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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ble & Church/Shema Isreal

서로 사랑합시다

서로 사랑합시다

요한일서 4:7~11

Introduction

주 앞에 예배하기 위해 오신 여러분에게 하나님의 크신 은혜와 사랑이 가득하시길 바랍니다. 앞뒤좌우에 계신 분과 인사하겠습니다. 보고 싶었습니다. 사랑합니다. 축복합니다.

날씨가 갑자가 추워졌습니다. 건강에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어떤 목사님의 설교를 듣는 중에 성도들에게 질문을 했답니다. 세상에서 가장 차가운 바다의 이름은 썰렁해 라고 합니다. 그러면 세상에서 가장 뜨거운 바다의 이름은 무엇인지 아십니까? 성도들이 머뭇거리자 목사님은 말씀하셨습니다. 그곳은 사랑해입니다. 우리 모두 사랑하는 마음이기를 원합니다. 그런데 평소에 남편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못 들어 보아서 한 번도 들어보는 것이 소원인 부인이 집에 와서는 남편을 붙들고 물어보았습니다. 여보, 세상에서 가장 차가운 바다의 이름이 뭔지 알우? 남편이 알 턱이 있습니까? 북극해? 남극해? 이러고 있는 것입니다. 아내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회심의 미소를 띠고 아니 썰렁해 남편도 재밌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이제 아내는 비장의 무기를 들고 나옵니다. 그러면 세상에서 가장 뜨거운 바다의 이름은 뭔지 알어? 남편은 고심을 해 봅니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알 수가 없습니다. 아내는 힌트를 주었습니다. 아니 지금 당신에 나를 보면 제일 하고 싶은 말 있잖아 한참을 생각하다가 남편을 무릎을 치면서 아하~ 열바다~? 그러더랍니다. 그날 그 집은 아마도 불바다가 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듣고 싶은 말이 무엇입니까? 사랑한다는 말, 축복한다는 말일 것입니다. 한 사람이 온전하게 되고, 능력있게 되는 것은 바로 사랑과 격려뿐입니다. 얼마전에 유행했던 마라톤이라는 영화가 있었습니다. 여기에 등장하는 한 소년은 비록 장애를 갖고 있었지만 부모의 사랑으로 인하여 놀라운 성공을 거둘 수 있었습니다. 부모의 특별한 사랑과 격려가 연약한 장애아를 온전하고, 능력있게 만들었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한 사람의 위대한 인물이 만들어지기 위해서는 그를 향해 헌신된 사랑이 있었음을 부인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교회와 성도들의 가정에 행복이 깃들고, 능력의 역사가 나타나기 위해서는 사랑의 말을 풍성하게 해야 합니다. 모든 사람에 대하여 언제든지 사랑의 아름다운 고백을 나눌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교회 안에 미운 사람이 있어서는 안됩니다. 교회도 사람 사는 곳인데 어떻게 미운 사람이 없을 수 있겠습니까? 물론 미운 짓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고, 괜히 미운 사람도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을 미워하는 마음이 생기는 것 자체가 하나님 앞에서 무서운 죄악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그런 마음을 갖고 살기를 원치 않으십니다. 마귀가 우리에게서 천국을 빼앗아 가는 방법이 있습니다. 그것은 다른 것이 아닙니다. 미워하는 마음을 갖게 하는 것입니다. 돈이 아무리 많아도, 권력이 있고, 명예가 있어도 사람을 미워하는 마음을 갖게 되면 그 순간부터 그의 마음에는 평안이 사라져 버립니다. 행복이 사라져 버립니다. 그러므로 교회가 천국의 기쁨을 누릴 수 있기 위해서는 미워 하는 마음이 조금도 자리하지 못하도록 철저하게 사랑해야 합니다. 성도가 서로 사랑하면 그 안에 천국이 이루어집니다. 사랑하는 바로 그 자리에 하나님의 축복이 넘쳐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교회와 성도들은 목숨 걸고 사랑하시기를 바랍니다. 큰 일이나 작은 일이나 사랑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서로를 향해서 늘 힘찬 사랑의 고백을 할 수 있기 바랍니다. 기회를 만들어 사랑을 표현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서로를 향한 사랑의 고백과 표현이 가득할수록 우리 안에 큰 기쁨이 있게 됩니다. 아내는 사랑해 하는 소리를 듣고 싶어서 안달인데 남편이 하는 말이 열바다 라고 말한다면 그 집안에는 결코 행복이 있을 수 없습니다. 힘써 사랑할 수 있어야 합니다. 사랑의 말로 풍성하게 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 교회와 가정은 서로 사랑하는 아름다운 말들로 풍성하여 하나님께서 주시는 천국의 행복이 가득하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Main Subject

