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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ble & Church/Shema Isre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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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하십니까?

요한계시록 3:20

Introduction

예전에 교인들과 함께 등산을 간 적이 있었습니다. 관광차를 타고 목적지를 향해가고 있었습니다. 대개의 경우 여행을 떠나는 관광차는 그것이 관광차인지, 노래방인지 구분이 안됩니다. 교인들이 타고 가는 관광차라고 예외일 까닭은 없었습니다. 교인들 가운데 한 분이 일어나셔서 노래하면서 가자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는 그 무렵에 새로 부임하신 목사님께 노래 한 곡 부르라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목사님, 찬송가도, 복음성가도 안됩니다. 그러는 것이었습니다. 그 목사님은 마이크를 잡고는 빙그레 웃으시더니 솜사탕 같은 목소리로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이른 아침에 잠에서 깨어

너를 바라 볼 수 있다면

물안개 피는 강가에 서서

작은 미소로 너를 부르리

하루를 살아도 행복할 수 있다면

나는 그 길을 택하고싶다

세상이 우리를 힘들게 하여도

우리들은 변하지 않아

너를 사랑하기에 저 하늘 끝에

마지막 남은 진실 하나로

오래 두어도 진정 변하지 않는

사랑으로 남게 해주오

목사님의 노래가 끝나자 난리가 났습니다. 오빠, 앵콜.. 목사님의 앵콜 공연이 이어졌고, 목사님의 인기는 폭발적으로 상승했습니다.

저는 당시에 그 노래를 처음으로 들었고, 너무 감미로왔기 때문에 가슴 깊이 여운이 남았습니다. 그리고 조용히 가삿말을 생각해 봤습니다. 하루를 살아도 행복할 수 있다면 나는 그 길을 택하고 싶다.. 자칫 위험할 수 있는 생각이긴 하지만, 행복하고 싶다는 사람들의 간절한 소망이 담겨져 있는 듯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행복하고 싶어합니다. 높고 낮음을 불문하고, 남자와 여자를 불문하고, 모두가 행복을 원합니다. 행복을 얻기 위해서 어떤 수고도 마다하지 않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저는 여러분이 행복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단 하루만의 행복을 누리는 사람이 아니라 영원한 행복을 누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매일의 삶에서 늘 새로운 행복을 발견할 수 있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Main Subject

1.

사람들은 모두가 행복을 원합니다. 그것도 간절히 원합니다. 그러나 그 뒤안길에는 행복할 수 없는 인간실존의 고뇌가 있고, 슬픔이 있습니다. 행복하고 싶지만 행복할 수 없는 비애가 있습니다. 단 하루의 행복도 기대할 수 없는 아픔이 있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그토록 행복을 원하고, 단 하루만의 행복이라도 얻기를 바라는데, 왜 행복은 그토록 멀게만 느껴집니까? 왜 우리의 삶에는 행복 가득한 웃음이 없고, 후회와 눈물과 탄식뿐입니까? 쓰라린 아픔 뿐입니까? 그것은 아마도 우리와 행복 사이에 넘지 못할 담이 가로막혀있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오스카 와일드의 욕심쟁이 거인 이라는 동화에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예쁘고 아름다운 정원을 가진 거인이 있었습니다. 거인은 사람을 잡아먹고 사는 친구의 집으로 여행을 떠났습니다. 7년이라는 긴 세월동안 그곳에 있다가 자기의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정원이 참으로 아름다웠습니다. 예쁜 꽃들이 있고, 아름다운 새소리가 있었습니다. 나무들은 멋지게 잘 자랐습니다. 그런데 그 정원에 아이들이 뛰어 놀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거인은 생각했습니다. 자기의 이 아름다운 정원에 아이들이 뛰놀게 할 수는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커다란 몸집으로 아이들 앞에 뛰어갔습니다. 그러면서 소리를 쳤습니다. 이 놈들, 이 정원은 내 것이다. 여기서 썩 물러가라. 아이들은 혼비백산하여 다 도망갔습니다. 거인은 생각했습니다. 가만히 두면 아이들이 계속 여기에 와서 놀 것이고, 귀찮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아무도 정원에 들어오지 못하도록 높은 담을 쌓았습니다. 담장 벽에는 절대로 출입금지라고 써두었습니다.

