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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ble & Church/Shema Isreal

감사하는 자가 되라.

감사하는 자가 되라

골로새서 3:15~17

Introduction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세상은 수많은 불안과 공포로 가득합니다. 곳곳에서 기아와 고통의 소리가 들려옵니다. 자연재해로 인해서 힘겨워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게 됩니다. 뉴스보도와 신문은 먹고 살기 힘들다는 아우성들로 가득합니다. 이런 모습을 보면서 평화는 어디에 있는가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예전의 복음성가 가운데 세상은 평화 원하지만 전쟁의 소문 더 늘어간다. 이 모든 인간 고통 두려움 뿐 그 지겨움 끝없네.. 하는 가사에 공감하게 됩니다.

저는 이 땅에 평화가 가득하기를 바랍니다. 모든 불안과 고통이 사라지고, 하나님이 주시는 평화가 가득하기를 바랍니다.

미국 토크쇼의 여왕으로 불리우는 오프라 윈프리라는 흑인 여자가 있습니다. 그는 불우한 환경에서 자랐고, 수많은 고통을 겪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미국 최고의 토크 쇼의 진행자가 되었고, 그가 진행하는 방송은 전 세계 134개국에 중계되면 약 1400만명 이상의 사람들이 시청을 하고 있다고 합니다. 미국 시사주간지인 Time은 그를 20세기의 인물 중의 하나로 선정했고, 월스트리트 저널은 미국인이 존경하는 인물 3위로 뽑기도 했습니다. 그는 고난을 딛고 일어섰을 뿐만 아니라, 세계의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가운데 하나가 되었습니다. 성공적이요, 행복한 삶을 누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성공과 행복의 비결에 대하여 묻는 사람들에게 “감사의 일기를 쓰는 것”이라고 대답했다고 합니다. 그는 매일 저녁, 하루를 돌아보며 다섯 가지의 감사한 내용을 일기에 기록한다고 합니다.

1. 거뜬히 잠자리에서 일어날 수 있어서 감사합니다. 2. 유난히 눈부시고 파란 하늘을 보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3. 점심 때 맛있는 스파게티를 먹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4. 얄미운 동료에게 화내지 않았던 저의 참을성을 감사합니다. 5. 좋은 책을 읽었을 때 그 책을 써준 작가에게 감사합니다.

오프라 윈프리는 자신의 삶에 주어진 행복과 평화, 그리고 성공의 이유를 감사에서 찾았습니다. 그렇습니다. 행복과 평화를 얻기 위해서는 감사한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감사를 잃어버리면 그 순간에 아무리 좋은 것도 무의미한 것이 되고 맙니다.

루터는 “마귀의 세계엔 감사가 없다”라고 했습니다. C.S. 루이스는 “사람의 마음에서 감사를 빼면 바로 지옥으로 변한다”라고 했습니다. 어느 청교도 목사님이 주일 날 주보에 가장 무서운 죄라는 제목의 설교를 기재하게 되었습니다. 교인들은 추측하기를, 하나님 안 믿는 죄,우상 숭배하는 죄, 성령을 모독한 죄, 자살, 살인, 등으로 추측했습니다. 그런데 목사님의 설교내용은 감사치 않는 죄였습니다. 위어스비 목사님은 “감사가 없는 마음은 온갖 죄악과 불행이 자라는 옥토와 같다”라고 했습니다. 신앙의 많은 선배들이 이야기하고 있는 것처럼 감사가 사라지면 그곳이 바로 지옥입니다. 우리의 삶이 원망과 불평으로 가득하게 될 때에 수천금을 가지고 있어도, 높은 지위에 앉아 있어도, 많은 사람들 앞에 떵떵거리며 호령을 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도, 그의 삶은 지옥일 수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저는 우리 교회와 성도들의 삶에 참된 평화가 가득하기를 바랍니다. 일생토록 하나님이 주시는 천국의 행복으로 충만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감사해야 합니다. 원망하고 불평하는 모든 습관을 버리고, 작은 일에도 감사하고, 범사에 감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러므로 초가삼간에 살아도, 값진 재물이 전혀 없어도 그리스도의 평화로, 주님이 주시는 행복으로 충만하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Main Subject

1.

