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Bible & Church/Shema Isreal

불타버린 국보1호

불타버린 국보1호

고린도전서 3:10~15

Introduction

하나님의 은혜가 여러분의 삶에 항상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힘들고 어려운 시대 속에서도 하나님은 여러분을 지키시고,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함께 하시며, 축복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지난 한 주일 예배를 마치고, 저녁식사를 하면서 TV를 시청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밑에 자막으로 광고문구가 지나는 것이었습니다. 숭례문에 화재가 났다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습니다. 조금 화재가 났겠지.. 그리고 소방서에서 이내 껐을 것이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날 저녁이 지나고, 다음날 아침 뉴스를 접하게 되었는데, 난리가 난 것입니다. 우리나라 국보 1호 숭례문이 완전히 불타 소실된 것입니다. 그 아름다운 자태는 사라지고, 웅장하던 위용은 잿더미로 변했습니다. 첫 화면을 대하는 순간 정신이 멍해지는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는 방화로 추정된다는 이야기였습니다.

각 방송사에서 난리였습니다. 국보 1호를 어떻게 관리했기에 그 모양이냐? 국보1호를 함부로 개방을 해서 그렇다. 문화재를 이렇게 허술하게 관리를 하는 나라가 어디있느냐 등등의 수많은 말들이 있었습니다. 여기에 정치인들도 가세했습니다. 숭례문을 이명박 당선인이 서울시장으로 있을 때에 개방을 한 것이 잘못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책임소재를 분명히 가려서 처벌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600년 간의 세월동안 수많은 내우외환을 견디면서 꿋꿋이 자리를 지켰던 국보 1호 숭례문을 잃게 된 것만 해도 가슴이 아픈데, 사람들의 무책임한 말들은 저를 더욱 슬프게 했습니다. 게다가 무너진 숭례문 앞에 제삿상을 차려놓고 절을 하는 사람들, 살풀이 굿판을 벌이는 사람들, 그리고 그 사이에서 제삿상에 조의금을 내도록 하고 그것을 챙겨가는 양심없는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를 듣게 될 때에 왠지 모를 씁쓰레함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슬픔과 분노함으로 외칩니다. 국보1호가 이렇게 허무하게 소실된 것에 대한 책임소재를 밝히라는 것입니다. 저는 이런 외침들을 보면서 조용히 생각해 봤습니다. 숭례문이 불탄 것이 누구의 잘못인가? 여러분은 누가 잘못했다고 생각합니까? 누가 책임을 져야 한다고 생각을 합니까? 저는 한동안 가만히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리고 가능한 몇 가지 대답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A.

첫째는 600년 전에 숭례문을 제작한 사람의 잘못이라는 것입니다. 그는 왜 숭례문을 나무로 제작을 했단 말입니까? 나무가 아닌 불연소재를 사용해서 숭례문을 지었다면 아무리 불을 붙여도 타지 않았을 것이 아니냐는 것입니다. 숭례문을 나무로 제작을 했더라도 방염설비를 잘 해 두었다면 불이 나게 되어도 문제가 없었을 것인데, 그런 대책도 없이 나무로 숭례문을 만들었으니 600년 전의 제작자가 잘못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생각은 우리 말하지 않아도 압니다. 억지 생각일 뿐입니다. 숭례문의 가치는 바로 나무로 지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토록 정교하고 아름답게 지었기 때문입니다. 숭례문을 만든 제작자가 없었다면 그것은 국보 1호로 정해지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숭례문을 만든 사람이 이번 화재에 대하여 책임을 져야 한다는 주장은 말도 안되는 주장입니다.

B.

둘째로 생각할 수 있는 것은 정치인이 정치를 잘못했기 때문에 숭례문이 불탔다는 것입니다. 많은 신문보도와 정치인들이 그런 이야기를 합니다. 이명박 대통령 당선자가 서울시장으로 재직할 당시에 숭례문을 개방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숭례문을 가까이에서 보고 그 주위를 거닐 수 있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많이 접근할 수 있게 했으니 그것 때문에 결국은 이런 화재가 생겨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똑똑하다는 분들이 많이 그렇게 말합니다. 법무부 장관을 지낸 어떤 분도 그런 말씀을 하시는 것이 TV를 통해서 비추어졌습니다. 물론 이명박 대통령 당선자가 서울시장으로 재직할 때에 숭례문을 개방하게 되었습니다. 만약에 그 때에 개방하지 않았다면 숭례문은 불타지 않았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생각이나 주장도 허무맹랑한 생각입니다. 처음에 숭례문을 만든 사람이 나무로 만들고, 화재를 피할 수 있도록 과학적 기술적인 방안을 마련하지 않았기 때문에 화재가 났으니 600년 전의 제작자에게 책임이 있다고 말하는 것과 같습니다.

