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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ble & Church/Shema Isreal

거룩한 축제를 위하여


거룩한 축제를 위하여

마태복음 8:5~12

Introduction

우리는 11월에 All Coming Holy Festival을 가지려고 합니다. 이날은 온 교회가 함께 참여하여 주님이 허락하시는 거룩한 축제에 참여하는 날입니다. 교회 안에 있는 모든 성도들이 참여하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아직 주님을 알지 못하는 우리의 가족과 이웃, 친지들까지 참여하여 하나님의 크신 은혜와 축복을 경험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교회는 축제의 집입니다. 잔치의 집입니다. 항상 잔치로 인한 기쁨의 소리가 울려 퍼져야 합니다. 축제의 여흥이 살아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본문의 말씀에 보니 동서로부터 많은 사람이 와서 천국에 참여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교회는 바로 그런 곳입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와서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이 가득한 천국, 거룩한 축제에 참여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교회는 All Coming Holy Festival 뿐 아니라 매 주일의 모임마다 천국의 행복이 가득한 거룩한 축제가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Main Subject

1.

교회는 항상 거룩한 축제가 있어야 합니다. 그런 교회가 건강한 교회이고, 부흥하는 교회인 것입니다. 교회 안에 축제가 사라지면, 교회는 능력을 상실하고, 병들고, 부패할 수 밖에 없습니다. 마귀의 공격에 대하여 무기력하게 패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반드시 거룩한 축제가 이루어져야 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거룩한 축제를 이룰 수 있습니까? 본문 5절과 8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예수께서 가버나움에 들어가시니 한 백부장이 나아와 간구하여 (마태복음 8:5)

백부장이 대답하여 가로되 주여 내 집에 들어오심을 나는 감당치 못하겠사오니 다만 말씀으로만 하옵소서 그러면 내 하인이 낫겠삽나이다 (마태복음 8:8)

예수님께서 가버나움에 가셨을 때에 한 백부장이 예수님께 나아왔습니다. 그는 유대인이 아니었습니다. 이방인이었습니다. 더구나 이스라엘 백성을 통치하는 침략군의 장교였습니다. 그런데 그의 가정에 한 하인이 죽을 병에 걸리게 되었습니다. 이 일로 인하여 백부장의 마음에는 적지않은 염려가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가버나움에 오셨다는 말씀을 듣고 그는 한 걸음에 뛰어가서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예수님께 나아왔습니다. 그리고 자기의 하인을 살려달라고 간청하게 된 것입니다.

여기에 거룩한 축제를 누리는 원리가 있습니다. 예수님께 나아오는 것입니다. 인생의 문제가 해결되고, 하나님이 주시는 천국의 거룩한 축제가 펼쳐지기 위해서는 주 예수 앞에 나아와야 합니다. “예수 앞에 나오면 모든 죄 사하고, 맘에 기쁨 넘치어 편히 쉬리라 우리 주만 믿으면 모든 죄 사하고, 영생 복락 면류관 확실히 받겠네” 그렇습니다. 찬송가 가사가 이야기하고 있는 바와 같이 예수 그리스도 앞에 나아오면 우리의 인생의 모든 문제가 해결됩니다. 아무리 큰 태산과 같은 문제라고 해도, 아무리 힘든 홍해바다라고 해도 우리의 앞길을 가로막을 수 없습니다. 예수께로 가기만 하면 이 모든 문제는 아침 안개와 같이 한 순간에 사라지고 말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께 나아가야 합니다.

예수께 나아와서 아뢰면 우리의 모든 것을 들으시고, 우리의 삶으로 거룩한 축제가 되게 하십니다. 그런데 여기에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예수님께 나아오기만 하면 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예수님이 지상에서 사역하실 때에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을 찾아오기도 했습니다. 수많은 서기관과 율법학자들이 예수님을 찾아 나오기도 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에게서 무슨 교훈을 바라기도 했고, 기적을 보고자 하기도 했습니다. 예수님을 찾아 나오기는 했지만, 그들의 삶에는 거룩한 축제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남들에게 주어지는 축제를 구경만 할 뿐이었습니다. 놀랐을 뿐이었습니다. 그러나 여기에 백부장은 비록 신분적으로는 이방인이었습니다.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 선택한 이스라엘 백성이 아니었습니다. 유대인의 관점에서는 짐승 같은 존재일 뿐입니다. 그런데 이런 백부장에게 주님은 거룩한 축제를 경험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무엇 때문입니까? 그가 예수님께 단순히 나아온 것이 아니고, 그는 예수님에 대한 분명한 믿음, 확신에 차 있었기 때문입니다. 예수 앞에 나아와 간구하게 되면 모든 문제가 사라지고, 하나님이 주시는 거룩한 축제가 주어진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믿었습니다. 그는 예수님의 말씀에 권세가 있는 것을 분명히 믿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 유대의 종교 지도자들은 예수님의 권세 있는 말씀을 애써 무시하려고 했습니다. 그 말씀을 형식적으로 들었습니다. 그러려니 했습니다. 그러나 백부장은 비록 이방 사람이었지만, 주님의 말씀에 능력이 있다는 사실을 믿었습니다. 그렇습니다. 믿음, 주님께 능력이 있음을 분명히 믿고 주께 나아오는 사람에게 하나님은 기적을 일으키시고, 그에게 거룩한 부흥을 허락하십니다.

