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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ble & Church/Shema Isreal

감사로 넘치게 하라 (골2: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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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 11. 3. 주일설교

본문 : 골로새서 2:6~7

제목 : 감사로 넘치게 하라

설교 : 신 현 철 목사

설교를 들으시리면

잠시만 기다려 주시요..^^

주님의 은총이 함께 하시길

바랍니다.... 샬롬!!

대한예수교 장로회

마 포 중 앙 교 회


감사로 넘치게 하라

골로새서 2:6~7

Introduction

11월은 감사의 달입니다. 한해동안 하나님께서 함께 해 주신 은혜를 기억하면서 우리의 감사를 총정리하는 기간이기도 합니다. 금년에도 하나님께서는 우리 교회에 많은 감사의 제목들을 주셨습니다. 교회를 든든히 세워주셨습니다. 또한 많은 임직자를 세울 수 있도록 축복해 주셨습니다. 눈에 보이게 큰 성장을 이룬 것은 아니지만 교회 안팎으로 좋은 일들이 얼마나 많았는지 모릅니다. 저는 교회를 생각하며, 성도들을 생각할 때마다 하나님 앞에 감사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지금까지 지내온 것 주의 크신 은혜라 찬송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이번 감사의 달에 온 교회가 하나님 앞에서 감사한 제목들을 찾아 볼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주님 앞에서 넘치는 감사의 사람들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사도 바울은 골로새 교인들을 향해서 감사함을 넘치게 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성도들의 삶에는 마땅히 감사가 넘쳐나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가장 싫어하시는 것은 원망입니다. 불평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은혜로 애굽에서 벗어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에게서 감사를 기대하셨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감사치 않았습니다. 원망했습니다. 불평했습니다. 능력가운데 인도하시고,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역사하신 하나님을 비난했습니다.

원망과 불평은 망하는 길입니다. 망하고 싶으면 방법은 간단합니다. 원망하고 불평하면 됩니다. 하나님의 은혜에 배은망덕하면 됩니다. 그러면 이내 망하게 되어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은혜에 감사치 않고 원망하다가 불뱀에 물려 죽었습니다. 원망하다가 기브롯 핫다아와에서 하나님의 진노를 받아 죽었습니다. 원망하다가 땅이 갈라져서 삼킨 바 되었습니다. 원망하다가 광야에서 죽고 말았습니다. 원망은 망하는 길입니다. 반면에 감사는 하나님의 축복을 얻게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받게 합니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믿음의 성도들을 향해서 감사하라고 합니다. 조금 감사하지 말고 감사함으로 넘치게 하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마포중앙교회는 감사함으로 넘쳐나는 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모든 원망과 불평을 저 십자가 뒤에 묻어버리고 우리의 표정에, 얼굴에 감사로 충만히 채울 수 있기를 바랍니다. 성도들이 서로를 대하면서 늘 감사합니다 하면서 고백할 수 있는 귀하고 축복된 교회와 성도들이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Main Subject

1.

교회는 모름지기 감사로 충만해야 합니다. 교회만 그렇습니까? 아닙니다. 믿음의 사람들이 있는 곳에는 항상 감사로 충만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감사로 충만하게 되면 은혜도, 축복도 충만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감사로 충만하게 한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1.1.

첫째로 감사함으로 넘치게 하는 것은 감사의 조건을 많아지게 한다는 것입니다. 감사할만한 일들을 많이 만들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축복을 많이 받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범사에 형통하게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모든 질병과 아픔이 물러가고 건강하게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가난이 물러가고 풍요가 찾아와야 한다는 것입니다. 돈을 벌어도 많이 벌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감사의 조건이 많아지는 것이 감사함으로 넘쳐나게 하는 일입니다.

사도 바울이 감사함으로 넘치게 하라는 것은 우리 안에 하나님께서 주시는 축복들로 넘쳐나게 하라는 것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의 사업이 망해서는 안됩니다. 잘 되어야 합니다. 예수 믿는 사람이 늘 돈이 없어 빌리러 다녀서는 안됩니다. 꾸어줄 수 있어야 합니다. 하는 일들마다 형통함의 역사가 있어야 합니다.