바울은 하나님께서 맡기신 사명을 위하여 자신의 모든 것을 기꺼이 버린 사람이었습니다. 그에게는 부귀와 권세가 있었습니다. 놀라운 학식이 있었습니다. 젊은 날에 산헤드린 공회의 회원이 되었고, 대제사장을 비롯한 당대의 실세들에게 인정을 받는 장래가 촉망(囑望)되는 젊은이였습니다. 그런데 그는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의 고상함을 인하여 그 모든 것을 배설물과 같이 여겼습니다. 포기했습니다. 그리고 기꺼이 복음을 전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가 이 모든 것을 버리고 복음 전하는 자가 되었을 때에 그에게 돌아온 것이 무엇이었습니까? 유대인의 미움과 질시였습니다. 로마인들로부터 외면당하고, 조롱받는 것이었습니다. 결국 그는 로마의 감옥에 수인의 신세가 되어 갇히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감옥에 있던 바울이 여러 교회들에게 편지를 씁니다. 그 내용은 대개가 이런 것입니다. 기뻐하라. 감사하라.하는 말씀이었습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골로새서도 바울 사도가 옥중에서 기록한 옥중서신입니다. 감옥에 갇힌 채 고통을 당하던 바울이 성도들을 향해서 뭐라고 합니까? 본문 15절 말씀을 함께 보겠습니다.

그리스도의 평강이 너희 마음을 주장하게 하라 평강을 위하여 너희가 한 몸으로 부르심을 받았나니 또한 너희는 감사하는 자가 되라 (골로새서 3:15)

바울은 골로새에 있는 성도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평강이 너희 마음에 충만해야 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평화가 충만케 되기 위해서는 감사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교훈하고 있는 것입니다. 감사하는 자가 될 때에 평화의 사람이 됩니다. 감사하게 될 때에 행복을 알고 누릴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바울이 골로새에 있는 성도들에게 감사하는 자가 되라고 하시는 말씀은 감사할만한 많은 조건이 있기 때문에 감사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어떤 형편에서도 감사하라는 것입니다. 억울한 누명으로 감옥에 갇힌 신세가 되었더라도 원망과 불평을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삶의 습관을 감사로 바꾸라는 말씀입니다. 체질을 감사하는 체질로 바꾸라는 것입니다. 성도는 그런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체질은 원망과 불평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살아가면서도 그들은 원망했습니다. 불평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구름기둥과 불기둥 아래서도 원망했습니다. 하나님이 내려주신 만나와 메추라기를 먹으면서도 원망하며 불평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있으면서도 감사할 줄을 몰랐습니다. 가나안 땅을 앞에 펼쳐두시고, 그 땅을 주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젖과 꿀이 흐르는 풍요의 땅이 그들의 눈 앞에 들어왔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감사를 알지 못했습니다. 그 땅에 들어갈 수 없다고 하면서 원망하며 불평했습니다. 하나님의 축복과 은혜 가운데 있으면서도 그 은혜를 깨닫지 못하고 원망하는 체질, 불평하는 체질의 사람들로 살았습니다. 그들에게는 결코 행복이 주어질 까닭이 없었습니다. 평화가 있을 까닭이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이 찾아왔고, 광야에서 다 죽을 수 밖에 없었다는 것입니다.

체질을 바꿔야 합니다. 감사하는 체질로 바꿔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감사는 모르고, 원망과 불평에 익숙한 사람이 되어 있습니다. 정치를 보면서 원망과 불평을 늘어놓습니다. 경제를 보면서 원망하고 불평을 쏟아놓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아직도 옛 사람의 체질을 벗어버리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골로새에 있는 성도들에게 원망하는 체질에서 감사하는 체질로 개선하라고 요청하고 있는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을 향해서 감사하는 체질로 바꾸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인터넷에서 이런 글을 보았습니다.

10대 자녀가 반항하면 그건 아이가 거리에서 방황하지 않고 집에 잘 있다는 것이고,

지불해야 할 세금이 있다면 그건 나에게 직장이 있다는 것이고,

파티하고 치워야 할 게 너무 많다면 그건 친구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는 것이고

