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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ble & Church/Shema Isreal

네 부모를 기쁘게 하라

네 부모를 기쁘게 하라

잠언 23:19~25

Introduction

작가 조연경씨가 쓴 <효도별곡> 이라는 책에 이런 이야기가 실려 있습니다.

서울에서 만두집을 경영하며 살아가는 젊은 부부가 있었습니다. 어느 날 부부는 이상한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매주 수요일 오후 3시만 되면 어김없이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만두가게에 나타나는 것이었습니다.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지만, 나중에는 두 분의 노인들에게 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매주 수요일 오후 3시가 되면 두 분이 함께 만두집에 들어오시는 것이 아니라, 따로따로 들어선다든가, 식탁에 마주앉아 서로 바라보는 표정 등에서 석연치 않은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일반적으로 할아버지가 먼저 오는 편이었지만, 비나 눈이 오거나 날씨가 좋지 않은 날이면 할머니가 먼저 와서 구석자리에 앉아 출입문을 바라보며 초조하게 할아버지를 기다리곤 했습니다.

만두를 시킨 뒤에는 김이 모락모락 나는 만두를 드실 생각도 않고, 마치 이별을 앞둔 연인들처럼 안타까운 눈빛으로 서로 쳐다보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다가 생각난 듯 상대방에게 황급히 만두를 권하다가 다시 눈이 마주치면 눈에 눈물이 고이기도 했습니다. 만두집 부부는 그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정상적인 부부가 아니라, 아마 옛날에 서로 사랑하던 사이로서 그 사랑을 이루지 못한 첫 사랑의 관계라고 생각했습니다. 비록 몸은 늙었지만, 1주일에 한번씩 만나 젊은 시절에 이루지 못한 사랑을 나누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수요일, 그날 따라 할머니의 안색이 영 좋지 않아 보였습니다. 할아버지가 만두 하나를 집어 할머니에게 권했지만, 할머니는 힘없이 고개를 가로 저을 뿐 드시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날 따라 할머니는 자주 눈물을 닦으며 어깨를 들먹이곤 했습니다. 한참 뒤에 일어나 만두 값을 치룬 할아버지는 그 날만큼은 할머니의 어깨를 감싸 안은 채 만두 집을 나섰습니다. 곧 쓰러질 듯 휘청거리며 걷는 할머니를 마치 어미 닭이 병아리를 감싸듯 감싸 안고 가는 할아버지. 그 두 노인의 뒷모습이 왠지 가슴 아프게 보였습니다. 그런데 그 날 이후로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발길이 끊어지고 말았습니다. 그 다음 수요일도, 또 그 다음 수요일에도 두 노인은 영영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만두 집 부부는 궁금하기 짝이 없었으나 어쩔 도리가 없었습니다.

그로부터 두 달여가 지난 어느 수요일 정각 오후 3시에, 할아버지가 문을 열고 만두 집 안으로 들어섰습니다. 만두 집 부부는 너무 반가웠습니다. 그러나 할아버지의 얼굴은 예전과 달리 몹시 초췌해 보였고 진심으로 반가워 하는 부부를 향해 할아버지가 답례로 보인 웃음은 울음보다 더 슬퍼보였습니다. 만두 집 여자가 물었습니다. 할머니도 곧 오시겠지요? 할아버지는 고개를 가로 저었습니다. 죽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할아버지는 마치 독백하듯 울먹이는 목소리로 사연을 이야기했습니다.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그들이 생각했던 것처럼 첫 사랑의 관계가 아니라, 어엿한 부부지간이었습니다. 그런데 할아버지는 수원에 있는 큰 아들의 집에서, 할머니는 서울에 있는 둘째 아들의 집에서 각각 떨어져 살아야만 했습니다. 두 분의 사이가 나빠서가 아니라, 자식들끼리 싸운 결과였습니다. 큰 며느리가, 다 같은 며느리인데 자기 혼자만 시부모를 모실 수 없다고 강경하게 나서는 바람에, 아들들이 공평하게 한 분씩을 모시기로 한 것이었습니다. 본의 아니게 서울과 수원으로 생이별을 하게 된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매주 수요일 오후3시만 되면 마치 견우와 직녀처럼 그 만두 집에서 일주일에 한번씩 만나온 것이었습니다. 할아버지는 다음과 같은 말로 이야기의 끝을 맺었습니다. 이제 나만 죽으면 돼. 천국에서는 같이 살 수 있을 거야.

