만을 가지고 가르친 것이 아닙니다. 지혜를 구했습니다. 그리고 그 지혜를 따라 복음을 전하고 가르쳤던 것입니다.(골로새서 1:28) 베드로 사도 역시 마귀가 사자같이 포효하는 소리가 들리는 때에는 무엇보다도 지혜로와야 할 것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지금 한국교회와 성도들을 지혜를 구해야 합니다. 어떤 일을 행하기에 앞서서 하나님의 지혜를 간구해야 하는 것입니다.

아마도 이렇게 말씀하시는 분들이 있을 것입니다. 아프칸 피랍사건을 계기로 어떤 순교적 댓가를 치루더라도 더욱 열심으로 선교해야 하고, 복음을 전해야 한다. 물론 그 말씀이 틀린 것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복음은 어떤 댓가를 치루더라도 전해야 하는 것이며, 그럴 가치가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전쟁에서 항상 공격만 하는 것은 아닙니다. 때로는 더 효과적인 공격을 위해 뒤로 후퇴할 줄도 알아야 합니다. 그것이 지혜입니다.

마귀가 우는 사자와 같이 포효하는 소리가 들린다면 교회와 성도는 정신을 차리고 깨어 기도함으로 지혜를 구해야 합니다. 우리 하나님께서는 꾸짖지 아니하시고, 기도함으로 구하는 성도들에게 지혜를 주실 것입니다. 맹렬하게 공격하는 마귀의 장난을 이길 수 있도록 하실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저는 한국교회가 지금의 위기 상황을 극복하고, 다시금 부흥의 시대를 맞이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지혜를 구함으로 기도해야 한다고 믿습니다. 지금은 복음을 전하겠노라고 큰소리를 치는 것보다, 길거리를 다니면서 예수천당 불신지옥을 주장하는 것보다, 이 시대의 아픔과 난관을 헤쳐나갈 수 있는 지혜를 구해야 합니다. 새벽에 일어나서 기도해야 합니다. 저녁에 기도해야 합니다. 한국교회와 성도들이 나아갈 길을 가르쳐 달라고 하나님께 간구해야 합니다. 우리가 기도하면 포효하는 사자의 함성은 잦아질 것입니다. 우리가 기도하면, 악한 마귀가 한 길로 왔다가 일곱 길로 도망갈 것입니다. 우리가 기도하면 마귀의 잔꾀를 이기는 하나님의 지혜가 우리가운데 충만함으로 세상이 알지 못하는 놀라운 영적 승리가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포효하는 사자의 소리를 듣고 있는 지금, 기도함으로 하나님의 지혜를 구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본문 9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너희는 믿음을 굳게 하여 저를 대적하라 이는 세상에 있는 너희 형제들도 동일한 고난을 당하는 줄을 앎이니라 (베드로전서 5:9)

여기에 보니 세상과 마귀가 우는 사자와 같이 우리를 삼키려고 할 때에 믿음의 사람들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말씀하고 있습니다. 믿음을 굳게 하여 저를 대적하라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마귀의 공격에 방어만 하지 말고, 적절하게 공격하라는 것입니다. 때로는 공격이 최선의 방어가 되기 때문입니다. 교회는 방어만 하는 교회가 아닙니다. 언제까지나 수비만 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기회를 포착하는 대로 공격을 해야 합니다. 그런데 마귀를 향해 대적하며 공격하는 교회는 어떤 모습을 가져야 합니까?

2.1.