저는 우리 교회와 성도들의 사업이 번창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하는 일들마다 형통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질병이 물러가고 강건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성도들은 이처럼 많은 축복을 받아야 합니다. 특별히 우리교회의 청년들이 세상 어디에서도 존경을 받으며 쓰임을 받는 인재들로 양성되어야 합니다. 가는 곳곳마다 형통케 되어야 합니다. 직장도, 결혼도, 비전도 모두가 형통케 되어야 합니다. 감사의 조건들로 풍성해져야 합니다.

죄악된 사람들이 돈을 많이 갖고 있으면 보통 걱정되는 일이 아닙니다. 그것 가지고 먹고 마시며, 음란하고 더러운 짓을 많이 할 것 아닙니까? 그것 가지고 하나님 미워하시는 일들만 잔뜩할 것아닙니까? 그래서는 안됩니다. 돈도 예수 믿는 사람들이 많이 가져야 합니다. 세상에서 높은 자리, 좋은 자리, 존귀한 자리에도 예수 믿는 사람들이 많이 올라가 앉아야 합니다.

그런데 이것이 맘대로 됩니까? 돈 버는 것이, 성공하는 것이 맘대로 됩니까? 세상의 사람들은 잔머리 굴려서 성공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악인의 도모는 잠깐입니다. 영원히 서지 못합니다. 견고한 것이 되지 못합니다. 그것은 바람에 나는 겨와 같은 성공입니다. 주님께서 바람을 부시며 순식간에 사라지고 말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순종하는 사람에게는 하나님께서 복을 주시는데 “저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으며 그 입사귀가 마르지 않음 같으니 그 행사가 다 형통하리로다.” 그렇습니다. 시냇가에 심은 나무와 같은 축복이 있게 됩니다. 바람이 불어도 괜찮습니다.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내려도 든든합니다. 걱정 없습니다. 항상 형통하게 되어 있습니다. 영원토록 견고하게 되어있습니다.

이삭이 하나님께 큰 축복을 받았습니다. 그가 그랄 땅에서 농사를 지었습니다. 그 해에 흉년이 들었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먹을 것이 없어서 애굽으로 갔습니다. 조금이라도 먹을 것을 얻을 수 있는 땅을 찾아 갔습니다. 농사지은 사람들은 다 망했습니다. 그런데 이삭은 그곳에서 농사를 지었습니다. 다른 사람은 다 망하는데 망하지 않았습니다. 망하지 않는 것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에게 복을 주시므로 100배나 더하여 주시는 복을 받게 되었습니다. 창세기 26:12~13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12 이삭이 그 땅에서 농사하여 그 해에 백배나 얻었고 여호와께서 복을 주시므로 13 그 사람이 창대하고 왕성하여 마침내 거부가 되어 (창세기 26:12~13)

그렇습니다. 다른 사람은 다 망해도 이삭은 망하지 않았습니다. 그가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했을 때에 하나님은 그에게 백배나 더하여 주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 생명을 걸고 순종해야 합니다. 이삭이 애굽으로 내려가지 말라고 하는 주님의 말씀을 듣고 힘들지만 그곳에 있었습니다. 순종했습니다. 죽기를 각오하고 그 땅에서 농사를 지었습니다. 모두가 망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주님을 믿었습니다. 주의 말씀을 의지했습니다. 그 때에 놀라운 수확을 얻고, 축복을 얻었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교회와 성도들은 감사의 조건들로 풍성해져야 합니다. 감사의 조건이 없는 신앙생활을 너무나 힘든 일입니다. 고통입니다. 그러나 감사의 조건들이 풍성하게 되면 기쁨이 있습니다. 행복이 있습니다. 저는 우리 교회와 성도들에게 감사의 조건들이 풍성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잔머리 굴려서 잠깐동안 얻게 되는 감사의 조건 따위는 필요 없습니다. 악인의 도모로 통해서 얻게 되는 성공같은 것은 의미가 없습니다. 주님의 말씀을 따라 순종하므로 우리 주님께서 흉년 중에도 백배나 더하여 주시는 귀한 은총을 받아 넘치는 감사의 조건들로 풍성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2.

