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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ble & Church/Shema Isreal

행복한 자녀가 되게 하라

행복한 자녀가 되게 하라

마가복음 10:13~14

Introduction

저는 아침에 가끔씩 아이들을 깨우는 사명을 맡아 감당합니다. 아내가 제게 아이들을 깨우라고 합니다. 그러면 주저없이 아이들을 깨웁니다. 창조 이래로 남자는 여자 말 안 들으면 안됩니다. 무조건 들어야 합니다.

대개의 경우 큰 아들은 제가 깨우기 전에 스스로 일어나지만, 다른 녀석들은 오랜 시간을 들여 깨워야 합니다. 아침 잠을 깨우고 일어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때로는 짜증나는 일입니다. 그러므로 무작정 아이들에게 덤벼들지 않습니다. 방문을 열고 들어가서 아이들을 끌어안습니다. 아이들을 붙들고 뒹굽니다. 볼에 입을 맞춥니다. 얼굴을 쓰다듬습니다. 아빠가 사랑한다는 말도 빼지 않고 합니다. 그리고 아이들의 귀에다 조용히 말합니다. 오늘도 행복한 하루다. 신나게 일어나야지?! 그러면 아이들이 빙긋이 웃으면서 일어납니다. 먼저 장난을 걸어올 때도 있습니다.

저는 우리 아이들이 하루를 시작할 때 행복하게 시작하고, 또 하루를 마칠 때에도 행복하게 마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먼 미래의 행복을 위한다는 미명하에 오늘의 행복을 빼앗고 싶지 않습니다.

오늘날에는 가정 파괴와 더불어 많은 문제아들이 생겨나고 있습니다. 이 아이들이 성장해서 끔찍한 범죄를 저지르기까지 합니다. 저는 그 이유를 여러 측면에서 생각해 보았습니다. 부모들이 얼마나 열정적으로 아이들을 가르칩니까? 많은 돈을 투자합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아이들이 이리 뛰고 저리 뜁니다. 화요일에 제자반 성경공부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보면 학원 주변에 아이들이 많이 있습니다. 열시가 넘은 시간인데도 길거리에 아이들이 있습니다. 집에 갈 생각도 하지 않습니다. 한 번을 물어보았습니다. 집에 가야지? 그랬더니 아니랍니다. 학원으로 들어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아직도 공부해야 할 것이 많다는 말입니다. 돈과 시간을 투자하고, 또 온갖 좋은 것을 기대함으로 이것 저것을 다 시키는데, 세상은 더 아름다운 곳이 되기보다는 정말로 더럽고 끔찍한 일들 투성입니다. 그것은 어릴 때부터 행복을 모르고 자랐기 때문입니다. 사회적으로 물의를 일으키는 사건의 이면을 보면 행복을 모르고 자란 사람이 있습니다. 어릴 적 부모의 사랑을 받아보지 못했고, 또 행복에 대한 경험이 없으니 무엇이 참된 행복인지 알지 못합니다. 그리고 정신적 불량자가 되어서 사회에 엄청난 해악을 끼치고 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금 우리의 자녀들이 행복을 모른답니다. 이것은 결국 이 나라와 이 민족의 미래에 행복이 없다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므로 먼저 우리 성도들의 가정에서 사랑하는 자녀들에게 행복을 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 자녀들이 아침에 눈을 뜰 때에 행복하게 일어나고, 저녁에 잠자리에 들 때에 행복한 웃음으로 잠자리에 들 수 있게 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렇게 되면 우리 가정의 미래는 행복할 것입니다. 우리 교회와 이 나라 민족의 장래가 행복한 낙원이 될 것입니다.

Main Subject

1.

어느 부모가 자녀들의 행복한 삶을 반대하겠습니까? 성도들의 기도제목을 들어보면 대개의 경우 동일합니다. 자녀들이 잘되는 것입니다. 성공하는 자녀들이 되기를 바라고, 꿈과 비전을 이루는 자녀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궁극적으로 자녀들의 앞날에 하나님이 주시는 행복이 가득하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미래의 행복을 위한다는 이유로 자녀들의 현재의 삶에서 행복을 빼앗아 버리는 부모들이 참으로 많습니다. 성공제일주의, 지식제일주의, 일등주의에 사로잡혀서 자녀들을 학원으로 내몰고, 과외로 내몹니다. 자녀들의 적성이나 특기는 생각지 않고 무조건 공부만 잘해야 한다고 합니다. 결국 자녀들의 행복을 빼앗아갑니다. 예전에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라는 영화가 나온 적이 있습니다. 이 영화는 오늘날의 어른들에게 엄청난 경종을 주고 있는 것입니다. 자녀의 행복은 성적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지금 행복할 수 있을 때, 미래도 행복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알 수도 없는 미래를 위해서 지금의 행복을 빼앗아버려서는 안된다는 강한 웅변입니다.

