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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ble & Church/Shema Isreal

주께서 필요로 하시는 일군(마16:2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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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 11. 27. 주일설교

성경:마태복음 16:23~27

제목:주께서 필요로 하시는 일군

설교:신 현 철 목사

설교를 들으시려면

조금만 기다리세요..*^^*

대한예수교 장로회

마 포 중 앙 교 회


주께서 필요로 하시는 일군

마태복음 16:23~27

Introduction

어제는 우리 교회에 일군을 세우는 임직식이 있었습니다. 얼마나 영광스러운 일인지 모릅니다. 하나님께서 이 땅에 교회를 세우시면서 그 교회를 섬길 일군을 세우도록 하셨습니다. 많은 일군이 세워지게 될 때에 교회는 더욱 든든해 지고, 부흥하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일군에는 여러 종류가 있습니다. 일만 만드는 일군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은 어디서든지 환영을 받을 수가 없습니다. 문제만 일으키는 일군은 한 조직의 암초와 같은 존재입니다. 교회 안에도 그런 일군들이 얼마나 많이 있는지 모릅니다. 흔히 목사를 일컬어 먹사라고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목사가 목회에 전념하지 못하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보다는 먹는 것만 밝힌다고 해서 붙여진 별칭입니다. 목사는 살아도 목사로 살아야 하고, 죽어도 목사로 죽어야 합니다. 절대로 먹사가 되어서는 안됩니다. 그런데 엉터리 목사들이 있어서 먹사라는 말이 나왔습니다. 장로라는 직분도 마찬가지입니다. 언젠가 선배 목사님 한 분이 제게 이런 말씀을 하시는 것입니다. 신 목사님 교회에는 장롱이 몇 개나 있습니까? 목사님들이 모이면 교인수가 얼마나 되는가는 물어도, 교회에 장롱이 몇개 있느냐고 묻는 경우는 없습니다. 그래서 저는 어리둥절하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도 선배 목사님의 질문인데 무시할 수도 없고, 속으로 우리 교회에 장롱이 몇개쯤 있는가 생각했습니다. 창고에 하나, 거실에 두갠가 있는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한 세 개정도 있는 것 같은데요...그랬더니 그 목사님 하시는 말씀이 ~ 그 장롱 말고... 장로님들이 몇 분이 계시냐고요..? 쉽게 말해서 골치썩이는 장로님들이 얼마나 있느냐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정색을 하고 우리 교회에는 장로님들은 계시지만 장롱은 없습니다. 단호하게 말했습니다. “이런 이런... 아무튼 장로교회 성도들은 다 좋은데 아멘이 인색한 게, 이게 문제예요..우리 교회에는 장롱이 없다는데 뭐 기분이 나쁘십니까?” 우리 장로님들은 얼마나 좋으신 분들인지 모릅니다. 저는 목회를 하면서 정말로 좋은 장로님들과 함께 사역할 수 있게 된 것에 대하여 하나님께 얼마나 감사드리는지 모릅니다. 어떤 교회는 목사의 목회에 사사건건 방해를 한답니다. 목사는 교회의 엑셀레이터이고 장로는 브레이크이기 때문에, 목사가 무슨 일을 하려고 하면 장로님들은 일단 브레이크를 밟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장로의 사명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것은 교회를 모르고 하시는 말씀입니다. 목사는 말씀과 기도에 전념하므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찾아내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교회를 향해서 무엇을 명하고 계시며, 어디로 가라고 말씀하시는가를 듣고 그리고 운전대를 돌리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목사는 운전대입니다. 그리고 장로님들은 엑셀레이터가 되고, 또 브레이크가 되어서 완급을 조절하며 하나님께서 교회를 향해서 가라고 지시하시는 그 이정표대로 힘있게 나아가게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늘상 브레이크만 밟고 있으면 안됩니다. 그런 장로님들이 간혹 계시기에 그런 분들을 향해서 장롱이라는 별명이 붙은 것입니다. 이것을 치웠으면 좋겠는데 무거우니 쉽게 치울 수도 없고, 안 치우자니 자리를 넓게 차지하고 있어서 아무 일도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 장로님들은 절대로 장롱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교회의 집사님들을 부르는 또 다른 별명이 있지요? 뭔지 아십니까? 잡사라는 것입니다. 집사가 집사답지 못할 때에 잡사라고 부릅니다. 집사는 충성하는 일군이어야 하는데 늘 땡땡이나 치고, 예배나 빼먹고, 헌금도 안하고.. 교회와 나는 간곳없고 세상과 돈만 보이도다.. 이것이 잡사입니다. 하나님께서 교회에 일군으로 세워 집사가 되게 하셨으면 힘써 섬기며 봉사해야 합니다. 그런데 교회 일에는 도무지 관심이 없습니다. 교회 일은 목사나 장로가 하는 것이지 또 열심있는 어떤 집사들이나 하는 것이지 나쯤은 빠져도 상관없다고 하는 사람들입니다. 또 권사로 세움을 받은 사람들이 일은 하지 않고, 말만 만들어 내는 경우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교회 일에 시시콜콜 원망과 불평을 늘어놓습니다.