1.

본문 7~8절 말씀을 함께 보겠습니다.

7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께로 나서 하나님을 알고 8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 (요한일서 4:7~8)

사도 요한은 사랑하는 성도들을 향해서 서로 사랑합시다 권면하고 있습니다. 따라 합시다. 서로 사랑합시다. 그렇습니다. 성도는 서로 사랑해야 합니다. 이 세상 살아가면서 사랑하기에도 시간이 모자랍니다. 그런데 미워하면서 살아서야 되겠습니까? 사랑하는 아들을 나눠가진 고부간에 서로 미워해서는 되겠습니까? 하나님의 나라의 축복의 유업을 함께 누릴 성도가 서로 미워하며 증오해서는 되겠습니까? 안 될 일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한순간 한순간은 사랑하며 살기에도 너무나 빠듯하고 아까운 시간들입니다. 그런데 그 소중한 시간들을 미움과 증오로 낭비하면서 살아서는 안됩니다. 그렇게 살다간 인생의 마지막에 엄청난 후회를 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도 요한은 성도들을 향해서 무슨 일이 있어도 사랑하며 살아야 한다고 부탁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성경은 왜 우리가 서로 사랑해야 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까? 첫째는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사랑은 하나님의 성품이며, 사랑하게 될 때에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게 된다는 것입니다.

번역가였던 위클리프 드 멜랑드라는 분이 있었습니다. 어느날 그는 부인과 함께 브라질의 인디언 마을로 이주하게 되었습니다. 그곳에 가게 되었을 때에 인디언들은 그들을 백인이라고 부르면서 탐탁치 않게 생각했습니다. 그들을 대하는 태도 역시 매우 사납고 거칠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이 이곳에 오기 전에 먼저 왔던 백인들은 살인을 저지르고 방화하며 인디언들을 괴롭혔기 때문입니다. 인디언의 눈에는 멜랑드 부부 역시 그 전에 왔던 백인들과 똑같이 보였던 것입니다. 멜랑드 부부는 인디언들의 말을 더욱 열심히 배우며, 그들을 향해서 의술을 행하는 등 사랑의 수고를 아끼지 않았습니다. 멜랑드 부부가 그곳 원주민들의 풍습에 어느 정도 익숙해졌을 무렵에는 사람들이 그를 인디언 백인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런데 두 부부가 어느날 산책을 하는 중에 피투성이가 된 원주민 소년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두 부부는 그에게 다가가 발을 씻기며 치료를 도왔습니다. 이들이 원주민 소년의 발을 씻기고 있을 때에 원주민들이 자기들 끼리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언제 백인이 인디언의 발을 씻겼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느냐? 이 사람들은 그냥 백인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보내신 하나님의 사람들임에 분명하다. 그 때로부터 멜랑드 부부가 어느 마을에 가든지 사람들은 하나님의 사람이 자기들에게 온다고 환영했다고 합니다.

