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를 준비한 교육신학자 코메니우스
정일웅교수(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
오늘 역사적인 한 인물을 소개합니다. 그는 요한 아모스 코메니우스입니다. 그는 17세기에 구라파, 그 당시 보헤미아와 모라비아로 불려지는 오늘의 체코 땅에서 출생하여 모라비아의 형제단교회를 이끌었던 신앙의 인물입니다. 그는 지금까지 서구의 일반교육의 역사에서 교육학의 아버지로 평가되었다. 그러나 오늘날 많은 코메니우스 연구가들은 그를 17세기 구라파의 새로운 시대를 이끌었던 사상가요, 신학자요, 목회자요, 교육학자로 새롭게 평가할 뿐 아니라, 특히 21세기를 준비한 인물로 평가한다. 어떤 면에서 그가 21세기를 준비한 교육신학자라고 볼 수 있는가?
1. 코메니우스, 그는 누구인가?
1592에 출생하여 1670까지 생존했던 역사적 인물이다. 그가 생존했던 시기는 바로 30년 동안 지속된 종교전쟁(1618-1648)의 시기였다. 그것은 카톨릭교회와 프로테스탄트(종교개혁의 교회) 사이에 벌어진 피비린내 나는 종교전쟁이었다. 역사를 정확히 헤아려 보면 그는 이 종교전쟁에서 가장 큰 피해를 입은 사람이라 할 것이다. 그가 직접 칼을 들고 싸운 것은 아니지만, 그는 이 전쟁에서 많은 것을 잃어버렸다. 생각해 보면 전쟁의 시작이 바로 그의 조국, 보헤미아(프라하)에서 일어났고, 결국 전쟁의 마지막에 그토록 희망했던 보헤미아의 형제단교회에 종교의 자유는 주어지지지 않았기 때문이다(1648, 카톨릭교회가 루터파와 칼빈파 만을 베스트팔리아 평화조약에서 인정함).
그러나 코메니우스는 이러한 비극적인 상황에도 불구하고 굴하지 않고, 하나님의 섭리와 인도의 역사를 의지하며, 개인적으로는 화란의 암스테르담으로 망명하였고, 그곳에서 개혁교회와 교제하다가 생을 끝마쳤던 것이다. 그는 생애동안에 수많은 글을 남겼는데, 이러한 글들은 그의 일생을 통한 삶의 경험에서 얻어진 지혜를 말해 주는 것들이라 할 것이다.
그는 늦은 나이에 헤어보른과 하이델베르그 대학에서 철학과 신학을 공부한 후에 먼저 고향의 학교에서 라틴어를 가르치는 교사로 일하게 된다. 그 후에 어머니 학교의 소식, 대교수학(Didactica magna), 세계도해 등의 책을 펴내어 그 당시에 교육학자로 널리 알려지게 된다. 그의 세계도해는 그림으로 된 책으로 사물과 인간과 하나님에 대한 신앙을 그림을 통하여 배우게 하는 현대 시각교육의 창시자로 불려지게 된다. 물론 그는 형제단 교회의 목사로 일하였고, 후에 30년 종교전쟁이 극에 달할 때, 자기 교단을 이끄는 감독이 되기도 한다. 그리고 그는 전쟁기간에 보헤미아-모라비아 형제교회의 종교자유를 얻기 위해 외교적 활동을 전개하기도 한다. 그러나 평화조약에서 형제단교회의 종교자유에 대한 아무런 보장을 받지 못하고, 마침내 자기 교단을 해체해야 하는 상태에 이르고 만다. 그는 카톨릭교회의 박해로 인하여 전쟁 중에 질병으로 가족을 두 번이나 잃어버리는 불상사를 당하게 된다. 이러한 비극적인 상황에서도 그는 학문적 연구와 글 쓰기를 계속하였다. 