본문에 보니 믿음을 굳게 하라는 것입니다. 결코 두려워 하거나 물러서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세상이 으르렁 거리면 두렵습니다. 겁이 납니다. 예수쟁이라고 말하는 것이 겁이 납니다. 사람들의 눈치를 보게 되어 있습니다. 물론 우는 사자와 같이 포효하는 세상을 보면서 가장 지혜로운 길을 찾아야 합니다. 그렇다고 두려움에 벌벌 떨고 있어서는 안됩니다. 겁쟁이가 되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두려워 하는 사람을 기뻐하지 않으십니다. 성경은 지옥에 해당하는 자는 두려워 하는 자들이라고 말씀합니다. 믿음의 사람들을 향해서는 언제나 담대하라, 두려워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두려워 하는 마음을 주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오직 능력과 사랑과 근신하는 마음을 주십니다.(디모데후서 1:7) 그러므로 마귀와 세상에 대한 두려움을 버려야 합니다. 세상이 아무리 먹잇감을 앞에 두고 으르렁 거리는 사자처럼 무시무시하게 보여도, 세상에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는 것이 너무 힘들고 어려워도,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기억함으로 담대할 수 있어야 합니다. 결코 믿음이 약해져서는 안됩니다.

아프칸 피랍사건 이후에 많은 사람들이 믿음에 열심을 잃어가는 것을 보게 됩니다. 세상으로부터 날아오는 비난을 감당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소심하게 되어서 벌벌 떨고 있는 경우도 있고, 아예 신앙을 버리고, 세상사람과 똑같이 되어버리는 사람도 있습니다. 고난이 왔고, 두려운 일이 왔다고 포기해도 되는 것이 믿음이 아닙니다. 믿음은 그렇게 무가치한 것이 아닙니다. 믿음은 생명을 주는 것입니다. 영생을 주는 것입니다. 믿음은 우리로 하여금 고난에서 승리하게 하며, 우리의 삶에 하나님의 축복과 영광을 가져다 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어떤 경우에도 믿음을 견고하게 해야 합니다.

우리의 믿음이 어떻게 견고하게 됩니까? 물론 기도도 해야 합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기 때문입니다. 말씀을 듣고, 묵상하지 않고서는, 말씀으로 훈련되지 않고서는 결코 믿음이 성장할 수 없습니다. 교회에 직분을 받아 봉사하고 섬기는 것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말씀을 바르게 배워 훈련되지 않으면 견고한 믿음을 가질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끊임없이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고 묵상해야 한다고 강조하는 것입니다. 이 말씀이 우리를 온전하게 하며, 능력있게 한다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말씀을 듣고 순종하면 반석 위에 세운 집과 같이 흔들리지 않는다고 선언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말씀으로 말미암을 때에 믿음이 견고하게 되어집니다. 그러므로 마귀가 우는 사자와 같이 포효하는 시대에는 말씀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자신을 훈련시켜야 합니다. 이전보다 더 열심으로 말씀에 귀를 기울어야 합니다. 지금까지는 설교시간을 졸고, 쉬는 시간으로 생각했다면 이제는 전투적으로 매달려서 말씀을 청취해야 합니다. 어린아이가 젖을 사모하는 것처럼 말씀을 사모해야 합니다. 그래야만 견고한 믿음을 얻게 되고, 말씀의 강력한 무기로 마귀의 견고한 진을 파하게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어떤 경우에도 말씀을 듣고 묵상하시므로 믿음을 견고하게 하시기를 바랍니다. 세상에서 들려오는 마귀의 포효하는 소리에 위축되어서 비겁하게 숨어있는 그리스도인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사소한 일에 비겁한 신앙인으로 타협해서는 안됩니다. 믿음을 저버리고, 신앙을 팔아먹는 어리석은 자리에 있어서는 안됩니다. 비록 온 나라가 교회를 비난하고 복음을 조롱하고 있다고 해서 위축될 필요는 없습니다. 다시금 말씀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말씀으로 말미암아 믿음을 견고하게 해야 합니다. 더욱 강해져야 합니다. 그러므로 견고한 믿음과 말씀의 검으로 마귀의 공격을 격퇴하고, 승리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2.2.