이제 더 이상 아이들은 오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아이들이 오지 않는 정원은 이내 겨울이 되고 말았습니다. 나무잎은 다 떨어졌습니다. 꽃들도 사라졌습니다. 풀 한 포기 나지 않았습니다. 눈보라가 몰아치고, 정원 이곳 저곳에는 온통 얼음뿐이었습니다. 모든 것이 꽁꽁 얼어붙었습니다. 거인은 봄이 오기를 기다렸습니다. 그러나 담장밖에는 봄이 오고, 꽃도 피고, 여름이 왔지만 거인의 정원만은 여전히 겨울이었습니다. 거인은 이불을 뒤집어 쓰고 따뜻한 봄이 오고 정원이 다시 아름답게 될 날을 기대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거인의 정원에는 그럴 기미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어느날 집안에 있던 거인에게 아름다운 새소리가 들리는 것입니다. 오랫만에 들어보는 소리였습니다. 기쁜 나머지 문을 열고 밖으로 뛰어 나갔습니다. 그동안 꽁꽁 얼어있던 정원 한쪽에 봄이 왔습니다. 눈이 녹았습니다. 그리고 나무 위에 보니 어린아이들이 올라가 있는 것이었습니다. 아이들이 담장에 구멍이 난 곳을 통해서 거인의 정원에 들어온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정원의 한쪽은 여전히 눈이 녹지 않았습니다. 꼬마 아이 하나가 나무에 올라가지 못하고, 울고 있었습니다. 나무는 가지를 늘어뜨려 아이에게 잡고 올라오라고 하지만, 그 아이는 나무에 오르지 못했습니다. 거인은 그 아이를 향해 걸어갔습니다. 다른 아이들은 거인이 나타난 것을 보고 걸음아 날 살려라 하고 도망갔습니다. 그러나 그 꼬마는 울고 있었기 때문에 거인을 보지 못했습니다. 거인은 조용히 아이를 안아다가 나무 위에 올려 주었습니다. 그랬더니 그 자리에 눈이 녹고 봄이 왔습니다. 나무에 잎이 나고, 꽃이 피는 것입니다. 꼬마 아이가 양팔을 벌려 거인의 볼에 입을 맞추어 주었습니다. 이 광경을 숨어서 보고 있던 다른 아이들도 거인이 나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되돌아 왔습니다.

'얘들아, 이제부터 이 뜰은 너희들 것이야!' 거인은 말하고 커다란 도끼를 집어 들고 담벼락을 허물어 버렸습니다. 점심 때 사람들이 장터로 갈 때면 거인이 어린이들과 정원에서 노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그것은 그들이 이제까지 본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정원이었습니다.

이야기는 우리에게 무엇을 말해 줍니까? 사람이 자기의 욕심만을 채우려고 높은 담을 쌓게 되면 결코 행복할 수 없지만 담을 헐고, 함께 나누게 될 때에 행복이 찾아온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행복을 간절히 원함에도 불구하고 행복하지 못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습니다. 높은 담장을 쌓고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욕심으로 담을 쌓고 살아갑니다. 죄악으로 담을 쌓고 살아갑니다. 교만으로 담을 쌓고 살아갑니다. 담을 허물어야 행복할텐데 그렇지 못합니다. 날이 가면 갈수록 인생의 담장은 더욱 높아만 갑니다. 그러므로 행복을 잃고, 거인의 정원과 같이 늘 추운 겨울입니다. 모든 것이 꽁꽁 얼어붙어 있을 뿐입니다. 행복의 기운이 조금도 꿈틀거리지 않는 것입니다.

성경은 사람이 행복을 잃고 절망가운데 있는 이유를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께 대하여 높은 담을 쌓고,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려 하지 않으며, 하나님과 멀어졌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행복의 근원이 되시는 하나님과 담을 높이 쌓아두었으니 행복이 찾아올 까닭이 만무합니다. 날마다 죄를 범함으로 탐욕과 정욕에 눈이 가리워서 하나님을 멀리합니다.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예수를 믿어야 복을 받고, 구원을 얻는다고 수많은 전도자를 통해 이야기해 주어도 교만의 담을 높이 쌓고는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열심히 살고, 착하게 살아야 구원도 얻고 행복한 것이지, 예수를 믿는다고 행복하냐? 이렇게 말합니다. 절대로 마음의 문을 열지 않고, 담장을 낮추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사람들에게 완악하고, 고집불통이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행복을 누릴 수 없다고 말씀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혹시 세상에 대하여, 하나님께 대하여 높은 담장을 갖고 있지는 않습니까? 만에 하나라도 아직까지 탐심과 죄악으로 하나님께 담을 쌓고, 교만함으로 하나님을 거부하고 있다면 이제는 돌이켜야 합니다. 우리의 담장을 허물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을 가까이 하지 않고는 결코 하나님이 주시는 참된 행복을 누릴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저는 이 자리에 참석한 여러분 모두가 교만과 탐욕의 담장을 헐고, 행복을 주시는 하나님을 가까이 함으로 세상이 알 수 없는 참된 행복을 누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2.

2.1.

