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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ble & Church/Shema Isreal

성찬에 참여하라.


성찬에 참여하라

고린도전서 11:23~29

Introduction

최근에 서점에 가보신 적이 있습니까? 어떤 책들이 베스트셀러이고, 또 어떤 책들이 많이 출판되는 것같습니까? 저는 서점에 가볼 때마다 사람들의 관심이 성공하는 것과 돈 많이 버는 것, 그리고 건강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서점에는 그런 것들에 관한 책들이 가장 많이 나와있고, 또 베스트셀러가 되곤 하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왜 성공을 추구하고, 부자되기를 꿈꾸고, 건강하기를 원합니까? 그것이 행복의 길이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어디에도 성공이 행복의 길이고, 부자되는 것이 행복의 최고봉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건강도 지식도 참된 행복을 주지는 못한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헛되고 헛되면 헛될 뿐이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행복할 수 있습니까?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은혜 없이는 용빼는 재주가 있어도 행복할 수 없습니다. 은혜 없이는 많이 가져본들 행복할 수 없고, 은혜 없이는 세상에서 최고의 노벨상을 받아도 행복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은혜를 체험하면, 세상이 알지 못하는 행복이 밀려오게 됩니다. 그러므로 은혜로 살아야 합니다. 은혜로 행복해야 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수많은 사람들이 참된 행복을 알지 못해, 방황합니다. 그러나 이런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은혜로 여러분의 삶에는 항상 참된 행복이 충만하기를 바랍니다. 불행은 물러가고 행복으로 말미암은 감격이 가득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Main Subject

1.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며 행복을 얻을 수 있습니까? 성경과 많은 신앙의 선배들은 기도와 말씀, 그리고 성례에 참여하는 것이 하나님의 은혜를 받는 길이라고 증언하고 있습니다. 즉 기도와 말씀 외에 우리가 세례를 받게되고, 성찬에 참여하게 될 때에 하나님께서 그런 과정을 통해서 주의 은혜를 경험하게 하고, 참된 행복을 얻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의 성찬에 참여하므로 은혜 충만한 삶을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성찬예식은 예수님께서 친히 제정하신 것입니다. 제자들을 향해서 이 예식을 주님 오실 때까지 계속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주님께서 재림하실 때까지 성찬을 통해서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하며, 행복한 삶을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왜 하나님은 성찬을 행하라고 말씀하셨습니까? 성찬이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이기에 성찬을 그렇게 중요시한 것입니까? 본문은 성찬의 의미를 크게 두 가지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1.1.

첫째로 성찬은 주님과의 새 언약을 기념하는 것입니다. 24~25절 말씀을 함께 보겠습니다.

24 축사하시고 떼어 가라사대 이것은 너희를 위하는 내 몸이니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하시고 25 식후에 또한 이와 같이 잔을 가지시고 가라사대 이 잔은 내 피로 세운 새 언약이니 이것을 행하여 마실 때마다 나를 기념하라 하셨으니 (고린도전서 11:24~25)

여기의 말씀에 보니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는 말씀이 두번에 걸쳐 나옵니다. 주님은 제자들에게 성찬을 행함으로 주님을 기억하라는 것입니다. 주님과 피로 세운 새 언약을 기념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기에 기념한다는 말은 헬라어에서 아남네시스()라는 말입니다. 이것은 단순히 기억에 둔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과거의 일을 기억하고, 현재가 그 기억에 부합해야 하며, 또 미래가 그 기억과 함께 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주어진 구원과 은혜가 어떤 것인가를 생각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십자가에 달리신 과거의 현장으로 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현장에서 우리를 위해서 친히 고난을 당하시며, 우리를 끝까지 사랑하신 그 주님의 은혜를 가슴 속으로 깊이 체험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이런 은혜의 감격이 있어야 합니다. 주님은 성찬을 통해서 이런 은혜의 감격을 누릴 수 있기를 원하십니다. 십자가의 사건을 통해 우리에게 주어진 그 구원의 은혜를 잊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기억하는 차원에서 넘어서서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주어진 구원의 은혜에 오늘의 삶에서 감사하는 것입니다. 매일 매일의 삶에서 그 은혜로 말미암은 기쁨과 감사를 주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주님과의 새 언약을 기억하고, 그 언약에 합당한 삶을 결단하는 것입니다. 은혜를 허락하신 주님을 기억함으로 주님을 닮아가기로 결심하며 헌신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성찬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오늘 주의 성찬에 참여하면서 성찬의 이와같은 의미를 알아야 합니다. 주님으로 말미암은 새 언약을 기억해야 합니다. 과거의 은혜와 사건으로만 기억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늘의 삶에서 그 은혜로 말미암은 감사와 감격을 가져야 합니다. 동시에 은혜받은 사람으로서 부끄럽지 않도록 살아 갈 것을 결심해야 합니다. 주님의 마음을 본받아 거룩함과 깨끗함의 헌신으로 주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1.2.