국보 1 호 숭례문을 개방한 것은 너무나 잘 한 것입니다. 국보의 아름다움을 국민이 체험하고, 그것의 가치를 새롭게 평가하며, 그것을 통해서 민족의 자긍심을 갖게 하는 것이기 때문에, 너무나 잘한 것입니다. 그것 자체를 나쁘다고 하면 안됩니다. 앞으로도 더 많은 국보를, 보물을 국민들에게 개방할 수 있어야 합니다. 화재의 위험이 있고, 도난의 위험이 있어도 국민들이 그 아름다움을 체험하고, 민족의 자긍심을 갖게 하고, 아름다운 유산을 통해 기쁨을 갖게 해 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정치적 이유, 또는 개인적 증오심을 이유로 헛된 주장을 하는 사람들을 보면 안타깝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C.

세째는 공무원이 관리책임을 다하지 못했다는 것이 숭례문이 타버린 이유 가운데 하나일 수 있습니다. 문화재청은 국보를 관리하는 책임있는 기관입니다. 국보가 보존되고, 유지되게 해야 하는 기관입니다. 그런데 그들은 자기들의 책임을 다하지 못하고, 국보를 관리함에 너무나 허술했습니다. 안이했습니다. 국보 1 호가 불탈 것이라는 생각은 전혀 하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여러 차례에 걸쳐서 문화재 주변에서 방화, 또는 실화가 있어서 문화재가 소실될 뻔한 적들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문화재청이라는 기관에서 너무 안이하게 관리책임을 다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여기에는 중대한 과실이 있다고 보여집니다.

또한 소방기관도 마찬가지입니다. 국보1호가 불타고 있을 때에 이미 소방관들이 도착해 있었습니다. 물을 뿌리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불 끄는 기술이 없었습니다. 다시 말하면 소방훈련이 제대로 되어있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물만 뿌려대고 있었습니다. 초기에 적절한 진화를 했으면 그렇게 큰 피해가 나지 않았을 것인데, 그냥 물만 뿌리고 있었습니다. 소방을 담당하는 기관에서 소방기술에 관한 훈련이나 연구는 없이 자리만 차지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국민의 안전과 재산을 보호하는 기관이 이토록 무능해서는 안됩니다. 여기에도 중대한 과실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문화재청이나 소방기관이 국보1호를 불태운 것은 아닙니다. 다만 불타는 것을 막지 못한 2차적인 책임만 있을 뿐입니다.

D.

마지막으로 생각할 수 있는 것은 방화범입니다. 저는 우리나라 경찰들의 수사력에 놀랐습니다. 한 주간이 지나기 전에 방화범을 체포했다는 것.. 정말 놀라웠습니다. 슬쩍 들어와서 불을 지르고 슬쩍 사라져 버린 사람을 그렇게 신속하게 찾아내서 체포할 수 있었다는 것이 놀라웠습니다. 여러분, 죄짓고 살지 말기를 바랍니다. 대한민국 경찰이 대단합니다. 대한민국 경찰도 대단한데, 하나님은 어떻겠습니까? 금방 잡힙니다. 아무튼 숭례문이 소실된 가장 강력한 이유는 방화범입니다. 빗나간 분노가 한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고, 대한민국의 국보1호를 불태우고 말았던 것입니다.

그는 자기의 땅을 제대로 보상받지 못했고, 그것 때문에 정부에 대하여 수없이 진정을 해 보았지만, 해결되지 않았다고 합니다. 정부는 자기의 말을 들어주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여기에 분한 마음을 갖고, 사회적인 복수를 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창경궁에도 한 차례 불을 지른 적이 있었고, 이번에는 숭례문에 불을 놓아서 완전히 소실되게 한 것입니다.

