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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ble & Church/Shema Isreal

지혜로운 기다림 (마 25:1~13)


2005. 12. 18.주일설교

성경 : 마태복음 25:1~13

제목 : 지혜로운 기다림

설교 : 신 현 철 목사

설교를 들으시려면

조금만 기다려주세요..

대한예수교 장로회

마 포 중 앙 교 회


지혜로운 기다림

마태복음 25:1~13

Introduction

우리의 인생은 기다림입니다. 간난아이는 무럭무럭 잘 자라기 기다립니다. 유치원에 다니는 아이들은 유치원 졸업하고 초등학교가기 기다립니다. 수험생은 원하는 대학에 합격하기를 기다립니다. 대학졸업을 앞둔 젊은이들은 취직하기를 기다립니다. 사랑하는 청춘남녀는 아름다운 결혼식을 기다립니다. 젊은 부부는 예쁜 아기를 기다립니다. 집 없는 부부 내 집 갖기 기다리고 직장 없는 사람 직장 같기 기다리고, 성공하고 출세해서 잘살기를 기다립니다. 병 든 사람 병 낫기를 기다리고, 갇힌 사람 자유를 기다립니다. 부모는 유학 나간 아들딸들을 기다립니다. 정유장에서 버스 택시 기다립니다. 끊임없이 기다림 속에 살다가 6순7순 남은 여생 병 없기를 바라면서 기다림 속에서 자라서 기다림 속에서 살다가 기다림 속에 사라져 가는 것이 인생입니다.

기다림은 지루할 수 있습니다. 어떤 분은 기다림을 잔인함의 극치라고 표현했습니다. 그만큼 힘들고 어렵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기다림이 없다면 인생은 참으로 허탈할 뿐입니다. 아무것도 기다릴 것이 없다면 그 인생은 황량하기 그지없는 사막입니다. 풀 한 포기 자랄 수 없는 메마른 광야일 뿐입니다. 기다림이 없는 인생에서는 결코 행복을 찾을 수 없습니다. 우리의 인생에 기다림이 있기에 울고 웃는 행복이 우리의 삶에 깃들게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기다리는 것은 행복입니다. 꿈이 이루어지기를 기다리는 것도 행복입니다. 희망찬 미래가 펼쳐지기를 기다림 역시 빼놓을 없는 행복입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사랑하는 사람을 기다립니다. 농촌의 어른들은 마을 어귀 길목에 나와 계신다고 합니다. 무작정 기다리는 것입니다. 어느날 갑작스레 도시에 나간 자녀들이 방문하지는 않을까 목을 빼고 신작로를 주시합니다. 매일 허탕을 치지만 그래도 그 기다림에 행복이 있습니다. 결혼날짜를 받은 신랑과 신부는 그날을 사모하며 기다립니다. 그리고 그 안에서 행복을 찾습니다. 성공을 위해 도전하는 사람은 자기의 수고와 노력이 결실을 맺어나가며, 계획한 모든 꿈이 성취될 것을 기다립니다. 사람들은 이처럼 기다리고 또 기다리며 살아갑니다.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들은 바벨론의 압제, 페르시아의 억압, 그리고 로마의 횡포를 겪으면서 그들은 하나님의 약속을 기대했습니다. 그들에게 메시야를 보내주실 것이고, 메시야는 그들이 당하고 있는 모든 압제와 억압에서 그들을 구원해 주실 것이라고 확신했습니다. 그리고 고통이 더해지면 더해질 수록 그들은 하나님께 부르짖으며, 보내주시겠다고 약속하신 메시야를 기다렸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이 기대하며 사모하던 메시야를 보내주셨습니다. 바로 그것이 성탄절입니다. 그러므로 성탄을 앞두고 모든 성도들은 인류를 향한 최대의 축복과 희망이 우리에게 다가온다는 사실을 기대하므로 거룩한 기다림을 가질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주님의 오심을 고요하게 준비하므로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분주하게 세상의 쾌락을 따라 흥청망청하기에 바쁩니다. 술로 밤을 지새우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새벽녘까지 취해 비틀거리는 사람들을 볼 수가 있습니다. 연말 망년회다 송년회다 하면서 지난 한해를 잊자고 합니다. 술로 울적한 마음을 달래려 합니다. 정작 2000년 전에 이 땅에 오신 메시야를 기다림은 어디에도 찾을 수 없습니다.