특히 그의 관심은 17세기에 전쟁으로 폐허가 된 구라파의 사회를 어떻게 기독교사회로 새로이 건설해야 할 것인가에 깊은 관심을 가지게 된다. 여기서 생각한 것이 먼저 인간을 변화시켜, 그들로 하여금 정의와 평화가 지배하는 환경으로 바꾸려는 세계개혁을 구상하게 된다. 그 구상은 역시 라틴어로 기록된 미완성 작품으로 남겨졌다가 후에 1500페이지 이상의 원고더미를 1935년 취체브스키가 독일 땅 할레에서 경건주의의 지도자였던 헬르만 프랑케가 세웠던 고아원의 도서관에서 발견해내게 된다. 2차 세계 대전이 끝난 이후에 독일과 체코의 학자들에 의하여 그 원고들은 새로이 해독과 분석되었고, 코메니우스 사상은 새롭게 알려지는 계기를 얻게 된다. 이 미완성의 원고더미는 7권으로 엮어진 책들인데, 그 책들 가운데 가장 중심에 놓여 진 네 번째의 책이 코메니우스의 범 교육학이다. 그는 이 책에서 폐허가 된 구라파 사회를 하나님 깨닫고, 하나님의 의와 평화가 지배하는 세상으로 만들기 위하여 인간교육론을 제시하게 된다. 그것이 범교육학(Pampaedia)으로 불려지는 책이다. 한가지 먼저 전제하고 싶은 것은 그는 자신이 그토록 강조했던 것처럼, 교육학자이기보다 신학자라는 점이다. 특히 신학 가운데서도 그는 조직신학자이기 보다는 실천신학자라고 할 수 있다. 그의 신학은 온통 교육을 통하여 실천되어야 하는 실천적 방법론으로 이해되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그는 교육을 통한 신학자, 또는 교육신학자로 불려지기도 한다. 또한 그는 무엇보다도 성경에 근거한 기독교철학자라고도 할 수 있으며, 목회의 실천가이기도 하다. 이런 전제에서 보면 그는 분명히 21세기를 준비한 사람으로 여겨지며, 그의 교육론은 그러한 특징을 대변해 주고 있다고 하겠다.
2. 21세기를 준비한 코메니우스의 교육신학은 과연 어떤 것인가?
1) 범지혜를 통한 인간교육과 기독교의 복음선교를 위한 선교교육론을 제창하였다. 그는 마태복음 28:19에 근거하여 인간의 교육을 기독교의 선교적 차원에서 해석했다는 점이다. 그는 범교육학 첫 페이지에서 이러한 사실을 증명한다. 이것은 그의 교육론이 주님이 명령하신 세계선교의 사명의 성취를 위한 방법론으로 본 것이다. 그리고 골1:28의 인용에서 발견한다. 모든 지혜로 각 사람을 가르침은 각 사람을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케 하려함이라는 말씀에서이다. 여기서 코메니우스는 세상에 태어난 모든 사람들은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을 알아야 한다는 교육철학을 가지고 범지혜(Pansophia)를 배우게 하였다. 그 지혜는 하나님이 계시하신 자연, 정신, 성경을 뜻한다. 그것은 교육적으로 모든 사람이 배워야 세 가지 책, 즉 자연의 책, 정신의 책, 성경 책 등으로 이해된다. 이러한 그의 모든 지혜로의 교육원리는 모든 사람들(παντεσ)에게 세상에 있는 모든 것(παντα)을 철저하게(παντωσ) 익히고 배우도록 하려는 교육철학으로 정리된다.
2) 모든 사람이 하나님을 알게 하며, 세상 전체에 대한 통전적 시각을 갖게 하는 교육이었다(Pan, 판의 의미).