한 사람의 잘못된 마음이 국보를 잃게 했습니다. 국민들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 커다란 상실감을 갖게 한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인간의 빗나간 양심, 하나님 없는 심령이 이런 문제를 불러 일으키는 것입니다. 사람의 마음 속에 하나님이 있어야 하는데, 하나님이 없으니 죄가 생겨납니다. 비극이 생겨납니다. 아름다운 보물들이 소멸되어 가는 것입니다. 결국 한 사람의 마음 속에 하나님이 없었기 때문에 생겨난 비극인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저는 더 이상 우리 나라의 아름다운 보물들이 불타 없어지는 일이 없기를 바랍니다. 사람들의 귀중히 여기는 보석이 소멸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필요한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없는 사람의 마음에 하나님이 계시도록 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 국민 각 사람의 마음에 하나님이 계시고, 하나님의 마음이 자리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렇게 되면 빗나간 분노나 복수심이 사라집니다. 각자가 자기의 책임을 다함으로 보물을 아름답게 지킬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저와 여러분이 먼저 하나님을 마음에 모시고, 또 우리의 가족, 이웃, 민족의 마음에 하나님을 전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각 사람의 마음에 하나님이 계셔서 모든 좋은 것에 풍족하며, 결코 잃어버리지 않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Main Subject

1.

본문은 사도 바울이 사랑하는 고린도 교회를 향해서 편지하는 말씀입니다. 고린도 교회는 어떤 교회였습니까? 그 교회에는 많은 은사가 있었고, 또 능력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성도들이 파당으로 나뉘어서 갈등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바울파라고 했습니다. 또 어떤 사람은 아볼로파라고 했습니다. 어떤 사람은 베드로 파라고 했습니다. 심지어는 그리스도 파로 불리우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교회 안에 이런 파당이 나뉘어서는 안된다고 하면서 지혜로운 건축자가 되어 예수 그리스도의 터 위에 신앙을 견고하게 세울 수 있는 사람들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하게 되었습니다. 본문 10~11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10)내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따라 내가 지혜로운 건축자와 같이 터를 닦아 두매 다른 이가 그 위에 세우나 그러나 각각 어떻게 그 위에 세우기를 조심할지니라 (11)이 닦아 둔 것 외에 능히 다른 터를 닦아 둘 자가 없으니 이 터는 곧 예수 그리스도라 (고린도전서 3:10~11)

바울은 여기에서 자신을 어떻게 비유하고 있습니까? 지혜로운 건축자라고 합니다. 그는 불타버릴 헛된 건축물을 짓는 존재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는 자신의 국보 1호를 지어감에 있어서 타버릴 것으로 짓지 않고, 자신의 국보 1호를 결코 잃어버리지 않을 지혜로운 건축자가 된다고 선언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바울 뿐만 아니라 우리 믿음의 사람들은 지혜로운 건축자가 되어야 합니다. 다 타버릴 헛된 건축물을 지어서는 안됩니다. 우리의 인생의 건축물을 지어갈 때에 그것이 소멸되게 해서는 안됩니다. 타버리게 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지어가는 인생의 건축물은 하나님 앞에서 지극히 존귀한 것이 되어야 합니다. 소멸되어 쓸모없는 것이 아니라 보존되어 아름다움을 드러낼 수 있는 심히 존귀한 보석같은 건축물이 되어야 합니다. 어떤 시련과 역경이 다가와도, 심지어는 끔찍한 심판의 불이 쏟아질 때에도 결코 소멸되거나 빼앗기지 않을 그런 인생을 만들어야 하는 것입니다. 왭니까? 그런 사람이 될 때에 하나님께서 주시는 구원의 축복과 상급을 얻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주님께 칭찬을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인생을 통해서 하나님께 국보급 건축물을 지어가는 존재입니다. 그것을 아름답게 잘 지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 뿐만 아니라 그것을 잘 보존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어떤 환경에서도 우리의 인생의 건축물은 붕괴되지 말아야 합니다. 최후의 심판 가운데서도 결코 소멸되지 않는, 오히려 더욱 찬란하게 빛이 드러나는 그런 인생이 되게 해야 합니다.

2.

그렇다면 어떻게 우리 인생의 건축물을 아름답게 지을 수 있고, 불타 소멸되지 않게 지킬 수 있는 지혜로운 건축자는 어떤 존재입니까?

2.1.

