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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ble & Church/Shema Isreal

이사야가 꿈 꾼 미래

이사야가 꿈 꾼 미래

이사야 60:1~7

Introduction

우리는 두 주간에 걸쳐서 다윗과 솔로몬의 이야기를 통해서 예배가 얼마나 중요한가를 함께 생각해 보았습니다. 다윗과 솔로몬은 예배를 통해 그들의 꿈을 심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하나님 앞에 귀한 사람들로 인정을 받게 되었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으로 복을 받았습니다. 솔로몬 또한 하나님께 맞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만큼 예배는 중요합니다. 이 한해에 우리 교회는 예배를 위한 아름다운 꿈을 간직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다윗의 복, 솔로몬의 복을 받아 누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저는 우리 교회에서 아름다운 예배가 드려지기를 희망합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이곳에서 하나님을 찬양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삶에 힘들고 지친 영혼들이 하나님을 찬양함으로 힘을 얻고, 능력을 얻게 되기를 소원합니다. 우리는 그런 꿈을 가질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 교회 안에 그런 예배의 꿈이 있게 될 때에 하나님의 축복이 있습니다. 밝은 미래가 보장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교회의 진정한 부흥은 예배의 부흥에 있었습니다. 성도들의 삶에 축복도 참된 예배의 부흥을 통해서 주어졌습니다. 그러므로 세상의 어떤 부귀나 영화를 꿈꾸기 전에 예배의 회복을 꿈꾸고, 하나님 앞에 멋진 예배를 드릴 수 있기 위해서 헌신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Main Subject

1.

이사야 선지자 당시에 유다와 예루살렘의 백성들은 예배에 실패자가 되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었습니다. 선민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예배에 실패자가 되었을 때에 하나님은 그들에게 진노하실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들이 예배를 드리지 않은 것은 아니었습니다. 풍성한 제물로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러나 욕망을 위해 우상을 섬겼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그들이 드리는 예배마저도 형식적이요, 외식적인 예배를 드렸습니다.

하나님 앞에 드려지는 예배는 예배를 향한 바른 꿈이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유다와 예루살렘의 백성들에게는 꿈이 없었습니다. 그저 많은 재물로 하나님께 예물을 드리면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송아지를 드렸습니다. 기름진 우양으로 하나님께 예물을 드렸습니다. 은과 금으로 하나님을 섬겼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들의 예배를 기뻐하지 않으셨습니다. 물질이 적었기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 드릴 예배의 꿈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향한 진실된 사랑이 없었습니다. 순전한 마음이 없었습니다. 죄를 회개하는 진실한 고백이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그들의 예배를 보시면서 누가 성전의 문을 막아서 더 이상 제물을 드리지 못하게 했으면 좋겠다고 탄식하셨던 것입니다. 이사야 1:11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너희의 무수한 제물이 내게 무엇이 유익하뇨 나는 수양의 번제와 살진 짐승의 기름에 배불렀고 나는 수송아지나 어린 양이나 수염소의 피를 기뻐하지 아니하노라 (이사야 1:11)