저희 아버님은 자식에 대한 욕심이 많으셨습니다. 당신의 자식들은 어디에서든 우등생이 되기를 바라셨고, 뭐든지 잘하기를 바라셨습니다. 대부분의 부모들이 그럴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부모 아래서 자라는 자녀들을 어떻겠습니까? 끔찍합니다. 괴롭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학교에 갔던 형이 돌아오는 길에 교통사고를 당한 것입니다. 목격자들의 증언에 의하면 차에 치여서 공중으로 한참을 올라갔다가 땅바닥에 떨어졌다는 것입니다. 다들 죽은 줄 알았습니다. 그 때 아버지가 이렇게 후회했다고 합니다. 아이의 미래를 위해서 지금 아이의 행복을 빼앗으면 안된다. 이 아이가 언제 하나님께로 갈지 모르는데....

그렇습니다. 유한한 인생에게는 오늘이 있을 뿐입니다. 행복해야 할 오늘이 있을 뿐이지, 미래를 위해 오늘의 행복을 파괴해서는 안됩니다. 미래는 주님의 손에 있습니다. 내가 오늘을 행복하게 살아가면 주님은 더 좋은 행복을 주시지만, 오늘을 불행으로 살아가면, 미래 역시 행복을 기대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내일 일을 염려하지 말라고 하신 것입니다. 염려를 앞당겨 살아가지 말고, 행복을 앞당겨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 자녀들에게도 동일합니다. 미래의 행복을 오늘에 앞당겨 살아가고, 오늘도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게 해야 합니다. 미래의 행복을 위해서 오늘을 불행하게 살아야 한다면 그것은 옳지 않습니다. 오늘의 행복으로 미래의 행복을 꿈꾸며 살 수 있게 해야 합니다. 이것이 성경적입니다. 그러므로 전도서에서는 이에 내가 희락을 칭찬하노니 이는 사람이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는 것보다 해 아래서 나은 것이 없음이라 하나님이 사람으로 해 아래서 살게 하신 날 동안 수고하는 중에 이것이 항상 함께 있을 것이니라 (전도서 8:15)” 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무엇을 뜻합니까? 인생의 삶의 순간을 괜한 수고로 헛되이 보내지 말고, 매일 매일의 삶을 통해 하나님이 주시는 행복을 누리며 사는 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가장 지혜로운 삶이라는 말씀입니다. 이 말은 그렇다고 자녀들의 인생을 함부로 살게 내버려 두어도 괜찮다는 말씀은 아닙니다. 매일매일의 삶 속에서 건강한 행복을 누리게 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 자녀들에게 건강한 행복을 주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대답은 분명합니다. 건강을 지켜주면 됩니다. 자녀들의 건강을 지켜주는 것이 자녀들의 삶을 건강하게 행복하게 만들어주는 길입니다. 아무리 돈이 많고, 지식이 많으면 뭐합니까? 건강이 없으면 헛될 뿐입니다. 어떤 식당에 가보니 이렇게 쓰여 있었습니다. 돈을 잃은 것은 조금 잃은 것이요, 명예를 잃은 것은 조금 많이 잃은 것이요, 건강을 잃은 것은 전부 잃은 것이다. 그 말씀이 옳습니다. 건강하지 않으면 절대로 행복할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성경적 건강은 어떤 것입니까? 세 종류가 있습니다.

1.1.

첫째는 육체의 건강입니다. 17세기의 최대의 신학자라로 할 수 있는 코메니우스는 자녀를 양육함에 가장 중요한 것으로 건강관리를 꼽았습니다. 부모는 아이의 건강을 책임지고 지켜야 한다는 말입니다. 어린 아이는 아무것도 모릅니다. 물불을 가리지 않고 달려듭니다. 그러나 보면 평생에 걸쳐 불구로 지내야 하는 일이 생겨나게 됩니다. 그것은 결국 자녀의 꿈을 가로막는 일이 되고, 행복을 빼앗는 일이 됩니다. 그러므로 어떤 것 보다도 건강을 지키는 일을 위해서 부모는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함부로 인스턴트 식품 먹이지 마세요.

