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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ble & Church/Shema Isreal

이런 용사가 필요합니다

이런 용사가 필요합니다

사무엘하 23:13~17

Introduction

하나님은 지난 한 해 동안 우리 교회와 성도들을 향해서 주의 교회를 부흥케 하라는 명령을 주셨습니다. 그러나 이 명령은 비단 2007년 한 해 동안에만 수행해야 하는 명령이 아닙니다. 주의 교회는 오고 오는 시대를 통하여 끊임없이 부흥해야 합니다. 성장해야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소망이기 때문입니다. 수많은 믿음의 선배들은 이 명령을 수행하기 위해서 생명을 던졌습니다. 십자가를 지는 아픔을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고귀한 피를 뿌리기도 했습니다.

오늘 우리는 지난 한해를 되돌아보면서 부흥을 위해 우리는 어떤 수고와 희생을 드렸으며, 어떤 충성을 보였는지를 반성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과 삶이 주의 교회를 부흥케 하는 것이었다면 비록 그 열매가 지금 당장 우리 앞에 주어지지 않았다고 할지라도 초조할 이유는 없습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부흥의 열매가 우리 앞에 주어진 것처럼 보인다고 해도, 아무런 헌신도 희생도 없었다면 우리는 스스로 주님 앞에 부끄러울 뿐일 것입니다.

하박국 선지자가 간구했던 것처럼 우리 교회도 수년 내에 부흥케 되어야 할 것입니다. 또 그것이 우리의 기도와 헌신의 내용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저는 찬송가 246장을 참 좋아합니다. 거기의 가사를 보면 “내 주의 나라와 주 계신 성전과 피흘려 사신 교회를 늘 사랑합니다. 내 주의 교회는 천성과 같아서 눈동자 같이 아끼사 늘 보호하시네, 이 교회 위하여 눈물과 기도로 내 생명 다하기까지 늘 봉사합니다.” 이 찬송은 1~5절까지 너무나 아름답습니다. 그리고 교회를 향한 이런 사랑과 헌신의 사람들이 교회 안에 가득하게 되기를 사모합니다. 우리 교회의 모든 성도들, 직분자들은 이처럼 교회를 사랑하고, 교회의 영광과 부흥을 위해서 헌신할 수 있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하나님은 그의 교회가 영광스럽게 되기를 원하십니다. 그의 교회가 승리하는 교회가 되기를 원하십니다. 부흥하며, 수많은 사람들의 생명을 구원하는 진리의 등대가 되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나 교회의 영광이나 승리, 부흥은 저절로 주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그것이 저절로 주어지게 하지 않으셨습니다. 이를 위해서 먼저 하나님의 아들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셨습니다. 그로 하여금 십자가를 지고 죽게 하셨습니다. 수많은 신앙의 위인들로 하여금 피와 눈물을 흘리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오늘 교회를 섬기고 있는 저와 여러분의 충성을 요청하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주의 교회의 부흥과 영광을 위해서 생명을 드리는 충성의 사람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충성으로 교회가 삼십배, 육십배, 백배의 부흥을 이루어내고, 또한 수많은 사람들이 천국의 기쁨과 행복을 갑절로 경험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삶을 향해서는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음으로 내가 많은 것으로 네게 더할 것이요, 너는 내 잔치에 참여하게 될 것이라고 칭찬하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저와 여러분의 삶에 충만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Main Subject

1.

다윗 왕은 이스라엘 백성의 영광을 이룬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수많은 고난 가운데서도 하나님을 의지했습니다. 하나님을 통하여 그의 문제를 극복했던 사람입니다. 힘들고 어려울 때에 시편으로 찬송을 부르면서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고백하는 위대한 믿음의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은 그를 통하여 이스라엘 민족을 구원하시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를 통하여 하나님의 백성에게 영광의 시대를 주시고자 하셨습니다. 그러나 그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민족의 중흥을 위해서 나아가고자 했을 때에, 하나님은 그에게 꼭 필요한 용사들을 붙여주셨습니다. 다윗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가져다 준 승리 뒤에는 멋진 영웅들이 있었습니다. 충성된 일꾼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주의 교회를 부흥케 하실 때에 반드시 충성된 일군을 통하여 그 일을 이루어가십니다. 교회는 성도들의 충성의 수준만큼 부흥합니다. 이 사실을 꼭 기억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죽기를 다하여 충성하는 성도들이 있는 교회는 그 만큼 놀라운 부흥을 이루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적당히 충성하고, 적당히 게으름을 피우는 교회에는 그럭저럭 부흥이 있거나 없거나 한 그런 모습일 뿐입니다. 분명한 것은 충성하는 만큼 부흥한다는 것입니다.

