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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ble & Church/Shema Isreal

처음 사랑을 회복하라(계2:1~7)

처음 사랑을 회복하라

요한계시록 2:1~7

Introduction

미국 닉슨 대통령 시절에 대통령 보좌관으로 찰스 콜슨(Charles Colson)이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머리가 비상할 뿐더러 지독할 정도로 냉철했습니다. 정치적인 권력을 위해서 라면 냉혈한과 같았습니다. 그 때문에 그는 정치적인 힘을 얻을 수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정치권력은 무상한 것인지라 더욱 강력한 정치적 힘을 원했던 콜슨이었지만 워터게이트 사건에 연류되어 옥에 갇히게 되었습니다. 찰스 콜슨이 투옥되자, 당시에 상원의원이었던 헤트필더, 휴스, 퀴에 등 세 사람은 그에게 복음을 전하기로 하고, 날마다 기도시간을 정하여 함께 기도했습니다. 그를 찾아 위로하며, 복음을 전해주었습니다. 그러나 찰스 콜슨은 여전히 냉정했습니다.

찰스 콜슨의 형 집행기간이 7개월 가량 남았을 무렵 여느 날과 마찬가지로 퀴에의 마음에 찬스 콜슨을 위해서 대신 옥살이를 해야겠다는 감동이 생겼습니다. 변호사였던 퀴에는 특수 법조문 안에 다른 사람들 대신하여 형기를 치를 수 있다는 내용이 언급되었다는 사실을 알아내고 법원에 제안해 보았지만 거절 당했습니다. 당연한 일입니다. 그러나 퀴에의 수고와 사랑을 접한 콜슨은 믿는 자들이 값없이 베푼 사랑 앞에 교만하기 짝이 없던 그의 자아가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복음을 받아들이는 것은 물론이고, 자신도 누군가에게 사랑을 베풀어야겠다는 마음을 먹었습니다. 남아있는 형기 동안 그가 사랑을 베풀 수 있는 대상은 오로지 동료 죄수들밖에 없었습니다. 그때부터 그는 죄수들을 섬기기로 결심했습니다. 죄수들이 제일 싫어하는 빨래를 자청해서 하기 시작했습니다. 콜슨의 변화에 모든 사람들이 의아해 했습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죄수들 역시 콜슨의 헌신에 감동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그들과 더불어 기도 모임을 시작하고 사랑의 교제를 나누게 되었습니다. 후에 그는 '교도소 선교회(Prison Fellowship)'라는 단체를 조직해서 죄수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일에 힘썼고, 종교계의 노벨상이라고 불리는 탬플턴 상을 받게 되었습니다..

사람을 변화시키는 것이 무엇입니까? 콜슨이 사랑과 섬김의 사람으로 바뀌게 된 것은 그의 야망이 아니었습니다. 감옥생활의 가혹한 형벌이 아니었습니다. 교만하고, 자기 중심적이던 콜슨이 위대한 하나님의 사람으로 변화되고, 모든 사람을 위해서 사랑을 실천할 수 있게 된 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었던 세 사람, 헤트필더와 휴터, 퀘에의 사랑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사람은 바로 사랑으로 바뀌게 되어 있습니다. 탕자가 변화되는 것은 아버지의 사랑입니다. 집나간 자녀가 돌아와 다시 건전한 삶을 살게 되는 것도 부모의 사랑입니다. 사랑은 세상을 변화시킵니다. 사랑은 모든 것을 회복케 합니다. 사랑은 하나님의 축복을 받게 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교회는 사랑으로 하나되어야 합니다. 세상을 변화시키며, 교회가 능력가운데 하나님의 뜻을 이룰 수 있는 것은 교회의 법이 이것을 이루는 것이 아닙니다. 목사의 정치적인 술수가 그것을 이루는 것도 아닙니다. 성도들의 은사와 세속적인 잔꾀가 교회로 하여금 능력있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교회와 성도들의 삶에 놀라운 영적인 변화가 있고, 또 하나님의 영광을 높이 드러내기 위해서는 교회 안에 사랑이 충만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서로 사랑합시다. 힘써 사랑합시다. 도무지 사랑하는 마음이 들지 않아도 주님의 십자가의 사랑을 생각하시면서 우리의 자아를 십자가에 못박고서라도 서로를 사랑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Main Subject

1.