교회의 부흥이나 성장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 안에 거룩한 축제가 이루어지게 되는 것도 그렇습니다. 뭐 대단한 것이 있겠는가? All Coming Holy Festival.. 그거 뭐 대단한 것이겠는가? 하면서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면, 그런 불신앙을 갖고 있다면 그 날에는 아무런 축제를 기대할 수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천국의 축제는 결코 맛볼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백부장과 같이 주님은 분명히 우리에게 천국을 주실 것이고, 거룩한 축제를 주실 것이고, 부흥과 성장을 주실 것이라고 믿고 나아가기만 하면 상상할 수 없는 놀라운 역사들이 나타나게 될 것입니다. 주님께서 우리의 삶에 거룩한 축제, 천국의 기적을 주신다는 확신을 가져야 합니다.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흔들림이 없는 믿음으로 주님께 나아오기면 하면 분명히 우리는 부흥을 경험할 것이고, 거룩한 축제에 참여하여 그 기쁨을 온 몸으로 느낄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교회는 거룩한 부흥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All Coming Holy Festival을 통하여 교회 안에 영적인 축제가 이루어지기를 소망합니다. 구원의 역사가 일어나고, 주님이 우리에게 허락하시는 천국의 행복이 우리 교회안에 가득하게 되기를 소망합니다. 지금까지 알지 못했던 부흥의 역사를 경험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 앞을 가로막고 있던 모든 어두운 그림자는 물러가고, 우리 주님이 우리를 위해서 펼쳐주시는 놀라운 영광을 맛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는 주님께 능력이 있고, 반드시 이루어주실 수 있음을 믿어야 합니다. 그리고 주님 앞에 엎드려야 합니다. 주님께 나아와야 합니다. 그렇게 되면 우리가 맞이하는 All Coming Holy Festival은 상상을 뛰어넘는 거룩하고 영광스러운 축제가 될 것입니다. 하늘의 기쁨이 넘치는 잔치가 될 것입니다. 이런 역사가 우리 교회 가운데 충만하게 임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본문 6절 말씀을 함께 보겠습니다.

가로되 주여 내 하인이 중풍병으로 집에 누워 몹시 괴로와하나이다 (마태복음 8:8)

예수 그리스도께 나아왔던 백부장이 주님께 간구한 내용이 무엇입니까? 주님이 칭찬할만한 대단한 믿음, 이스라엘 백성 중에서 찾아볼 수 없는 이만한 믿음을 가졌던 백부장이 주님께 간구한 것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그가 높은 지위에 오르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돈을 많이 버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당시의 권력자에게 잘 보여서 승승장구하고 승진하게 되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전쟁에 나아가 승리하는 것이나 자녀들이 출세하여 잘되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가 구한 것은 자기의 하인 자기의 종의 병이 낫기를 구했던 것입니다.