물론 연로한 부모님을 생이별 시켰던 자녀들 그렇게 할 수 밖에 없었던 사정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검은 머리가 파뿌리가 되도록 함께 살겠다고 결혼식에서 서약하신 노부모를 생이별 시켜, 가슴에 한을 품게 한 것은 참으로 가슴 아픈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오늘 우리의 현실이라고 할 때에 가슴 아픈 일이라 아니할 수 없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의 부모님들은 오늘도 행복해 하고 계십니까? 그렇다면 정말로 고마운 일입니다. 그러나 참된 행복을 알지 못한 채, 쓸쓸히 늙어가고만 있다면 안타까운 일입니다. 저는 우리 교회에 속한 모든 어르신들은 여기의 노부부와 같은 슬픔에 빠지지 않기를 바랍니다. 동시에 우리의 모든 자녀들은 기쁨으로 부모를 섬길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크신 은혜와 축복을 받을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여기에서 아멘을 크게 하셔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부모님께 효도 안 하겠다는 것으로 간주되기 때문입니다. 하하)

Main Subject

1.

사람들은 흔히 유교를 효의 종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유교에서 가장 강조하는 것이 효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유학자들은 효를 이루기 위한 다양한 예법들을 만들어 냈습니다. 그들의 연구와 업적은 대단한 것입니다. 그런데 유교와는 달리 기독교는 불효하는 종교로 오해 되고 있습니다. 얼마나 가슴 아픈 일인지 모릅니다. 기독교가 이처럼 불효의 종교로 오해를 사고 있는 이유는 부모의 묘지, 혹은 조상의 사당에 제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유교적 관점에서 보면 분명히 불효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물론 기독교는 유교적 효와는 방식을 달리하고 있지만, 기독교는 기실 효의 종교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만큼 효를 강조하는 종교가 없기 때문입니다. 제 말이 이해가 되지 않는 사람들이 많을 것입니다. 성경에서 기껏 효에 관한 말씀이 십계명에서 하나(출애굽기20:12), 신약에 가 보면 예수님의 말씀 중에 하나(마태복음 15:4~6), 그리고 바울 사도의 서신에 하나(에베소서 6:1~4) 정도인데 기독교가 무슨 효의 종교라고 하느냐고 할 것입니다. 그러나 착각입니다. 성경은 효에 관한 엄청난 보고입니다.

여러분, 성경 가운데 효경이 있다는 사실을 혹시 알고 있습니까? 알 턱이 없습니다. 성경에 보면 효경이 있습니다. 바로 잠언서입니다. 잠언은 기독교의 효경입니다. 잠언을 읽어보십시오. 그 안에는 효가 무엇인지 자세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자녀들을 효자, 효녀로 만들고 싶으시다면 잠언서를 읽게 해야 합니다. 그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게 되면 말씀의 인도함을 받아서 모두 효자 효녀들이 될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효를 말하게 되면 부모를 잘 공양하는 것에 한정하여 설명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것을 조금 폭 넓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효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고, 지혜라는 말을 사용했습니다. 다시 말씀 드리면 성경에서 말하는 지혜는 곧 효를 의미합니다. 동시에 지혜자가 되라는 성경의 명령은 효자, 효녀가 되라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성경이 말씀하고 있는 효란 무엇입니까? 잠언서는 크게 두 가지로 효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1.1.