하나님은 많은 제물이 많은 제사라고 결코 기뻐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유다의 백성들은 그것을 몰랐습니다. 그들의 삶은 엉망이고, 하나님을 향한 진실한 사랑의 고백이 없이도 제물만 많이 드리고, 돈만 많이 내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그들에게 복을 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런 엉터리 예배, 그릇된 예배는 성공적인 삶을 살지 못하게 합니다. 유다의 백성들은 하나님 앞에서 왜곡된 예배를 드림으로 예배에 실패하는 자들을 되고 말았습니다. 결국 하나님은 그들에게 진노하셨습니다. 그들을 바벨론에게 파셨습니다. 예루살렘은 황폐하게 되고, 그들은 바벨론에 70년간 종살이 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예배의 실패는 인생의 실패입니다. 특별히 믿음의 사람들이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에 실패하게 될 때에 그들의 삶은 황폐하게 되는 것입니다. 모든 하나님의 축복을 빼앗기고, 수치스러움과 치욕을 당하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어떤 예배자인가를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이스라엘과 유다의 백성들처럼 왜곡된 예배로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하나님을 진실로 사랑하는 마음으로 예배하지 못하고 형식적인 예배자가 되고 있는 것은 아닙니까? 진지하게 예배하지 못하고, 적당히 시간을 보내고 있는 것은 아닙니까? 그렇다면 유다와 이스라엘 백성들의 예배와 조금도 다름이 없을 것입니다. 우리 역시 예배에 실패한 사람이 되고 말 것입니다. 이런 예배로는 결코 하나님의 은혜를 받을 수도 없고, 승리하는 믿음의 삶을 살아갈 수도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바른 예배자가 되기를 힘쓰고, 주님 앞에서 그런 꿈을 간직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하나님의 백성들이 예배에 실패했을 때에 하나님은 그들에게 진노하셨습니다. 은혜와 축복을 거두시고, 황폐함을 선포하셨습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이런 하나님의 백성의 실상을 보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좌절하지 않았습니다.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지금 그들 앞에 다가온 하나님의 진노를 보았지만 그는 그것 때문에 낙담하지도 않았습니다. 오히려 새로운 꿈을 꾸기 시작했습니다. 이것이 중요합니다. 절망의 순간, 은총이 사라지는 순간에 좌절하고, 낙심하는 것은 믿음의 사람들의 일이 아닙니다. 지금 안된다고 해서, 지금 실패자가 되었다고 해서 실망만 하고 있다면 그는 하나님의 손에 위대하게 사용될 수 없습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민족적 절망의 현장에서 꿈을 꾸기 시작했습니다. 예배에 실패자가 된 그의 민족들에게 풍성한 예배가 회복되는 꿈을 꾸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그 꿈을 선포하면서 나아갔던 것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에게 절망이 찾아온 것은 예배의 실패에서 비롯된 것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이사야 선지자는 풍성한 예배에 대한 꿈을 꾸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그 꿈을 유다와 예루살렘의 사람들에게 선포했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실패를 승리로 바꾸고, 진노와 심판을 축복과 은총으로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실패된 예배의 자리에서 풍성한 예배를 꿈꾸어야 합니다. 그 꿈을 심어야 합니다. 그렇게 되면 역사가 일어납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풍성한 예배가 회복되는 꿈을 꾸게 되었습니다. 그 꿈이 민족을 살리는 것이요, 부흥케 하는 것이 되어졌던 것입니다. 이사야의 꿈은 어떤 것이었습니까?

2.1.

본문 1~2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1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 이는 네 빛이 이르렀고 여호와의 영광이 네 위에 임하였음이니라 2 보라 어두움이 땅을 덮을 것이며 캄캄함이 만민을 가리우려니와 오직 여호와께서 네 위에 임하실 것이며 그 영광이 네 위에 나타나리니 (이사야 60:1~2)

여기에 보니 이사야 선지자가 꿈꾼 내용이 나옵니다. 그는 하나님의 영광이 그의 백성들에게 임하여 오게 되는 것을 꿈꾸며 소망하게 되었습니다. 어둡고 암울한 세대에 그가 소망하고 바랄 것은 오직 한 가지,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영광이 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들과 함께 하시고, 그의 성령을 부어주시는 것입니다. 성령으로 충만한 가운데 그의 백성이 하나님께 예배하고 찬양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그런 꿈을 꾸었습니다.

지금 이스라엘 백성들의 모습은 어떠했습니까? 그저 육체의 욕심을 만족시키기 위해서 기복적이고, 형식적인 예배를 드렸습니다. 우상을 섬기기도 했습니다. 성령의 인도하심과는 상관없이 자기들의 육체를 따라 살아가는 지극히 추악한 모습의 예배를 드릴 뿐이었습니다. 많은 재물로 예배를 드리기도 했고, 기름진 송아지나 양을 잡아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기도 했지만 그 모든 것이 육체의 욕심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화려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성령께서 역사하지 않는 예배였습니다. 이런 가운데 이사야 선지자는 성령으로 충만한 예배를 꿈꾸었습니다. 각 사람이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순종함으로 하나님께 예배하게 되는 꿈을 꿨던 것입니다.