둘째로 감사함으로 넘치게 하라는 말씀은 하나님의 은혜를 크게 알고 감사한 마음을 가지라는 것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은 성공해야 합니다. 출세해야 합니다. 유능해져야 합니다. 이런 감사의 조건들을 풍성하게 하므로 감사함을 넘치게 해야 합니다. 그러나 감사의 조건들이 풍성하다고 무조건 감사가 풍성해지는 것은 아닙니다. 감사하는 마음 자체가 메말라 있으면 감사의 조건들이 아무리 많아도 감사함으로 넘쳐나게 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의 입에서 감사가 풍성해져야 하는데 그것은 감사하는 마음이 우리 안에 충만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감사함으로 풍성케 하라는 말씀은 하나님의 은혜를 크게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은혜에 대하여 풍성한 감사의 고백을 가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어느날 열명의 문둥병자가 예수님께 찾아왔습니다. 예수님 우리를 불쌍히 여겨 주옵소서. 이 말씀을 하고 보니 늘 이렇게 기도하시는 분이 생각이 납니다. 우리 변경호 전도사님.. 늘 기도하실 때마다 주여, 우리를 불쌍히 여겨 주옵소서.. 이렇게 기도하십니다. 얼마나 멋진 말입니까? 아무튼 열명의 문둥병자가 예수님께 나아와서는 주여 우리를 불쌍히 여겨주옵소서. 그들은 모두 자기들의 질병이 치료되기를 소망하며 주님 앞으로 나아왔습니다. 주님께서는 그들을 불쌍히 여겨주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제사장에게 가서 너희의 몸을 보이라 그들은 주님의 말씀을 따라서 자기의 몸을 제사장에게 보이기 위해 성전으로 향해서 올라가고 있었습니다. 가는 중에 자신들의 몸을 보니 문둥병은 온데 간데 없이 사라지고 정상인의 몸으로 아주 깨끗하게 된 것이었습니다. 서로를 쳐다보면서 너무나 행복했습니다. 기쁨으로 서로를 축하했습니다. 자기들이 문둥병에서 낫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생각만 해도 가슴벅찬 일이 아닙니까? 오랜동안 문둥병으로 고생했습니다. 그것 때문에 사랑하는 가족들에게서 떠나야만 했습니다. 세상의 버림을 받은 존재로 살아야만 했습니다. 정상인이 자기들 가까이에 다가오면 부정하다 부정하다 하면서 자기들의 존재를 알려야 하고, 그들이 자기들 가까이 오지 못하도록 해야만 했습니다. 철저하게 소외된 사람들이었습니다. 살아도 산 것이 아니었습니다. 모든 사람들에게, 심지어는 어린 아이들에게까지 하나님의 저주를 받은 사람이라는 손가락질을 당해야 했습니다. 가끔씩은 아이들이 던지는 돌팔매질을 당하고 눈물을 흘리며 도망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그 지긋지긋한 문둥병에서 고침을 받았습니다. 온전하게 되었습니다. 어린아이의 피부와 같이 깨끗하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정상인과 같이 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가족들의 품으로 돌아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전에 잃었던 모든 것을 보상받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감격한 나머지 모두가 제사장에게로 달음박질을 했습니다. 빨리 제사장에게 몸을 보이고 가족에게로 돌아가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자기를 치료해 주신 예수님에 대한 생각은 온데 간데 없어졌습니다. 문둥병이 사라짐과 함께 예수님의 은혜도 다 잊어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한 사람 사마리아 사람만은 제사장에게로 달려가다가 주님의 은혜를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다시금 발걸음을 돌이켜서 예수님께로 달려왔습니다. 그 앞에 엎드렸습니다. 눈물을 흘리면서 주님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고백하기 시작했습니다. 그의 입에서는 감사가 넘쳐났습니다. 그의 몸은 감사함으로 가득하며 부들부들 떨고 있었습니다. 주님께서는 이 사람을 바라보시면서 축복하셨습니다. 그리고 다시금 감사할 줄 모르고 은혜를 잊어버린 아홉사람에 대하여 탄식하셨습니다.