첫째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효라는 것입니다. 잠언 9:10절은 말씀합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요 거룩하신 자를 아는 것이 명철이니라 (잠언 9:10)

그렇습니다. 지혜, 즉 효는 무엇입니까? 그것은 바로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존중히 여기는 것이 바로 효입니다. 하나님을 섬김이 없이는 결코 참된 효가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효는 부모를 하나님처럼 높이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부모를 하나님처럼 섬기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섬기는 마음이 없이 부모를 하나님처럼 섬기는 것은 불가능한 것입니다. 에베소서 6장에서는 “네 부모를 주 안에서 순종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주 안에서라는 말씀이 무엇입니까? 효도는 주님을 떠나서는 결코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순종하고, 존중하는 일을 아무리 많이 해도 하나님을 경외함이 없이 이루어지는 순종과 존경은 참된 효도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경 초지일관 하나님을 잘 섬겨야 할 것을 강조합니다. 하나님을 잘 섬길 때에 참된 효자가 되고, 또 약속하신 복을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모든 부모님들의 소원이 있습니다. 자식 잘되는 것입니다. 자식이 복을 받는 것입니다. 어느 부모가 자식이 망하는 것을 보기를 바라는 사람이 없습니다. 모든 부모는 자식이 잘 되기를 바랍니다. 형통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형통함과 축복의 길이 어디에 있습니까? 공부를 많이 하고, 지위가 높아지고, 얼굴이 잘생기면 되는 것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형통함과 축복은 오직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에게 주어지는 축복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함이 없이는 결코 복을 얻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효는 하나님을 섬기는 것에서부터 출발합니다.

하나님을 경외한다는 말씀은 무엇입니까? 세상을 제멋대로 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항상 하나님께서 살아계시며 불꽃같은 눈으로 감찰하고 있다는 사실을 믿고, 하나님 무서운 줄 알고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무서운 줄 모르고 겁 없이 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담대해 보입니다. 하나님을 믿느니 내 주먹을 믿어라 하면서 큰 소리를 칩니다. 온갖 죄악을 다 짓고 살아갑니다. 그러면서도 부끄러워 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이 무섭지도 않느냐고 하면 그런 것이 어디 있느냐며 하나님을 비웃습니다. 그런 사람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은 작은 일에도 하나님 무서운 줄 알고 삽니다. 세상에 대하여는 항상 담대하지만 하나님께 대하여는 두려움을 갖고 조심하며 살아갑니다. 동시에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축복에 대하여 기대하며 살아갑니다. 하나님께 복받을 일을 늘 생각하며, 그 일을 이루려고 힘쓰며 살게 됩니다. 이것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효는 바로 우리가 하나님을 이처럼 경외하게 될 때에 비로소 시작되는 것입니다.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효자, 효녀가 되고 싶습니까? 그렇다면 무엇보다도 하나님을 잘 섬겨야 합니다. 세상의 그 무엇보다도 하나님을 사랑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일을 위해서 기꺼이 우리의 모든 것을 걸 수 있어야 합니다. 여기에서부터 참된 효도가 이루어지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신앙을 점검하시기를 바랍니다. 아직 주님의 향한 뜨거운 사랑을 갖고 있지 못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향한 겸손한 순종이 없다면 바르게 효를 이루고 있는 것이 되지 못함을 기억하시고, 이제부터라도 다시금 하나님을 잘 섬기기로 헌신하는 저와 여러분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1.2.

둘째로 효란 무엇입니까? 그것은 부모를 기쁘게 하는 것입니다. 본문 25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네 부모를 즐겁게 하며 너 낳은 어미를 기쁘게 하라 (잠언 23:25)

그렇습니다. 효란 부모의 마음에 기쁨을 주는 것입니다. 부모를 즐겁게 하는 것입니다.

조선 숙종 때의 문신이며 문학가인 김만중은 유복자로 태어났습니다. 태어나면서부터 아버지의 얼굴을 보지 못했습니다. 아비 없이 자란 자식이었습니다. 그러니 그 설움이야 이루 말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경제적으로도 넉넉하지 못해 어머니, 윤씨 부인은 베를 짜서 어려운 살림을 꾸려 나갔습니다. 그의 어머니는 어린 만중에게 "사람이 걸을 가장 큰길은 효도이니라." 하면서 늘 가르쳤습니다. 김만중은 어머니의 교훈을 받아 열심히 공부하여 스물 아홉 살 때 과거에 장원으로 급제했습니다.