이런 일군들을 한 마디로 일만 만드는 일군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교회에 일군을 세우신 목적은 무엇입니까? 일거리, 문제거리를 만들기만 하라고 세우셨습니까? 아닙니다. 일하라고 세우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성도로 부르시고 하나님의 교회에 거룩한 직분을 맡기시는 것은 계급장 달고 끗발부리라고 직분을 주셨습니까? 아닙니다. 죽도록 충성하라고 주신 것입니다.

어제 임직식을 통해서 직분을 받으신 임직자들을 물론이거니와 모든 성도들은 하나님께 받은 직분을 귀한 것으로 알고, 그 직분을 감당할 때에 정말로 주님께서 필요로 하시며, 귀하게 쓰시는 충성스런 일군들이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Main Subject

성도는 주님께서 필요로 하시는 일군이 되어야 합니다. 일만 만드는 사람이 아닌 주님의 마음에 꼭 드는 주님께서 사용하는 일군이 되어야 합니다. 성경은 어떤 사람이 주님께서 꼭 필요로 하시는 일군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까?

1.

첫째는 믿음에 굳게 선 일군입니다.

예수님께서 가이사랴 빌립보 지방에 가셨습니다. 그 곳은 황제의 이름으로 명칭된 도시였습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그 도시는 크고 웅장한 도시였다는 말씀입니다. 사람들은 도시의 화려함과 웅장함, 그리고 로마의 황제를 상징하는 각종 문양들을 보면서 감탄하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모두가 한결같이 로마의 위대함을 칭송했습니다. 감탄사를 연발하고 있었습니다. 그 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물으셨습니다.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제자들은 예수님의 말씀에 별로 관심이 없었습니다. 화려하고 웅장한 도시에 반해 예수님의 말씀은 대수롭지 않게 듣고 대답했습니다. , 어떤 사람은 예수님을 선지자라고 합디다. 어떤 사람은 엘리야라고 하던데요.. ~ 제가 듣기에는 세례요한이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제자들은 가이사랴 빌립보의 화려함에 빠져 예수님의 말씀을 대수롭지 않게 응답할 뿐이었습니다. 예수님은 다시 제자들에게 물으셨습니다. 그렇다면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그 때야 상황이 좀 이상함을 발견한 제자들이 예수님을 바라보기 시작했습니다. 예수님의 모습은 엄숙했습니다. 진지했습니다. 다른 제자들은 모두 어리둥절하고 있었습니다. 그 때에 베드로가 예수님께 대답했습니다. 주여,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베드로의 대답을 들으신 예수님께서는 베드로를 아낌없이 칭찬하셨습니다. 그리고 바요나 시몬아, 이제부터는 네 이름을 베드로라 할 것이다. 내가 네 반석 위에 교회를 세울 것인데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예수님은 엄청난 말씀으로 베드로를 축복하셨습니다. 베드로는 하나님의 교회를 든든히 세우는 중요한 인물이 될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베드로가 예수 그리스도의 세우시는 교회에 큰 일군이 된 것은 무엇 때문입니까? 베드로가 고기를 잘 잡았기 때문입니까? 잘 생겼기 때문입니까? 다른 사람보다 많이 배웠고, 아는 것이 많았기 때문입니까? 아닙니다. 세상에서는 공부를 잘하는 사람이 좋은 회사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그런 사람이 인정을 받습니다. 높임을 받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필요로 하시는 일군은 공부를 잘한 사람이 아닙니다. 세상적으로 성공하고 출세한 사람이 아닙니다. 남다른 재주가 있어야 하는 것도 아닙니다. 가장 중요한 것이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고백하고,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하며, 믿음에 견고하게 될 때에 하나님의 교회에 쓰임받는 일군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누군가가 이런 말씀을 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교회에서도 돈 있는 사람이 대접을 받는다고 합니다. 저는 그 말을 들을 때에 얼마나 마음이 상하는지 모릅니다. 성도들이 돈 있는 사람은 대접한다는 것입니다. 존귀하게 인정한다는 것입니다. 물론 세상에서는 돈 있는 사람이 귀족입니다. 돈 없으면 아무리 신사라도 그는 귀족으로 대접을 받지 못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는 다릅니다. 하나님은 믿음을 정금보다 더 귀한 것이라도 말씀하십니다. 하나님 앞에서 최고의 부자는, 가장 존귀하게 인정을 받는 사람은 좋은 대학을 나온 사람도 아니고, 돈을 많이 가진 사람도 아니요, 세상적으로 명예를 갖고, 학식이 풍성하다고 하나님께 인정받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군, 하나님이 인정하는 사람은 믿음이 있는 사람입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히브리서 11:6)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군을 무엇보다도 믿음의 대장부가 되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에게 대한 견고한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세상이 뭐라고 해도 예수만으로 행복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 때에 그는 하나님께서 필요로 하시는 일군이 되어질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베드로가 주님의 수제자가 되고, 주님의 나라에 꼭 필요한 일군이 되었던 것은 그가 공부를 많이 했기 때문도 아닙니다. 그에게 대단한 능력이 있었기 때문도 아닙니다. 하나님이 그에게 천국의 열쇠를 맡기시고, 교회의 반석이 되게 하신 것은 베드로에게 무슨 대단한 것이 있었기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오직 믿음 때문이었습니다. 우리 주님을 향한 끝없는 사랑 때문이었습니다. 저는 우리 성도들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축복하시는 하나님께 꼭 필요한 일군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베드로의 믿음을 가질 수 있기를 바랍니다. 베드로처럼 주님을 향한 뜨거운 사랑을 갖기를 바랍니다.