우리가 성공하고 출세하고, 기도에 응답이 충만하다고 감사 또한 충만하게 되는 것은 아닙니다. 감사의 조건이 아무리 많아도 우리의 마음이, 우리의 믿음이 감사로 채워지기 않으면 절대로 우리의 입술을 통하여 감사가 흘러나올 수 없는 것입니다.

원래 감사하는 말의 헬라어는 유카리스띠아(eujcaristiva)라고 합니다. 이 말은 좋은, 잘 이라는 뜻의 유(eu)와 사람을 기쁘게 하는 것, 은혜 라는 뜻의 카리스(cavri")의 합성어입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은혜를 인하여 기뻐하는 것이 감사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풀어주신 은혜를 큰 것으로 알고, 그 은혜를 먼저 생각하고, 또 표현하는 것이 감사입니다.

오늘날의 성도들 중에 하나님의 은혜를 싸구려로 아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복음을 값싼 복음으로 취급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우리를 천국으로 인도하시고,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고, 천국의 시민이 되게 하신 것은 별볼일 없는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고 예배하는 자리를 별로 귀중하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주님 앞으로 뛰어나오는 것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합니다. 바쁜데 어떻게 매주마다 예배를 드리느냐고 말합니다. 그래서 조그만 일만 생겨도 예배를 빼먹습니다. 조금만 피곤해도 핑계를 대고 기도하지 않습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베풀어주신 은혜의 값을 모르는 것입니다. 그것을 싼 값으로 생각하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이것은 감사를 모르는 삶입니다. 이런 삶으로는 절대로 감사가 풍성해질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은혜를 크게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은혜를 제대로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 은혜에 대하여 감격하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 은혜에 대하여 감사를 입에 달고 살아야 합니다.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주님의 은혜를 감사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자신을 가리켜 죄인 중에 괴수라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은혜가 너무나 크기에 자기같이 부족한 사람, 별볼일 없는 사람을 사도로 삼아주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섬길 수 있게 해 주셨고, 하나님의 자녀요, 동역자가 되게 해 주셨다는 것입니다. 생각만해도 너무 감사하기 때문에 그는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다른 모든 사도보다 더욱 많이 수고하노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감사함으로 넘치게 하는 것은 바로 이런 것입니다. 주님의 은혜를 크게 기억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입술을 열면 감사를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또한 은혜를 기억하므로 더욱 수고할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은혜를 크게 알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 은혜로 인하여 주님 앞에 감사의 고백을 풍성하게 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문둥병에서 고침을 받고 주님께로 달려왔던 사마리아 사람처럼, 죄인의 괴수였지만 사도로 부름을 받은 바울처럼 주님께 넘치는 감사의 고백과 헌신을 드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1.3.

세째로 감사로 충만케 하라는 것은 망했을 때조차도 감사하라는 것입니다. 아무것도 없어도 감사하라는 것입니다.

