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Bible & Church/Shema Isreal

부활의 기쁨에 참여하라

부활의 기쁨에 참여하라

마태복음 28:1~10

Introduction

할렐루야! 예수님께서 부활하셨습니다. 우리 함께 큰 목소리로 따라 하겠습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셨습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셨습니다. 주님께서 부활하셨다는 소식은 참으로 놀라운 일이 아닐 수가 없습니다. 세상의 어느 종교도, 어떤 철학이나 사상도 부활에 관한 이야기는 하지 않습니다. 그들에게는 부활의 소망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교회는 부활을 이야기합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부활의 소망을 얻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부활은 기독교 신앙의 핵심을 이루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당시의 영지주의자들이 예수님과 죽으심과 부활하심을 믿지 않는 것에 대하여 아무리 교회 안에 있다고 해도, 성도들과 좋은 교류를 갖고 있다고 해도 예수님의 부활을 믿지 않으면 참 믿음이 아니며, 구원을 얻을 수 있는 신앙이 아님을 강조했습니다.

기독교가 생명의 종교인 것은 바로 예수님이 부활하셨기 때문입니다. 교회는 무덤을 숭배하는 곳이 아닙니다. 유교도 불교도 이슬람교도 무덤을 숭배합니다. 물론 그들이 갖고 있는 도덕, 철학적 사상을 존경할 만합니다. 대단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기독교를 믿어야 하는 이유는 그들에게는 부활신앙이 없기 때문입니다. 결코 생명의 종교가 아니고, 죽은 자의 종교일 뿐이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기독교는 생명의 종교임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로 말미암아 죄와 사망의 권세 아래 있던 인류에게 생명이 주어졌습니다. 구원의 기쁨이 넘쳐나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부활절을 맞이하여 저는 우리 교회와 성도들의 삶 속에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부활의 기쁨이 충만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일평생의 삶을 통하여 부활의 기쁨에 참여하는 축복이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Main Subject

예수를 믿는 목적이 무엇입니까? 여러 가지 말로 설명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단순히 이 땅에서 잘 먹고 잘 살기 위한 것이라면 예수를 믿는 것은 잘못된 선택입니다. 예수를 믿기보다 교활한 사기꾼이 되는 것이 더 나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예수를 믿는 목적은 이 땅에서 풍요로움을 얻기 위한 것만이 아닙니다. 그보다 더 궁극적으로 주 안에서 누리는 참된 행복, 영원한 생명을 얻기 위한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는 목적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얻게 되는 세상과 비교할 수 없는 기쁨과 행복을 얻기 위한 것입니다.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참으로 안타까운 것은 교회생활을 하면서도 그 기쁨과 행복을 누리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는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교회 생활을 열심히 하는데, 십일조도 하고, 헌금도 하고, 봉사도 하는데 왜 기쁨과 행복이 없습니까? 그것은 바로 주님의 부활의 기쁨에 참여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부활의 기쁨에 참여할 수 있습니까?

1.

본문 1절 말씀을 함께 보겠습니다.

안식일이 다하여가고 안식 후 첫날이 되려는 미명에 막달라 마리아와 다른 마리아가 무덤을 보려고 왔더니 (마태복음 28:1)

예수님이 죽으신 후에 유대인들은 예수님의 시신을 아리마대 요셉의 묘실에 장사했습니다. 그리고 로마황제의 이름으로 봉인을 하여 어느 누구도 접근하지 못하게 했습니다. 그러나 여인들은 이런 사정을 잘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안식 후 첫날 새벽이 되자, 예수님의 무덤을 찾게 되었습니다. 십자가의 형벌을 받아 죽은 사람의 무덤을 찾아간다는 것은 그리 유익이 되지 못하는 일입니다. 그러나 여인들은 예수님의 무덤을 찾아갔습니다. 이처럼 주님의 무덤을 찾아가게 되었을 때에 그들은 부활의 기쁨에 참여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주님의 무덤으로 가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서는 부활의 기쁨에 참여할 수가 없습니다.

