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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ble & Church/Shema Isreal

기다릴 때가 아니다.


기다릴 때가 아니다

열왕기하 7:3~10

Introduction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은 정말로 감사해야 할 제목입니다. 아마도 일이 없었다면 삶에 활력이나 기쁨은 사라지고 말았을 것입니다. 각종 정신병으로 시달리게 되었을 것입니다. 통계에 의하면 가난한 나라 사람들은 우울증이나 정신병이 거의 없다고 합니다. 반면에 잘 사는 나라 사람들에게는 우울증도 많고 정신병도 많답니다. 그 이유를 조사해보았더니 대답은 바로 이런 것입니다. 일이 있느냐 없느냐에 따른 것이라고 합니다. 일이 많고, 바쁘면 우울증, 정신병에 걸릴 시간이 없답니다. 그러나 무료한 시간을 보내야만 한다면 이런 못된 질병이 찾아온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런 못된 병에 걸리지 않기 위해서라도 부지런히 열심히 살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아무튼 하나님은 인류에게 일을 주시므로 건강한 삶을 살게 하셨습니다. 그런데 일에는 대개 급한 일과 중요한 일이 있습니다. 어떤 일이 우리의 인생에 우선입니까? 어떤 분은 급한 일에 모든 것을 빼앗기는 사람이 있습니다. 또 어떤 사람은 급한 일보다는 중요한 일에 더 열심인 사람이 있습니다. 물론 어느 것이 옳다고 말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인생에서 급한 일도, 중요한 일도, 절대로 간과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급한 일은 무엇이고, 중요한 일은 무엇입니까? 성경은 인류 최대의 급하고 중요한 일을 소개합니다. 그것은 사람의 영혼을 구원하는 일입니다. 지옥의 고통 속에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함으로 그들에게 행복을 주는 것, 그것이야 말로 가장 급한 일이고 중요한 일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언제 어디서나 복음을 전했습니다. 이 복음을 전하는 일을 위해서 자기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않았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에게 급하고 중요한 일은 우리의 사랑하는 가족, 이웃, 친지들을 구원하는 일임을 기억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므로 이 일을 위해 가장 우선적으로 시간과 물질을 드릴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여기에 관심을 기울여야 할 것입니다.

Main Subject

1.

엘리사가 이스라엘의 선지자로 있을 당시에는 북쪽에 아람이라는 나라가 강력한 힘을 갖고 있었습니다. 아람은 영토를 확장하고, 근동아시아의 주도권을 장악하기 위해서 남하 정책을 펴고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틈만 나면 이스라엘을 공격했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을 공격하려고 할 때마다 그들은 낭패를 보는 것이었습니다. 아람 군대의 공격 통로가 항상 유출되는 것이었습니다. 내부 첩자가 있는 줄로 알고 찾아보았지만 실패합니다. 그들은 이스라엘 땅에 하나님의 선지자 엘리사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엘리사를 사로잡아가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것도 여의치가 않았습니다. 사태다 이쯤에 이르자 아람은 아람 군대를 총동원해서 사마리아 성을 함락하기로 계획을 세웠습니다.

아람 왕 벤하닷은 어마어마한 대군을 이끌고 올라와서 사마리아 성을 에워쌌습니다. 열왕기하 6:24절 말씀에 보면 그의 온 군대를 모아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사마리아 성을 공격하는 아람의 위세가 어떠했는지를 명백히 보여주는 부분입니다. 그러니 사마리아 성은 졸지에 갇힌 신세가 되었습니다. 외부와 철저하게 차단되었습니다. 주로 교역을 통해서 물자를 공급받던 사마리아 성에는 먹을 것이 다 떨어지는 지경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심지어는 여자들이 자기들의 아이들을 잡아먹기에 이르기까지 했던 것입니다.