원래 부흥은 사람이 이루는 것이 아닙니다. 어떤 목사님이 교회에 처음으로 부임하시면서 교인들 앞에 이런 약속을 하셨답니다. 3년 이내에 성도의 수를 배로 만들겠습니다. 약 200명 모이는 교회였는데 3년 안에 400명을 만들겠다는 것입니다. 저는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서 얼마나 당황되었는지 모릅니다. 저는 그 분에게 이런 질문을 드리고 싶습니다. 당신이 정말로 부흥을 이룰 수 있습니까? 당신의 능력으로 하나님의 교회를 성장케 할 수 있습니까? 그것은 결코 사람이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작은 구멍가게를 대기업으로 만드는 것은 사람이 할 수 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교회를 부흥케 하는 일은 결코 사람의 능력으로 할 수 없는 일입니다. 그것은 오직 하나님만이 하시는 일입니다.

그 목사님의 약속대로 3년이 지나 교인이 400명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부흥이 아닙니다. 목사님의 마케팅 전략이 성공한 것일 뿐입니다. 왭니까? 하나님께서 이루신 것만이 진정한 부흥이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외관상 부흥 비슷한 것을 이룰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진정한 부흥은 오직 하나님만이 이루실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부흥인 것처럼 보이는 인본적인 거대화에 속아넘어가서는 안됩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이루신 부흥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부흥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몫입니다. 사람이 이룰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목사도, 성도들도 부흥을 위해서 충성할 따름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충성하는 사람을 통해서 부흥을 이루신다는 것입니다. 선포된 말씀을 듣고 아멘으로 받아들이며, 그 말씀을 따라 생명을 바쳐 충성하는 사람이 되면 그런 교회에 하나님은 부흥을 주십니다. 그러나 아무리 선포해도 그 말씀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또 그 말씀대로 충성하지 않으면 그 교회에는 부흥이 결코 찾아올 수는 없습니다. 이것이 성경적 약속입니다.

다윗을 통하여 하나님은 놀라운 부흥을 이루셨습니다. 그런데 여기에 중요한 것은 충성하는 일꾼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삼십 두목이 있었습니다. 그 가운데 세 사람은 아주 특별한 충성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었습니다. 이것이 다윗으로 하여금 민족의 부흥을 이룰 수 있게 해 주었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교회가 부흥하기를 소망하십니까? 우리 교회가 하나님의 축복으로 가득하게 되시기를 바라십니까? 우리 교회를 통하여 수많은 영혼이 구원을 얻기를 기대하십니까? 그렇다면 충성하시기를 바랍니다. 생명을 드리며, 힘과 지혜를 드리며 모든 것을 드려서 충성할 수 있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주의 교회가 거룩한 비전을 이루고, 현재를 넘어 미래를 선도하는 교회로, 또 아현동을 넘어 서울과 대한민국 세계를 향해서 뻗어갈 수 있는 능력 있는 교회가 되기를 소망하십니까? 그렇다면 죽기까지 충성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렇게 되면 하나님은 분명히 부흥과 승리와 축복을 우리 교회와 성도들의 삶에 허락해 주실 것입니다.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2.

다윗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승리와 축복을 가져오게 된 이유는 충성된 용사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여기 세 사람의 용사들을 보면서 주의 교회의 부흥을 위해서 우리의 충성이 어떠해야 하는가를 확인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다윗의 용사들은 어떻게 충성했습니까? 본문 15절 말씀을 함께 보겠습니다.

다윗이 사모하여 가로되 베들레헴 성문 곁 우물 물을 누가 나로 마시게 할꼬 하매 (사무엘하 23:15)

2.1.