많은 성경학자들과 목회자들이 여인들의 행동을 비난했습니다. 그들은 주님의 약속을 믿지 못하고, 주님께서 부활하신 것을 알지 못한 채, 죽은 자의 거하는 곳 무덤을 찾아갔다는 것입니다. 물론 그분들의 비난은 합당한 것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여인들을 비난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들은 주님을 사랑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주님을 사랑했기 때문에 주님의 무덤을 찾아온 것입니다. 그들을 위협하는 로마의 군병, 유대인들이 있었지만 개의치 않고, 주님의 무덤을 찾아와 주님의 시신에 향유를 바르고자 했습니다. 얼마나 고귀한 사랑입니까? 이런 사랑의 마음을 가지고 주님을 찾아나온 여인들에게 주님은 책망하시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부활의 기쁨에 참여케 하는 은혜를 허락하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는 어떻게 주님의 무덤에 가야 합니까? 주님의 무덤을 찾기 위해서 계돈을 모아 성지순례를 해야 한다는 말입니까? 그렇지는 않습니다. 주님의 무덤이란 우리를 사랑하심으로 기꺼이 고난을 당하신 주님이 계신 곳입니다. 주님께서 가슴 아프게 사랑하시며 마음을 쏟으시는 곳입니다. 소외당한 사람, 고통하는 사람, 주님을 알지 못하여 영적으로 신음하는 사람들이 있는 곳입니다. 주께서 사랑하시는 교회 안에 아직 위로가 필요한 사람들입니다. 그들에게 사랑의 마음으로 가야 합니다. 두려움을 뛰어넘는 사랑으로 가야 합니다. 그렇게 될 때에 부활의 기쁨을 누릴 수가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어떤 사람이 부활의 기쁨에 참여할 수 있습니까? 여기 여인들과 같이 세상의 두려움에 굴하지 않고, 뜨거운 사랑으로 주님의 고난의 자리에 나아오는 사람, 주님의 죽음의 자리에 나아와서 주님께 최선의 사랑을 드릴 수 있는 사람입니다. 주님께서 죽으신 그 자리에 가야 합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우리 주님께서 위해서 돌아가신 그 교회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로 가야 합니다. 주님을 사랑하는 그 마음으로 가야 합니다. 가서 그곳에서 사랑을 베풀어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주님의 무덤에 용기를 내어 가는 것, 두려움 없는 사랑으로 주님이 사랑한 교회와 성도들에게 사랑을 베푸는 자가 될 때에 부활의 기쁨을 누릴 수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부활절을 맞이하여 부활하신 주님과 함께 큰 기쁨을 누리기 위해서 우리는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주님을 향해, 주의 교회를 향해 나아갈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2.

여인들이 예수님을 사랑하는 마음을 품고 무덤에 갔을 때에, 그들이 두려워 하던 문제는 사라졌습니다. 그들은 로마의 군병들을 두려워 했습니다. 그러나 지진이 일어나고, 하나님의 천사들이 무덤을 막고 있던 돌을 굴려내고, 그 위에 앉아있었습니다. 이 놀라운 광경으로 인하여 무덤 밖을 지키고 있던 군인들은 혼비백산하게 되었습니다. 로마의 군병 때문에 예수님의 시신을 보지 못할까 염려했던 여인들의 모든 염려는 한 순간에 사라졌습니다. 그들은 황급히 무덤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사랑하는 주님의 시신에 향유를 바르기 위해서 였습니다. 그런데 그곳에서는 예수님의 시신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저 빈 무덤 뿐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시신을 감싸고 있던 세마포와 머리를 두르고 있던 수건 뿐이었습니다.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그 때에 천사가 여인들에게 말했습니다. 본문 6~7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6 그가 여기 계시지 않고 그의 말씀하시던 대로 살아나셨느니라 와서 그의 누우셨던 곳을 보라 7 또 빨리 가서 그의 제자들에게 이르되 그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셨고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시나니 거기서 너희가 뵈오리라 하라 보라 내가 너희에게 일렀느니라 하거늘 (마태복음 28:6~7)

여인들이 주님의 부활의 기쁨에 참여하게 된 것은 예수님의 빈 무덤을 보았을 때입니다. 천사는 여인들에게 그의 누우셨던 곳을 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제자들도 뵈오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부활의 기쁨에 참여하는 자가 되기 위해서는 예수님의 부활의 현장을 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영적, 육적 체험을 가지고 확신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없이는 아무리 오래 신앙생활을 해도 부활의 기쁨을 누릴 수가 없습니다. 그 기쁨으로 기뻐하지 못합니다. 항상 우울한 신앙생활을 하게 됩니다. 십자가와 죽음, 무덤과 같은 신앙생활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여전히 죄와 사망의 권세 가운데 억눌려 꼼짝도 못하는 신세로 지낼 수 밖에 없습니다.

주님은 그의 사랑하는 백성들이, 당신이 친히 십자가를 지시고 구원하신 사람들이 부활의 기쁨을 모르는 채, 우울하게, 슬프게 살아가기를 원치 않으십니다. 어떤 환경가운데서도 부활의 기쁨을 인하여 소망 중에 기뻐할 수 있는 사람이 되기를 바라십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전 생애를 통하여 항상 기뻐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바울 사도는 감옥에 갇히면서도 기뻐했습니다. 빌립보 교회의 성도들이 고난을 당할 때에 그들을 향해서도 기뻐하라고 말씀했습니다. 데살로니가 성도들을 향해서도 항상 기뻐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했습니다. 바울이 이와같이 말할 수 있었던 것은 그에게 기쁨이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기쁨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다른 것이 아닙니다. 바울은 부활하신 주님을 만났습니다. 인격적으로 체험했습니다. 영적으로 체험했습니다. 그러므로 그는 확신가운데 기뻐하며, 감옥에서 매를 맞아도 기뻐하고, 고난을 당해도 기뻐하고, 모욕을 당해도, 구차한 살림살이에서도 기뻐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언제나 기뻐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본문 8절 말씀에서도 여인들의 기쁨이 소개되고 있습니다. 8절 봅니다.