본문이 말하는 성찬의 두번째 의미는 주의 죽으심을 전파하는 것입니다. 본문 26절 말씀을 함께 보겠습니다.

너희가 이 떡을 먹으며 이 잔을 마실 때마다 주의 죽으심을 오실 때까지 전하는 것이니라 (고린도전서 11:26)

성찬에 참여하는 것은 그 자체가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적 죽음을 전파하는 것이라고 본문은 선언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성찬에 참여하는 것은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서 죽으셨다는 사실을 고백하고, 또 선포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찬에 참여함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적 죽음을 선포해야 합니다. 주님의 십자가의 죽음이 우리를 살게 했고, 우리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갖게 했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선포하는 것입니다.

주님은 바울을 통해서 이런 성찬을 주님의 재림때까지 계속해서 시행되어야 한다고 합니다. 주님의 죽으심에 관해서 성찬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끝까지 전해야 한다는 것을 암시적으로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믿음의 사람들에게 최고의 사명은 무엇입니까? 복음전하는 것입니다. 사나 죽으나 우리의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케 되어야 합니다. 세상의 것으로 자랑을 삼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자랑을 삼아야 합니다. 이 복음이 모든 인류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된다는 사실을 믿고 선포해야 하는 것입니다. 복음을 들고 나아가는 길이 험준한 산악길이라고 해도, 거친 황무지 광야라고 해도, 고난이 많은 아골 골짝 빈들이라고 해도 주저하지 않고 가야 합니다. 그리고 이 복음을 전해야 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성찬에 참여하는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가치를 깨닫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그 복음을 부끄러워 하지 않고 증거하는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는 우리를 위해서 십자가를 지시고 죽으신 주님의 사랑을 전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그 은혜와 사랑을 전파해야 하는 것입니다.

2.

성찬은 주님과의 새 언약을 기념하는 것이며, 동시에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을 전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찬에 참여함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힘입어야 합니다. 본문은 성찬에 참여하는 사람들의 자세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먼저 본문 28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사람이 자기를 살피고 그 후에야 이 떡을 먹고 이 잔을 마실지니 (고린도전서 11:28)

바울은 고린도 교회의 성도들에게 성찬에 참여하게 될 때에 조심해야 할 것을 권고하고 있습니다. 성찬에 함부로 대하는 것은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모독하는 죄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떡과 잔을 대할 때에 자기를 살펴야 한다고 선언하고 있습니다. 즉 거룩함과 순결함으로 성찬에 참여해야 합니다.

바울이 고린도교회에 편지할 무렵에 고린도교회 안에는 온갖 음행이 난무하고 있었습니다. 5:1절 말씀에 의하면 이방인 중에도 없는 더러운 음행이 교회 안에, 성도들에게 있었다고 합니다. 하나님의 교회는 순결해야 합니다. 성도들은 거룩해야 합니다. 그런데 그들은 그렇지 못했습니다. 음행의 습관을 버리지 못했습니다.

당시에 고린도에 있는 아프로디테 신전에는 수많은 여자사제들이 있었습니다. 이들은 신전에 찾아오는 사람들과 성관계를 맺는 창녀였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마치 종교의식처럼 행해지는 것입니다. 이런 풍습에 젖어있던 고린도 교인들은 옛 습관을 버리지 못하고, 음행을 일삼았습니다. 심지어는 교회 안에서도 이런 음행이 자행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이런 음행을 가지고서는 결코 성찬에 참여할 수 없다고 선언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뿐입니까? 고린도 교회는 우상숭배가 가득한 곳이기도 했습니다. 우상숭배에 참여하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우상의 제물을 먹는 일에도 참여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교회와 우상종교가 적절하게 타협을 보려고 했습니다. 바울은 우상의 상에서 떡을 먹는 자가 주님의 떡과 잔을 대할 수는 없는 것이라고 강력하게 선포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거룩해야만 합니다. 순결해야만 합니다. 우상을 버리고, 음란을 버려야 합니다. 이런 삶이 동행할 때에 성찬에 참여할 수 있습니다. 음란과 우상숭배로 성찬에 참여하는 것은 큰 죄악이 되어 하나님의 심판을 면할 수 없는 것입니다.