때는 이스라엘과 블레셋이 격돌하고 있던 때였습니다. 다윗과 그의 군대는 산성에 있었습니다. 블레셋의 군대는 베들레헴에 있었습니다. 다윗은 베들레헴 사람인지라 그의 고향 땅이 블레셋 군대에게 짓밟히고 있는 것을 감당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베들레헴에 있는 아름다운 우물물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다른 사람에게는 어떠했을지 모르지만 다윗에게는 추억이 있는 물입니다. 그의 마음까지 시원하게 해 줄 수 있는 그런 우물물입니다. 다윗은 그 물맛을 그리워 하며 혼잣소리로 말합니다. 누가 베들레헴 성문 곁에 있는 우물물을 나로 마시게 할 것인가? 이것은 삼십명의 용사들에게 명령을 내린 것도 아니었습니다. 블레셋과 대치중에 블레셋 진영에 있는 한 우물물에 대한 추억을 그리워하며 혼잣말로 한 것입니다. 그런데 다윗의 이런 혼잣말을 이 세 사람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그 물을 얻어다가 다윗에게 가져다 주고자 했던 것입니다.

세 용사의 충성은 바로 이런 것입니다. 다윗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있는 것입니다. 다윗의 마음이 어디에 있는가에 그들의 귀를 열고, 그들의 마음을 가져가는 것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교회를 섬기는 자의 충성은 바로 하나님의 마음이 어디에 있는가를 보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지금 혼잣말로 무엇을 중얼거리고 있을 것인가를 생각해야 합니다. 삶의 주파수를 하나님께 온전히 맞추고 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충성입니다. 하나님의 세미한 소리에도 귀를 기울이고, 그 소리를 듣기 위해서 마음을 쏟는 것이 충성입니다.

하나님이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아무런 관심도 기울이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하시는 소리에도 무반응이라고 한다면 그는 결코 좋은 일꾼이 될 수 없습니다. 충성스런 위인이 될 수 없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의 신앙을 돌아보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데 혹시 딴짓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리기 위해서 최선을 다하지 못하고, 엉뚱한 생각만 하고 있지 않습니까? 세상에 마음 빼앗기고, 욕심에 이끌려서 하나님의 소리에는 귀를 막고, 눈을 닫아 버리고 있지는 않습니까? 그렇다면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결코 충성하는 자가 되지 못할 것입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탄식했습니다. 너는 많은 것을 볼지라도 유의치 아니하며, 귀는 밝을지라도 듣지 아니하는도다.(이사야 42:20) 이것은 결코 충성의 모습이 아닙니다. 충성은 온전히 주인되신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마음이 어디에 있는가에 집중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서 무엇을 사모하시는지, 하나님께서 무엇을 중얼거리시는지 작은 것에도 귀를 기울이고, 그것을 이루기 위하여 충성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2.

세 용사는 다윗이 혼잣말로 중얼거리는 소리에도 관심을 기울였습니다. 다윗의 마음을 헤아리는 일에 조금도 게으르지 않았습니다. 다윗이 무엇을 사모하는지 알게 되었을 때에 그들은 굳이 다윗의 명령을 듣기 전에 그 일을 위해 생명을 거는 사람들이 되어 있었습니다. 본문 16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세 용사가 블레셋 사람의 군대를 충돌하고 지나가서 베들레헴 성문 곁 우물 물을 길어 가지고 다윗에게로 왔으나 다윗이 마시기를 기뻐 아니하고 그 물을 여호와께 부어드리며 (사무엘하 23:16)

다윗의 군대는 산성에 있었고, 블레셋의 영채는 베들레헴에 있었습니다. 적진의 중앙에 우물물이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다윗이 그 우물물을 먹고 싶다고 하는 것입니다. 물론 혼잣말이긴 하지만 너무나 황당한 이야기입니다. 지도자가 되어서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할 수 있겠습니까? 백성을 위해서, 군대를 위해서 그런 생각을 접어야 하는 것 아닙니까? 그런데 다윗은 그 우물물을 그리워 하고 있었습니다. 그 물을 마시고 싶어했습니다. 그런 이야기를 들었을 때에, 세 용사는 생명을 걸고, 블레셋의 진영으로 잠입해 들어가고자 했습니다. 본문의 내용에 보면 블레셋 사람의 군대를 충돌하고 지나가서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이 중요합니다.