그가 제시한 교육철학의 핵심적인 개념은 ‘판’(παν)이란 말이다. 그것은 ‘모든 것’ 또는 ‘전체’를 뜻하는 말이다. 판의 개념은 역사 속에 나타난 모든 현상체로서 전체의 의미이며, 그 전체를 나타나게 한 출발과 근원으로서 판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궁극적으로 그 판은 만물의 창조주요, 주인이신 하나님을 인식하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그리고 세상에 존재하는 인간과 사물의 전체는 하나님에게서 나아와서 존재하는 것이며, 궁극적으로는 하나님께로 다시 되 돌아가는 것임을 깨우쳐주려고 한 것이었다(롬11:36). 그 때문에 그의 교육론은 부분만을 알게 하는 전통적인 교육방법을 거절하고, 부분뿐만 아니라 그 부분을 통하여 전체를 알게 하고 보게 하려는 것으로 일관한다. 부분으로서의 전체와 근원으로서의 전체는 궁극적으로 하나님을 알게 함에로 이끌게 한다. 그의 교육은 역시 모든 사람이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자가 되도록 함을 추구한다(골1:28).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자란 말은 그리스도를 닮아 가는 것을 의미하며, 동시에 그리스도의 뜻에 순종하는 자를 의미한다. 즉 그것은 역시 타락한 인간들이 하나님의 형상으로의 회복을 의미하며, 죄의 상태에서 하나님이 창조하여 세우신 본래의 신분의 자리(상태)에로 되돌아옴을 의미한다. 그리고 그의 교육론의 특이한 점은 지식의 획득이 아니라 지혜의 획득에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인간의 올바른 삶을 위하여 가장 필요한 것이 지혜라고 본 것이며, 동시에 지혜의 근본은 하나님을 아는 것이라는 점이다. 통전적 시각이란 부분만을 보게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인간과 사물의 전체를 보게 하고, 그 전체와의 관계를 전제하여 부분과 전체의 유기성을 파악하도록 하는 교육방법을 제시하였다(학문의 연계성에 대한 통찰력).
3) 인간성 회복(구원)을 추구하는 교육이었다.
인간성 회복이란 원래 인간다운 인간이 되게 하는 전인교육을 말한다고 할 것이다. 현대교육은 이점에 많은 문제를 안고 있다. 산업사회의 도래와 함께 현대교육은 참다운 인간성 회복을 힘쓰는 교육이기보다는 산업사회를 지탱해 가는 기술인양성에 역점을 두었고, 그에 따라 실용주의적 가치가 인간교육의 바탕이 되었다. 이러한 교육적 환경에서 언제나 문제가 되는 것은 인간의 본래의 모습인 인격성과 인간성에 대한 것이다. 이것이 21세기에 이르기까지 전 세계의 인류와 현대교육이 고민하고 있는 문제 중에 하나이다. 우리는 코메니우스의 교육론에서 그 문제해결의 지혜를 발견한다. 코메니우스가 말하는 인간의 참된 인간성은 지성, 덕성 경건성의 세 가지 요소를 함유한 인간의 모습으로 규정하고, 하나님의 형상으로 회복되어 그리스도로 오신 하나님을 섬기며, 그의 뜻을 따르는 모습을 중심에 두고 있다.
4) 현대 평생교육과 교육목회 이론의 창시자이다.
코메니우스의 교육론은 그의 초기 작품인 대교수학에서는 성장세대들을 위한 오늘날 기독교학교와 공교육을 전제하고 있지만, 그의 범교육학에서는 인간의 평생교육을 제시하였다. 그는 인간의 전 세대를 학교로 명명하였고, 발달론적인 측면에서 7단계의 학교 또는 8단계의 학교를 제시하였다(태아학교에서 사망의 학교에 이르기까지). 이러한 교육은 현대 교회가 지향하고 있는 목회적 모습과 그대로 연결된 것이며, 특히 현대 기독교 교육이 교육목회를 지향하는 방향과 일치하는 것이다. 그런 뜻에서 코메니우스의 범 교육학은 21세기의 한국교회와 교육목회를 위한 방법론을 제시한 책이라 할 것이다. 여기 교육목회이론이라 할 때, 중요한 것은 인격적인 교육과 목회가 전제된 것을 의미한다.
5) 삶의 지혜를 획득하기 위한 교육이다.