두번째로 보니 교회는 마귀의 공격에 대하여 대적해야 한다고 말씀합니다. 여기에 대적하라는 말은 분명히 싸우라는 뜻입니다. 인터넷에 교회를 비난하는 글들이 참으로 많습니다. 성도들을 조롱하는 글들이 많습니다. 가끔씩 보면 여기에 거룩한 분노를 품고 정면으로 대적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비난하는 사람들에게 맞서서 교회와 성도들의 삶에 아무런 잘못이 없음을 주장하는 글을 쓰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흔히 본문에 마귀를 대적하라는 말씀을 오해해서 세상에 정면으로 맞서야 한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우리의 싸움은 혈과 육에 속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세상이 우리를 향해서 무엇이라고 조롱하고 비난하든지, 그것에 대하여 일일이 댓구할 필요는 없습니다. 우리는 조용히 영적인 싸움을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취하며, 성령으로 충만한 사람들이 되어서 이 땅에 만연되어 있는 죄악의 고리를 끊을 수 있어야 합니다. 이 땅에 사라진 거룩한 문화를 일으켜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사랑과 정신이 이 땅 곳곳에서 나타나게 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의 마음에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에 대한 감격이 있도록 만들어야 합니다. 영적인 싸움은 말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자신을 하나님의 전신갑주로 무장케 하고, 우리 자신이 거룩한 산제사로 하나님께 드려질 때에 비로소 마귀의 권세는 무너지고, 하나님의 나라가 서는 것입니다.

우리 주님이 힘이 없어서 십자가를 지셨습니까? 주님은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하늘에서 열두영 더 되는 천군을 불러올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주님이 한마디만 하시면 모든 세상의 창검이 다 쓰러지고 말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그런 방법을 사용하시지 않았습니다.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인류를 위한 화목제물이 되셨습니다. 섬김의 희생을 나타내셨습니다. 십자가에 죽기까지 끝까지 사랑하셨습니다. 바로 이런 사랑과 섬김의 희생을 통해서, 십자가에서 화목제물이 되시므로 마귀의 머리를 깨뜨리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대적해야 하는 마귀는 목소리 큰 주장으로 이길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힘이나 완력으로 이길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세상의 학문과 논리로 대적하여 이길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마귀를 이기려고 한다면 방법은 하나 주님처럼 십자가를 지는 거룩한 희생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 자신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산 제사로 드려야 합니다. 우리의 삶을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과 섬김이 온전히 나타나게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마귀는 힘없이 물러나게 되어 있습니다. 그의 머리를 깨어지고, 손과 발은 무기력해지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인정하는 놀라운 역사가 땅 위에 가득하게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는 사자와 같은 마귀를 어떻게 물리칠 것입니까? 우리의 목소리로, 우리의 주장으로 안됩니다. 주님의 십자가가 아니고서는 절대로 안됩니다. 주님의 십자가의 정신이 우리 안에 되살아나지 않고서는 안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를 지시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시며, 희생하시고 섬기신 것처럼, 우리가 세상을 향해서 이런 자세로 서게 될 때에 마귀의 권세는 무너지게 됩니다. 교회와 복음을 향해 도전하는 수많은 목소리들은 힘을 잃고 말 것입니다. 그러므로 십자가로 마귀를 대적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가만히 앉아서 방어만 하는 것이 아니라, 거룩한 헌신으로 세상을 공격하며, 그 안에 하나님의 축복의 나라를 이루어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3.

마귀가 우는 사자와 같이 공격할 때에, 우리가 기도함으로 하나님의 지혜를 구하고, 또 우리 주님의 말씀을 믿고 십자가의 사랑과 섬김으로 마귀를 대적하게 되면 어떤 축복이 임하게 됩니까? 본문 10절 말씀을 함께 보겠습니다.

모든 은혜의 하나님 곧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부르사 자기의 영원한 영광에 들어가게 하신 이가 잠간 고난을 받은 너희를 친히 온전케 하시며 굳게 하시며 강하게 하시며 터를 견고케 하시리라 (베드로전서 5:10)

여기의 말씀에 보니 우는 사자와 같은 마귀의 공격으로 고통을 당하던 중에도 기도와 말씀으로 이기고 승리한 성도들에게 하나님께서는 분명히 축복을 약속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온전케 하시고, 굳게 하시고, 강하게 하시고, 견고케 하신다는 것입니다.

마귀는 우리를 공격하여 넘어지게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마귀의 이런 공격마저도 믿음의 사람들에게는 합력하여 선을 이루도록 역사하십니다.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은 결코 실수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결코 마귀의 간계에 폐하시지 않으십니다.