본문 2~3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2 내가 네 행위와 수고와 네 인내를 알고 또 악한 자들을 용납지 아니한 것과 자칭 사도라 하되 아닌 자들을 시험하여 그 거짓된 것을 네가 드러낸 것과 3 또 네가 참고 내 이름을 위하여 견디고 게으르지 아니한 것을 아노라 (요한계시록 2:2~3)

에베소 교회는 참으로 멋진 교회였습니다. 주님은 소아시아의 일곱 교회에 편지를 하면서 가장 먼저 에베소 교회를 떠올리셨습니다. 그만큼 영향력이 있으며, 능력이 있고, 하나님께 기억되는 교회였다는 것입니다. 사도행전을 보면 에베소 교회는 사도 바울이 개척하여 세운 교회입니다. 바울은 이곳에 두란노 서원을 빌려 3년동안 성도들을 훈련시켰습니다.

바울 이후에는 바울의 믿음의 아들이었던 디모데가 그 교회를 섬겼습니다. 후에는 예수님의 가장 사랑을 받는 제자 가운데 하나인 사도 요한이 목회했던 곳이기도 합니다. 위대한 신앙의 인물들이 그 교회를 목회했습니다. 성도들은 최고의 양육을 받았습니다. 그들은 좋은 영적 훈련을 받은 만큼 멋진 신앙을 소유했습니다. 본문에 보니 주님은 에베소 교회를 칭찬하십니다. 그 칭찬의 내용이 무엇입니까?

1.1.

첫째로 에베소 교회는 주님을 위해 수고하는 교회였다는 것입니다. 에베소 교회는 주님을 위해서 열심이었습니다. 조금도 게으르지 않았습니다. 부지런했습니다. 주께서 그들에게 맡기신 선한 일을 위해서 최선을 다했습니다. 때로는 힘들고 어려웠지만 포기하지 않고 인내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주님은 착하고 부지런한 사람을 기뻐하십니다. 게으른 종을 악하다고 말씀하십니다. 주께서 맡기신 사명을 감당할 때에 적당히 요령 피우며, 눈치나 보고 있는 그런 교회와 성도들을 기뻐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교회와 성도들은 주님의 칭찬을 받기 위해서 거룩한 열정을 가지고, 최선을 다해 수고할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제가 참으로 부러워 하는 교회가 있습니다. 흔히 감자탕교회라고 하는 서울광염교회입니다. 그 교회는 주님을 위해서 얼마나 열심을 다하는지 모릅니다. 주님이 기뻐하시는 일이라고 하면 물불을 가리지 않습니다. 주변에 소외된 사람들을 섬기는 일을 위해서 기꺼이 교회의 재정을 내어 놓습니다. 어려운 이웃을 발견하면 모든 것을 뒤로하고 신속히 그리로 달려가서 그들을 돕습니다. 그 교회는 이러한 섬김을 통해서 한국교회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 존귀하게 되는 것을 목적으로 삼고 있습니다. 주님을 위해서 힘써 수고하고 있는 것입니다. 저는 우리 교회도 이렇게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주님의 영광을 위해서 우리 주변에 수많은 사람들을 위해서 섬기며, 또한 주님의 영광된 일을 위해서 봉사할 수 있는 그런 교회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교회 안에는 말만 앞세우는 사람들로 가득한 것이 아니라 실질적인 헌신의 사람들로 충만한 교회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의 이름을 위해서라면 생명을 걸고 헌신하며, 또 인내하는 그런 멋진 교회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존 스토트 목사님의 설교문에서 에베소 교회는 하나님과 인간을 부지런히 섬긴 활동적인 교회였다고 합니다. 에베소 교회는 외로운 사람들을 환대하고 병자들을 간호하고, 젊은이들을 가르치고, 노인들을 방문하는 일에 혼신을 다했으며, 교회를 짓고 수리하는데 많은 시간을 들인 이들도 있었을 것이라고 합니다. 여가 시간을 바쳐 글을 쓰고 음식을 만들고 청소하고 정리한 사람들도 있었을 것입니다. 에베소 교회는 주님의 일을 위해서 벌집처럼 북적이는 곳이었습니다는 것입니다. 멋집니까? 교회는 이와같이 주님의 일을 위해서 열심이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교회가 이런 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주님을 위해서, 주님께서 맡기신 사명을 위해서 최선을 다해 수고하며 섬길 수 있기를 바랍니다. 주님의 이름과 영광을 위해서라면 기꺼이 생명도 바치므로 주님의 칭찬을 받을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2.