인간의 삶에는 지식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지혜가 필요하다. 우리가 교육할 때, 모르는 것은 지식을 가지고 깨우치며, 지식을 얻도록 하고 있지만 실제로 얻어야 할 것은 지식이기보다는 오히려 지혜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코메니우스의 교육은 지식 쌓기의 배움이 아니라 지혜의 획득을 위한 배움을 제시하고 있다. 코메니우스의 이러한 교육은 현대 교육이 안고 있는 지식전달위주의 교육의 문제를 극복하게 하는 중요한 관점이다. 그리고 소위 주입식교육의 문제를 극복하는 대안이기도 하다. 현재 우리의 교회교육(주일학교교육)에서, 공과교육과 성경교육 등에서 나타나는 지식전달 위주의 교육의 문제성 극복은 코메니우스의 교육론에서 큰 도움을 입을 수 있는 것으로 생각한다.
6) 평신도 교육의 창시자이다(세상의 개혁을 위한 교육)
20세기 중엽에 이르러 현대 실천신학의 중요한 학문적 영역을 목회자를 위한 신학에서 평신도 신학으로 전환하였다. 슐라이어막허가 목회자의 신학을 창출했다면, 코메니우스의 실천신학은 평신도의 신학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이다. 그의 교육의 또 하나의 목표는 세상을 변화시키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말씀에 기초한 기독교 사회의 건설과 맥을 같이 한다고 하겠다. 1935년 독일의 할레에서 발견된 코메니우스의 유명한 명작, 미완성의 작품 7권의 책은 사실은 17세기에 30년의 종교전쟁으로 폐허가 된 구라파 사회를 다시금 하나님의 질서와 평화에 기초한 사회로 개혁하려는 그의 세계개혁을 위한 제안들이었다. 그리고 범교육학에서 말하고 있는 것처럼 먼저 인간을 변화시켜, 그들로 하여금 세상을 개혁하는데 일꾼이 되게 하려는 것이었다. 이것이 그리스도의 재림을 준비하는 복음의 사역으로 보았으며, 그리스도가 통치할 천년왕국을 기다리는 자들의 삶의 책임으로 본 것이다. 특히 그는 자신을 3번째 엘리야에 의하여 부름 받은 사명자로 인식하였다(마17:11-12). 이것은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그대로 적용되는 것이었다. 또한 코메니우스는 종교개혁이 교리적 개혁만을 성취시켰지, 진정한 삶의 개혁은 이루지 못했다고 평가한다. 그것은 곧 이후에 교리적 논쟁으로 이어졌으며, 더불어 살아가는 공동체를 형성하지 못한 역사적 결핍을 지적한 것이며, 코메니우스는 그런 뜻에서 온전한 개혁을 꿈꾼다. 그 진정한 세상의 개혁은 삶의 개혁이며, 그 모든 것은 평신도를 훈련하여 책임지게 하려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그의 교육론의 핵심은 역시 세상을 하나님의 의와 평화가 지배하는 환경으로 바꾸는 일에 평신도의 사회적 책임과 헌신을 강조하여 평신도 교육을 만들었다고 본다.
코메니우스의 교육신학은 그의 대교수학에서는 약속의 나라에 가기 위한 준비로서 영원을 향한 교육의 방법론을 보여준다. 그러나 범교육학에서는 하나님의 창조세계에 대한 문화적 책임이 교육의 목표로 제시되었다. 여기서 그의 평신도 신학의 단면을 느낄 수 있다. 개혁의 방법론은 역시 범지혜의 획득으로, 학문, 정치, 종교 세 영역의 개혁을 전제하고 있다. 또한 특이한 것은 지혜를 획득하는 방법에 있어서 세 단계이론을 제시하였는데, 이론(Theoria), 실천(Praxis), 올바른 사용(Chresis)에 대한 것이다. 중요한 것은 인간이 가진 자유의지의 선용을 목표하고 있는 것이다.