처음에는 사람들에게 잔혹한 백인일 것이라고 여겨지며 미움을 받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멜랑드 부부는 끊임없는 사랑을 베풀었습니다. 그들이 사랑을 실천해 나갈 때에 사람들의 마음이 녹아졌습니다. 그리고 급기야 모든 사람들이 그를 하나님의 사람으로 존경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얻을 수 있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서로 사랑해야 합니다. 우리가 사랑하게 되면 우리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여김을 받게 됩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취하는 사람이 되어집니다. 돈이 많고, 힘이 있어야 존경을 받고 영광을 얻는 것이 아닙니다. 좋은 집에 살고, 좋은 차를 타고 다녀야 귀하신 신분으로 인정을 받는 것이 아닙니다. 아무런 사랑의 실천 없이 돈만 많고, 지위만 높다면 사람들은 그들을 증오할 것입니다. 존경은 고사하고, 오히려 더욱 천하게 여길 것입니다. 그러나 사랑을 실천하게 되면 하나님의 영광이 그 뒤를 따라오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사랑하게 되면 이로써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 고 주님께서도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사랑하시기 바랍니다. 힘써 사랑하시므로 주님의 제자로, 하나님의 사람으로 인정을 받으며 하나님의 영광을 취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바랍니다.

2.

둘째로 우리가 서로 사랑해야 하는 이유는 사랑할 때에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의 사랑을 입기 때문입니다.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하나님을 만나고 싶어합니다. 하나님에 관하여 더욱 많은 지식을 갖고 싶어합니다. 저는 새벽마다 기도합니다. 하나님을 더욱 깊이 알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과 가까와 지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은혜에 대하여 남다른 경험을 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이것은 비단 저의 기도만은 아닐 것입니다. 하나님을 만나고, 그분의 은혜를 깊이 아는 것은 모든 성도들의 꿈일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을 알게 될 때에 능력과 역사가 일어나고, 축복이 임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아는 것이야말로 지식의 근본이요, 축복의 원천이 되기 때문입니다. 야곱이 하나님을 만났을 때에 그의 인생이 변했고, 이사야가 하나님을 만나게 되었을 때에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능력 있는 선지자가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저와 여러분은 하나님을 만나게 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을 아는 일에 어느 누구보다도 뛰어나며, 풍성한 지식을 갖게 되기를 바랍니다.

호세아 선지자는 증언합니다. “내 백성이 지식이 없으므로 망하는도다.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 그렇습니다. 하나님을 알면 복이지만 하나님을 알지 못하면 그 순간부터 망하게 되는 것입니다. 호세아 선지자가 사역하고 있을 당시는 여로보암2세가 이스라엘을 다스리고 있었습니다. 그는 강력한 군사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무역으로 많은 재물을 모았습니다. 당시는 국토도 넓었을 뿐만 아니라 경제적으로도 부강한 가운데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런 이스라엘 백성을 향해서 너희가 망하게 되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들에게 돈이 없기 때문에 망했다고 말씀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들이 세상적으로 나약한 가운데 있었기 때문에 망했다고 말씀하시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을 알지 못했기 때문에 망하게 되었고, 이제는 하나님을 아는 것에 참된 희망이 있다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돈이 아무리 많으면 뭐합니까? 하나님을 알지 못하면 망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면 심판하시는 두려우신 하나님 앞에서 벌벌 떨 수 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면 하나님도 그를 외면하시고, 그를 향한 모든 복을 거두어가십니다. 하나님의 긍휼이 사라집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알게 되면 하나님은 모든 좋은 것으로 더하여 주시며, 모든 심판에서 우리를 건져주십니다.

저는 이사야 성경을 좋아합니다. 이사야 43장에 보면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1 야곱아 너를 창조하신 여호와께서 이제 말씀하시느니라 이스라엘아 너를 조성하신 자가 이제 말씀하시느니라 너는 두려워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2 가 물 가운데로 지날 때에 내가 함께 할 것이라 강을 건널 때에 물이 너를 침몰치 못할 것이며 네가 불 가운데로 행할 때에 타지도 아니할 것이요 불꽃이 너를 사르지도 못하리니 3 저 나는 여호와 네 하나님이요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요 네 구원 자임이라 내가 애굽을 너의 속량물로, 구스와 스바를 너의 대신으로 주었노라 4 가 너를 보배롭고 존귀하게 여기고 너를 사랑하였은즉 내가 사람들을 주어 너를 바꾸며 백성들로 네 생명을 대신하리니 5 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하여 네 자손을 동방에서부터 오게 하며 서방에서부터 너를 모을 것이며 6 가 북방에게 이르기를 놓으라 남방에게 이르기를 구류하지 말라 내 아들들을 원방에서 이끌며 내 딸들을 땅 끝에서 오게 하라 7 릇 내 이름으로 일컫는 자 곧 내가 내 영광을 위하여 창조한자를 오게 하라 그들을 내가 지었고 만들었느니라 (이사야 43:1~7)