옷이 몸에 낀다면 그것은 잘 먹고, 잘 살고 있다는 것이고,

깎아야 할 잔디, 닦아야 할 유리창, 고쳐야 할 하수구가 있다면

그것은 나에게 집이 있다는 것이고,

정부에 대하여 불평 불만의 소리가 많이 들린다면 그것은 언론의 자유가 있다는 것이고,

주차장 맨 끝 먼 곳에 겨우 자리가 하나 있다면

그건 내가 걸을 수 있는데다 차도 있다는 것이고,

난방비가 너무 많이 나왔다면 그건 내가 따뜻하게 살고 있다는 것이고,

교회 뒷자리의 아줌마의 성가소리가 영 귀에 거슬린다면 그건 내가 들을 수 있다는 것이고,

세탁하고 다림질해야 할 일이 산더미라면, 그건 나에게 입을 옷이 많다는 것이고,

온 몸이 뻐근하고 피로하다면 그건 내가 열심히 일했다는 것이고,

이른 새벽 시끄러운 자명종 소리에 내가 깼다면 그건 내가 살아있다는 것이고,

이메일이 너무 많이 쏟아진다면 그건 나를 생각하는 사람들이 그만큼 많다는 것이고,

마음 속에 나도 모르게 쌓여진 불만과 불평들...바꾸어 생각하면 또 감사한 일들이라는 것을...

어떤 사람은 없다. 안된다. 힘들다고 불평합니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은 우리의 체질이 잘못되었기 때문입니다. 감사하는 체질로 바꾸면 모든 것이 감사의 이유가 되고 제목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은 우리의 체질이 감사하는 체질이 되기를 바라십니다. 환경을 초월하여 감사할 수 있고, 모든 것에 감사하는 자가 되어 하나님이 주시는 평화와 행복을 누릴 수 있기를 바라시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의 체질은 어떤가를 살피시기를 바랍니다. 혹시 원망과 불평이 우리의 체질이요, 습관이 되어 있지 않습니까? 이런 모습으로는 결코 천국을 이룰 수가 없습니다. 이런 모습으로는 진정한 인생의 성공자가 되어질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축복을 누릴 수도 없습니다. 감사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어떤 경우에도 감사를 고백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허락하시는 그리스도의 평강이 우리의 마음을 주장하게 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2.

왜 우리가 감사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까? 본문 15절에서는 “너희가 한 몸으로 부름을 받았나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씀 드리면 우리가 왜 감사하는 사람이 되어야 하는가 하면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의 은혜로 말미암아 우리가 한 몸이 되었고,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사람이 되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전에는 하나님의 은혜에 도무지 가까이 할 수 없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성경은 우리의 옛 모습을 이렇게 증언합니다. 허물과 죄로 인하여 죽었던 너희라고 합니다. 본질상 진노의 자식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에게서 떠나 있어서 영원히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을 받을 수 밖에 없는 그런 존재라는 것입니다. 한 마디로 말씀드리면 지옥 백성이요, 마귀의 자녀였다는 말씀입니다. 이런 사람에게 무슨 행복이 있겠습니까? 무슨 기쁨이 있겠습니까? 인생 자체가 절망일 뿐입니다.

그런데 이런 우리를 위해서 하나님께서 그의 하나 밖에 없는 아들을 보내주셨습니다. 요한복음 3:16절 말씀에서는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므로 하나 밖에 없는 아들을 보내주신 것입니다. 그 아들을 십자가에 매다시기까지 참으시면서 우리의 구원을 이루시고, 그에게 우리의 죄를 대속하게 하심으로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삼아주신 것입니다. 주와 함께 영원히 왕노릇할 수 있는 특권을 허락해 주신 것입니다.

무가치하며, 사랑받을 이유가 아무것도 없는 존재입니다. 아무 공로가 없는 존재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런 우리에게 무조건적인 사랑을 베푸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런 은혜를 받은 사람은 할 것이 하나 밖에 없습니다. 감사하는 것입니다. 은혜를 받았기에 감사할 뿐입니다.

세상에서 아무것도 가지지 못했으면 어떻습니까? 천국을 소유한 사람입니다. 세상에서 슬픔을 당하고 있으면 어떻습니까? 하나님의 위로가 가득한 사람입니다. 세상에서 억울한 일을 좀 당하면 어떻습니까? 우리 하나님께서 공의로 모든 것을 판단하시고, 우리의 의로움을 인정하시고, 우리가 옳다고 판결해 주실 것입니다. 세상에서 조금 손해를 보았으면 어떻습니까? 우리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다 갚아주시고, 채워주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믿음 안에서 감사하는 것입니다. 이 은혜를 기억하면서 한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왜 감사하지 못합니까?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허락하신 은혜를 하찮게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감사를 잃어버린 것은 죄악이요, 감사를 포기한 것은 하나님을 망령되이 일컫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사람임을 기억하시기를 바랍니다. 천하보다 귀한 영생을 선물로 받은 자임을 명심하시기를 바랍니다. 천국을 소유했음을 고백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므로 세상에 작은 일들 때문에 감사를 잃어버리는 어리석은 가운데 있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세상에서 비록 외롭더라도 우리 주님께서 우리를 끔찍하게 사랑하신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그 은혜 가운데 날마다 감사하는 사람들이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3.