아들이 돌아오자 어머니는 난생 처음으로 눈물을 흘렸습니다. 남편을 잃었을 때도 울지 않은 어머니였습니다. 또, 12년 전 맏아들 김만기가 스물한 살의 나이로 과거에 급제했을 때에도 어머니는 눈물을 흘리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아버지 얼굴도 모르고 태어난 아들이 과거에 급제하자 너무나 기뻐 눈물을 흘리셨던 것이었습니다. 그리고는 이 아들의 과거급제를 기뻐하며 잔치를 열기로 했습니다. 잔치가 있기 전날 밤, 김만중은 형과 함께 의논을 하였습니다. 어떻게 하면 어머니께서 기뻐하시겠느냐는 것이었습니다. 둘은 숙고 끝에 어머니 앞에서 색동옷을 입고 어린 아이처럼 춤을 추자고 했습니다. 다음 날, 잔치가 흥겹게 벌어지고 있을 때, 김만중은 형과 함께 색동옷을 입고 어머니 앞에 나타나 어린아이처럼 춤을 추었습니다. 어른이 색동옷을 입은 것도 우습거니와, 수염을 꺼떡꺼떡하며 춤추는 모습이 더욱 우스웠습니다.

윤씨 부인은 어미를 기쁘게 하려는 형제의 효도에 감격하여 또 한 번 눈물을 흘렸습니다. 김만중의 효도춤은 잔치에 모인 사람들에게도 큰 기쁨과 감동을 안겨 주었습니다. 그 뒤부터 회갑 잔치 때는 김만중의 본을 떠서 자식들이 부모 앞에서 춤을 추어 보이는 광경이 부쩍 늘었다고 합니다.

효도란 바로 이런 것입니다. 부모님께 기쁨을 주는 것입니다. 부모님께 기쁨을 주기 위해서 최선의 노력을 다하는 것입니다. 김만중처럼 색동옷을 입고 춤을 출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멋진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대접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아름다운 곳에 관광을 시켜드릴 수도 있을 것입니다. 부모님께 필요한 물질을 드릴 수도 있을 것입니다. 아무튼 부모님께 기쁨이 되는 일을 해야 합니다. 부모의 마음에 근심만을 안겨준다면 그것은 불효가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부모님의 마음에 기쁨을 줄 수 있기를 바랍니다. 반드시 많은 돈이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무슨 특별한 재주가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부모님의 마음을 헤아려 작은 배려를 할 수 있다면 부모님은 크게 기뻐하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부모의 마음에 염려를 가져다 주는 자녀가 아닌 늘 기쁨을 주는 효도의 사람들이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성경적 효도란 하나님을 경외하고, 부모의 마음에 기쁨을 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부모의 마음에 기쁨을 줄 수 있겠습니까? 본문에서는 몇 가지로 부모의 마음에 참된 기쁨을 주는 방법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2.1.

첫째는 부모의 말씀을 청종하고, 무시하지 않아야 지혜를 얻을 수 있다. 본문 22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너 낳은 아비에게 청종하고 네 늙은 어미를 경히 여기지 말지니라 (잠언 23:22)

부모의 마음에 기쁨을 주는 방법은 다른 것이 아닙니다. 부모의 말씀을 귀 기울여 듣고 그 말씀을 귀중히 여기는 것입니다. 요즘은 어른이 없는 시대입니다. 길을 가다가 아이들이 잘못하는 것을 보면 꾸짖어야 하는데 아무도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괜한 이야기했다가 봉변을 당한다는 것입니다. 집안에서 부모의 말을 안 듣는 것은 물론이고, 집 밖에서는 어른들의 말도 듣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런 시대는 망하는 시대입니다. 어른들의 말에 귀 기울여 듣는 시대가 되어야 축복을 얻을 수 있습니다.