이런 지경에 이르게 되었을 때에 이스라엘의 왕은 모든 것의 책임이 하나님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하나님이 이런 재앙을 주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복수심으로 하나님의 사람 엘리사를 잡아다가 죽이고자 했습니다. 정말로 어리석은 생각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셨다면 분명히 이유가 있었을 것이고, 왕과 모든 백성은 하나님 앞에서 회개해야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자기들의 죄와 허물은 생각지 않고, 하나님께 복수심을 품었습니다. 뭐 낀 놈이 성내는 격입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나약함과 부족함을 깨닫는 사람에게 축복하십니다. 그런 사람에게 함께 하시면 진노중에도 긍휼을 베푸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교만함으로 하나님의 섭리에 대하여 도전하며, 하나님의 뜻에 거스리게 되어지면 그는 더욱 멸망의 사람이 되고 말뿐입니다.

다윗 왕은 정말로 위대한 사람입니다. 그에게도 범죄는 많았습니다.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를 범했으니 간음죄요, 또 우리야를 전장에 몰아내고 죽게 했으니 살인죄입니다. 그 뿐입니까? 수없이 많은 부족함을 드러냈던 왕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성군이 되었던 것은 진노의 시간, 고통의 시간이 왔을 때에 겸허지 자신을 돌아보는 사람이 되곤 했다는 것입니다.

압살롬의 반란을 피해서 야반도주하게 되었을 때에 시므온이라는 사람이 그를 저주했습니다. 다윗이 사울왕의 가문에 잔혹한 짓을 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심판하시는 것이라고 하면서 돌을 던지며 다윗을 조롱했습니다. 다윗의 신복들이 다윗에게 청합니다. 시므온을 당장에 죽이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그 순간에 시므온을 향한 분노를 불태우기 보다는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돌아보고 겸손하게 했습니다. 이 고통이 왔을 때에는 하나님의 뜻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뜻에 자신을 겸허히 낮추고,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소망하는 사람이 되었던 것입니다. 다윗에게는 이런 모습이 있었습니다. 그는 원망과 불평을 늘어놓고, 남 탓하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잘못과 부족함이 무엇인지를 성찰하는 겸허한 믿음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그를 이스라엘의 성군이 되게 하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의 믿음은 어떤 믿음이 되어 있습니까? 혹 고난이 오고, 고통이 오면 그 가운데서도 우리를 위해서 위대한 계획을 세우시고, 우리의 삶에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실 하나님을 기대하면서 겸손한 사람이 되어지고 있습니까? 아니면 지금 이스라엘의 왕과 같이 하나님을 대적하고, 하나님의 뜻을 거스리며, 도무지 회개하지 않고, 완악한 심령을 갖는 것은 아닙니까?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주권적 섭리 앞에 겸손히 순종할 수 있는 사람, 시험과 역경이 다가왔을 때에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원망하거나 불평하는 사람, 분노하거나 남의 탓하는 사람이 되어서는 절대로 안되는 것입니다.

2.

이 때 하나님은 엘리사를 통해서 약속하셨습니다. 내일 이맘 때에 사마리아 성문에서 고운 밀가루 한 스아를 한 세겔로 매매하고, 보리 두 스아를 한 세겔로 매매하리라는 것입니다. 여기의 화폐단위가 정확하게 얼마나 되는지는 모릅니다. 그러나 싼 값에 곡물을 살 수 있게 된다는 사실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듣고 왕에게 보냄을 받는 장관은 하나님께서 하늘에 창을 내신다고 해도 그런 일은 일어날 수 없다.고 했습니다. 엘리사는 그의 불신앙을 책망했고, 그는 눈으로 구경만하고 먹지는 못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열왕기하 7:2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그 때에 한 장관 곧 왕이 그 손에 의지하는 자가 하나님의 사람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여호와께서 하늘에 창을 내신들 어찌 이런 일이 있으리요 엘리사가 가로되 네가 네 눈으로 보리라 그러나 그것을 먹지는 못하리라 하니라 (열왕기하 7:2)