둘째로 에베소 교회는 진리의 말씀 위에 견고하게 서 있는 교회였습니다. 당시에는 이단이 극성을 부렸습니다. 거짓 사도들이 창궐했습니다. 그들은 거짓된 교훈들을 가지고 교회를 미혹하려 했으며, 또한 성도들의 마음을 사로잡으려고 했습니다. 예수 믿음을 왜곡시키려고 했습니다. 때로는 극단적 율법주의로 돌아가게도 했으며, 때로는 지나친 신비주의에 사로잡히게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 가운데서도 에베소 교회는 진리의 말씀을 옳게 분별할 수 있는 영적인 지혜와 능력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항상 진리의 말씀을 힘써 견지하는 수준 높은 신앙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교회를 훼방하기 위해서 찾아왔던 이단들을 보면서 에베소 교회는 영적으로 단호했습니다. 에베소 교회는 항상 진리가운데 견고하게 서 있었습니다. 이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성도들 중에는 영적인 지혜가 없으므로, 하나님의 말씀에 무지함으로 말미암아 이단 사설에 쉽게 넘어가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이 있는지 모릅니다. 여호와의 증인에 넘어갑니다. 안식교에 넘어갑니다. 통일교에 넘어가고 안상홍 이단에 넘어갑니다. 그리고 교회를 떠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믿음을 포기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그러나 에베소 교회는 교회가 항상 주님의 진리가운데 견고하게 서도록 했습니다. 이단이 그 교회에 발을 붙이지 못하게 했습니다. 자칭 사도라 하는 사람들을 시험하여 그들의 거짓됨을 드러냈습니다. 어떤 이유로도 교회 안에 거짓이 존재하지 못하게 했습니다. 거짓은 절대로 용납하지 않았습니다. 진리인 것만은 받아들였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교회의 교회 됨은 다른데 있는 것이 아닙니다. 복음의 진리에 견고해야 합니다. 흔들림이 없어야 합니다. 복음이 결코 타협되지 않아야 합니다. 순수하게 복음이 자랑 되고, 또 증거 되고 지켜져야 하는 것입니다. 이단 사설이 교회에 들어오는 것을 미워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바른 교회의 모습입니다. 그러므로 신앙의 선배들은 교회의 표지를 이야기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이 온전히 선포되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거짓된 말씀이 가르쳐져서는 안되고, 항상 진리의 말씀에 기초를 두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저는 우리 교회가 이런 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진리의 말씀을 옳게 분별하는 성도들이 가득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단 사설에 넘어가지 않고, 주님의 진리의 말씀을 밝히 알아 영적 통찰력을 가지고 교회를 섬기고 이웃을 섬기고, 맡겨진 사명을 잘 감당할 수 있는 교회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오고 오는 세대 가운데 온 세상이 이단에 물들어 있게 된다고 해도 그 가운데서도 진리의 깃발을 휘날릴 수 있는 그런 교회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2.

본문 4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4 그러나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 (요한계시록 2:4)

에베소 교회는 참으로 모범적인 교회였습니다. 주님 앞에서 교회다운 교회로서의 면모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주님을 향한 헌신도 있었습니다. 또 영적 통찰력을 가지고 진리 가운데 견고히 서 있었습니다. 이처럼 아름다운 교회의 모습을 갖고 있었지만 에베소 교회를 향한 주님의 책망은 섬짓할 만큼 무시무시했습니다. 에베소 교회가 잘못되었다는 것입니다. 주님의 마음을 슬프게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생각하기에 이렇게 아름다운 교회가 어디에 있습니까? 모든 교회의 조직이 확실합니다. 그리고 그 안에 있는 성도들은 말씀으로 훈련되었으며, 주님의 일을 위해서 라면 생명을 다해서 헌신합니다. 그러면 다 된 것 아닙니까? 그러나 주님의 눈에는 너무나 큰 문제를 안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에베소 교회가 처음 사랑을 버렸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사랑을 버리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바울 사도는 고린도전서 13장에서 천사의 말을 하며, 사람의 방언을 하고, 예언을 하고, 능력을 행한다고 해도 사랑이 없으면 아무 것도 아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랑이 없는 교회는 아무리 많은 수고와 열심, 그리고 진리에 대한 확신을 갖고 있다고 해도, 죽은 교회라는 것입니다. 사랑이 없는 교회는 아무리 건물이 화려하고, 재정이 풍부하고, 선교사를 많이 파송하고, 구제를 많이 해도, 주님 앞에 가장 무능력한 교회일 뿐이라는 말씀입니다. 사랑을 포기하는 것은 교회의 교회 됨을 포기하는 것입니다. 성도가 사랑을 포기하는 것은 성도의 성도 됨을 포기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어떤 경우에도 사랑을 잃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그런데 본문에 보니 주님은 에베소 교회를 향해서 너희는 처음 사랑을 버렸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냥 사랑이 아니라 처음 사랑입니다. 그렇다면 처음 사랑이란 무엇입니까?