여기에 하인 이라는 단어는 헬라어로 파이스(paiv")라고 하는 말인데, 칠십인 역에서는 종이나 노예를 일컫는 말로 표시했습니다. 그러나 헬라어 용례상 이 단어는 어린아이, 또는 아들이나 딸을 일컫는 말이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본문의 하인을 어떻게 볼 것이냐는 중요한 문제입니다. 그래서 내용을 자세히 살피기 위해서는 공관복음의 병행구절을 살피는 것이 도움이 될 것인데, 병행구절인 누가복음 7:2 에서는 어떤 백부장의 종이 병들어 죽게 되었다. 그런데 그가 그를 사랑하였다.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여기의 종은 헬라어로 둘로스(dou'lo")라는 단어를 사용하며, 신분적으로 주인에게 종속된 노예를 일컫는 말입니다. 마태복음에서는 종을 파이스라는 단어를 사용하므로 아들같이 사랑하는 종인 것을 은연중에 묘사했고, 누가복음은 보다 구체적으로 사랑하는 종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당시에 종이란 어떤 신분의 사람입니까? 그는 아무것도 소유할 수 없는 사람입니다. 사람이지만 사람으로 취급을 받지 못하고 짐승처럼 여김을 받던 존재들이었습니다. 물건처럼 여겨졌습니다. 그런데 이런 종에 대하여 백부장은 사랑하는 마음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가 겪고 있는 질병에 대하여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갖고 있었습니다. 자기의 체면을 불구하고 예수님께 찾아왔습니다. 당시에 백부장은 로마의 군인이었습니다. 정복자였습니다. 그런데 피정복민, 식민지의 보잘 것없는 랍비에 불과한 예수님을 찾아 온다는 것은 심히 부끄러운 일었습니다. 그러나 개의치 않았습니다. 종을 불쌍히 여기고, 종을 살리는 일이라면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이처럼 그는 사람을 사랑하는 뜨거운 열정을 가졌습니다. 결국 그는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종의 병을 고치게 되고, 그의 삶에 거룩한 축제를 경험하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거룩한 축제에 참여하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사람의 영혼을 뜨겁게 사랑해야 합니다. 사람을 사랑하는 뜨거운 열정이 있을 때에 그는 부흥과 축복의 축제에 참여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죽음에 이르는 병에 걸려 있습니다. 지옥을 향해서 나아가고 있습니다. 완악하고 목이 곧은 백성이 되어서 이것을 거부하지만, 절대로 지옥에 가지 않을 것처럼 큰 소리 치지만 주님을 모르고는 지옥에 갈 수 밖에 없습니다. 이런 사람을 불쌍히 여길 수 있어야 합니다. 긍휼이 여길 수 있어야 합니다. 그들의 영혼을 구원하기 위해서 뜨거운 열정을 가져야 합니다. 그래야만이 우리에게 거룩한 축제가 선물로 주어지는 것입니다.

왜 행복이 없고, 왜 부흥이 없고, 기적의 역사가 나타나지 않습니까? 사람의 영혼을 뜨겁게 사랑하고, 그들을 구원하고자 하는 열정이 사라졌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가족들이 지옥을 향해서 가고 있는데, 우리의 이웃들이 주님을 알지 못해 지옥의 불구덩이를 향해서 신속히 달려가고 있음에도 그것을 깨닫지 못하고, 그냥 내버려둡니다. 시급히 구원해야 한다는 열정을 갖지 못합니다. 기회는 자주 있는 것이 아닙니다. 지금이 아니면 기회가 영영 없을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영혼을 사모하며, 그들을 건지기 위해서 지금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내일로 미루면 영영 기회가 다시 오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전도를 잘하시는 어떤 권사님의 간증을 들은 적이 있었습니다. 그 권사님은 영혼을 사랑하는 뜨거운 마음으로 많은 사람들을 전도했습니다. 그런데 유독 어떤 사람에게는 전도를 미루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갑자기 연락을 받았습니다. 그 사람이 자살해다는 것입니다. 권사님의 생각에 그분에게는늘 기회가 있을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영영히 기회가 사라지고 말았다는 것입니다. 돌아가신 분이 집에서 그의 아내에게 입버릇 처럼 말한 것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 권사님은 다른 사람은 다 교회에 데려가는데 나는 안 데려간다. 나도 그 권사님 따라서 교회에 한 번 가보고 싶다. 권사님은 이 이야기를 듣고 통곡을 했답니다. 하나님 앞에서 깊이 회개했다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지금 우리 주변에 주님을 알지 못하고 죽음의 길로, 사망의 길로 가는 사람들이 언제 어떻게 될지 모릅니다. 나중에 전도해도 되는 것이 아닙니다. 지금 시급히 전도해야 합니다. 전하지 않으면 내일은 기회가 없을지도 모릅니다.

백부장은 자기의 종을 위해서 신속히 주님께 나아왔습니다. 백부장의 체면에 예수님께 나아오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지만, 그는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주님께 간절히 간구했습니다. 그의 종을 살려달라고 청했습니다. 그는 사람을 사랑했고, 영혼을 향한 뜨거운 마음을 갖고 있었습니다. 결국 그는 하나님이 주시는 거룩한 축제를 맛보는 사람, 기적을 체험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사람의 영혼을 사랑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들이 영혼을 구원하기 위한 뜨거운 열정을 가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지금 내가 복음을 전하지 않으면 다시는 기회가 주어지지 않을 수도 있다는 급한 마음으로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지금 사랑하는 자녀들이 지옥으로 가고 있고, 남편과 아내, 일가 친지들이 죽음의 길로 가고 있습니다. 더 이상은 복음을 전할 기회가 없을 수도 있습니다. 영혼을 뜨겁게 사랑하는 열정을 회복하시고, 그들에게 복음을 전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러므로 주 앞에서 구원과 생명의 거룩한 축제를 경험하는 귀한 역사가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3.