본문에서 청종하라는 말씀을 합니다. 이 말은 귀 기울여 들을 뿐만 아니라 생명의 말씀으로 귀중히 여긴다는 것입니다. 그 말씀들로 인생의 좌표를 삼는다는 것입니다. 부모의 말을 미련한 말, 쓸데없는 말로 여기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부모가 많이 배우지 못했고, 또 연로하다고 해서 그분들의 말씀을 청종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부모는 말씀을 잘 듣는 자녀를 통해서 기쁨을 얻는 것입니다. 어른들이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 줄 아십니까? 말씀을 많이 하시는 것을 좋아합니다. 멋진 어른이 되기 위해서는 말수를 줄여야 한다고 하기도 하지만, 어른들은 누구를 막론하고 말씀을 많이 하고 싶어하십니다. 그런데 그분들이 말씀을 하시는 딴청을 부려서는 안됩니다. 재미없는 이야기라도, 수십 번 들었던 이야기라도 처음 듣는 이야기인 것처럼 재밌게 들어주어야 합니다. 아주 중요한 말씀으로 들어주어야 합니다. 그렇게 되면 어른들이 기뻐하십니다.

진돗개 전도왕이라는 별명을 가지신 박병선 집사님이라는 분이 계십니다. 그분은 지방의회 의원이신데 전도하는 일을 위해서 이번 지방선거에는 출마하지 않기로 했다고 합니다. 아무튼 전도에 미치다시피한 분이십니다. 아주 열정적입니다. 그런데 이분이 전도를 하시면서 연세 많으신 어른을 찾아뵈었다고 합니다. 박 집사님은 거의 매일 노인의 집을 찾았습니다. 몇 시간씩 노인의 이야기가 계속되었습니다. 그러나 집사님은 처음듣는 이야기인 것처럼 재밌게 들어주었습니다. 맞장구까지 쳐가면서 말입니다. 그랬더니 집사님이 말을 잘 들어준다고 해서 그 노인이 예수를 믿게 되었다고 합니다. 노인들은 자기 이야기를 들어주면 기뻐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부모를 공경하여 기쁘게 하는 제일원리는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말씀을 잘 들어주는 것입니다. 조금이라고 귀찮아 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리고 부모의 말씀에 성심을 다해서 순종하게 되면, 그 말씀의 가치를 귀중히 여기게 되면 부모는 기뻐합니다. 바로 이것이 효도입니다. 그러므로 이제부터 노인이라고 무시하지 마시고, 부모의 말씀을 청종하며, 멸시치 않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2.2.

둘째는 술과 쾌락의 음란한 세상의 친구들을 떠나 믿음의 좋은 친구를 사귀어야 합니다. 20~21절 말씀을 함께 보겠습니다.

술을 즐겨하는 자와 고기를 탐하는 자로 더불어 사귀지 말라. 술 취하고 탐식하는 자는 가난하여질 것이요 잠 자기를 즐겨하는 자는 해어진 옷을 입을 것임이니라 (잠언 23:20~21)

부모를 기쁘게 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술 친구, 세상 친구 사귀지 말고, 믿음의 좋은 친구들을 사귀어야 합니다. 이것이 부모를 기쁘게 하는 것입니다.

어떤 친구를 사귀느냐에 따라 그의 인생이 달라지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나쁜 친구, 세상 친구를 만나다가 자기도 모른 사이에 나쁜 물이 들어버립니다. 술친구를 가까이 하게 되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술에 취해 살아가게 되어 있습니다. 죄악 된 쾌락을 사랑하는 친구를 사귀게 되면 그렇게 변해갑니다. 사람은 친구를 닮아가게 되어 있습니다. 아무리 그렇지 않으려고 해도 안됩니다. 옛말에 근묵자흑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묵을 가까이 하게 되면 아무리 깨끗하게 지내려고 해도 더럽혀질 수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세상의 쾌락을 사랑하고, 그런 친구를 가까이 하게 되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하나님의 근심이 되고, 부모의 근심이 되고 말 것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의 좋은 친구와 가까이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신앙이 성장하고, 하나님께 기쁨이 되기 위해서는 믿음 좋은 사람과 친구가 되어야 합니다. 교회에서 믿음 좋은 사람과 가까이 하려고 애를 써야 합니다. 그렇게 되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믿음이 크게 성장합니다. 인품이 좋은 사람과 가까이 하게 되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그렇게 인품이 변해갑니다. 그러므로 좋은 친구들과 아름다운 교제를 갖게 되면 부모의 마음에 큰 기쁨을 줄 수가 있게 되어지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술을 즐겨하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탐식하지도 마시기를 바랍니다. 음행하지도 마시기 바랍니다. 이런 것을 사랑하는 세상의 친구들과 가까이 하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오직 믿음의 좋은 친구들과 아름다운 사랑의 교제를 나눔으로 하나님께 기쁨이 되고, 또 부모의 마음에 큰 기쁨이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을 드립니다.