본문은 하나님께 감사하는 사람은 어떻게 감사해야 한다고 말씀합니까? 본문 16절 말씀을 함께 봉독하겠습니다.

그리스도의 말씀이 너희 속에 풍성히 거하여 모든 지혜로 피차 가르치며 권면하고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를 부르며 마음에 감사함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골로새서 3:16)

3.1.

바울 사도는 골로새에 있는 성도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풍성케 함으로 서로 가르치고 권면하는 자가 되어야 하고, 또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를 부르며 하나님께 감사해야 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에 참으로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 찬양할 때에 어떻게 찬양하라고 합니까? 감사하라고? 물론 그렇습니다. 그런데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마음에 감사함으로 그렇습니다. 감사는 마음으로 하는 것입니다. 진실한 마음으로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게 될 때에 참 감사가 되어집니다. 마음이 없는 감사는 아무런 능력도 없고, 하나님께 기쁨이 되지도 못하는 것입니다.

옛날 한 고을에 어떤 농부가 그의 밭에 무우를 경작했습니다. 그런데 그 무우가 얼마나 잘 자랐는지 무우 하나의 굵기가 어른 허리둘레 만했다는 것입니다. 크기도 크고 굵기도 굵은 이 무우를 보고는 농부는 기뻐서 어쩔 줄을 몰랐습니다. 무우를 수확한 농부는 이 모든 것이 고을의 원님이 선정을 베풀었기 때문이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감사한 마음을 담아서 가장 좋은 무우 하나를 골랐습니다. 그것을 가지고 원님을 찾아갔습니다. 원님, 제가 밭에 무우를 경작했는데, 이처럼 좋은 것을 얻었습니다. 모두가 원님께서 선정을 베푸셔서 이런 복이 있게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이러면서 커다란 무우를 내어놓았습니다. 원님이 보니 그 마음이 너무나 갸륵했습니다. 그리고 고마웠습니다. 그래서 원님은 이 농부에게 무엇인가 상을 주고 싶었습니다. 하인들을 불렀습니다. 창고에 가서 무엇이든지 가장 좋은 것이 있거든 그것을 가져다가 이 농부에게 상으로 주라.고 했습니다. 하인들이 창고에 가보니 얼마 전에 누군가가 선물을 했던 기름진 황소가 한 마리 있었습니다. 하인들은 그것을 가지고 왔고, 원님은 농부에게 황소를 상으로 주었습니다. 농부는 기쁜 마음으로 집으로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난 후에 마을에 소문이 퍼졌습니다. 농부가 무우 하나를 원님에게 바치고, 황소를 상으로 받았다는 것입니다. 이 소문을 들은 욕심많은 부자가 배가 아팠습니다. 그래서 생각을 합니다. 농부가 무우를 하나 바치고, 황소를 받았다면 자기도 무엇인가 원님에게 갖다 바치면 더 좋은 것을 받을 수 있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자기 집에서 키운 황소를 끌고 원님에게 갔습니다. 부자는 농부가 했던 것과 똑같이 원님께 말했습니다. 원님, 원님께서 선정을 베푸셔서 우리집에서 키운 황소가 이렇게 잘 자랐습니다. 모두가 원님의 은택입니다. 감사합니다. 그리고 황소를 드렸습니다. 원님은 그 부자의 욕심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부자의 황소를 받고는 하인들에게 시켰습니다. 여봐라. 부자가 이렇게 좋은 것으로 선물을 하니 내가 상을 주어야겠다. 지난 번에 농부가 아주 귀한 것을 내게 선물했는데, 그것을 이 부자에게 상으로 줘라. 하인들은 창고에 들어가 농부가 가꾼 큰 무우를 부자에게 가져다 주었고, 부자는 땅을 치며 탄식했다는 것입니다.