저는 말씀을 묵상하면서 우리가 꿈꾸어야 할 것이 무엇인가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축복된 미래를 맞이하기 위해서는 지금 어떤 꿈을 어떻게 꾸어야 할 것인가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바로 이사야의 꿈이었습니다. 이사야가 하나님 앞에서 그의 백성들이 성령으로 충만케 되어 하나님을 예배하게 된 그런 꿈을 꾸었던 것처럼, 오늘 우리 교회와 성도들이 바로 그런 꿈을 꾸어야 합니다. 우리가 드리는 예배가 성령으로 충만한 예배가 되기를 꿈꾸어야 합니다. 형식적인 예배가 아닌 성령의 인도하심에 복종하며, 성령의 역사로 말미암아 감사와 감격이 넘치는 그런 예배가 되어야 합니다. 하늘 문이 열리고 성령께서 위로부터 임재하시는 놀라운 축복이 있는 그런 예배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초대교회의 예배는 그러했습니다. 오순절 날에 주님의 제자들이 기도했습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예배했습니다. 그 때에 하나님의 성령이 강림했습니다. 땅이 진동했습니다. 불같은 성령이 임했습니다. 각 사람이 방언을 말하게 되었습니다. 세상 것이 아닌 성령으로 말미암은 영적인 감동이 있게 되었습니다. 어느 누구도 그들에게 찾아온 하나님의 은혜와 기쁨을 빼앗을 수 없었습니다. 모두가 기뻐함으로 복음을 전할 수 있게 되었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교회의 부흥과 축복을 기대하십니까? 우리의 가정과 민족이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견고하게 설 수 있기를 소망하십니까? 그렇다면 지금 우리의 예배를 돌아보아야 합니다. 우리의 예배에 꿈을 심어야 합니다. 성령으로 충만한 예배가 되기를 위해서, 하나님의 영광이 충만히 임하는 그런 예배가 되기를 위해서 꿈을 꾸어야 합니다. 그런 꿈을 지녀야 합니다. 그 꿈이 우리 안에 살아 역사하게 될 때에 비록 지금은 모든 것이 부족하고 실패자같은 모습이라 할지라도 모든 것을 뛰어넘는 놀라운 하나님의 은총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령충만한 예배가 우리 가운데 있기를 꿈꾸며 사모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풍성한 예배를 통해 하나님의 축복의 시대를 맞이할 수 있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2.

3~4절 말씀을 함께 보겠습니다.

3 열방은 네 빛으로, 열왕은 비취는 네 광명으로 나아오리라 4 네 눈을 들어 사면을 보라 무리가 다 모여 네게로 오느니라 네 아들들은 원방에서 오겠고 네 딸들은 안기워 올 것이라 (이사야 60:3~4)

유다와 예루살렘 백성들이 하나님 앞에 예배에 실패하였을 때에 그들에게 찾아온 것은 참으로 참담한 결과였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민족적 자긍심을 사라지고, 이방민족에게 처참하게 짓밟히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앗수르에게 고통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바벨론에게 포로가 되는 신세였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이방 나라에서 종살이를 하게 된 것입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다가온 이와같은 상황을 직시하면서 예배의 회복으로 말미암은 하나님의 축복의 시대를 꿈꾸게 되었습니다. 그는 포로가 되어 이방에 종살이로 나아가는 모습과는 반대로 포로로 잡혀갔던 자녀들이 돌아오고, 또한 열방이 하나님을 섬기기 위해서 예루살렘으로 모여오게 되는 날을 꿈꾸게 되었습니다. 그는 풍성한 예배를 꿈꾸었습니다. 형식적이고, 가식적인 예배가 아닌 참된 예배를 통하여 수많은 열방이 함께 하나님께 예배하기 위해서 모여오게 되는 꿈을 꾸게 된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오늘날 성도들이 꿈꾸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예배는 우리끼리만 드리는 예배가 되어서는 안됩니다. 하나님을 떠났던 우리의 자녀들이 돌아와야 합니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세상 사람들이 하나님을 섬기기 위해서 이곳으로 모여와야 합니다. 이런 꿈을 꾸어야 합니다. 장년예배에 실족한 성도들이 다시금 모여와야 합니다. 교회를 비방하고 나갔던 사람들이 다시 돌아와야 합니다. 청장년 예배에 수많은 젊은이들이 찾아나와야 합니다. 그들이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며, 그 성호를 크게 부르며 함께 예배할 수 있게 되기를 기대하고 소망해야 합니다. 어린이 예배에서 교회를 떠난 수많은 어린이들이 모여와야 합니다. 60~70년대에 얼마나 많은 아이들이 함께 예배했습니까? 그런데 그 많던 아이들이 다 어디에 갔습니까? 그 아이들이 교회로 모여들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섬기기 위해서, 하나님께 예배하기 위해서 고사리같은 손을 모으고 기도하는 아이들이 모여오는 꿈을 꿔야 합니다. 이런 꿈이 있어야 그 교회에 희망이 있는 것입니다. 그런 교회에 하나님께서 주시는 축복이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저는 꿈을 꿔 봅니다. 열방이 우리 교회의 품에 안기는 꿈을 꿔봅니다. 우리 교회에서 드려지는 예배에 참여함으로 하나님의 은혜의 감격을 누리기 위해서 찾아오게 되는 그런 꿈을 꿔 봅니다. 수없이 많은 자녀들이 우리 교회로 돌아와서 하나님을 섬기며, 큰 기쁨으로 하나님을 섬길 수 있게 되기를 꿈꿔 봅니다. 그냥 매 주일 드리는 형식적인 예배가 아닙니다. 하나님으로 말미암은 감격 때문에, 그 은혜를 체험하기 위해서 수많은 사람들이 구름과 같이 일어나게 되기를 바랍니다. 이런 꿈을 간직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사야가 그랬습니다. 그 꿈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축복이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이사야의 이런 회복이 있는 예배의 꿈을 간직하심으로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는 놀라운 영광이 우리 가운데 충만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3.