하나님께서 축복을 약속하시는데, 믿음이 엉망인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 약속을 믿지 못하고, 오히려 비웃는 사람들입니다. 물론 계산이 안되는 일인 것만은 분명합니다. 먹을 것이 없어서 여자들이 자기의 아이들을 잡아 먹을 지경인데, 내일이면 양식이 풍족하게 되겠다고 하니 믿기 어려운 말임에는 분명합니다. 그러나 하늘에 창을 내어도 불가능할 일을 하나님은 가능하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는 불가능이 없습니다. 사람이 못한다고 해서 하나님도 못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에게 불가능하다고 해서 하나님께도 불가능한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은 그의 백성들이 말씀에 대하여 전적으로 신뢰하기를 바라십니다. 자기에게 불가능한 것이라고 하나님께도 불가능하다는 생각을 버리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는 전적으로 하나님을 바라보고, 의지하고 나아가기만 하면 그들의 삶에 축복이 있고, 기적이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홍해를 가른 모세는 그의 앞에 불가능한 문제가 있었지만 말씀을 믿고 지팡이를 높이 쳐들었습니다. 그랬더니 홍해가 갈라졌습니다. 사르밧 과부는 엘리야의 말도 안되는 말씀을 믿고, 마지막 먹고 죽으려고 하는 밀가루와 기름으로 먼저 엘리야에게 빵을 만들어 드렸습니다. 그랬더니 그의 집에는 통에 가루가 다하지 않고, 병에 기름이 마르지 않았습니다.

내게 불가능하다고 하나님께도 불가능하다는 생각을 갖게 되면 그 때부터 망하는 것입니다. 그 때부터 하나님의 역사는 사라지고 마는 것입니다. 기적과 축복은 기대할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장관이 그러했습니다. 그는 왕에게 신임을 얻는 사람이었습니다. 지식도 있었고, 재능도 있었다는 말입니다. 그는 당대의 실력자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자기에게 불가능한 것이라고 하나님께도 불가능하다고 생각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믿음을 어리석다고 조롱했습니다. 그 결과 그는 축복의 시대를 눈으로 보기는 하지만, 그 열매와 기쁨을 누리지는 못하는 사람이 되고 맙니다. 성경에 보니 그는 승리의 시대가 도래했음을 눈으로 보고 백성들에게 밟혀 죽는 신세가 되고 말았습니다.

불가능하다고 포기하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힘으로 불가능하기에 모든 것에 가능하신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을 의지하게 되면 우리의 불가능이 가능으로, 우리의 무능이 기적으로 채워지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을 바라보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손과 드신 팔로 안으시고, 평강의 길로 인도하실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앞에는 우리의 힘으로는 도저히 이룰 수 없는 불가능한 일들이 수 없이 다가옵니다. 그렇다고 좌절하고 낙심하고, 하나님께도 불가능할 것이라고 포기하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능력과 약속마저 무시해서는 안됩니다. 불가능한 일을 만나게 되면 하나님을 바라볼 수 있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는 능력이 있고, 문제해결의 열쇠가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며, 하나님을 더욱 의지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러므로 축복의 약속과 기적의 은혜가 저와 여러분의 삶을 통해 체험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3.

백성들은 굶어죽는 지경입니다. 그리고 백성의 장관들은 믿음이 없는 불신앙적인 소리만 하고 있었습니다. 이런 가운데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을 경험한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본문에 보니 특별한 네 사람이 등장합니다. 본문 3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성문 어귀에 문둥이 네 사람이 있더니 서로 말하되 우리가 어찌하여 여기 앉아서 죽기를 기다리랴 (열왕기하 7:3)

아람 군대가 사마리아 성을 포위하고 있었기 때문에 성안에는 먹을 것이 떨어졌습니다. 성안은 참으로 아비규환입니다. 지옥과 같은 곳입니다. 그런데 그곳에 네 사람의 문둥병자가 있었습니다. 성한 사람도 먹을 것이 없어서 굶어죽는 지경인데 문둥병자에게 무슨 먹을 것이 있었겠습니까? 그들은 허기에 굶주리다가 아람 나라에 항복하고 먹을 것을 구하자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가만히 있어도 굶어죽고, 아람 나라가 공격해 와도 죽을 것이라면 어차피 죽을 목숨 한 번 아람 나라에 항복해서 살 수 있는 기회를 찾아보자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낮 시간을 피하여 어둠이 내릴 무렵에 항복하기 위하여 아람 진영을 향해서 몰래 빠져나갔습니다.