나 무엇과도 주님을 바꾸지 않으리

다른 어떤 은혜 구하지 않으리

오직 주님 만이 내 삶에 도움이시니

주의 얼굴 보기 원합니다.

주님 사랑해요. 온 맘과 정성다해

하나님의 신실한 친구되기 원합니다.

복음성가의 가사처럼 오직 주님만을 사랑하고, 의지하고, 주님만을 구하는 사람만이 하나님께서 필요로 하시는 일군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믿음에 부요하시기를 바랍니다. 사람 의지하지 않고, 세상 의지하지 않고, 돈과 명예 의지하지 않고, 오직 주님을 믿고 의지하며, 사랑하시므로 우리 주님께 꼭 필요한 일군들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2.

둘째로 주님께서 필요로 하시는 일군은 교회 안에서 절대로 주인행세하지 않아야 합니다.

교회의 주인은 누구입니까? 교회의 주인은 누구입니까? 이것은 물으나마나 한 우문입니다. 왜냐하면 신앙생활을 조금이라도 한 사람이라면 분명히 주님께서 주인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제가 왜 이런 질문을 합니까? 교회에서는 어느 누구도 주인행세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목사라고 해서 주인행세해서는 안됩니다. 장로라고 해서 주인행세해서는 안됩니다. 교회를 위해서 오래토록 많은 물질을 드리며 헌신해 왔고 섬겨왔다고 해서, 교회에 다닌 경력이 오래되었다고 해서 교회에서 주인행세해서는 안됩니다.