첫째는 지혜로운 건축자는 자신이 은혜 받은 사람이라는 사실을 인식하는 사람입니다. 바울은 자신의 인생의 건축물을 지어가게 될 때에 분명히 기억한 것이 있었습니다. 그가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구원함을 받았다는 사실입니다. 모든 것이 은혜라는 것입니다. 바울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나의 나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이런 믿음의 고백이 선행되어야 합니다. 그래야만이 그는 지혜로운 건축자가 되어서 하나님 앞에서 소멸되지 않는 국보급 인생을 만들어갈 수 있습니다. 그의 인생의 건축물을 소멸시키지 않고, 보존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은혜받은 사람이라는 인식이 없으면 아무 것도 할 수 없습니다. 그런 사람의 입에서는 원망과 불평이 나올 뿐입니다. 그리고 분노와 복수심이 타오를 뿐입니다. 결국 엄청난 불이 자신에게서 나와서 자신의 인생을 망가뜨리고, 보물을 파괴시키고, 하나님 앞에서 아무 것도 내어 놓을 것이 없는 헛된 인생이 되고 맙니다.

국보1호가 소실된 것은 은혜를 모르는 사람 때문입니다. 은혜 받은 사람이라는 기쁨이 없는 사람 때문입니다. 그는 작은 것에 원망이 가득했습니다. 불평이 가득했습니다. 보상이 조금 적다고, 자기 생각만큼 보상을 해 주지 않는다고 원한을 품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국보1호 숭례문을 잿더미로 만들어 버리고, 자신의 인생 또한 잿더미로 만들어 버리고 말았던 것입니다. 은혜 받은 사람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래야 인생을 아름답게 건축할 수 있습니다. 자신의 인생을 국보급 인생으로 만듭니다. 하나님 보실 때에 찬란하고 아름다운 보석이 되게 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그런 삶을 살았습니다. 그에게는 수없이 많은 환난이 있었습니다. 복음을 전하면서 매를 많이 맞았습니다. 핍박을 받았습니다. 심지어는 교회와 성도들에게서도 질타를 당하기 까지 했습니다. 그것만으로도 모자랐는지, 그의 몸에는 몹쓸 질병이 있었습니다. 학자들에 의하면 간질이나, 심한 안질이었을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니 바울은 여러 모양으로 볼품없는 모습이었습니다. 외적으로는 멋진 모습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바울이 고백합니다. 자신은 지혜로운 건축자라는 것입니다. 왭니까? 하나님의 은혜를 아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 받은 자임을 스스로 고백하는 자가 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는 충분히 원망하거나 불평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감사했습니다. 감격했습니다. 기뻐했습니다. 모든 환난 가운데서도 고난 가운데서도 기뻐했습니다. 왭니까? 그는 자신이 은혜 받은 사람임을 분명히 인식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 받은 은혜를 기억하니, 현재의 고난은 아무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것 마저도 크신 은혜요 축복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자신의 인생의 건축물을 파괴하지 않고, 감사와 기쁨으로 더욱 아름답게 만들어갈 수 있었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믿음의 사람들은 우리 인생을 국보급의 아름다운 건축물이 되게 해야 합니다. 이것이 파괴되고 소멸되는 것은 다름아닌 빗나간 분노입니다. 복수심입니다. 이런 것은 자신이 얼마나 큰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사람인지 망각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나의 나된 것은 주의 은혜로 된 것임을 기억하고 고백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인생의 모든 것을 감사로 세워갑니다. 기쁨으로 세워갑니다. 은혜를 기억하는 감격으로 만들어 갑니다. 어떤 경우에도 인생을 자포자기하지 않습니다. 파괴하기 않습니다. 불태워 소멸시키지 않습니다. 정성을 다해 아름답게 만들어 갑니다. 그러므로 바울처럼 우리에게 주신 은혜를 따라 인생을 건축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은혜 받은 자임을 기억하고, 그 은혜를 인하여 감사와 감격으로 살아서, 환난이 오고, 불시험이 다가와도, 하나님 앞에서 아름다운 인생을 건설하고, 보존할 수 있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2.

둘째로 지혜로운 건축자는 예수 그리스도의 터 위에 집을 세우는 자입니다. 바울은 자신의 인생을 건축하게 될 때에 세상의 철학이나 재물에 터를 닦지 않았습니다. 그는 자신의 경험이나 재능에 터를 닦지 않았습니다. 자신을 따르는 어떤 사람이나, 자신이 존경하는 어떤 사람의 터 위에 인생을 건축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인생의 터를 삼았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인생을 그 위에 지어갔습니다. 이것이 지혜로운 건축자의 모습입니다.