성도의 삶에는 감사가 풍성해야 합니다. 물론 감사의 조건이 많아지게 되면 감사가 풍성할 수 있을 것입니다. 감사하는 마음, 은혜를 크게 생각하는 마음을 갖게 되면 풍성한 감사의 고백을 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감사의 조건이 있어서 감사하는 것은 감사로 넘치는 것이 되지 못합니다. 진정한 감사충만은 감사의 조건이 다 사라졌음에도 풍성하게 감사하게 될 때에 감사충만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 믿는 우리에게 항상 좋은 일들만 가득한 것은 아닙니다. 예수를 잘 믿으면 분명히 하나님의 축복을 받습니다. 은혜를 받습니다. 우리 신앙의 선배들이 이런 말씀을 하시는 것을 들어봅니다. 예수를 믿고 3대가 지나서 하나님의 축복을 못 받으면 예수를 잘못 믿은 것이다. 예수 믿고 3대가 지나면 반드시 복을 받게 되어 있다고 합니다. 저는 이 말에 대체로 동의합니다. 3대에 걸쳐서 예수를 잘 믿으면 복을 받습니다. 그러나 예수 믿음은 항상 세상적으로 형통하게 되고, 축복을 받게 되는 것은 아닙니다. 모든 문제도 걱정도 없이 기쁨으로 충만하게 되는 것만은 아닙니다. 성경에 등장하는 욥이라는 사람은 주님을 정말 잘 믿은 사람이었습니다. 동방에서 큰 자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칭찬할만한 사람이었습니다. 주님의 칭찬거리였던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에게 상상도 할 수 없는 정도의 염려거리가 찾아왔습니다. 걱정이 찾아왔습니다. 하루 아침에 쫄딱 망하고 말았습니다. 가지고 있던 모든 재산을 잃었습니다. 사랑하는 자녀들도 한꺼번에 죽었습니다. 검은 머리 파 뿌리 되도록 사랑하겠노라고 맹세하며, 기쁠 때나 힘들 때나 가난할 때나 병들었을 때나 언제나 함께 하겠노라고 굳게 약속했던 아내마저도 하나님을 저주하고 죽어라 하면서 욕하고 떠나고 말았습니다. 예수 믿고 산다고 세상적으로 반드시 성공하는 것은 아닙니다. 때로는 힘든 일이 옵니다. 절망이 옵니다. 고통이 옵니다. 아무도 모르는 눈물을 밤새워 흘려야 할 때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 때도 성도는 감사할 수 있어야 합니다. 바울은 골로새 교인들을 향해서 이런 감사의 사람이 되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아무런 감사의 조건이 없고, 오히려 염려와 눈물의 조건들이 더욱 가득할 때에도 하나님께 감사할 수 있는 감사충만한 사람이 되라는 것입니다.

우리 성도들 중에 너무나 힘들게 살아가시는 분들을 자주 뵙니다. 몹쓸 질병 때문에 힘들어 하며 고통하는 성도들도 있습니다.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하루 끼니를 걱정해야 하는 가정들도 있습니다. 부모들이 굶는 것은 참을 수 있지만 사랑하는 자녀들이 먹을 것이 없어서 울고 있다면 그것만큼 괴로운 일은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가정들이 있습니다. 직장에 취직하려고 해도 어디 하나 자리를 선뜻 내어주는데가 없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감사할 수 있습니까? 믿었던 남편은 술로 세월을 보내고, 가정을 돌아보지 않습니다. 감사할 것을 눈을 비비고 찾아봐도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아무리 감사의 조건이 없는 것같아도 덮어놓고 감사부터 하라는 것입니다. 덮어놓고 감사할 수 있는 감사충만한 사람이 되라는 말씀입니다.

하박국 선지자는 자기 민족의 상황을 보았습니다. 하나님의 축복이라고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황충이 와서 모든 것을 빼앗아 갔습니다. 늣이 와서 모든 것을 갉아먹었습니다. 팟종이가 남을 것을 말끔히 정리해 버렸습니다. 좌우를 둘러봐도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이스라엘 민족 앞에는 오직 절망 뿐이었습니다. 그 때에 하박국은 하나님을 찬송하면서 감사했습니다. 하박국 3:17~18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17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치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식물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18 나는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리로다 (하박국 3:17~18)

하박국 선지자에게 남은 것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그에게 있어서 감사의 조건이 될 만한 것이라곤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무화과 나무가 무성치 못합니다. 포도나무가 열매가 없습니다.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습니다. 식물도 없습니다. 우리 안에 양도 없습니다. 외양간에는 소도 없습니다. 남은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그런데 그는 여호와로 인하여 감사했습니다. 하나님 때문에 감사했습니다. 그래도 하나님께서 계시기에 감사했습니다. 아무것도 없지만 하나님께 감사를 고백했습니다. 그렇습니다. 넘치는 감사는 바로 이런 것입니다. 감사충만은 바로 이런 것입니다. 아무것도 없지만 하나님만으로 인해서 감사하는 것입니다.