이 이야기는 무엇을 교훈합니까? 감사에는 마음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마음이 없는 감사는 참된 감사가 되어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다음주일에 우리교회는 추수감사주일 겸, All Coming Holy Festival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이 때에 우리는 마음을 담은 감사를 드려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은 중심을 보십니다. 하나님을 향한 사랑과 감사의 마음이 없는 예물은 하나님의 마음에 감동을 줄 수 없습니다. 기쁨을 줄 수 없습니다. 은 금을 가지고 드린다고 해도, 천천의 수양이나 만만의 강수같은 기름을 가지고 나아간다고 해도, 세상의 어떤 부귀와 영화를 가지고 하나님께 나아온다고 해도, 마음이 없는 예물이라면 하나님은 거절하십니다. 하나님은 기뻐하지 않으십니다. 감사는 마음으로 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마음에서 우러나는 감사를 드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마지 못해 하는 감사, 억지로 하는 감사, 남의 눈을 의식한 감사, 또는 욕심에 의한 감사.. 이런 감사는 하나님의 마음을 더욱 무겁게 할 뿐입니다. 이런 감사로는 결코 우리의 삶에 행복이 찾아올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의 평화가 주어질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온 마음과 뜻을 다하여 하나님께 감사함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하나님을 감동시킬 수 있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3.2.

본문은 하나님께 감사하는 자는 말과 헌신으로 감사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본문 17절을 보겠습니다.

또 무엇을 하든지 말에나 일에나 다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고 그를 힘입어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라 (골로새서 3:17)

바울은 골로새에 있는 성도들에게 말에도 감사, 일에도 감사하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성도들의 입에는 원망이나 불평의 말이 있어서는 안됩니다. 감사의 말이 가득해야 합니다. 그릇은 그것이 무엇을 담느냐에 따라서 그릇의 가치가 달라집니다. 김치를 담은 그릇은 김치 그릇입니다. 밥을 담은 그릇은 밥그릇입니다. 국을 담은 그릇은 국그릇입니다. 그것이 어떤 재질로 되어있느냐가 중요하지 않습니다. 금으로 만든 그릇이라도 개밥을 담으면 개밥그릇이 됩니다. 위대한 도예가가 만든 것이라도 배설물을 담는 그릇이라고 한다면 그것은 요강일 뿐입니다. 재질이 무엇이며, 누가 만들었느냐가 그 그릇의 이름을 결정짓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의 인격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자녀의 인격을 가진 사람이라면 그 입에 감사를 담아야 합니다. 원망과 불평이 담겨져 있다면 그는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인격을 갖지 못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우리에게 가르칩니다. 에베소서 5:3~4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3 음행과 온갖 더러운 것과 탐욕은 너희 중에서 그 이름이라도 부르지 말라 이는 성도의 마땅한 바니라 4 누추함과 어리석은 말이나 희롱의 말이 마땅치 아니하니 돌이켜 감사하는 말을 하라 (에베소서 5:3~4)