바울 사도는 말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터 위에 세우지 않은 집은 모두가 불타버릴 것이라는 것입니다. 심판날이 다가올 때에 그 심판을 견디지 못하고 다 소멸되어 버린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인생을 살아갈 때에 예수 없이 사는 것은 아무리 영광스러운 모습을 보인다고 해도 다 소멸되고 맙니다. 모든 것이 다 사라질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증언합니다. 모든 육체는 풀이요, 그 모든 아름다움은 들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드나 우리 하나님의 말씀은 영영히 서리라. 예수 그리스도 없이 세운 모든 집은 지금 당장에는 아름다울 수 있습니다. 지금은 보기 좋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다 소멸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영영히 소멸되지 않는 것이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말씀은 절대로 소멸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터 위에 우리 인생의 집을 지으면 결코 소멸되지 않습니다. 주님 앞에 심히 아름답게 되어집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터 위에 집을 짓는다는 말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주 예수를 믿음으로 살아가는 삶입니다. 가정생활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하는 것입니다. 직장생활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 없이, 예수를 믿는 믿음과 상관없이는 아무 것도 행하지 않는 것, 바로 이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터 위에 집을 짓는 것입니다.

얼마나 많은 신앙인들이 입으로는 예수를 주로 고백하고, 은혜 받은 사람임을 자인하지만, 실제의 삶에서는 믿음없이 살아가는 일들이 많은지 모릅니다. 교회 안에서는 믿음이 충만한데, 교회 문밖으로 나서는 순간 믿음은 반납하고, 예수님 안녕히 계셔요.. 하고 갑니다. 어쩌다가 예수님이 조금 따라 갈라치면 예수님 더 이상은 따라오지 마쇼... 나도 프라이버시가 있어야... 이럽니다. 그리고는 세상에서 예수님 없이 살아갑니다. 예수님과는 안녕하고 살아갑니다. 다른 터 위에 열심히 집을 짓습니다. 인생을 지어갑니다. 결국 그것 때문에 사고가 생기는 것입니다. 인생이 송두리째 불타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국보급으로 귀중히 여기며, 인생을 건축해왔지만 한 순간에 와르르 무너지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국보1호 숭례문이 불타버린 이유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한 사람의 마음 속에 예수님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 방화범의 마음에 예수님이 계셨다면, 그가 예수님의 터 위에 인생의 집을 지어가는 사람이었다면 그런 짓을 하지 않습니다. 국보1호를 불사르지 않습니다. 국보1호보다 더 귀한 자신의 인생을 파멸로 몰아가지 않습니다. 예수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예수의 터 위에 자신의 인생을 짓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예수 없이 인생을 집 지으면 국보1호같이 귀한 것이 소멸됩니다. 아니 그보다 더 귀한 인생전체가 망가지고 맙니다. 그러므로 저와 여러분은 예수 그리스도의 터 위에 인생의 집을 지어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그분의 말씀을 떠나서는 어떤 것도 헛되이 짓지 않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을 드립니다.

2.3.

세째로 지혜로운 건축자는 조심합니다. 공력을 기울입니다. 10절 마지막에 그 위에 세우기를 조심할지니라.고 말씀하고 있고, 13~15절에서는 공력 이라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조심하다는 말씀은 헬라어로 블레포라는 단어를 사용합니다. 이 단어는 세밀히 관찰하는 것입니다. 면밀하게 검토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공력이라는 단어는 헬라어에서 에르곤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는데, 이것은 수고하여 만든 것이라는 의미로, 공을 들인 일을 뜻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지혜로운 건축자는 블레포하고, 또 에르곤합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인생을 살아갈 때에 되는대로 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세밀하게 살핀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힘써 수고한다는 것입니다..

믿음의 사람들이 되는대로 사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으니 모릅니다. 열심을 내지 않습니다. 공을 들이지 않습니다. 그리고는 자신이 예수를 믿기만 하면 된다고 합니다. 그것은 예수를 믿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이라는 이름으로 자신의 삶을 방종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믿음의 사람들이 수고함으로 인생의 집을 지어가기를 원하십니다. 맡겨진 일들에 대하여 최선을 다하고 희생하고 헌신하기를 원하십니다. 직장을 맡겨주셨으면 직장생활을 성실하게 감당해야 합니다. 바로 그 일을 통해서 인생의 집을 지어가는 것입니다. 믿음의 집을 지어가는 것입니다.