그 여자들이 무서움과 큰 기쁨으로 무덤을 빨리 떠나 제자들에게 알게 하려고 달음질할새(마태복음 28:8)

여인들이 빈 무덤을 통하여 예수님의 부활을 체험하고, 그들은 큰 기쁨으로 돌아가게 되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체험적인 신앙을 가져야 합니다. 주님께서 부활하셨음에 대한 분명한 증거를 간직할 수 있어야 합니다. 주님의 부활에 대한 분명한 확신이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긴가민가하면 큰 기쁨이 올 수가 없습니다. 신앙생활 역시 회의적일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부활에 대한 분명한 증거와 확신, 체험이 있게 되면 그는 어떤 경우에도 기뻐할 수 있습니다. 담대할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주님의 부활의 현장을 체험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주님께서 부활하셨음에 대한 분명한 확신을 가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마음과 영혼에 분명한 확신을 가질 때에 비로소 부활의 기쁨에 참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말씀을 묵상함으로, 또는 주님의 부활에 관한 역사적 증거, 빈 무덤의 증거들을 구체적으로 확인해 보심으로 주님의 부활이 분명한 사실임을 믿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부활의 기쁨을 모르는 자가 아닌 그 기쁨에 참여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3.

본문 6~7절 말씀을 다시 한 번 자세히 보겠습니다. 천사는 여인들에게 그의 누우셨던 곳을 보라고 한 후에 뭐라고 하십니까? 빨리 가서 그의 제자들에게 이르라 고 했고, 여인들은 어떻게 했습니까? 무덤을 빨리 떠나 제자들에게 알게 하려 했습니다. 그 때에 그들에게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까? 9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예수께서 저희를 만나 가라사대 평안하뇨 하시거늘 여자들이 나아가 그 발을 붙잡고 경배하니 (마태복음 28:9)

그렇습니다. 여인들은 예수님을 만날 수 있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것이 지금 어떤 상황에서 나타난 일입니까? 천사의 말을 듣고 제자들에게 예수님의 부활소식을 전하기 위해서 빨리 무덤을 떠나게 될 때에 일어난 일입니다. 여기에 부활의 기쁨에 참여하는 원리가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부활 소식을 가지고 빨리 무덤을 떠나야 합니다. 부활 소식을 갖고 있다고 해도 그 자리에 가만히 있으면 안됩니다. 무덤문을 떠나야 합니다. 제자들에게 그 소식을 알려주기 위해서 신속히 떠나야 합니다. 그래야만 다시금 부활하신 주님을 만날 수 있고, 그 기쁨에 참여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의 많은 성도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의 은혜를 경험했다고 합니다.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확실히 믿는다고 합니다. 그러나 부활의 소식을 전함에 있어서는 여전히 게으릅니다. 주님의 부활을 체험한 무덤을 열고, 뛰어 나와야 합니다. 주님의 은혜를 체험하고, 주님을 경험한 교회의 울타리를 열어 젖히고 뛰어 나와야 합니다. 그리고 부활의 기쁜 소식은 온 천하의 모든 사람에게 전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만 증거로만 알았던 부활의 기쁨을 이제는 인격적으로 보다 차원높게 알 수 있는 것입니다.

Conclusion & Blessings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은 부활 주일입니다. 주님께서 사망의 권세를 이기시고 부활하신 영광된 날입니다. 기쁨의 날입니다. 하늘도 기뻐하고 땅도 기뻐하고, 온 우주가 하나님의 은혜로 인하여 기뻐하는 날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부활하신 주님으로 인하여 기쁨을 누릴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그 기쁨에 참여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주님께서 고난 당하셨던 그 자리로 찾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주님의 아픈 가슴으로 어루만져야 할 사람들에게 찾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사랑의 실천자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부활하신 증거의 현상을 영적으로, 인격적으로 체험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부활에 대하여 한점의 의심도 남기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철저하게, 온전하게 믿을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여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의 소식을 온천하에 전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러므로 우리 안에 잃어버린 부활의 기쁨을 회복하시고, 그 기쁨으로 충만케 되는 저와 여러분, 온 교회가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출처 :마포중앙교회

'Bible & Church > Shema Isreal' 카테고리의 다른 글

부활, 그 후에(2)  (2) 2007.04.25
부활 그 후에 (2)  (1) 2007.04.24
주의 고난을 생각하라  (7) 2007.04.03
부흥을 위한 준비 3- 밀알로 죽기  (2) 2007.03.27
부흥을 위한 준비 2 - 씨 뿌리기  (0) 2007.03.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