2.3.

세째는 의롭게 살아야 지혜를 얻을 수 있고, 부모의 마음에 기쁨을 줄 수 있다. 24~25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의인의 아비는 크게 즐거울 것이요 지혜로운 자식을 낳은 자는 그를 인하여 즐거울 것이니라 네 부모를 즐겁게 하며 너 낳은 어미를 기쁘게 하라 (잠언 23:24~25)

여기에 보니 자녀가 의인이 될 때에, 그리고 자녀가 지혜로운 자가 될 때에 부모는 크게 기뻐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의로운 자녀는 부모의 기쁨입니다. 여기에서 의롭게 된다는 것은 구속사적인 측면에서의 의를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옳은 일을 위해서 헌신하는 것을 뜻합니다. 죄악의 길을 걷지 않으며, 정의를 위해서라면 기꺼이 자신의 몸을 불사를 수 있는 사람, 그래서 부모의 명예를 드높일 수 있는 사람을 의인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자녀들이 착한 일을 하므로 모든 사람에게 칭찬을 받으면 부모는 크게 기뻐합니다. 비록 그 일 때문에 물질적 손해를 보게 된다고 해도 만족해 하며 자랑스럽게 생각을 합니다. 그러나 불의한 자녀를 바라보는 부모의 마음은 가슴 아프지 않을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Conclusion & Blessings

송강 정철은 어버이 살아실제 섬기길랑 다 하여라 지나간 후면 애닯다. 어이하리 평생에 다시 못할 일이뿐인가 하노라 하면서 효를 권장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부모님 떠나시면 효를 하고 싶어도 못합니다. 하나님께서 기회를 주셨을 때에 힘써 효를 행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부모님의 마음에 큰 기쁨을 줄 수 있기를 바랍니다.

대개의 사람들은 부모는 십자가라고 생각합니다. 짐이라고 생각해서 내다 버리는 경우도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엄청난 잘못입니다. 부모는 십자가가 아닙니다. 축복의 면류관입니다. 은총의 보물단지입니다.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성경은 분명히 약속하고 있습니다. 부모를 공경하는 자에게 복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 계명은 약속 있는 첫 계명이라고 합니다.

비록 지금 부모님 때문에 우리의 육신이 힘들고, 경제적으로 어려운 듯해도 그것은 하나님의 축복을 저금하는 일이 되어집니다. 저금하면서 우는 사람 있습니까? 저금하면서 짜증내는 사람 있습니까? 없습니다. 희망을 갖고 기쁨으로 합니다. 그렇습니다. 부모님을 섬기는 것은 하나님께 축복을 저금하는 일입니다. 그러므로 지금 힘들어도 괴로워도 하나님의 축복에 대한 희망을 갖고 기쁨으로 섬길 수 있기를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교회는 말씀을 따라 효를 다하는 교회와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부모의 마음에 기쁨을 줄 수 있기를 바랍니다. 부모의 말씀을 존중하며 잘 들어주시기를 바랍니다. 술친구, 쾌락친구, 세상 친구와 거리를 멀리하고 믿음의 좋은 친구들과 함께 함으로 성숙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항상 의로운 삶을 살아 부모의 마음에 큰 자랑 거리가 되어 기쁨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러므로 성경에 약속하신 효자를 향한 하나님의 축복으로 땅에서 잘되고 장수하는 귀한 은혜를 누릴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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