그런데 베드로는 예수님께 칭찬을 듣고, 교만해져서 주인행세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의 일을 자기의 마음대로 좌지우지하려고 했습니다.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물으시는 주님의 질문에 대하여 베드로가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라고 고백했습니다. 이처럼 멋진 믿음의 고백을 갖고 있을 때에 주님은 베드로에게 천국의 열쇠를 쥔 사람으로 주의 교회를 세우며, 견고케 하는 귀한 일을 맡기셨습니다. 베드로를 향한 칭찬을 보면서 모든 제자들이 베드로를 부러워 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베드로를 칭찬하셨던 주님께서는 이제 내가 십자가를 지고 죽어야 한다. 고 말씀하시는 것이었습니다. 아니 이것은 왠 뜬금없는 소리입니까? 요즘 청년들이 하는 말로 갑자기 주님께서 김밥 옆구리 터지는 소리를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자 베드로는 주님께 강청했습니다. 본문 22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베드로가 예수를 붙들고 간하여 가로되 주여 그리 마옵소서 이 일이 결코 주에게 미치지 아니하리이다 (마태복음 16:22)

여기에 예수를 붙들고 간하다고 합니다. 이 말씀은 예수를 심히 호되게 꾸짖는 것을 뜻하는 말입니다. 예수님의 칭찬을 듣고나니 이제는 안하무인이 되었습니다. 교회에서 사람들의 인정을 받고 나니 겁이 없어졌습니다. 대담해졌습니다. 자기가 마치 주인인 것처럼 행세를 하며 진짜 주인이신 예수님을 공격을 합니다. 꾸짖습니다. 주객이 전도된 상황입니다. 그 때에 예수님께서는 베드로를 호되게 꾸짖습니다. 본문 23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예수께서 돌이키시며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사단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 하시고 (마태복음 16:23)

주님께서 주인행세하는 베드로를 보시고 뭐라고 말씀하십니까?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 베드로에게 너는 마귀다 하시는 것입니다. 조금 심하지 않습니까? 조금 큰소리 좀 쳤기로서니 사탄이라니요? 그런데 주님은 교회에서 주님 외에 누구도 주인행세를 하면 사탄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교회에서 주인행세를 합니까? 그렇다면 지금 우리가 마귀짓하고 있는 것입니다. 바로 이런 마귀짓이 교회를 무너지게 하고, 성도를 넘어지게 한다는 말씀입니다.

어떤 교회에 이런 일이 있었답니다. 어떤 분이 교회에 등록하시게 되었는데 꽤나 부자였던 모양입니다. 헌금을 많이 하십니다. 사람들이 모두가 그분이 헌금하시는 것을 보면서 놀라워 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교회에 그런 분을 보내주신 것이 교회를 향한 축복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왠일입니까? 교인들 사이에 어느 정도 인지도가 높아가면서 이분이 교회에 큰소리를 치기 시작합니다. 이런 것을 해라 저런 것은 하지 마라 목사의 목회를 가로막고 좌지우지하려고 했답니다. 목사님이 도무지 안되겠다 싶어서 당회를 했습니다. 그리고 당회에서 결정했습니다. 그 분이 지금까지 헌금한 액수를 다 집계해서 그 돈을 다 돌려주고, 그분에게 교회에 나오지 말라고 했답니다. 잘한 것인지는 잘 모르겠으되 정신만큼은 귀합니다. 돈 좀 있다고 교회를 함부로 하려고 하고, 사람들에게 인정을 조금 받았다고 주인행세하는 것은 마귀짓입니다. 그곳이 교회 안에 자리하게 되면 교회는 힘없이 붕괴되고 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절대로 주인행세 하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주인행세는 나도 망하고 교회도 망하는 길입니다. 내가 주인행세하게 되고, 내가 큰소리치고, 하나님의 일을 생각지 않으면 교회는 무능력하게 될 뿐만 아니라 크게 부흥할 수도 없는 것입니다.