그런데 왠 일입니까? 아람 진영이 텅 비어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그곳에서 하나님의 역사를 보게 되었습니다. 엘리사를 통해서 약속하신 구원의 약속이 성취되는 것을 보았습니다. 아람 군대가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기겁을 하며 식량이며, 병장기며, 금은 보석을 다 두고 도망하게 된 것을 보았습니다. 문둥병자들은 자기들의 생명을 구걸하기 위해서 그곳에 왔다가 하나님의 약속이 성취되는 것을 보고는 놀라움을 금치 못했습니다. 먼저 자기들의 허기진 배를 채웠습니다. 금은 보석과 값진 의복들을 취했습니다. 그것들을 은밀한 곳에 감추었습니다. 정신없이 재물을 챙기다가 문뜩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는 여기 문둥병자들의 생각에 주목해야 합니다. 본문 9절 말씀입니다.

문둥이가 서로 말하되 우리의 소위가 선치 못하도다 오늘날은 아름다운 소식이 있는 날이어늘 우리가 잠잠하고 있도다 만일 밝은 아침까지 기다리면 벌이 우리에게 미칠지니 이제 떠나 왕궁에 가서 고하자 하고 (열왕기하 7:9)

3.1.

이 사람들은 자기들의 욕심을 채우다가 문뜩 이런 생각을 하게 됩니다. 우리만 하나님께서 이루신 승리의 기쁨을 누리는 것은 선하지 못하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구원의 축복과 기쁨을 우리만 누리려고 하는 것은 하나님 앞에서 선한 것이 아닙니다. 신앙은 결코 자신만을 위한 것이어서는 안됩니다. 나만의 행복을 위해서, 나만의 성공과 출세를 위해서 신앙생활을 한다면 그것은 심히 잘못된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생각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복음의 기쁜 소식을 갖고도, 그것을 자기만 누립니다. 다른 사람에게 전하지 않습니다. 그 기쁨을 나누지 않습니다. 그 행복을 움켜쥐고 나누려고 하지 않습니다. 이기적인 신앙인이 되고 맙니다. 문둥병자들은 자기들의 소위가 선치 못하다고 했습니다. 잠잠히 있어서는 안된다고 했습니다. 복음을 전하는 사람이 되어야 하고, 기쁜 소식을 증거해야 한다고 합니다. 지옥과 같은 고통 속에 있는 성 안의 백성들을 위해서 기꺼이 승리의 소식, 기쁨의 소식을 가져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비록 그들과 좋은 관계는 아니었을 것입니다. 문둥병자로 일생을 살았으니 얼마나 분통터지는 일이 많았겠습니까? 문둥병자였기에 정상의 사람들이 있는 곳을 지날 수도 없었습니다. 누군가 그들 가까이에 오면 부정하다, 부정하다 외쳐야 했습니다. 길을 지나게 되면 사람들이 돌을 들어 던졌습니다. 어린 아이들도 침을 뱉었습니다. 그래도 아무런 항변도 할 수 없이 지냈습니다. 그런데 지금 상황이 완전히 바뀐 것입니다. 비록 문둥병자였지만 이들은 승리의 소식을 가졌습니다. 아람군대의 진영에 있는 모든 보화를 자기들의 것을 만들 수가 있었습니다. 풍요롭게 되었습니다. 부자가 되었습니다. 지난 날의 상처와 아픔을 생각하자면 성안의 사람들이 굶어죽든 말든 상관할 바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고백합니다. 이렇게 욕심만을 채우고 있는 것, 승리의 소식을 전하지 않는 것은 선하지 못하다는 것입니다. 잠잠히 있는 것은 옳지 못하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복된 소식은 나누어야 합니다. 주 예수의 은혜로 말미암아 구원함을 얻은 이 기쁨의 소식, 죄와 사망의 권세에서 자유함을 얻게 된 이 능력의 소식은 전파되어야 합니다. 이 복음을 품고도 잠잠한다면 하나님 앞에서 결코 선한 것이 되지 못할 것입니다. 아름다운 소식을 받았으니 그것을 전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가을에 주의 복음을 전할 수 있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바랍니다. 죄로 말미암아 사망의 길을 걷는 사람들에게 생명의 복된 소식을 전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3.2.