저는 아버님이 물려주신 작은 산이 하나 있습니다. 그리 크지 않은 산입니다. 그 땅을 판다한들 서울에서 땅 한 두 평도 사기 힘든 값어치 없는 산입니다. 그래도 산이라는 것이 하나 있으니 그리 나쁘지 않습니다. 제 아버님께서 시골에 계실 때에 그 산에 감나무와 뽕나무를 많이 심으셨습니다. 그래서 지금도 감나무가 한 20주 정도 있습니다. 제 아버님께서 생존해 계실 때는 해마다 감을 따 오셨습니다. 아버님께서 돌아가신 후에는 누가 산에 갈 사람이 없었습니다. 바쁘기도 했고, 여기 저기 시간이 얽매여 있었기 때문에 산을 제대로 돌아보지 못했습니다. 더구나 감을 따 먹는 것에 별 매력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감의 맛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가을이 되면 산에가서 감을 따와야겠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지난 해에는 산 아래 밭을 붙이시는 분들이 감을 다 따가셨기에 올해 초에 신신당부를 했습니다. 절대로 감나무에 손을 대지 말라, 금년 가을엔 내가 감을 따러 올 것이다. 그리고 지난날 월요일에 가족들이 함께 시간을 내서 감을 따러 갔습니다. 그런데 왠걸요... 감나무가 20그루인데 누가 다 따버린 것입니다. 따기 힘든 곳에 몇개 남았을 뿐 잎사귀도 제대로 붙어있지 않았습니다. 얼마나 화가 나던지... 빈손으로 돌아오면서 길 가에 널려있는 감나무들을 보면서 무척이나 속이 상했습니다.

저는 그 감나무에서 감을 수확하지 못하고 나니 감사할 수 없었습니다. 도무지 감사가 나오지 않았습니다. 화가 났습니다. 경찰에 신고라도 해서 감 따간 사람을 혼을 내고 싶었습니다. 물론 신고도 하지 않았고, 혼을 내지도 못해지만 화가 났음에 분명합니다. 지금도 맛있는 감을 보면 감따러 갔다가 헛탕치고 온 것이 생각나고 화가 납니다. 이것이 대개의 사람들의 마음일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가운데서도 성도는 감사할 수 있어야 한다고 합니다. 이것이 감사충만한 사람의 모습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감나무에 감은 없어도 하나님은 결코 우리 곁을 떠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직장에서는 쫓겨나도 하나님은 결코 우리를 쫓아내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사업은 망하고, 우리의 건강은 망가져도 하나님께는 결코 망함이 없고, 영원히 질병이 없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감사로 충만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모든 것을 다 잃게 된다고 해도 감사할 수 있는 감사충만의 사람들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계획이 수포로 돌아가도 하나님 때문에 감사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 때문에 늘 감사 찬송을 드릴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두 눈에는 고통과 괴로움의 눈물이 흘러도 눈물을 흘리면서도 우리의 입술에서는 감사의 고백들로 가득히 채워질 수 있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렇게 될 때에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이름을 기억하시고, 영원한 축복을 더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2.

우리 마포중앙교회는 천국같이 행복한 교회가 되기를 추구합니다. 이런 교회는 어떻게 이루어집니까? 교회 안에 원망과 불평이 사라지고 감사가 충만해야 합니다. 성도들의 가정에 어떻게 천국이 이루어집니까? 원망은 끝나고 불평도 끝나고 감사가 넘쳐나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골로새 교회와 성도들이 감사함으로 풍성하기를 소망했습니다. 감사충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이 충만하기를 소원했습니다. 그런데 이것은 기다리고 있다고 주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감나무 밑에서 입만 벌리고 있다고 나무에 달린 감이 그 입속으로 들어가지 않는 것처럼 시간이 지나면 저절로 감사가 충만하게 되는 것이 아닙니다. 어떻게 해야 감사충만하므로 하나님의 크신 복을 받을 수 있습니까? 능력있는 삶을 살고 천국의 행복을 누릴 수 있습니까?