예수 믿는 우리에게도 예외는 아닙니다. 어릴 적에는 성탄절을 얼마나 기다렸는지 모릅니다. 그날이라고 해서 무슨 특별한 일이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그렇지만 성극도 연습하고, 성탄트리도 장식하면서 가슴 설레는 마음으로 그 날을 기다렸습니다. 그런데 차츰 나이가 들면서 성탄에 대한 기억은 아련한 추억일 뿐 현실적으로 크게 기다려지거나 기대되지도 않습니다. 이것이 사실입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다음 주일이 성탄절인데 정말로 기다려집니까? 그 날에 대한 기대감이 있습니까? 그렇다면 다행이지만 저처럼 성탄에 대한 아무런 기대감도 없고, 기다림도 없다면 우리의 신앙은 점차 병들어 가고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기다림은 행복입니다. 그 중에 가장 큰 행복은 우리 주님의 오심을 기다림입니다. 수많은 신앙의 선배들은 손꼽아 주님의 오심을 기다렸습니다. 주님의 은총을 기다렸습니다. 그런데 우리의 모습은 어떠합니까? 혹 세상을 향해서는 많은 것을 기대하며 살아가고, 또 기다리고 있는데, 우리 주님의 은총과 축복, 그리고 우리 주님의 오심에 대하여는 아무런 기대도 기다림도 없이 살아가고 있지 않습니까? 이제 기다림을 회복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세상에서 가장 큰 행복에 대한 설레임 속에 가장 지혜로운 기다림의 사람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Main Subject

1.

본문의 말씀은 우리가 너무나 잘 아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천국을 혼인잔치로 비유하셨습니다. 근동아시아 지방의 혼인식은 우리네 혼인식과 많은 차이가 있습니다. 그래서 본문을 오해하는 사람들이 종종 발생합니다. 근동아시아 지방에서는 대개 혼인식을 하게 되면 먼저 신랑 집에서부터 신랑이 출발하는 것부터 시작됩니다. 신랑이 출발하게 될 때에 그냥 신부의 집으로 곧 바로 가는 것이 아닙니다. 중간 중간에 신랑과 동행하는 들러리들과 결혼식의 축제를 즐기면서 갑니다. 그러니 아침에 신랑이 출발해도 저녁 녘에나 신부의 집에 도착하는 경우가 많이 있었습니다. 결혼식 날이 되었습니다. 신랑은 기쁨을 안고 여러 친구들과 함께 결혼축제를 즐기면서 신부의 집으로 향하고 있었습니다. 신부의 집까지 가는 길이 좀처럼 쉽지 않았습니다. 온갖 행사를 치르며 가야하기 때문입니다. 그 동안 신부의 집에서는 신랑을 기다립니다. 신부는 물론이고, 신부의 친구들인 들러리들이 신랑을 기다립니다. 특히 신부의 친구들은 마을 어귀까지 나가서 신랑이 오는지를 기다리게 됩니다. 본문 1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그 때에 천국은 마치 등을 들고 신랑을 맞으러 나간 열 처녀와 같다 하리니 (마태복음 25:1)

여기에 보니 주님은 천국은 신랑을 맞으러 나간 열 처녀와 같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무엇입니까? 신앙이라는 것은 기다림이라는 것입니다. 신랑을 기다리듯이 주님을 기다리는 것이 신앙이라는 것입니다. 세상에 취해 사는 것은 신앙이 아닙니다. 세상의 쾌락을 좇아 사는 것은 결코 신앙이 아닙니다. 바른 신앙은 주님을 기다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초대교회의 성도들은 언제나 주님을 기다렸습니다.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이것이 그들의 삶의 주제였습니다.

한국교회의 초창기에 옥중 성도들은 주님이 오시는 것을 늘 기다리며 살았습니다. 세상이 너무나 힘들었습니다. 그들을 괴롭히는 억압은 날이 갈수록 심해졌고, 잔혹해 졌습니다. 그들의 육체는 물론이요, 정신과 영혼까지 지칠 대로 지쳐가게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그 가운데서도 옥중 성도들은 한결같이 주님을 기다렸습니다. 저 하늘 이상한 구름만 떠도 행여나 내 주님 오시는가 해, 머리 들고 멀리 멀리 바라보는 맘 오 주여 언제나 오시렵니까? 옥중의 성도들은 매 순간마다 그 기다림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기다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본문 5절에서는 신랑이 더디 오므로 다 졸며 잘새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또 13절에서는 너희는 그 날과 그 때를 알지 못하느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무엇입니까? 신랑이 오는 것이 기약이 있다는 것입니까? 아닙니다. 언제 올지 모릅니다. 무작정 기다려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열 처녀들은 다 졸고, 잠들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다려야 합니다. 이것이 신앙입니다.