네 명의 문둥병자는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이런 아름다운 소식을 주신 데는 분명한 뜻이 있고, 목적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이 좋은 소식을 자기들만 향유한다면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는 것이 되어지고, 하나님의 진노를 피할 수 없을 것이라는 생각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좋은 소식을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아름다운 소식을 주십니다. 문둥병자들에게 먼저 좋은 소식을 주셨던 것처럼, 아무런 소망이 없던 우리들에게 하나님은 좋은 소식을 주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구원의 복된 소식을 주셨습니다. 죄와 사망으로 얼룩지고, 지옥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 가운데서 우리로 하여금 먼저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하게 하시고, 복음으로 말미암은 아름다운 소식을 갖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기적과 능력으로 아람 군대를 몰아내시듯이 사망의 권세를 몰아내시고, 마귀에게 짓밟힌 심령으로 자유를 얻게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전하지 않으면 화가 임할 것입니다.

그런데 이들이 복음을 전할 때에 어떤 심정으로 전했습니까? 단지 잠잠히 있는 것이 옳지 않다는 정도였습니까? 아닙니다. 밝은 아침까지 기다리면 벌이 우리에게 미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복음을 전하지 않으면 화가 임한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시급히 복음을 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내일 아침으로 미룰 일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들이 소식을 전하지 않으면 성 중에 있는 많은 사람이 생명을 잃게 되고, 하나님은 그것에 대하여 반드시 책임을 물으실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이 복음의 소식을 전하지 않고, 잠잠하고, 또 이 복음의 소식을 전하는 것을 뒤로 미룬다면 하나님께서 슬퍼하시고, 진노하신다는 것입니다. 바울 사도는 이와같이 말씀하십니다. 내가 복음을 전하지 않으면 내게 화가 미칠 것이라. 그는 분명이 이와 같은 생각을 했습니다. 복음을 경험한 사람은 반드시 그 소식을 전해야 합니다. 우리로 왕 같은 제사장이 되게 하고, 거룩한 나라가 되게 하고, 그의 소유된 백성이 되게 하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왕이니 큰 소리 치고, 제사장이니 잘난 척하고, 거룩한 나라고, 하나님의 백성이니 다른 사람들을 무시하라고 그런 존귀한 지위를 보장하셨습니까? 아닙니다. 우리를 불러내신 자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케 하려 하심이라고 성경은 분명히 말씀하고 있습니다. 아름다운 소식을 접한 자는 반드시 그 소식을 전해야 합니다. 파숫꾼이 전하지 않으면 화를 당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주어진 복음을 힘써 전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사랑하는 가족에게, 이웃에게, 친지들에게 우리가 경험한 복음을 아낌없이 전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Conclusion & Blessings

이제 말씀을 맺으려고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아람의 공격으로 심히 고통 가운데 있었습니다. 백성들은 서로 물고 뜯었습니다. 장관들은 하나님의 약속과 축복에 불신앙적이었습니다. 가히 이스라엘은 지옥의 고통 중에 있었습니다. 그 때에 문둥병자 네 사람이 하나님의 축복을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기적과 승리를 맛보게 되었습니다. 아람 군대가 모든 것을 버려두고 혼비백산하여 도망간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때에 그들은 어떻게 했습니까? 자기들이 경험한 승리의 소식을 성 안에 전했습니다. 먹을 것이 없어서 죽어가고 있던 백성들에게 전했습니다. 그들에게 생명의 소식을 전한 것입니다. 지체하지 않았습니다. 기다리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성 안의 사람들에게 멸시를 받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조롱을 받던 사람들이었습니다. 부정하다고 손가락질을 당하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을 개의치 않고, 자기들에게 주어진 이 아름다운 소식을 성안에 전했습니다. 이 소식을 전하지 않으면 자기들에게 화가 있을 것이라고 여겼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오늘 지옥을 향해서 달려가고 있는 우리의 이웃들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라고 하십니다. 멸망을 향해 가고 있는 사람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구원의 복된 소식을 증거하라고 하십니다. 이 소식을 전하지 않으면 우리에게 화가 있을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사랑하는 가족, 친지, 이웃들에게 주님의 아름다운 복음을 전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들의 영혼을 구원하여 주님께서 이루신 기적과 승리의 축복을 맛보게 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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