탐욕과 고집으로, 하나님은 필요 없다는 교만으로 철옹성의 담을 쌓고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결코 행복이 찾아올 수 없습니다. 오히려 이들에게는 하나님의 진노하심이 있을 뿐입니다. 멸망의 심판이 있을 뿐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교만의 담장을 쌓고, 하나님의 거역하고, 외면하던 인류에게 여전히 사랑을 베푸시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들에게 행복을 주시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래서 하신 것이 무엇입니까? 구약성경에 보니 그들에게 율법을 주셨습니다. 내가 사랑하므로 법을 주었노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인류를 사랑하셨기 때문에, 당장에 멸망을 받아야 하지만 선지자들을 통해서 율법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잃어버린 행복을 찾고,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게 하고자 하셨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하나님의 율법조차도 기억하지 않고, 더욱 율법을 거절하고 더욱 하나님을 멀리했습니다. 그렇게 되니 율법이 이 사람들을 공격하게 되었습니다. 행복을 위해서 주신 율법이 이제는 심판하는 율법이 되었습니다.

법이라는 것이 어떻습니까? 법은 선량한 국민들을 보호하고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서 존재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법을 잘 지키는 사람에게 법은 그보다 편한 것이 없습니다. 법으로 말미암아 좋은 혜택을 볼 수가 있고, 안전한 삶을 보장 받을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법을 어기면 상황은 달라집니다. 그 때부터는 법이 심판합니다. 사람을 죽이지 말라고 했는데 죽이면 살인죄로 처벌을 합니다. 도둑질 하지 말라고 했는데, 남의 것을 훔치면 절도죄로 처벌을 합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법을 어기고, 하나님을 떠나 철옹성의 장벽을 쌓고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율법의 심판이 있을 뿐입니다.

율법이 그들의 철옹성을 공격하여 깨뜨리고 그들을 붙잡아 하나님의 저주의 심판을 받게 만드는 것입니다. 탐욕과 고집, 그리고 하나님을 떠난 죄로 하나님을 거역하고, 담장을 쌓고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멸망의 심판이 있을 뿐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세상에 죄없는 사람이 어디에 있습니까? 이기심을 완전히 버리고 사는 사람이 어디에 있습니까? 더군다나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고, 날마다 하나님과 친근히 하는 사람이 어디에 있습니까?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일을 하며, 하나님을 피하며 사는 것이 대부분의 인생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이런 사람들을 향해서 본질상 진노의 자식이라고 했습니다. 인류는 하나님은 거역하고, 높은 담장을 쌓으므로 본질상 진노의 자식이 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멸망의 심판을 받을 수 밖에 없는 존재라는 것입니다.

2.2.

그러나 하나님은 이런 사람들을 사랑하셨습니다. 불쌍히 여기셨습니다. 이 사람들이 멸망의 심판을 받고 망하는 것을 원치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은 율법을 주실 때에도 그들에게 행복을 주시고자 했던 것처럼, 율법의 심판으로 망하게 된 사람들에게도 행복을 주고 싶으셨습니다. 그래서 행하신 것이 바로 그의 아들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셨습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오셔서 율법의 저주를 담당하셨습니다. 인류가 받아야 하는 하나님의 심판을 친히 몸으로 담당하셨습니다. 인류가 받아야 하는 저주와 멸시의 가시관을 친히 쓰시고,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그리고 인류의 모든 죄를 담당하시고 죽으셨습니다. 이 예수님께서 지금 우리의 마음 문에 오셔서 우리를 위해 못 박히신 피뭍은 손으로 우리의 마음 문을 두드리시며, 행복을 주시고자 하시는 것입니다.

몇 주 전에 저희 어머니 댁을 방문했습니다. 우연히 어머니의 손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깜짝 놀랐습니다. 어머니의 손이 예전의 손이 아니었습니다. 완전히 할머니의 손이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처럼 고왔던 어머니 손이 쪼글쪼글해졌습니다. 그 손을 보자 갑자기 눈물이 핑 돌았습니다. 세월이 무상하다는 생각과 그 곱던 손이 자식들 염려와 걱정으로 이렇게 쪼그라들었구나 생각하니 가슴이 저미어 오는 것입니다. 집에 돌아오는 길에 집사람에게 말했습니다. 오늘 어머니 손을 봤는데, 완전히 할머니 손이 다 되었데?... 집사람은 이제야 보았느냐?몇 해 전부터 그랬다고 합니다. 그 말을 들으니 무심한 아들의 불효가 더욱 가슴을 아프게 했습니다. 그 손이 어떤 손입니까? 사랑하는 가족들을 위해서 온갖 수고를 아끼지 않은 손입니다. 사랑하는 자녀들의 앞날을 위해서 밤낮으로 기도하던 손입니다. 그런데 그 손이 이제는 늙고 힘없고, 초라한 모습이 되고 말았습니다.