혹 이런 말씀을 듣습니다. 교회에 장로로 세웠더니 안수집사 때는 그렇게 신실하게 순종하던 분이 장로가 되기가 무섭게 변하더랍니다. 장로가 되면 변해야 합니다. 장로가 되었는데 안 변하면 됩니까? 반드시 변해야 합니다. 예수 안 믿을 때와 예수 믿고 난 후가 달라야 합니다. 처음 예수 믿었을 때와 오래 예수 믿게 되면 반드시 달라야 합니다. 변해야 합니다. 그러니 장로가 되면 당연히 변해야 합니다. 장로가 되어서도 옛 신앙 그대로 갖고 있으면 안됩니다. 분명히 변해야 합니다. 전에는 세상과 벗하여 살았는데 이제는 주님과 벗하여 사는 자로 변해야 합니다. 전에는 돈버는 것, 출세하는 것이 관심이었는데 이제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 관심인 사람으로 변해야 합니다. 장로가 되고, 안수집사가 되고, 권사가 되었는데도 여전히 옛날처럼 미지근한 신앙을 갖고 있고, 아무런 변화가 없으면 안됩니다. 하나님께서 직분을 맡기셨으면 반드시 변해야 합니다. 그런데 거꾸로 변하는 사람들이 있어서 문제입니다. 장로가 되고, 안수집사가 되고, 권사가 되고 나니 예수님도 없고, 하나님의 말씀도 없고 교회에서 큰 소리 치는 사람으로 변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교회에서 주인행세하는 사람으로 변했습니다. 이것은 망하는 변화입니다. 우리 교회의 모든 성도들은 절대로 이렇게 변해서는 안됩니다. 베드로가 이렇게 변했습니다. 주님을 향해서 멋진 신앙의 고백을 했었는데 이제는 주님을 꾸짖는 사람으로 변했습니다. 그러다가 마귀라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교회를 넘어지게 하는 사람이라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교회와 모든 직분자들은 절대로 교회에서 주인행세하지 말기를 바랍니다. 감히 하나님의 교회에서 큰 소리치는 사람이 하나도 없기를 바랍니다. 모두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고 하나님의 마음으로 섬길 수 있는 하나님께서 필요로 하는 좋은 직분자들이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3.

세째로 주님께 필요한 일군은 주인의식을 가지고 십자가를 지며, 주님을 따르는 사람입니다. 본문 24절 말씀을 함께 보겠습니다.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마태복음 16:24)

우리 주님께서 필요로 하시는 일군은 주님을 위해서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의 십자가를 지고 주님의 뜻을 따르고, 명령을 따르는 사람입니다. 주님을 위해서 죽을 준비가 되어있지 않는 사람은 주님께 충성된 일군이 아닙니다. 언제든지 힘든 일이 있으면 도망갈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은 하나님 나라의 일군이라고 말할 수가 없습니다.

어떤 목사님의 설교 중에 목회를 힘들게 하는 두 부류의 사람이 있다고 합니다. 첫째는 교회에 헌금도 많이 하고, 봉사도 많이 하는데 뭐든지 제 멋대로 하려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주인행세하는 사람이지요. 이런 사람들은 목회를 얼마나 힘들게 하는지 모릅니다. 목사님들이 그런 분들을 만나면 목회를 그만 두고 싶어진다고 합니다. 그런데 또 목회를 힘들게 하는 두번째 유형의 사람들이 있는데 첫째 유형의 사람들과는 정반대로 교회에서는 절대로 주인행세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언제나 구경꾼이요, 손님이 사람들입니다. 주인행세를 하지 않는 것을 좋으나 교회가 하나님의 큰 사역을 감당하려고 하면 나 몰라라 한다는 것입니다. 내 일이 아니라고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심지어 교회에 힘든 일이 생기면 내가 떠나면 그 뿐이지 하면서 떠나버립니다. 쉽게 신앙생활할 수 있는 교회, 부담없이 신앙생활할 수 있는 교회만을 찾아다니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런 분들이 목회를 힘들게 한다는 것입니다. 그 말씀을 듣고 너무나 지당한 말씀이라는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목사가 기도하면서 하나님께 비전을 받아 귀한 사역을 추진하려고 하는데 나 몰라라 하면서 뒷짐만 지고 구경만 하고 있습니다. 조금도 헌신하지 않습니다. 그러면 목회하기가 싫어지는 것이 당연합니다.

성도요 직분자들은 분명히 교회에서 주인행세를 해서는 안됩니다. 그렇다고 구경꾼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반드시 주인의식을 갖고 교회를 섬기는 충성스러운 청지기가 되어야 합니다. 오늘날의 성도들은 주인의식을 갖고 섬기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물질을 공돈으로 여깁니다. 무조건 쓰고 보자는 식입니다. 교회의 작은 것이라도 정말 주인의 마음으로 아낄 줄 알아야 하는데 그렇지 못합니다. 함부로 쓰고 버립니다.