2.2.

둘째로 성찬에 참여하려는 자는 반드시 성도와의 사랑의 교제가 있어야 합니다. 본문 27,29절 말씀에서는 주의 떡과 잔을 합당치 않게 먹고 마시는 자 주의 몸을 분변치 못하고 먹고 마시는 자를 이야기합니다. 여기에서 말하는 사람은 어떤 사람입니까? 본문의 맥락에서 보면 성도와의 사랑으로 하나됨을 이루지 못한 채, 분파로 나뉘어서 자기들끼리의 성찬을 즐기는 것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고린도 교회 안에는 파당이 많았습니다. 바울파, 게바파, 아볼로파, 등등의 많은 계파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계파간의 갈등이 적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런 나뉨이 성찬을 행할 때에도 나타나게 되었습니다. 어떤 파는 돈이 많은 부자들로만 구성되었고, 또 어떤 파는 가난한 사람, 노예, 소외된 자로 구성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성찬에 모이게 될 때에 부자들은 자기들끼리 좋은 음식으로 성찬을 나누게 된 것입니다. 반면에 가난한 자들은 부자들의 성찬에 참여하지 못하고, 항상 성찬에서 소외된 것이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교회 안에는 성찬이 하나의 커다란 갈등의 요소, 차별의 요소가 된 것입니다.

바울은 이런 고린도 교회를 책망하셨습니다. 예수께서 살을 찢고 피를 흘리신 것은 부자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고 하셨습니다. 가난한 자들을 위해서도 그렇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의 피와 희생으로 구속함을 받은 사람이 서로 나뉘어져서 갈등하고 다투어서는 안된다고 하는 것입니다. 다만 서로를 향하여 십자가의 사랑으로 사랑하며, 한 마음과 한 뜻을 이루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나뉨이 아닌 하나됨을 이룩해야 한다고 선언하는 것입니다. 성찬의 이상은 바로 교회의 하나됨입니다. 함께 성찬을 나누는 것도 하나됨을 위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서로를 향한 분노나 갈등, 다툼을 가지고서 성찬에 참여하는 것은 죄악입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으십니다. 서로를 향한 사랑과 용서, 하나됨의 아름다운 교제로 성찬에 임해야 하고, 성찬을 통해서 그와 같은 모습을 이룰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하나되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기까지 사랑하시므로 피를 흘려 교회를 세우시고, 한 공동체를 이루게 하셨으니 어떤 경우에도 나뉘어서는 안됩니다. 우리의 신분이 다르고, 학벌이 다르고, 경험과 처지가 다르더라도 십자가의 사랑으로 서로를 사랑하며 하나될 수 있어야 합니다. 한 마음이 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는 성찬에 합당한 자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Conclusion & Blessings

오늘은 종교개혁주일 겸 성찬예식이 있는 주일입니다. 개혁자들은 교회를 개혁하면서 가장 중요하게 여긴 것이 바로 성찬의 개혁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는 주의 떡과 잔을 대하면서 성찬의 의미를 새롭게 함이 필요할 것입니다.

주의 성찬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시고, 우리로 행복하게 하기 위해서 제정하신 것입니다. 이 성찬을 행할 때에 우리 주님을 기념하는 것이 되어 하나님의 축복이 임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이 성찬을 통하여 주님의 복음이 전파되고 자랑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오늘의 성찬을 통하여 다시금 주님의 은혜를 기억하실 수 있기를 바라고, 복음 전파의 산증인들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성찬은 함부로 대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주님의 십자가와 죽으심을 모독하는 일이 되기 때문입니다. 십자가 밑에서 조롱하던 유대인이나 예수님의 옷을 제비뽑던 로마의 군병들과 조금도 다름이 없는 죄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신을 살펴 깨끗함과 거룩함을 이룰 수 있기를 바라고, 서로 사랑함으로 하나되는 아름다운 신앙인들이 되어 주의 떡과 잔에 부끄럽지 않을 뿐만 아니라 성찬으로 통해 허락하시는 주님의 크신 축복을 받아 누릴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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