회사를 운영하시는 분들, 또 직장에서 관리책임자로 일하시는 분들의 말씀을 들어보면 예수 믿는 직원들이 직장에 잘 적응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자기들의 권리를 주장하는 일에는 탁월한데, 희생하는 일에, 다른 사람과의 원만한 관계를 만들어가는 일에는 형편없는 모습을 보인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엄청난 잘못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은 맡겨진 직장에서 가장 부지런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가장 성실한 사람, 가장 수고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치밀하게 준비해서 철저하게 대처할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국보1호가 소실되었습니다. 누구의 책임입니까? 일차적으로는 방화범의 책임입니다. 그러나 2차적으로는 관리책임자인 문화재청과, 소방기관입니다. 그들은 문화재를 관리함에 최선을 다해서 부지런해야 했습니다. 세밀해야 했습니다. 그리고 소방기관은 화재를 진압하는데는 탁월한 실력이 있어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 철저하게 준비하고 훈련되어 있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문화재청은 문화재청대로 게을렀습니다. 세심하지 못했습니다. 소방기관은 소방기관대로 무능했습니다. 결국 국보1호가 불타버리고 만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터 위에 인생의 집을 짓는 성도들은 자기에게 주어진 삶의 시간을 통해 인생의 집을 지어가게 될 때에, 주어진 환경에서 세밀해야 합니다. 부지런해야 합니다. 실력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결코 게을러서도 안되고, 무능해서도 안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세상 사람들 앞에 우리 성도들은 항상 부지런하고, 실력있는 자들로 설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이를 위해서 최선을 다하는 사람들로 나타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어떤 일이 잘 되지 않으면 믿는 우리에게 찾아와서 해결해달라고 도움을 청할만큼 능력을 가진 존재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 자녀들이 실력있는 자녀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성적표를 받으면 뒤에서 등수를 세는 그런 자녀가 아니라 앞자리에 우뚝 설 수 있는 그런 자녀들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인생의 집을 지어갈 때에 부지런해야 합니다. 세심해야 합니다. 철저해야 합니다. 실력을 쌓아야 합니다. 능력을 갖추어야 합니다.

Conclusion & Blessings

이제 말씀을 맺으려고 합니다.

국보 1호 숭례문이 불타는 현상을 TV를 통해서 보면서 얼마나 안타까웠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저는 그것을 보면서 내 인생의 집이 혹시 저렇게 불타서 소멸되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주님이 오실 때에 심판의 뜨거운 불 앞에 내 인생의 집이, 내가 가장 귀하게 여기고, 국보1호처럼 여기던 모든 것이 저렇게 허무하게 소멸되지는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생겼습니다. 만약에 주님 앞에서 우리의 전생애를 통해 지은 인생의 집이 그토록 허무하게 소멸되고 만다면 얼마나 안타까운 일이겠습니까? 성경은 말씀합니다. 공력이 불타면 해를 받으리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의 인생을 통해 국보급 보물처럼 귀중하게 여기며 지어왔던 모든 것이 심판날에 소멸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그래도 남아있고, 아니 찬란하게 빛을 드러낼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오늘의 삶에 지혜로운 건축자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바울과 같이 그의 인생을 멋지게 지어갈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 받은 사람임을 기억하고, 감사함으로, 기뻐함으로 인생의 집을 지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터 위에 집을 지어야 합니다. 그리스도가 아닌 것, 그리스도 없이 인생을 살아서는 안됩니다. 모든 일에 그리스도의 터 위에 지어야 합니다. 믿음으로 집을 지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삶의 순간마다 최선을 다해 부지런함으로, 실력있는 사람으로 인생의 집을 지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될 때에 우리의 공력은 그대로 남을 것이요, 하나님 앞에 우리의 인생은 불타지 않는 국보급 인생이 될 것입니다. 이와같은 복된 역사가 저와 여러분의 삶에 충만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Bible & Church > Shema Isreal'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오늘 죽어도 천국에 갈 수 있는가?  (0) 2008.03.18
주께서 주신 은혜  (0) 2008.03.07
초대교회 예배의 꿈  (0) 2008.02.13
자녀에게 예배의 꿈을 심으라  (0) 2008.02.03
이사야가 꿈 꾼 미래  (0) 2008.02.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