통계를 보니 이런 것이 있었습니다. 요즘의 학생들이 저녁식사를 거의 못한답니다. 저녁식사를 정식으로 먹지 못하는 학생들이 전체의 40%가량 된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아침에 나와서 학교에서 급식을 먹고, 저녁에는 학원에 가서 공부를 하는데 집에 와서 밥 먹을 시간이 없답니다. 그러다 보니 식당에서 제대로 된 식사를 사먹기보다는 간단한 간식, 컵 라면으로 대충 끼니를 때운다고 합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아이들의 건강에 문제가 생기는 것입니다. 육체가 건강하지 않으면 행복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자녀들에게 행복을 주려고 한다면 자녀의 건강을 위해서 세심한 관심을 가지고 돌볼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우리 아이들이 과외로 공부하는 것이 있습니다. 목사가 무슨 돈이 있어서 과외를 시키겠습니까? 그러나 꼭 시키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운동입니다. 아이들에게 운동을 시키고, 놀이를 배우게 합니다. 그렇게 하는 것은 이 아이들에게 공부보다 건강이 더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자기의 건강과 생명을 지키는 아이가 될 수 있게 하기 위함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자녀들을 병약한 아이로 만들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아이들에게 지나치게 피곤한 공부를 시키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풀어놓아 자유케 하시기를 바랍니다. 아이들이 건강하게 마음껏 뛰놀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을 마련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야 건강한 아이로 행복을 알게 될 것입니다.

1.2.

둘째는 정신의 건강입니다. 인터넷 시대가 되다 보니 도처에 음란물이 널려있습니다. 온갖 수단과 방법을 다 써 봐도 막을 재간이 없습니다. 아이들은 컴퓨터 게임으로 음란동영상으로 점점 더 폭력화되어가고 음란하게 되어갑니다. 정신세계가 황폐할 대로 황폐해져 가고 있습니다. 속으로 이렇게 생각할 것입니다. 우리 애는 괜찮다.. 다들 그렇게 생각한다고 합니다. 우리 애는 아직 어리기 때문에 그런 건 몰라.. 우리 애는 심성이 착해서 그런 나쁜 짓 하지 않을 거야.. 이럽니다. 그러나 이것이 속임수입니다. 사탄의 철저한 속임수입니다. 누군가가 이런 말을 해 주었습니다. 아이들은 집에서는 천산데. 밖에 나오면 마귀가 된다.는 것입니다. 부모에게는 천사로 보이지만, 실상 그 아이들의 모습은 음란과 포악함으로 가득하다는 것입니다. 그만큼 우리 시대의 정신세계가 황폐하게 되어 있습니다. 정신이 건강하지 못한 아이들로 가득합니다.

왜 정신이 건강하지 못합니까? 인터넷이나 TV를 통해서 우리 아이들이 사랑을 왜곡되게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부모 역시 아이들에게 참된 사랑을 보여주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부모는 학교에 보내고, 학원에 보내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아이들에게 용돈만 많이 주면 좋은 부모가 되는 줄로 생각합니다. 사랑은 고사하고, 부모가 음란과 폭력에 빠져있고, 또 싸움질만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모습을 보여주지도 못할 뿐만 아니라, 아이들에게 사랑을 표현하지도 못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이들이 가정에서 사랑을 배우지 못합니다. 결국 이 아이들의 건강한 정신을 가질 수 없고, 결코 행복할 수 없습니다. 정신이 건강 하려면 사랑을 많이 받아야 합니다. 참사랑이 무엇인지 알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자녀들의 정신을 건강하게 하기 위하여 힘써 사랑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관심을 기울여 주시기를 바랍니다. 보듬어 안아주시기를 바랍니다. 부모가 먼저 사랑한다고 고백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가정에서 진실한 사랑의 아름다움을 보여주시기를 바랍니다. 그렇게 되면 세상이 온갖 음란함과 포악함으로 가득하게 되어도 우리 자녀들은 건강한 정신을 갖게 될 것입니다.