어떻게 생각하면 다윗의 행동은 적절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지도자로서 그런 생각을 해서는 안됩니다. 그런데 안이한 생각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물물에 대한 추억이나 상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들은 지도자의 자질없음을 나무라면서 다윗을 공격하지 않았습니다. 다윗과 충돌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블레셋 사람의 군대와 충돌했습니다. 충성은 바로 이런 것입니다. 충돌해야 할 대상을 분명하게 알고, 그것과 충돌해야 합니다. 블레셋과 충돌하는 것입니다. 악한 마귀와 충돌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끼리, 우리끼리 충돌하는 일은 절대로 없어야 합니다.

마귀가 가장 기뻐하는 일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백성들이 자기들끼리 충동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보면 가장 기뻐합니다. 반면에 하나님이 가장 슬퍼하시는 일이 무엇입니까? 그의 사랑하는 자녀들이 자기들끼리 갈등하고 다투는 것입니다. 충성은 어떤 경우에도 교회와 충돌하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람들과 충돌하지 않는 것입니다. 성도들끼리 충돌하지 않는 것입니다. 충돌해야 할 대상을 분명히 알고, 마귀를 대적해야 합니다. 원수를 대적해야 합니다. 블레셋을 대적해야 합니다. 이것이 충성입니다.

우리 나라의 충신의 대명사는 이순신 장군입니다. 그분은 임진왜란 때에 대단한 활약을 했습니다. 국운이 위태로운 지경에 바다를 지켜 위기의 순간에 나라를 구원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가 그토록 열심을 다해서 나라를 지킬 때에, 간신들은 그에게 위협을 느꼈습니다. 그들은 자기들의 입신영달만을 생각했습니다. 이순신이 승승장구하게 되면 자기들의 입지가 좁아질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이순신을 몰아내기 위해서 교묘한 공작을 꾸밉니다. 결국 그는 죄인이 되어서 모든 관직을 빼앗기고, 백의종군하게 되었습니다. 장군이 한 순간에 이등병이 된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순신은 그것 때문에 왕을 향해서 반기를 들지 않았습니다. 나라를 배신하지 않았습니다. 자기의 모든 것을 다 빼앗겼지만 그는 여전히 왜군과 충돌했습니다. 침략자를 몰아내기 위해서 혼신의 힘을 기울였습니다.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했습니다. 이것이 충성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반드시 부흥을 이루어야 합니다. 승리를 이루어야 합니다. 주의 교회의 영광의 시대를 만들어야 합니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어떤 경우에도 우리끼리 싸우는 일은 없어야 합니다. 우리끼리 충돌하는 일은 없어야 합니다. 죽어도 싸워서는 안됩니다. 그것은 마귀가 가장 좋아하는 일입니다. 때로는 성도들의 모습에서 나약한 것이 보일 수 있습니다. 때로는 지도자에게서 미흡한 점이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 때문에 충돌하고자 해서는 안됩니다. 오히려 우리가 충돌해야 할 대상은 블레셋임을 명심해야 합니다. 그리고 블레셋을 향해 충돌하며 나아갈 길을 찾아야 할 것입니다. 그렇게 될 때에 우리는 충성스런 주님의 용사가 되어, 주의 교회를 크게 부흥케 할 수 있을 것입니다.

2.3.

다윗의 세 용사는 다윗의 마음을 헤아렸습니다. 어처구니 없는 다윗의 생각을 보면서 그들은 원망하거나 불평하지 않았습니다. 다윗을 향해서 엉뚱한 생각, 말도 안되는 생각을 하고 있다고 비난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들은 다윗과 충돌하기 보다는 블레셋과 충돌하는 길을 택했습니다. 그런데 블레셋과 충돌하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목숨을 거는 것입니다. 생명을 바치는 헌신의 결단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본문 17절 말씀을 함께 보겠습니다.