우리가 이 땅을 살아가면서 절박한 순간에 주님이 오시기를 기다립니다. 그런데 주님은 아무런 응답이 없습니다. 아무런 소식이 없습니다. 밤을 새워 기도해 보아도 주님의 음성이 들리지 않을 때도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포기합니다. 기도해봐도 소용없고, 열심히 교회에서 봉사 해 봐도 아무것도 되는 것이 없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경건한 신앙에 최선을 다하지 않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말씀합니다. 신랑이 더디 오는 것같아도, 그 기다림이 아무리 지루해도 기다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절대로 기다림을 포기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열처녀는 신랑을 기다렸습니다. 그들은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졸고 자는 한이 있더라도 신랑이 오기만을 기다렸습니다. 날이 춥고, 밤이 되었다고 집으로 돌아가지 않았습니다. 팔레스타인의 밤은 춥고 무섭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밤이 되었지만 기다림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기다렸습니다.

그렇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신앙은 기다리는 것입니다. 주님의 은혜를 기다리는 것입니다. 주님의 축복을 기다리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기도에 응답해주시기를 기다리는 것입니다. 다시 오시마 약속하심을 따라 다시 오실 주님을 기다리는 것입니다. 언제든지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하며 주님의 오심을 사모하고 기다리는 것입니다. 환란이 있어도, 풍파가 있어도, 경제적으로 어렵고 사회적으로 소외를 당해도, 세상에 아무리 좋은 많은 것이 우리를 유혹해도 포기하지 말고 기다려야 합니다. 그렇게 될 때에 비로소 우리는 주님의 천국 잔치에 참여할 수 있는 것입니다.

2.

2.1.

신랑이 더디 옵니다. 밤이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열 처녀는 신랑을 기다렸습니다. 왜 그들은 기다렸습니까? 그들이 기다린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주님은 반드시 오신다는 것입니다. 지금은 암울하고 암담해도, 절대로 주님이 오시지 않을 것 같아도 반드시 오시기 때문에 기다린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주님은 반드시 다시 오십니다. 주님께서 승천하실 때에 하늘에서 음성이 들렸습니다. “갈릴리 사람들아 어찌하여 하늘만 쳐다보고 있느냐? 너희 가운데서 올리워 가신 이 예수는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 그렇습니다. 주님은 반드시 오십니다.

왜 세상 사람들이 주님을 기다리지 않습니까? 이 연말을 흥청망청하며 헛된 시간을 낭비합니까? 우리 주님께서 다시 오신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 오시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되는대로 사는 것입니다. 적당히 죄를 짓고 사는 것입니다. 육체의 쾌락을 따라사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분명히 증언하고 있습니다. 주님은 다시 오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의 오심을 믿음으로 준비해야 합니다. 주님의 오심을 사모함으로 기다려야 합니다. 죄악으로 인하여 부끄러운 모습으로 우리를 방치해서는 안됩니다. 신랑되신 예수 그리스도 앞에 가장 아름다운 신부요, 또한 혼인잔치의 가장 존귀한 손님으로 우리 자신을 준비하고 기다려야 하는 것입니다.

2.2.

신앙의 선배들이 주님을 기다린 데는 또 다른 이유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우리 주님께서 오시면 영광의 잔치를 배설하실 것이고, 잔치를 준비하며 기다린 사람들에게 상상할 수 없는 기쁨의 잔치에 참여케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기다리지 못한 사람에게는 아무런 상급이 없습니다. 그러나 기다리는 사람에게는 주님이 준비하신 상급이 있습니다. 축복이 있습니다. 은혜가 있습니다.