2.1.

첫째는 예수 그리스도와 만났던 첫사랑을 말합니다. 그 사랑으로 가슴이 뜨거웠으며, 주님의 사랑과 은혜를 생각하므로 두 눈에 눈물이 글썽였던 그 감격을 말합니다. 처음 그 사랑을 알게 되었을 때는 눈물이 가득했습니다. 감격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왠일인지 세월이 흐를수록 그 사랑을 잊어가고 있습니다. 그 감격도 잊어갑니다. 십자가를 생각해도 아무런 감격이 없습니다. 그저 그렇습니다. 기도를 하면서도 억지의 눈물은 있지만, 마치 연기자의 연기와 같은 흐느끼는 소리는 있지만, 정작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으로 인해 마음이 동하는 그런 뜨거움은 없습니다.

에베소 교회가 그러했습니다. 주님은 이처럼 주님의 은혜와 사랑이 무가치하게 여겨지며, 그 사랑에 대하여 무감각한 불감증의 신자를 바라보면서 탄식하십니다. 그리고 분노하시며, 심판을 선포하시는 것입니다. 주님과의 그 첫사랑의 감격을 회복해야 합니다. 그 뜨거움과 눈물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2.2.

둘째로 처음사랑이라는 것은 가장 우선된 사랑, 최고의 사랑을 말합니다. 본문의 처음 사랑이라는 말은 원문 성경에서 텐 아가펜 쑤 텐 프로텐(th;n ajgavphn sou th;n prwvthn)이라고 합니다. 이 말은 순서상으로 처음인 사랑이라고 말할수도 있지만 그보다는 가장 우선적인 사랑을 뜻하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주님은 그의 사랑하는 교회와 성도들이 최고의 사랑으로 서로 사랑하기를 바라십니다. 지저분한 사랑, 변질된 사랑으로 교회를 혼란케 하기를 원치 않으십니다. 주님은 최고의 사랑으로 살기를 원하십니다. 헬라어에서 사랑을 뜻하는 말에는 몇가지 단어가 있습니다. 첫째는 아가페라는 말입니다. 둘째는 필로스 라는 말입니다. 그 다음에는 스톨게 라는 말입니다. 아가페는 헌신적인 사랑, 부모의 자녀에 대한 사랑, 하나님의 그 백성에 대한 사랑.. 등의 최고의 사랑을 말합니다. 필로스는 동포애나 형제애를 뜻하는 말입니다. 스톨게는 이해관계에 의한 사랑을 말합니다. 이기적인 계산에 의한 사랑을 뜻합니다. 주님은 이 여러 사랑 가운데서 아가페의 최고의 사랑으로 섬기는 교회와 성도가 될 것을 기대하십니다.

에베소 교회의 성도들은 이 사랑을 잃어버렸습니다. 교회 생활을 하지는 하지만, 봉사도 하고, 진리의 말씀을 이야기하기도 하지만 주님의 십자가의 사랑으로 서로를 사랑하지 않았습니다. 여전히 이해관계에 얽힌 지극히 추악한 사랑만을 갖고 있었던 것입니다. 주님처럼 기꺼이 십자가를 지며, 희생하는 그런 사랑을 해야 하는데 에베소 교회는 그렇지 못했습니다. 이런 교회를 보시면서 주님은 책망하셨습니다. 진노하셨습니다. 그러므로 교회와 성돋의 사랑은 언제나 최고의 것으로 사랑해야 합니다. 남는 것, 짜투리로, 사랑해서는 안됩니다. 가장 귀한 것으로 사랑할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2.3.