가로되 여호와여 내가 결단코 이런 일을 하지 아니하리이다 이는 생명을 돌아보지 아니하고 갔던 사람들의 피니이다 하고 마시기를 즐겨 아니하니라 세 용사가 이런 일을 행하였더라 (사무엘하 23:17)

다윗은 세 용사가 베들레헴 성문 곁에 있는 우물 물을 가져 오자 감동했습니다. 그러나 그 물을 마시지는 않았습니다. 그것은 그 물은 사랑하는 신복들의 생명을 건 희생을 댓가로 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다윗은 고백합니다. 이것은 물이 아니라 피다. 그러므로 그것을 하나님께 부어드렸습니다. 여기에 세 용사의 충성이 어떠했는지 나타납니다. 생명을 건 희생을 통해 감동을 주는 것입니다. 이것이 충성입니다. 하나님께서 맡기신 일에 생명을 드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것이 하나님의 마음에 감동이 되게 하는 것입니다.

청년사역을 할 무렵이었습니다. 연애와 결혼에 관심이 많은 청년들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묻곤 했습니다. 저는 그 때마다 청년들에게 이런 이야기를 해 주었습니다. 상대방에게 감동을 주라. 사랑하는 사람에게 감동을 넘어 감격의 눈물을 흘리게 하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결코 사랑을 잃지 않을 것이고, 행복을 빼앗기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충성이란 바로 이런 것입니다. 우리의 생명을 하나님께 바치므로,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려, 하나님의 원하시는 것을 알고, 그것을 위해 기꺼이 생명을 바치므로 감동을 줄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으로 감격의 눈물을 흘릴 수 있게 해야 합니다. 이렇게 될 때에 충성이 됩니다.

세 용사는 다윗에게 감동을 주었습니다. 다윗을 위해서 기꺼이 자기의 피를 뿌리는 자가 되었습니다. 교회가 부흥하고 성장하기 위해서는 이런 충성된 일꾼이 필요합니다. 주의 교회를 위해서 자신을 헌신하는 사람이 필요합니다. 힘들고 어려운 일은 다 남들이 하라고 하고, 쉽고 편한 일, 대접받는 일은 내가 하겠다고 하면 그것은 결코 감동을 줄 수 없습니다. 그것은 결코 충성이 아닙니다. 힘든 일, 어려운 일, 모든 사람들이 기피하며, 천히 여기는 일이지만 그 일을 위해서 기꺼이 생명을 던질 수 있는 사람, 그러므로 감동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될 때에 하나님은 크게 기뻐하시고, 그런 사람을 통해 교회의 부흥과 성장을 이루어가시는 것입니다.

Conclusion & Blessings

이제 말씀을 맺겠습니다. 하나님은 그의 교회의 부흥과 성장을 위해서, 사랑하는 그의 백성들이 하나님의 축복 가운데 승리하는 자가 되게 하기 위해서 충성된 사람을 찾고 계십니다. 왜냐하면 충성하는 자가 아니고서는 결코 부흥을 이룰 수도 없고, 충성하는 자가 아니고서는 결코 교회의 영광의 시대를 만들어 낼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저는 우리 교회와 성도들이 하나님 앞에서 충성하는 성도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다윗의 세 용사와 같이 주님의 마음을 깊이 헤아릴 수 있는 사람이 되기를 바랍니다. 주님께 주목함으로 주님의 혼잣말조차도 놓치지 않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주님의 마음을 알게 되었을 때에는 때로는 그것이 우리의 상식에 맞지 않고, 우리의 경험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해도, 그 일을 이루기 위해서 나아가 원수와 생명을 건 충돌을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주님의 마음을 시원케 할 우물물을 가져 올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결국 우리의 헌신을 통해 주님의 마음을 감동케 하고, 주님께서 기뻐하심으로 눈물을 흘리게 할 수 있는 그런 교회와 성도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에게 이런 충성이 있다면 우리 교회는 분명히 놀라운 부흥을 이룰 것입니다. 그러나 충성은 온데 간데 없고, 힘들면 도망하고, 좋은 자리나 차지하려고 한다면, 권세나 부리고, 존경이나 받으려고 한다면 결코 부흥은 기대할 수 없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주 앞에 부흥을 사모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이 부흥을 위해 죽기까지 충성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주님의 마음에 감동이 올 때까지 충성하심으로 우리를 통하여 교회가 부흥되고, 나라와 민족이 복을 받고, 세계와 열방이 하나님께 돌아오는 놀라운 축복이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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