우는 사자와 같이 세상이 일어나게 될 때에, 교회는 망하는 것 같습니다. 도무지 부흥의 소망이 없는 것같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교회는 어떤 경우에도 망하지 않습니다. 초대교회는 엄청난 박해 가운데 있었습니다. 지금의 한국교회가 처한 환경은 비교할 수도 없을만큼 끔찍한 고난이 있었습니다. 우는 사자의 무서운 공격이 있었습니다. 당시의 모든 사람들은 이 땅에서 교회가 없어질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교회는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더 번성했습니다. 핍박하던 로마제국을 주님을 섬기는 나라로 완전히 바꾸어 버렸습니다. 우상을 섬기던 이교의 풍습은 완전히 복음의 문화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온 땅에 여호와의 영광을 인정하는 축복이 있게 되었습니다.

고난 중에 믿음으로 말미암아 승리하는 사람에게는 더욱 놀라운 축복이 약속되어 있습니다. 이전보다 더 강력한 축복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부족하던 사람이 온전한 사람이 됩니다. 연약하던 사람이 강건한 사람이 됩니다. 흔들리던 사람이 견고한 사람이 됩니다. 하나님은 고난의 과정을 통해서 이런 축복을 허락하시는 것입니다.

Conclusion & Blessings

이제 말씀을 맺으려고 합니다. 지금 우리 시대는 우는 사자가 극성을 부리는 시대입니다. 악한 마귀가 이 땅의 많은 젊은이들의 마음을 빼앗아 교회와 복음을 향해 도전하게 만들었습니다. 교회와 복음은 심각한 위기의 국면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어디에서도 복음을 전하기가 두려운 세상이 되었습니다. 예수 믿으라고 외치는 한 마디는 모든 사람의 인상을 찌뿌리게 하고, 미친 사람 취급을 당하게 합니다. 사람들은 이구동성을 말합니다. 교회가 사라져야 한다고 합니다. 성도들이 죽어버려야 한다고 합니다. 끔찍합니다. 말로 형용할 수 없는 독설과 저주들이 난무합니다. 먹잇감을 앞에 둔 사자의 모습과 별반 차이가 없습니다.

그렇다면 사자들이 포효하는 것과 같은 이 시대 속에 우리 그리스도인은 어떻게 해야 합니까? 두려워서 벌벌 떨고 있어야 합니까? 아니면 정면으로 맞서서 싸워야 합니까? 어떻게 해야 승리하는 그리스도인이될 수 있고, 어떻게 해야 이 땅에 그리스도의 아름다운 계절을 오게 할 수 있겠습니까? 주님은 베드로 사도를 통해서 말씀하셨습니다. 우는 사자의 시대에는 지혜로와야 한다. 정면충돌만이 능사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잠잠히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 위해서 기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기도함으로 하나님의 지혜를 구하고, 하나님이 주신 지혜로 세상의 모든 공격의 빌미를 차단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믿음을 굳게 하고 대적해야 합니다. 마귀의 공격이 두렵고, 교회를 향한 비난이 쇄도할 때에 믿음이 약해지거나 흔들려서는 안됩니다. 주의 말씀에 견고하게 서서 흔들리지 말아야 합니다. 신앙을 굳게 해야 합니다. 그리고 마귀의 진영을 공격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들고, 그분의 사랑과 섬김과 희생의 모습으로 우리 자신을 산 자세로 드려야 합니다. 그러므로 세상 속에 예수 그리스도의 정신이 가득하게 되므로 마귀의 문화가 무너지고, 마귀의 정신이 사라져서 주님이 기뻐하시는 하나님의 나라가 되게 해야 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제 기도하므로 지혜를 구합시다. 그리고 말씀을 따라 믿음을 견고하게 하시고,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고, 십자가의 길을 걸어가므로 마귀를 대적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러므로 지금의 이 고난이 한국교회로 더욱 온전케 하며, 강하게 하며, 견고하게 할 수 있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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