주일 예배가 끝나고 나면 얼마나 많은 쓰레기가 나오는지 모릅니다. 여기 저기 쓰레기를 함부로 버립니다. 물론 사람이 많이 오갔으니 쓰레기가 나오는 것도 당연합니다. 그런데요... 꼭 그런 것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교회의 비품을 사용하고 가지런히 정리해 두는 경우가 거의 없습니다. 여기 저기 흩어져 있습니다. 누구 하나 교회의 것을 주님의 것이라고 생각하며 귀히 여기는 사람이 없습니다. 그리고 교회는 관리집사님이나 돌보고, 교역자들이나 돌보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전혀 주인의 마음이 없습니다. 손님입니다. 구경꾼입니다. 지나가는 사람입니다. 교회의 직분자들이 이런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다면 그 교회의 미래는 참으로 암담한 것입니다. 주인의식을 가져야 합니다. 다시 말하면 주님의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교회를 향한 주님의 사랑하는 마음, 아끼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주인의식을 가진 사람과 구경꾼의 마음을 가진 사람은 천지차이입니다. 주인의식을 가진 사람을 자기에게 맡겨진 일에 목숨을 걸고 최선을 다합니다. 자기에게 주어진 십자가를 지고 죽기까지 주님을 따릅니다. 그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서 목숨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않습니다. 구경꾼은 다릅니다. 힘들면 도망합니다. 결코 사명을 위해 목숨을 걸지 못합니다.

우리 주님께서 필요로 하시는 일군은 주인의식을 가진 사람입니다.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는 사람, 주님의 일을 위해서 목숨을 기꺼이 버릴 수 있는 사람, 생명을 바치는 헌신의 사람을 주님을 찾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죽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주님을 위해서 죽지 않고는 도무지 안된다는 말씀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페르시아의 통치 가운데 있었습니다. 당시에 페르시아에는 왕의 두터운 신임을 얻고 무소불위의 권력을 자랑하던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아각의 후손인 하만이라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이스라엘의 원수입니다. 이스라엘 민족과 철천지 원수인 사람이었습니다. 당시에 하만은 엄청난 세력을 가진 사람이었기 때문에 누구 하나 그에게 감히 도전하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 가운데 왕의 수문을 지키던 모르드개라는 사람은 하만에게 굴복할 수가 없었습니다. 하나님 백성의 자존심이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하나님 백성의 철천지 원수인 하만에게 절할 수가 없었습니다. 이것이 빌미가 되어 하만은 자기의 권력을 총동원하여 이스라엘 백성을 진멸하기로 결심합니다. 왕을 회유하여 자기 편을 만들었습니다. 페르시아의 온 나라가 이스라엘 백성을 죽이는 일로 혈안이 되어 있었습니다. 이제 곧 피의 축제가 벌어질 판이었습니다. 그 때에 한 여인의 위대한 헌신이 있었습니다. 에스더 왕후였습니다. 그는 왕궁에 있었습니다. 아무리 피바람이 분다고 해도 왕궁에 있는 국모에게까지 피바람이 불 까닭은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께서 필요로 하시는 일군이기를 원했습니다. 그리고 그가 고백합니다. “내가 죽으면 죽으리이다.” 그렇습니다. 주님과 그의 교회를 위해서 내가 죽으면 죽으리이다. 하면서 나아가게 될 때에 하나님은 그를 기뻐하시고, 그를 통하여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를 이루십니다.