본문 5~7절 말씀을 함께 보겠습니다.

5 그 때에 네가 보고 희색을 발하며 네 마음이 놀라고 또 화창하리니 이는 바다의 풍부가 네게로 돌아오며 열방의 재물이 네게로 옴이라 6 허다한 약대, 미디안과 에바의 젊은 약대가 네 가운데 편만할 것이며 스바의 사람들은 다 금과 유향을 가지고 와서 여호와의 찬송을 전파할 것이며 7 게달의 양 무리는 다 네게로 모여지고 느바욧의 수양은 네게 공급되고 내 단에 올라 기꺼이 받음이 되리니 내가 내 영광의 집을 영화롭게 하리라 (이사야 60:5~7)

3.1.

이사야 선지자가 하나님 앞에서 거룩한 예배의 회복을 향한 꿈을 꾸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꿈을 향해 나아가게 될 때에 그의 백성들에게 임하게 될 하나님의 축복을 약속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기쁨입니다. 네가 보고 희색을 발하며, 놀라고 화창하리라. 그렇습니다. 희색이 만연하게 될 것입니다. 세상이 알지 못하는 기쁨이 넘쳐나게 될 것입니다. 예배의 회복을 꿈꾸게 되면 지금까지 우리의 삶을 억누르고 있던 모든 것이 사라집니다. 감격이 있게 됩니다. 기쁨이 넘치게 됩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말씀하셨습니다.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않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가 타락하고 병들게 되면 평안이 사라집니다. 기쁨이 사라집니다. 아무런 만족도 감사도 있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 안에 참된 예배가 회복되고, 성령으로 말미암은 예배가 드려지게 되면 세상이 알지 못하는 감격이 있게 됩니다. 기쁨이 넘쳐나게 되어있습니다. 우리가 드리는 예배가 거룩하고 아름다운 예배가 되어서 열방이 찾아오게 되고, 자녀들이 돌아와서 함께 예배하는 역사가 나타나게 되면 말로 할 수 없는 평안과 행복이 찾아오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은 우리가 이런 꿈의 주인공이 되기를 바라십니다.

돈과 물질이 잠시 우리에게 기쁨을 가져다 줍니다. 좋은 음식점에서 맛있는 것을 먹게 되면 잠시 기쁨이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 참된 예배를 드리고, 그 꿈을 간직하고 이루기 위해서 헌신하게 되어지면 세상에서 주는 잠시 잠깐의 행복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영원한 행복, 돈 주고 살 수 없는 엄청난 기쁨이 우리 가운데 넘쳐나게 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저는 우리 교회와 성도들에게 이런 기쁨이 있기를 바랍니다. 모든 성도들이 예배에 승리자가 되어서, 또 그 꿈을 꾸고, 이루는 사람들이 되어서 가슴 벅찬 감격을 간직하고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심령 깊숙한 곳에서부터 말로 할 수 없는 기쁨과 희열이 솟아오르게 되기를 바랍니다.