세째로 처음 사랑이란 사랑을 가장 중요시 여긴다는 것입니다. 섬김을 이루고, 또 진리를 사수하는 등의 일을 행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것보다 사랑을 더욱 중요하게 여겨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에베소 교회는 사랑 따위는 생각지도 않고 말씀을 칼을 휘두르기에 급급했으며, 그것을 위한 열심만 풍성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교회 안에 누군가가 들어오면 먼저 그를 향한 사랑을 생각해야 하는데 먼저 색안경을 끼고 쳐다봅니다. 먼저 경계심을 갖습니다. 먼저 사랑을 생각해야 하는데 그것이 아니라 경계심이나 질투심, 혹은 적대감을 먼저 갖습니다. 주님은 이것이 바로 교회의 본질을 잃어버린 모습이라고 합니다. 성도의 자존감을 상실한 모습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옛날에 종교개혁이 끝나고 교회는 전쟁의 시대가 도래하게 되었습니다. 교리 싸움이었습니다. 이것이 진리고 저것은 비진리다 하면서 싸운 것입니다. 독일 땅을 중심으로 하여 약 30년간 전쟁이 계속되었습니다. 온 유럽이 황폐하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진리를 위해서 싸운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교리의 발전과 진리의 발전은 이룩했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교회는 사랑을 잃은 곳이 되고 말았습니다. 전쟁으로 인해 수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을 뿐 어디에서 사랑은 발견할 수 없었습니다. 그것은 비극이었습니다. 교회사의 부끄러운 오점으로 남게 되었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교회는 사랑의 공동체가 되어야 합니다. 어떤 수고나 헌신도, 또 진리를 위한 싸움도 사랑을 포기케 해서는 안됩니다. 사랑은 결코 중단할 수 없는 것입니다. 아니 그것은 가장 우선된 자리에 있어야 합니다. 그 사랑 없이 행하는 모든 것은 아무리 대단한 것이라고 해도 주님께 책망을 받게 되며, 교회의 본질을 훼손시키는 것이 되고 말 뿐입니다.

저는 우리 마포중앙교회가 사랑으로 충만케 되기를 바랍니다. 서로를 향해 사랑의 말들로 가득하기를 바랍니다. 혹 실수가 있고, 잘못이 있어도 사랑을 덮어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서로의 약함을 바라보며 사랑의 마음으로 어루만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사랑은 이해하는 것입니다. 사랑은 용서하는 것입니다. 사랑은 내가 친히 그를 위해서 십자가에 올라가는 것입니다. 이런 사랑, 예수님의 그 사랑 바로 그것이 우리를 향한 처음 사랑입니다. 이 가장 우선된 사랑을 위해서 오늘 우리 교회는 전진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사랑을 실현하는 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그러므로 주님 앞에서 하나님의 낙원에 있는 생명나무의 과실을 먹을 수 있는 (요한계시록 2:7) 복된 교회가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Conclusion & Blessings

이제 말씀을 맺으려 합니다. 우리 주님 앞에서 가장 이상적인 교회는 어떤 교회입니까? 거룩한 열정을 가지고 힘써 수고하는 교회입니까? 아니면 진리의 말씀으로 무장된 영적 전사들로 충만한 교회입니까? 물론 교회는 이런 모습을 가져야 합니다. 주님께서 맡기신 사명을 위해서 생명을 바쳐 헌신할 수 있어야 합니다. 적그리스도의 세력과 비진리와 싸우되 말씀으로 철저하게 무장하여,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고 언제나 승리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사랑으로 하나되는 것입니다. 교회가 사랑으로 하나되지 않으면 주님은 슬퍼하십니다. 주님은 그 교회의 교회됨을 인정하지 않으시고, 촛대를 옮기십니다.

요즘 신문을 통해서 교회들의 분쟁을 너무나 많이 접합니다. 목사 때문에, 장로 때문에, 어떤 교인 때문에 교회가 조용할 날이 없이 피흘리기까지 다투는 모습을 봅니다. 교단 총회의 지도를 거부하며, 사회법정까지 그 싸움을 번지게 하는 경우들도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그런데 주님은 교회가 그렇게 되기를 원하실까요? 아닙니다. 주님은 절대로 교회와 성도들이 서로간에 피 흘리는 싸움으로 분열하기를 원치 않으십니다. 하나님의 교회가 능력있게 되는 것은 싸움이나 분쟁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사랑이 있어야 합니다. 사랑으로 감싸 안고, 서로를 용서하고 이해하게 될 때에 교회는 놀라운 역사를 이루게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에베소 교회가 처음 사람을 버렸을 때에 하나님은 심히 진노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교회는 어떤 경우에도 처음 사랑을 버리지 말아야 합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이 가장 우선적인 사랑을 위해 우리 자신을 기꺼이 드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주님의 명령을 따라 형제 사랑하기를 가장 우선적인 사명으로 감당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러므로 우리 주님 앞에서 생명적 축복과 최고의 칭찬을 들을 수 있는 저와 여러분, 온 교회가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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