우리 교회는 얼마나 할 일이 많은지 모릅니다. 교회도 새로 지어야 합니다. 그 뿐입니까? 이 지역사회에 구원의 소식을 전해야 합니다. 세계와 땅끝까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야 합니다. 주변에 어려움을 당하는 수없이 많은 사람들을 보살펴, 그들로 하여금 구원의 복된 소식을 접할 수 있게 해야 합니다. 교회가 이런 저런 일들을 감당해야 할 것이 너무나 많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일들을 보시면서 생명을 걸고 이 일을 위해서 헌신할 사람을 찾고 있습니다. 목숨이 아까운 사람, 내 물질이 아까운 사람, 내 시간이 아까운 사람은 결코 하나님의 일군이 될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과 하나님의 교회를 위해서 기꺼이 이 모든 것을 부인하고 주님께서 맡기시는 십자가를 지게 될 때에 주님이 찾으시는 일군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주인행세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주인의식을 가지고 힘써 주님의 교회를 섬길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필요로 하시는 일군은 바로 그런 사람입니다. 그는 내 마음대로 생각하고 행동하지 않습니다. 내 주장을 내세우지 않습니다. 주인 되신 하나님께서 무엇을 원하시는가? 무슨 생각을 하시는가를 늘 생각합니다. 교회의 일을 하며 섬길 때에도 하나님은 이 일을 어떻게 처리하시기를 원하실까를 생각하고, 하나님의 방식을 따라 섬기며 봉사합니다. 저는 가끔씩 사람들에게 일을 시켜 봅니다. 그러면 내 맘에 꼭 들게 일을 한 사람이 있는 반면에 영 못마땅하게 일을 한 사람을 보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그 후에 어떤 사람에게 일을 시키겠습니까? 당연히 맘에 들게 일한 사람에게 일을 시킵니다. 무슨 말입니까? 우리 주님께서 필요로 하시는 일군은 주님의 마음을 알아서 헤아리고 주님의 마음에 꼭 들게 일하는 사람들입니다. 내 고집을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이 어떻게 생각하실까에 관심을 갖는 사람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교회의 모든 직분자들은 내 생각과 고집을 주장하는 못된 일군이 아니라 우리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리며 하나님의 편에 서서 생각하고 일하는 주님께 필요한 일군이 되어지시기를 바랍니다.

Conclusion & Blessings

이제 우리 교회는 새로운 직분자들을 세웠습니다. 그리고 2006년을 위한 새로운 직임을 받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교회와 성도들이 하나님께 꼭 필요한 일군이 되기를 바라십니다. 믿음없이 세상 실력과 기술을 의지하는 사람이 아니라, 주님의 은혜를 알고, 주님을 분명하게 믿고 나아가는 일군이 되기를 바라십니다. 세상의 화려한 것에 한눈을 파는 사람이 아니라 우리 주님의 위대하심과 존귀하심, 그리고 주님의 능하심을 깨닫고 온전히 주님께 의지하는 일군이 되기를 바라십니다. 그러므로 믿음을 준비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연약한 믿음을 견고하고 능력 있게 해야 할 것입니다.

믿음만 있다고 주님께서 필요로 하시는 일군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주인행세하지 않아야 합니다. 사람들이 인정해주고, 높여준다고 해서, 조금 칭찬을 받았다고 해서 남들보다 조금 더 나은 자리에 있다고 해서 주인행세하며 큰 소리치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사탄의 일입니다. 결코 하나님의 일이 아닙니다. 범사에 모든 하나님의 일에 하나님께서 주인이 되신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겸손하게 순종하는 사람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수많은 교회와 성도들이 여기에 실패하여 하나님의 마음을 근심케 하곤 했습니다. 수많은 목회자들이 여기에 넘어졌고, 또 장로님들과 직분자들이 여기에 실패했습니다. 그러나 우리 교회와 성도들은 절대로 이런 실수에 빠지지 말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교회의 주인은 절대로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을 부인하지 말아야 합니다. 오히려 우리 자신을 부인해야 합니다. 우리의 고집과 주장을 부인해야 합니다. 그리고 십자가를 져야 합니다.

십자가가 지금은 힘들고 어려운 것일 수 있습니다. 부담스러운 것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십자가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영광이 있음을 기억하시기를 바랍니다.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나를 위해서 죽는 사람은 분명히 그 생명을 다시금 되찾을 것이지만 나를 부인하고 십자가를 버리고 도망하여 살기를 바라는 사람은 반드시 죽게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 교회와 성도들에게 위대한 하나님의 일을 준비하시며 맡기실 것입니다. 이제 그 일을 위해서 생명을 바치는 헌신을 결단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생명을 걸고 물질도 시간도 다 드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주님을 위해서 스스로 쫄딱 망하기를 자청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렇게 되면 하나님은 우리를 좋은 일꾼으로 인정하시고, 우리는 하나님께 꼭 필요한 일군이 될 것입니다. 또한 각 사람의 행한 대로 갚으시는 주님께서 목숨을 걸고 우리에게 구원과 축복을 더하여 주실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믿음의 사람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주인행세를 버리고, 주인의식을 가지고 십자가를 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생명을 건 헌신의 사람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러므로 우리 주님께서 약속하신 영광을 얻으실 뿐 아니라 여러분의 가정과 사업과 자녀들에게 행한 대로 갚으시는 주님의 축복이 풍성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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