여기에 보니 하나님은 야곱을 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내가 너를 안다는 것입니다. 내가 너를 창조했고, 너를 조성했고, 너를 구속하였고, 너를 지명하여 불렀다고 합니다. 하나님이 야곱을 알고 ,이스라엘을 안다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 때에 하나님의 구원이 그에게 임합니다. 물 가운데로 지날 때에도, 불 가운데로 지날 때에도 어떤 위험에서도 건짐을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애굽을, 세상에서 가장 강대한 나라를 대속의 제물로 희생하면서도 우리를 구원하신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이 될 때에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갖게 됩니다. 또한 하나님께 기억되는 사람이 됩니다. 하나님의 돌보심과 축복을 받을 수 있게 되어집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께서 우리를 아는 그런 축복을 누릴 수 있습니까? 사도 요한은 분명하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랑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랑하지 않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도 못하고, 또 하나님께서도 그를 외면하신다는 것입니다. 내가 너를 알지 못하노라고 말씀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힘써 사랑해야 합니다. 죽기까지 사랑을 실천하신 주님의 모습을 본받아 힘써 사랑하며, 최선을 다해서 사랑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주변에 비록 미운 짓만 골라 하는 사람이 혹 있다고 해도, 이를 악물고서라도 사랑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렇게 되면 우리는 하나님과 친밀한 사람, 하나님의 축복과 보호와 구속을 받는 사람이 될 것입니다.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3.

세째로 우리가 사랑해야 하는 이유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우리에게 마땅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본문 10~11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10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제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니라 11 사랑하는 자들아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은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 (요한일서 4:10~11)

우리는 어떤 존재입니까? 성경을 통해서 보면 참으로 더러운 존재입니다. 에베소서 2장에 보니 “허물과 죄로 죽었던 존재”입니다. “본질상 진노의 자식”입니다. 거기다가 “하나님이 없이 살아온 존재”입니다. 하나님의 축복과는 거리가 멀고, 죄짓는데 정신 없이 바쁘게 살아온 존재가 바로 우리들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죄인일 그때에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로마서 5:8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로마서 5:8)

우리에게 무슨 좋은 것이 있기 때문에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것이 아닙니다. 우리에게 멋진 구석이 있어서, TV에 나오는 탤런트처럼 잘 생겼기 때문에 우리를 사랑하신 것도 아닙니다. 천사표의 아름다운 마음을 갖고 있어서 우리를 사랑하신 것도 아닙니다. 정말로 보잘 것 없는 존재들입니다. 힘도 없습니다. 능력도 없습니다. 생긴 것도 시원치 않습니다. 게다가 성품도 더럽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런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나같이 무가치한 존재를 위해서 하나님은 그의 하나 밖에 없는 아들 독생자 예수를 이 땅에 보내셨습니다. 나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하나님은 아픈 가슴을 쓸어내리시며 아들을 십자가에 매다셨습니다. 그 아들이 수많은 사람들의 멸시와 조롱을 받고, 또 아파하며 절규하고 있는 것도 눈물을 흘리고, 이를 악물고는 참으셨습니다. 저와 여러분을 향한 사랑 때문에, 그 사랑 때문에 하나님은 친히 모든 고통의 시간들을 견디셨습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너를 사랑한다. 내가 너를 너무나 사랑한다.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여기 본문 11절 말씀에 보니 “이같이 사랑하셨으매”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이같이 라는 말을 무엇이라고 표현하겠습니까? 말로 할 수 없는 사랑입니다. 측량할 수 없는 사랑입니다. 눈물이 아니고서는 말할 수 없는 사랑입니다. 감격 없이는 이야기할 수 없는 그런 사랑입니다. 그런 사랑으로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죽음으로도 끊을 수 없는 하나님의 뜨거운 사랑... 바로 그 사랑이 우리를 감싸고 있습니다. 우리를 구원 받게 했습니다. 진노의 자식에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셨습니다. 그 사랑이 하나님의 축복과 거리가 먼 우리를 천국의 시민이 되게 하시고, 보잘 것 없는 우리에게 천국의 열쇠를 맡기셨습니다. 사명도 주시고, 직분도 주셨습니다. 영광된 이름을 주셨습니다.