3.2.

풍성한 예배의 꿈을 꾸고 나아갔던 이사야 선지자는 참된 예배를 드리는 자에게 하나님이 함께 하시고 축복하심을 선포했습니다. 그것은 바로 모든 풍부가 돌아온다는 것입니다. 바다의 풍부함이 돌아옵니다. 세상의 모든 풍요로움이 그들에게 찾아온다는 것입니다.

이런 말씀을 드리면 심히 기복적인 말씀으로 들릴지 모릅니다. 기복신앙은 불신앙입니다. 그것은 잘못된 신앙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축복의 말씀을 부인하는 것 또한 불신앙입니다. 하나님은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바다의 풍부가 돌아온다는 것입니다. 단순히 영적인 축복만을 말씀하시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풍요롭게 하십니다. 잃어버린 영광을 회복하게 하십니다. 동시에 온 땅의 주인되신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모든 풍요로움이 돌아오게 되어 있습니다.

성경은 물질 지상주의를 말하지 않습니다. 그것 때문에 사람들이 다 망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분명히 물질을 축복으로 주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것은 믿어야 합니다. 예배가 풍성하게 되면, 예배가 부흥하게 되면 그 뒤에 하나님은 분명히 풍요가 뒤따르게 하십니다. 그 풍요함과 더불어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집으로 영광스럽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Conclusion & Blessings

이제 말씀을 맺으려고 합니다.

어떤 꿈을 꾸십니까? 돈 많이 버는 꿈을 꾸셨습니까? 그리고 그 꿈을 위해서 살아가십니까? 그렇다면 그것보다 먼저 하나님께 예배하는 꿈을 꾸시기를 바랍니다. 예배를 위한 거룩한 꿈을 잃게 되면 그 때부터 모든 것이 망하는 것입니다. 모든 것이 초라하게 되는 것입니다. 모든 하나님의 축복이 사라지고, 비참한 모습, 황폐한 모습으로 바뀌게 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러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었습니다. 수많은 제물을 가지고 하나님께 예배했습니다. 그러나 그 예배가 바르지 못한 예배, 실패한 예배였을 때에 하나님은 그들은 쫓아내셨습니다. 예배의 현장에서 쫓아내셨습니다. 그들의 예배의 자리를 파괴하셨습니다. 이방민족들 가운데 방황하며, 종노릇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이런 실패의 자리에서 이사야는 하나님이 주시는 예배의 꿈을 꾸기 시작했습니다. 성령으로 말미암아 그의 백성들이 하나님을 섬기게 되고, 하나님의 영광이 충만한 가운데 하나님을 찬양하는 꿈을 꾸게 되었습니다. 성령으로 말미암은 감동이 있는 예배를 꿈꾸게 되었습니다. 마치 오순절 마가의 다락방에 역사했던 성령님의 임재가 있는 그런 감격적인 예배를 꿈꾸게 되었습니다. 그 뿐입니까? 그는 민족의 벽을 뛰어넘어 수많은 민족과 열방과 왕들이 하나님께로 돌아와서 하나님을 섬기며 함께 예배하는 꿈을 꿨습니다. 잃어버린 자녀들이 회복되어 함께 하나님께 예배하는 풍성한 회복의 예배를 꿈꾸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이사야의 꿈을 통해 민족에게 다시금 축복을 약속하셨습니다. 그들에게 하늘의 기쁨을 주셨습니다. 세상이 알지 못하는 만족과 희열을 주셨습니다. 열방의 풍부함이 그들에게 돌아오며, 그들의 삶에 풍성함으로 찬양하게 되는 귀한 축복을 주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사야의 꿈을 가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아름다운 예배, 성령의 충만한 예배를 꿈꿀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드리는 예배가, 우리 교회에서 드려지는 예배에 이런 역사가 있기를 꿈꾸며 소망해야 할 것입니다. 또한 헌신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에 세상이 알지 못하는 기쁨을 허락하시고, 희색을 발하게 하시며, 바다의 풍부와 열방의 재물이 우리 교회와 성도들의 삶을 풍요롭게 하는 귀한 역사가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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