성도가 마땅히 행해야 하는 것을 설명하면서 어리석은 말이나 희롱의 말이 아니라 감사하는 말을 해야 한다고 가르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성도들의 입에서는 항상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하는 말이 나와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이런 감사의 사람이 되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곁에 계신 분에게 한번 해 보겠습니다. 제 곁에 앉아 주셔서 감사합니다. 함께 예배하게 되어서 감사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의 입에서는 항상 감사의 말이 나와야 합니다. 감사의 찬송이 나와야 합니다. 최권능 목사님은 그의 마음속에 예수로 충만하기 때문에 누군가가 건드리기만 해도 예수 천당 불신 지옥이 나왔다고 합니다. 우리 믿음의 사람들은 감사로 충만해야 합니다. 그래서 누가 건드리기만 해도 감사합니다.하는 고백이 저절로 튀어나올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입은 감사하는 말을 해야 합니다. 그런데 감사는 말로만합니까? 아닙니다. 감사는 헌신과 동행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본문은 말에나 일에나 주 예수의 이름으로 감사하라고 했습니다. 일을 할 때에 감사함으로 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나사로의 집을 방문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집에 방문했으니 얼마나 기쁜 일입니까? 마리아는 자기의 집을 찾아오신 예수님 앞에서 말씀을 경청하여 듣고 있었습니다. 반면에 집에 귀중한 손님이 오셨으니 마르다는 부엌에서 음식을 준비해야 했습니다. 집에 손님이 찾아오게 되면 보통 일이 아닙니다. 요즘 같이 부엌시설이 좋아도 손님이 찾아오면 힘든 데, 당시에는 더욱 힘들었습니다. 힘들게 부엌 일을 하던 마르다가 예수님 앞에 앉아서 말씀만 듣고 있는 동생 마리아를 보았습니다. 약이 올랐습니다. 당연합니다. 그래서 예수님 앞에서 원망하는 말을 쏟아놓았습니다. 동생을 내보내서 자기의 힘든 일을 돕도록 하라는 것이었습니다. 마르다의 주장은 전혀 틀리지 않았습니다. 합리적입니다. 어떻게 그런 싹수없는 동생이 있을 수 있습니까? 언니가 힘들게 음식을 준비하면 거들 생각을 해야지, 언니의 힘든 일은 나몰라라 하고 자기는 예수님 곁에서 노닥거리고만 있어서야 되겠습니까? 힘든 일은 같이 해야 한다는 마르다는 주장은 정당한 것이었고, 또 옳은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오히려 마르다를 꾸짖으셨습니다. 이 말씀은 정말로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더구나 예수님의 행동은 납득이 되질 않습니다. 경우에 밝으신 예수님께서 어떻게 그러실 수 있었는지가 의문입니다. 아마도 예수님의 말씀 때문에 마르다의 마음에 상처를 입었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여기에서 예수님의 꾸짖음을 잘 보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마르다의 봉사와 섬김, 일하는 것 자체를 잘못이라고 나무라신 것은 아닙니다. 마르다의 봉사와 섬김은 참으로 귀한 것입니다. 칭찬을 들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마르다에게 없는 것이 있었습니다. 감사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자기들의 집을 찾아주신 것에 대한 감사, 예수님을 대접할 수 있게 된 은혜와 축복을 감사해야 했습니다. 그런데 이런 감사 없이 일이 힘들다고 원망하고 불평했습니다. 주님은 마르다의 이런 잘못을 지적한 것입니다. 감사 없이 행하는 것은 그것이 아무리 힘든 수고와 희생이 있는 것이라도 무의미하다는 것입니다. 책망 받을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교회를 섬기면서 성도들을 섬기면서 수많은 어려움과 힘든 일들을 경험하게 됩니다. 그러나 이런 모든 가운데도 감사를 잃어서는 안됩니다. 우리에게 허락된 사역에 대하여 비록 무거운 짐을 지게 되었더라도 감사함으로 그 일을 감당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의 말에 감사가 충만해야 합니다. 우리의 봉사와 섬김에, 또 사명을 감당하는 중에 감사함으로 그 일을 해야 합니다. 감사가 떠나면 우리의 인격은 예수 닮은 인격이 되지 못합니다. 감사 없는 헌신과 봉사는 무의미한 것이며, 헌신하고도, 봉사하고도 주님의 책망을 들을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말과 행함에 항상 감사로 충만케 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Conclusion & Blessings

이제 말씀을 맺으려고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감사하는 사람이 되기를 바라십니다. 세상 사는 것이 아무리 힘들고 어렵다라도 우리 주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고, 구원하시며, 천국을 주셨다는 사실을 인하여 감사해야 합니다. 세상이 우리를 미워하며, 조롱해도 우리 주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고, 축복하시며, 심히 존귀케 하심을 인하여 감사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감사하게 되면 하나님은 우리의 삶에 평강을 허락하실 것입니다. 세상이 알지 못하는 기쁨을 넘치게 주실 것입니다.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수많은 사람들이 감사를 잃고 살아갑니다. 원망과 불평이 가득한 채로 살아갑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지 못하고 살아갑니다. 괜스레 다른 사람들과 비교합니다. 어렵게 된 이유가 다른 사람에게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항상 원망이요, 불평입니다. 주님은 이처럼 원망 불평의 옛 사람의 모습으로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이제 체질을 개선하라고 합니다. 예수로 말미암아 새 사람을 입었으니 감사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합니다. 감사하는 사람으로 체질을 바꾸고 습관을 바꾸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께서 기대하시는 감사는 어떤 것입니까?

마음에서 우러난 감사입니다. 말과 행실에 감사가 충만케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교회와 성도들은 이런 감사를 드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다음 주일은 추수감사주일입니다. 한 주간 동안 이번 한해를 허락하시고, 지금까지 인도하신 하나님의 손길을 되돌아 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에 허락하셨던 은혜를 손꼽아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다음 주일에는 그 감사한 마음을 모아 하나님께 예배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추수감사절은 추수감사헌금을 모금하기 위한 날이 아닙니다. 헌금봉투 안에 돈을 채우기보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감사를 가득채울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러므로 명실공히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감사절이 되고, 우리의 감사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허락하시는 그리스도의 평강이 온 교회와 성도들의 삶에 충만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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