그렇다면 이 사랑을 받는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서로 싸워야 합니까?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그토록 사랑하신 우리의 지체들을 우리도 힘껏 사랑해야 합니다.

제가 책을 정리하는 중에 18세기 미국의 부흥운동을 주도했던 조나단 에드워즈 목사님의 설교를 접할 수 있었습니다. 그분의 설교 가운데 이런 것이 있었습니다. “심판 날 다시 만난 분쟁하는 목사와 교인들” 이라는 제목이었습니다. 우리가 다 심판 날에 주님 앞에서 만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 때에 주님께서 내가 피를 흘려가며 사랑했던 형제를 너는 미워했느냐고 물으시면 뭐라고 대답할 것입니까? 지금 우리 곁에 앉아 있는 성도 한 사람 한 사람은 무가치한 존재가 아닙니다. 우리 주님께서 너무나 사랑하신 분들입니다. 우리 하나님께서 눈물이 아니고서는 말할 수 없는 엄청난 사랑으로 사랑하신 우리의 형제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그를 사랑하지 않고 미워한다면 하나님의 사랑을 모독하는 일이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께 사랑을 받은 사람입니다. 감당할 수 없는 사랑을 받은 사람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지체들은 하나님께서 생명을 다해 사랑하시는 분들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는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힘써 사랑해야 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처럼, 나를 위해서 기꺼이 십자가를 지신 것처럼, 우리의 생명을 다해, 힘을 다해, 서로 사랑해야 하는 것입니다.

Conclusion & Blessings

말세가 되면 사랑이 식어진다고 합니다. 잔인함이 극성을 부린다고 합니다. 주님의 말씀은 조금도 변함이 없습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는 사랑이 식어져 가고 있습니다. 부모들의 이기적인 생각이 어린 자녀를 고아원으로 내다 버립니다. 자식들의 이기적인 생각이 늙으신 부모님들을 고통스럽게 하는 일들이 참으로 많습니다. 사람들은 오직 자기들 뿐입니다. 자기만을 사랑합니다. 그것은 사탄의 마음입니다. 하나님의 심판을 받을 수 밖에 없는 생각들입니다.

성경은 증언합니다. 하나님은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사랑이 없이는 결코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수도 없고, 사랑이 없이는 하나님과 가까이 할 수도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복의 근원되신 하나님을 가까이 하고, 그분이 주시는 영광된 축복을 누릴 수 있기 위해서 우리는 힘써 사랑해야 합니다.

무엇보다도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사람이 되었으므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 것처럼,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그의 백성들을 죽기까지 사랑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교회는 사랑이 풍성한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 가정은 사랑으로 행복한 가정이 되어야 합니다. 주님께서 서로 사랑하라고 하신 말씀을 늘 마음 속에 기억하고, 미움과 증오의 모든 쓴뿌리를 제거하고, 십자가를 지신 주님을 본받아 죽기까지 사랑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사랑하므로 하나님의 영광을 소유하고, 사랑하므로 하나님을 만나 하나님의 축복을 받으며, 사랑하므로 하나님과 더욱 가까와지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