성경은 우리 주님과 함께 누리게 될 잔치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영원한 천국의 잔치입니다. 우리 주님과 함께 영원토록 기뻐하고 즐거워 하는 잔치입니다. 다시는 슬픔이 없고, 눈물이나 탄식이 조금도 없는 잔치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의 오심을 기다려야 합니다. 세상이 아무리 각박하고, 세상이 아무리 쾌락을 따라 신속하게 움직여도 주의 백성들은 주님을 기대하므로 기다릴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의 주님의 축복의 잔치를 기억할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세상의 잔치와 비교할 수 없는, 세상의 쾌락과 비교할 수 없는 놀라운 은혜와 축복과 기쁨이 있을 것임을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고, 어떤 환경가운데서도 주님을 기다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3.

열 처녀들은 모두가 신랑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가운데 다섯 처녀는 기름을 준비했고, 또 다른 다섯 처녀는 기름을 준비하지 않았습니다. 대개의 경우에 신랑이 오는 시간은 밤입니다. 밤에 신랑이 오게 되면 신부의 친구들은 등불을 밝혀서 신랑을 혼인집으로 인도하여 들여야 합니다. 그런데 본문에 보니 신랑이 오래토록 기다려도 오지 않았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기다림에 지친 나머지 신부의 친구들은 졸았습니다. 잠을 자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멀리서 신랑이 온다는 소식이 전해져 왔습니다. 참으로 흥분되는 순간입니다. 그런데 열 처녀의 등불에 기름이 다 떨어져 가는 것이었습니다. 지혜로운 다섯 처녀는 미리 기름이 든 병을 준비했습니다. 그래서 그것으로 등잔의 기름을 보충하고 신랑을 맞으러 나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다른 다섯 처녀는 여분의 기름병을 준비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기름을 구하기 위해서 시장으로 가야만 했습니다. 그 동안에 신랑을 도착하게 되었고, 잔치 집의 문은 닫히게 되었습니다. 근동아시아에서는 잔치 집에 문이 닫히면 아무도 들어올 수 없다고 합니다. 기름을 구하러 갔던 다섯 처녀가 문 앞에 와서 문을 열어달라고 하지만, 굳게 닫힌 문은 열려지지 않았습니다.

3.1.

우리는 주님을 기다리는 신앙인이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어리석은 다섯 처녀와 같이 주님을 기다려서는 안됩니다. 슬기로운 다섯 처녀와 같이 기름을 준비해야 하는 것입니다. 말세에 주님을 기다리는 성도들 역시 기름을 준비해야 합니다. 우리 주님께서 이 땅에 재림하실 때에 사랑하는 성도들은 기름을 준비하고 기다려야 합니다. 교회는 열심히 다니고, 신앙생활을 하는 것 같은데 기름을 준비하지 못하고, 등불만 준비하고 있다면 그는 결코 주님의 잔치에 참여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준비해야 하는 기름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바로 믿음입니다. 믿음의 기름을 준비해야 합니다.

세상의 사람들은 풍요를 위해서 많은 것을 준비합니다. 돈을 준비합니다. 재물을 쌓아놓고 준비합니다. 여러 가지 환경과 여건을 최상의 조건으로 만들어 준비합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재림하실 때에 이 모든 것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다 불에 타서 없어질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주님이 오실 때에 절대로 사라지지 않는 것이 있습니다. 믿음입니다. 금보다 귀한 믿음을 준비해야 합니다. 이 믿음이 기름이 되어집니다. 그리고 우리 주님의 오시는 길을 밝힐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어리석은 성도들은 믿음을 준비하지 못합니다. 교회에서 이런 직분, 저런 직분을 가지고 계급을 과시합니다. 자기의 등잔이 얼마나 좋은 것인가, 비싼 것인가를 자랑합니다. 그러나 정작 기름을 준비하지는 못합니다. 믿음을 준비하지는 못합니다. 이런 사람은 결코 주님의 잔치를 맛볼 수가 없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믿음을 준비하시기를 바랍니다. 믿음이 없이는 결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습니다. 세상의 고통이 환란이 다가오게 되어도 절대로 그 믿음이 다함이 없도록 해야 합니다. 끝까지 견고한 믿음을 간직해야 합니다. 조금 타다가 없어질 그런 믿음이어서는 안됩니다. 우리 주님이 오시는 길을 끝까질 밝힐 수 있는 견고한 믿음을 가져야 하는 것입니다.