2.1.

첫째는 예수를 주로 받아야 합니다. 우리 교회에 감사가 충만하기 위해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고백함이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을 주님으로 알고 믿으며, 범사에 예수 그리스도를 인정해야 합니다. 주님을 무시하게 되면 감사는 사라집니다. 원망과 불평이 나오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범사에 주님을 인정하게 되면 저절로 감사가 나오게 되어 있고, 감사가 충만하게 되어있습니다.

우리의 가정에 기쁨이 충만하기 위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가정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주인이 되셔야 합니다. 돈 많이 벌어오는 남편이 주인이 되면 그 가정은 괴롭습니다. 남편의 큰 소리와 강압을 버틸 수가 없습니다. 요즘은 남자들이 아무 힘이 없습니다. 여자들이 큰 소리 칩니다. 여자가 집안에 주인이 되어도 그 가정에 기쁨이 없습니다. 남편도 아내도 아니요, 아이들이 집안에 주인이 되면 콩가루집안이 됩니다. 부모 알기를 우습게 알고 망나니같은 자식들이 생겨나게 되어 있습니다. 신문에 보니 부모를 때리는 못된 자식들이 있다고 합니다. 그런 망나니같은 자식들이 나오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누가 주인이 되어야 합니까? 그렇습니다. 가정에 예수 그리스도가 주인이 되셔야 합니다. 예수를 주로 받아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가정이 감사충만한 가정이 되기를 바랍니까? 그렇다면 가족들이 모두가 예수를 주로 고백하게 해야 합니다. 그들의 영혼을 구원하며 전도해야 합니다. 예수를 믿게 해야 합니다. 예수 믿음으로 철거하게 예수님의 주인되심을 인정하게 해야 합니다. 그렇게 될 때에 비로소 우리 가정은 감사가 충만하게 되는 것입니다.

2.2.

둘째는 주 안에서 살아야 감사 충만하게 되어집니다. 주님 밖에서 살면 절대로 감사할 수 없습니다. 억만금을 벌어도 결코 감사할 수 없는 것입니다. 어떤 목사님께서 설교하시는 중에 부자되는 방법을 말씀해 주셨습니다. 저는 그런 말씀을 듣게 될 때에 귀를 쫑긋 세우고 듣습니다. 그 목사님의 말씀에 부자가 되는 두가지 방법이 있다고 합니다. 첫째는 돈을 많이 벌면 부자가 된다고 합니다. 이 말을 듣고 참 싱거운 목사님이다. 생각을 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불변의 진리입니다. 돈을 많이 벌면 부자가 됩니다. 그런데요 인간의 욕심은 한이 없습니다. 인간은 세상보다 큰 존재입니다. 그러니 세상의 모든 것을 인간의 마음 속에 집어넣어도 결코 만족이 없습니다. 돈을 많이 버는 것으로는 부자는 될 수 있을지 모르지만 만족은 얻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부자가 되는 방법이 있습니다. 그것은 욕심을 버리는 것이라고 합니다. 욕심을 버리면 초가삼간에서도 부자로 살 수 있다고 합니다. 저는 그 말씀을 들을 때에 감탄하고 말았습니다. 우리가 쉽게 큰 부자보다 더 큰 부자가 될 수 있는 방법이 바로 이것입니다. 욕심을 버리기만 하면 됩니다. 여기에 욕심을 버린다는 말씀은 무엇입니까? 세상의 방식으로 사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방식으로 사는 것입니다. 주 안에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모든 염려와 걱정을 주님께 맡기고, 주님으로 인하여 오늘도 내일도 만족하면서 살아가는 것이 바로 주안에서 사는 것입니다. 모든 것을 주님께 맡기며 살아가면 우리는 저절로 감사충만한 사람들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의 모든 것을 주님께 맡길 수 있기를 바랍니다. 너희 염려를 주께 맡겨 버리라 그리하면 주께서 너희를 권고하시라,(베드로전서 5:7)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그리스도의 평강이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빌4:6) 그렇습니다. 모든 것을 주님께 맡기시고, 주 안에서 사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므로 우리 주께서 우리 안에 넘치는 감사로 충만케 하시기를 바랍니다.