본문 8절 말씀을 함께 보겠습니다.

백부장이 대답하여 가로되 주여 내 집에 들어오심을 나는 감당치 못하겠사오니 다만 말씀으로만 하옵소서 그러면 내 하인이 낫겠삽나이다 (8:8)

백부장은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 비록 종이었지만 깊은 사랑을 주었던 사람이었습니다. 이와같이 영혼을 사랑하게 될때에 그는 기적을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본문에 보니 백부장은 예수님 앞에서 심히 겸손한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그는 정복자의 백부장입니다. 힘이 있는 사람입니다. 권세가 있는 사람입니다. 식민지의 백성에게 머리를 조아릴 이유가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기꺼이 예수님 앞에 무릎을 꿇었습니다. 그 뿐입니까? 자기의 신분이 주님에 비하면 천하디 천할 뿐이라고 고백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주님을 집으로 모시는 것을 감당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당시로서는 이해가 되지 않는 대목입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는 이런 백부장의 믿음을 칭찬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 중에서도 이만한 믿음을 만나보지 못했다고 선언하신 것입니다.

최고의 믿음은 겸손을 동반한 믿음입니다. 거룩한 축제를 만들고 기적을 만들기 위해서는 겸손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교만한 자는 망하게 하십니다. 거만한 자는 넘어지게 하십니다. 그러나 겸손한 사람은 귀중히 여기시고, 그에게 천국의 기쁨과 만족을 허락하십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겸손해야 합니다. 겸손히 주님께 엎드리게 될 때에 그는 천국의 기적과 축복을 경험할 수 있는 것입니다.

교회가 부흥하기를 기대하십니까? 올 커밍 홀리 페스티발에 놀라운 영적 축제가 있기를 바라십니까? 그렇다면 겸손히 순종하는 믿음을 보여야 합니다. 교회의 행사가 진행됩니다. 순서가 진행됩니다. 그런데 그 모든 것에 순종하지 않고, 내 마음대로 행한다면 결코 위대한 부흥, 거룩한 축제는 맛볼 수가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백성의 작은 순종을 통해서 역사를 이루어가십니다. 사르밧 과부의 기름병과 항아리에 기름이 다하지 않고, 밀가루가 마르지 않은 것은 그가 겸손히 순종했기 때문입니다. 성경에 등장하는 위대한 승리가 다른 것으로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겸손한 순종으로 말미암았습니다. 우리 주님께서 죄와 사망의 권세를 이기시고 승리하신 것도 겸손의 순종으로 말미암아 이루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겸손히 순종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교회를 통해서 하나님은 여러가지 계획을 말씀하실 것입니다. 또한 직분과 사명을 주시며 그것을 감당하도록 요구하실 것입니다. 그것에 대하여 겸손히 순종해야 합니다. 백부장이 예수 그리스도 앞에 겸손히 자기를 낮춘 것처럼 우리 자신을 낮출 수 있기를 바랍니다. 사회적으로 우리의 신분이 높고 낮음을 떠나서, 또 우리가 물질적으로 얼마나 풍요롭고 그렇지 않으냐를 떠나서 주님 앞에 온전히 자신을 낮추고 순종하는 겸손을 보일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러므로 주께서 우리에게 허락하시는 거룩한 축제에 참여하여 기쁨을 누릴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Conclusion & Blessings

이제 말씀을 맺으려고 합니다. 우리 교회는 거룩한 축제가 있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또한 All Coming Holy Festival은 정말로 기쁜 천국의 축제가 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교회 안에 이런 거룩한 축제가 가득하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합니까? 백부장의 이만한 믿음을 간직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것은 주님께는 불가능이 없다는 확신으로 주님께 나아오는 믿음입니다. 사람의 영혼을 뜨겁게 사랑하고, 시급히 복음을 전하러 나아가는 믿음입니다. 주님의 말씀을 크게 여기고, 그 말씀 앞에 자신을 낮추어 겸손히 순종하는 믿음입니다. 저는 우리 교회에 이런 믿음이 충만하기를 바랍니다. 그러므로 동서로부터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와서 우리 하나님의 구원의 노래를 부르며, 주님이 예비하신 거룩한 축제에 참여하는 놀라운 역사가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상상하지 못한 부흥의 시대가 도래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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