저는 우리 교회가 믿음으로 풍성한 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에 늘 풍성하며, 대장부가 되기를 바랍니다. 어떤 시련가운데서도, 환란가운데서도 절대로 믿음을 포기하지 않는 그런 견고한 믿음의 성도들이 가득하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우리 주님께서 재림하심으로 천국의 잔치를 배설하실 때에 주님과 함께 영원토록 기뻐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3.2.

지혜로운 처녀와 어리석은 처녀의 또 다른 차이는 무엇입니까? 그것은 미리 준비했느냐? 나중에 준비했느냐의 차이였습니다. 미련한 처녀들도 나중에 기름을 준비하러 갔습니다. 시장에 갔습니다. 그리고 기름을 사왔습니다. 넉넉하고 좋은 기름을 준비했음에 분명합니다. 그러나 신랑을 그들을 잔치집으로 들이지 않았습니다. 미리 준비했던 다섯 처녀만이 그 잔치에 참여하고 기뻐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신앙은 미리 준비해야 합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오늘 이순간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명하시는 신앙을 준비해야 합니다. 지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믿음을 요구하시면 그 때 믿음을 준비해야 합니다. 나중에 잘 믿지 하면서 미루면 안됩니다. 그러면 망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믿음을 준비하라고 부르시면 그 때 믿음을 준비해야 합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사람이 있습니다. 복음을 전하게 될 때에 나중에 믿겠습니다 하는 사람입니다. 나중에 충성하겠습니다. 나중에 하겠습니다. 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골치아픈 신자인지 모릅니다. 나중에 믿겠습니다. 충성하겠습니다. 라고 말하는 사람은 어리석은 처녀들과 동일한 신앙을 갖고 있는 것입니다. 믿음은 지금 하는 것입니다. 즉시 응답하는 것입니다. 주께서 명하시면 지금 즉시 내가 여기있나이다. 하면서 고백하는 것입니다. 주님을 위해서 바로 지금 헌신하고, 충성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수많은 사람들이 세상 것에 취해 살면서, 세상 것을 즐기고 있습니다. 주님을 믿어야 한다고 하면 나중에 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를 믿고 세상을 끊어야 한다면 나중에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나중에 언제 우리가 믿는다는 것입니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맡기신 시간은 오늘입니다. 내일은 내 시간이 아닙니다. 내일은 우리의 손에 달려있지 않습니다. 오늘 저녁에라도 주님께서 우리를 부르시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모든 것을 다 두고 주님께 가야 합니다. 그런데 아무것도 준비하지 못하고, 빈 등잔만 들고 있다면 얼마나 탄식할 일입니까? 그러므로 지금 믿음을 결단하시기를 바랍니다. 지금 헌신하시기를 바랍니다. 주님께서 나를 필요로 하시고, 내게 사명을 맡기시고, 믿음의 자리로 초청하시는 지금 우리는 믿음의 기름을 준비할 수 있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Conclusion & Blessings

신앙은 기다림입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기다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다시 올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다시 올 때에는 아무런 힘없는 말구유의 어린아이로 오시는 것이 아니라 하늘과 땅의 영광을 지니시고, 천국잔치의 신랑이 되셔서 우리 가운데 임하실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믿음의 눈으로 주님을 바라보며, 기다려야 합니다. 세상에 취해 살아서는 안됩니다. 주님의 약속을 기대하며, 늘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고백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열 처녀는 모두 기다렸습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은 그 기다림으로 주님의 잔치에 들어갔지만 어떤 사람은 주님의 잔치에 들어가지 못하고, 슬피 우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준비해야 할 기름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오늘 우리가 주님을 기다린다고 하면서 교회에서 직분도 받고, 여러 가지 일들을 감당하고 있기는 한데 정작 기름을 준비하지 못하는 어리석은 가운데 있어서는 안됩니다. 믿음의 기름을 준비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고백하고, 주님을 위해서 끝까지 헌신하는 참된 믿음의 기름을 준비해야 합니다. 아직 시간이 있을 때에, 아직 주님께서 준비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실 때에, 바로 지금 믿음을 준비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나중으로 미루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주님 앞에 결단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저는 우리 교회가 믿음으로 충만한 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견고한 믿음으로 무장된 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한 분도 어리석은 처녀들처럼 나중으로 믿음을 미루고, 헌신을 미루지 않기를 바랍니다. 그러므로 우리 주님 재림하실 때에 모두가 기뻐하며 어린양의 혼인잔치에서 기뻐하며, 즐거워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