2.3.

세째로 주 안에 뿌리를 내리고 세움을 입어야 감사충만할 수 있습니다. 이 말씀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교회에 터를 닦고 교회 안에 일군으로 자리를 잡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교회에 자리잡은 교인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요즘 교인들은 쉽게 교회를 옮깁니다. 어떻게 생각하면 교회는 모두 하나님의 교회이니 어떠냐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교회는 모두가 하나님의 교회입니다. 그러나 터를 잡아야 합니다. 그리고 거기에서 세움을 입어야 합니다. 이것이 중요합니다. 우리 안에 감사가 충만하기 위해서는 떠돌이 교인으로는 감사가 충만할 수 없습니다. 터를 잡아야 합니다. 교회 안에 떠돌이 교인들이 많습니다. 우리 교회에는 그런 분들이 없습니다만 큰 교회에 있어보면 떠돌이 교인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그렇게 신앙생활해서는 결코 감사충만한 삶을 살아갈 수가 없습니다. 부담없이 신앙생활하겠노라고 그렇게 하지만 그것은 감사없는 황무지와 같은 신앙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교회 안에 터를 굳게 잡을 수 있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아무리 등떼밀어도 절대로 나가지 않을 사람들로, 하나님의 교회를 섬기는 기둥같은 일군들로 세워질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렇게 될 때에 우리 안에 감사가 충만해 지는 것입니다.

2.4.

마지막으로 감사가 충만하려면 교훈을 받은 대로 믿음에 굳게 서야 합니다. 이 말씀은 무엇입니까? 절대로 말씀에 순종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말씀을 보고 나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세상의 풍조에 밀려다녀서는 안됩니다. 다른 복음을 따라가서는 안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중심으로 살아야 합니다. 주님 말씀하시면 내가 나아가리다. 주님 말씀하시면 내가 멈춰서리라 고백하면서 주님의 말씀을 중심으로 견고한 믿음의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말씀 없이 감사없습니다. 말씀에 순종하며 헌신하게 될 때에 하나님은 그 사람에게 감사함으로 넘쳐나게 하시는 것입니다.

Conclusion & Blessings

우리 교회는 감사충만한 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각 가정마다 하나님께서 공급하시는 감사의 제목들로 풍성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사람이 망하는 것은 다른 것 때문이 아닙니다. 감사를 잃어버리게 될 때에 망하게 되어 있습니다. 어떤 신학자가 인생의 큰 질병을 이야기하면서 감사치 못하는 죄라고 말씀한 바가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감사할 줄 모름이 인생을 망하게 합니다. 하나님의 축복을 빼앗아가게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원망하다가 망했습니다. 감사를 잃어버릴 때에 주님의 입에서 탄식이 나오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감사의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은혜가 넘쳐납니다. 감사하는 사람을 바라보시면서 우리 하나님께서 기뻐하십니다. 축복하십니다. 우리의 입술에 넘치는 감사가 있게 될 때에 하나님은 우리를 통하여 영광을 받으시고, 우리 앞에 있는 염려와 걱정과 눈물이 사라지게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금년 한해는 수많은 감사의 조건들로 인하여 감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크게 깨달으므로 감사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에게 아무것도 남은 것이 없어도 하나님으로 인하여 감사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이것은 믿음이 없으면 안됩니다. 그러므로 주님께 믿음을 구하시고, 믿음으로 말미암아 감사함을 넘치게 하시므로 하나님께로부터 임하는 하늘과 땅의 모든 축복을 충만히 받을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