우리네 부모님들, 어떤 분이십니까? 아들 딸을 위해서 라면 목숨도 아끼지 않으시는 분들입니다. 유행가 가사에 이 세상에 부모마음 다 같은 마음, 아들 딸이 잘 되라고 행복하라고... 그렇습니다. 모든 부모는 그 자녀들이 행복하기를 학수고대하고 있습니다. 자녀들의 행복을 위해 고운 손이 거북이 등짝같이 되도록 희생하시는 분들이십니다. 그러므로 자녀 되신 분들은 부모님께 최선을 다해 효도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마음의 문을 두드리시는 예수님의 피 묻는 손은 부모님의 쪼그라진 손과 비교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 사랑은 부모의 사랑을 뛰어넘는 사랑입니다. 그 희생은 어떤 부모의 희생보다도 더 고귀한 희생입니다. 주님께서 그 사랑으로 지금 우리의 마음을 두드리고 있는 것입니다.

성경은 주님의 사랑을 이렇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네 부모는 너를 버릴지라도 나는 결코 너를 버리지 아니하리라.” 이것이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이처럼 사랑하시며, 우리의 행복을 어느 누구보다도 간절히 소망하십니다.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요한복음 3:16절 말씀에 보니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로마서 8:38~39절에서는 이렇게 말씀합니다.

38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39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아무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로마서 8:38~39)

로마서 5:8절에서는 이렇게 말씀합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로마서 5:8)

인생들이 죄를 지음으로, 교만하여 하나님을 거절함으로 점점 더 높은 담을 쌓아가고 있을 때에도 하나님은 그런 인생을 사랑하셨습니다. 불쌍히 여기셨습니다. 그들에게 행복을 주고 싶어하셨습니다. 그들이 담장 안의 고통 속에서 벗어나 자유와 기쁨과 아름다움을 누릴 수 있게 하고 싶으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셨습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아들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얼마나 우리 인생들을 사랑하시는지 보여주셨습니다. 친히 아들로 하여금 모든 인생의 죄와 허물을 지고 십자가를 지게 하셨습니다. 눈물 어린 사랑을 베풀게 하셨습니다. 사망의 멍에를 벗고, 자유와 행복을 누리게 하셨습니다. 죄 때문에 우리가 받아야 할 형벌과 저주를 친히 담당하시고, 참된 자유를 얻을 수 있게 해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하나님을 향해 담장을 높이 쌓았던 사람들을 용서하신 것입니다.

본문은 우리를 이처럼 사랑하시고, 우리를 위해서 온갖 고난을 담당하신 예수님께서 지금 우리에게 행복을 주시기 위해서 문밖에 서서 그 피 묻은 손으로 우리의 마음 문을 두드리고 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본문 말씀을 우리 다 함께 읽어보겠습니다.

볼지어다 내가 문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 (요한계시록 3:20)

우리를 사랑하시고, 우리를 위해서 친히 고난을 담당하신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참된 행복을 주시기 위해서 그 피 묻은 손으로 지금 우리의 마음 문을 두드리고 계십니다. 주님을 문밖에 너무 오래 세워두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죄악과 교만으로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담을 쌓고, 고집으로 우리의 마음의 문을 걸어 잠그지 마시고 이제 마음 문을 활짝 열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렇게 되면 주님께서는 우리의 삶에 찾아오셔서 잃어버린 행복을 다시금 회복하게 하실 것입니다. 우리의 문제와 걱정을 씻은 듯이 사라지게 하실 것입니다. 세상이 감당할 수 없는 놀라운 기쁨과 평안으로 충만하게 하실 것입니다.

Conclusion & Blessings

이제 말씀을 맺으려고 합니다.

사람은 누구나 행복하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죄와 교만으로 높은 담을 쌓고, 하나님과 멀리함으로 인하여 참된 행복을 기대할 수 없습니다. 단 하루만의 행복이라고 꿈꾸어 보지만 우리 마음에 높은 담을 쌓고서는 결코 그 행복을 맛볼 수 없습니다.

교만과 탐심으로 높은 담을 쌓고, 행복을 알지 못하는 우리를 위해서 하나님은 그의 아들을 보내셨습니다. 온갖 고난과 고통을 다 감당하시고, 우리를 위해 참된 행복을 주실 수 있는 분이 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지금 그 예수께서 우리의 마음문을 두드리시면서 문을 열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의 축복이 없어도 잘 살 수 있다는 교만의 담을 헐고, 나만 잘 되면 된다는 욕심의 담장을 낮추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마음 문을 열고, 예수님을 영접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참된 행복을 누리시기를 원하십니까? 그렇다면 마음을 열고, 예수를 믿으시기 바랍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늘의 평강을 얻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내가 주는 평강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않도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영접하게 되면 하나님은 놀라운 평강을 주실 것입니다. 세상이 알지 못하는 기쁨을 주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실 것입니다. 이런 축복이 저와 여러분의 삶에 늘 함께 하시기를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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