9) 창조세계의 회복을 위한 교육(자연적 원리에 따른 교육방법을 제창)
현대만큼 자연의 가치가 존중되는 시대는 그렇게 만치 않았다. 그것은 자연이 파괴되고 환경의 오염과 생태계의 파괴를 경험하는 현대 산업사회의 출현과 함께 인류는 지금 자연의 가치를 인식하는 것이다. 코메니우스는 바로 17세기에 자연주의 신학이 생겨나면서 그 영향으로 창조세계의 보전과 함께 자연적 원리를 그의 교육방법의 기초로 삼았던 것이다. 그가 제시한 자연적 원리의 교수법과 자연의 가치인식은 현대인류의 고민의 문제를 이미 약 400년 전에 간파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의 교수법의 특징은 다음과 같다.
(1)자연적 방법: 모든 것은 스스로 흐르게 해야 하고, 폭력은 거기서 멀어 지게 해야 한다(omnia sponte fluant absit violentia rebus).
(2) 학습자중심의 학습원리를 제창함 -교사중심의 학습법에 대립하여
빠르고 재미있고, 철저하게 가르치라. 교사는 적게 가르치고, 학생은 많이 배우게 하라.
(3) 학습의 삼 단계이론: 분석, 종합, 비교연결법(자연과학의 탐구방법).
(4)인식의 삼 단계이론: 이론(theoria)과 실제(praxis)와 적용(chresis).
인간은 사물의 존재 근거를 파악하고(theoria), 존재의 목적을 이해하고(praxis), 그 목적대로 사용해야 하도록 숙달하는 것(chresis)을 뜻한다. 자유의지의 실제적인 활용이 중요한 것으로 보았다.
10) 교회연합의 정신과 평화를 위한 교육(전쟁의 억제와 분쟁의 해결)
코메니우스는 전쟁의 방지와 세계평화를 위하여 오늘날 유엔과 같은 국제협의 기구를 만들도록 제안하였고, 이 협의기구에는 세계의 학자들과 종교지도자들과 정치인들이 중심이 된 협의 기구였다. 그리고 국가간의 분쟁의 해결을 위한 국제 경찰과 재판소 설치에 대한 제안, 그 뿐만 아니라 그는 교회의 연합운동의 실천을 보여준 자이기도 한다. 1648년 베스트팔리아 평화조약에 따라 형제단 교회를 해체하였고, 그 자신은 화란의 개혁교회에로 망명하여 거기서 활동하였다. 신학 사상적으로는 칼빈의 개혁주의 신학에 근거하여, 삶의 신학을 보여준 자요, 동시에 교회연합의 정신을 보여 준 자이다. 이것은 오늘날 현대교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교회연합운동의 모범을 보여준 자로 평가할 수 있는 점이다.
[결론]
코메니우스는 현대 포스터 모던의 시대적 문제 해결을 위한 지혜를 여러 면에서 제시하고 있다는 독일의 코메니우스 연구가 중의 한 사람인 헨닝슈뢰어 교수가 평가한 대로 우리는 코메니우스의 학문적 소리에 경청할 때, 그는 21세기를 준비한 교육신학자라는 사실을 분명히 인지할 수 있다. 현재 인류의 당면한 문제는 철학적으로는 이성적 활동에만 전적으로 의지하는 사고의 한계, 신학적으로는 창조주 하나님을 잃어버린 세대, 환경오염과 생태계의 붕괴위기, 평화와 조화와 연합보다는 분리와 분쟁과 나누어짐이 극에 달한 기독교적 상황에서 답을 찾을 수 있다. 교육신학적으로는 인간성 상실의 시대, 교육의 목표를 상실한 시대, 지식의 축적을 배움의 목표로 착각하고 삶의 지혜를 잃어버린 세대, 전체를 알지 못하고 부분에만 매여있는 세대, 전인적인 모습을 잃어버리고, 소유획득을 위한 경쟁으로만 지향하는 세대에게 코메니우스는 역시 하나님의 계시에 의지하여 기독교 신앙의 통찰과 함께 명백한 대답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궁극적으로는 인간이 무엇을 의지해야 하며, 무엇을 행하고 살아야 하며, 무엇을 소망으로 삼고 살아야 하는 지를 분명하게 제시하고 있다는 면에서 그는 21세기를 준비한 확실한 교육신학자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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