1.3.

세째로 영적인 건강입니다. 이것이 이 셋 중에 가장 중요합니다. 사도 요한은 요한3서를 통해서 말씀했습니다. 네 영혼이 잘됨 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바란다. 이 말씀은 영적인 건강이 인생의 모든 행복과 불행을 좌우하는 열쇠가 된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감옥에서도 기뻐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고난 중에도 감사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는 언제 어디서나 행복했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환경과 형편이 좋았기 때문은 아닙니다. 감옥이요, 매맞음을 좋아할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나 그에게는 매 맞는 것조차 심지어는 순교의 제물이 되는 것까지도 행복이었습니다. 주님의 고난에 참여할 수 있었기에 감사의 이유가 되었던 것입니다.

영적인 건강이 모든 건강을 좌우합니다. 모든 행복의 근원이 됩니다. 그러므로 자녀들에게 영적으로 건강할 수 있게 해야 합니다. 잘못된 이단 교리에 빠지지 않게 해야 합니다. 영적으로 해이하고 나태하지 않게 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의 충만한데 이르기까지 최선을 다해 돌아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못합니다. 한국교회와 성도들에게 행복이 사라지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자녀들이 영적으로 건강하지 못하기 때문에 정신도, 육체도 형편없이 나약하고, 결국은 행복하지 못합니다. 신앙의 부모들조차도 자녀들의 영적 건강을 위해서는 무신경합니다. 주님은 사람이 떡으로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말씀으로 살 것이니라고 하셨지만, 오늘날의 신자들은 자녀들에게 그렇게 말하지 않습니다. 말씀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밥으로 살고, 돈으로 산다고 합니다. 이것이 결국 행복을 빼앗아간 것입니다. 말씀으로 살면 영적 건강함으로 행복을 얻을 것이지만, 돈으로, 밥으로 살면 영적으로는 죽은 자와 같이 되어 사망의 그늘 아래 놓이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우리 자녀들의 영적 건강을 위해서 힘써 수고함으로 우리 자녀들의 삶에 행복을 줄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본문은 우리의 자녀들이 어떻게 해야 영적으로 건강하며, 행복한 자녀가 될 수 있는가를 말씀합니다. 본문 13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사람들이 예수의 만져주심을 바라고 어린 아이들을 데리고 오매 제자들이 꾸짖거늘 (마가복음 10:13)

2.1.

여기에 보니 자녀들이 영적으로 건강함으로 행복을 얻게 하기 위해서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예수께 데리고 나오는 것입니다. 따라 합시다. 예수님께 데리고 나아와야 한다. 그렇습니다. 우리 자녀들을 컴퓨터 앞으로, 학원으로, 친구들에게로 보내기 전에, 좋은 과외선생님에게 보내기 전에 예수 그리스도에게로 데리고 나와야 합니다.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해야 합니다.

부모됨의 제일된 사명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부모의 자리를 주신 것은 자녀들을 예수 그리스도에게 데리고 나아오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많은 돈으로, 또는 재미있는 여가생활로, 우수한 과외선생으로 아이에게 모든 것을 다 채워주었다고 해도, 정작 예수 그리스도에게 데리고 나아가지 않는다면, 그 부모는 부모노릇을 못하는 것입니다. 자기에게 주어진 최대의 사명을 감당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부모는 모름지기 자녀를 예수께 데리고 나아와야 합니다. 그리고 그 아이들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은혜를 받게 해야 하고, 영적으로 건강한 자녀가 되게 해야 합니다.

요즘은 믿는 가정에서 주일날에도 자녀들을 교회에 보내지 않습니다. 어릴 적부터 신앙으로 양육해야 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무릎에서 자라게 해야 하는데, 자기 무릎에 끼고 앉아서 예수님과의 거리를 멀리합니다. 처음에는 행복한 것처럼, 편안한 것처럼 여겨질 수 있습니다. 다른 아이들보다 잘 되는 것같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망하는 길입니다. 아이들을 주일학교에 보내고, 교회로 보내야 합니다. 그리고 주일학교에서 내준 숙제도 하게 해야 합니다. 요절도 암송하게 해야 하고, 찬송도 부르게 해야 합니다. 성경공부도 참여하게 하고, 각종 교회의 활동에 아이들을 참여시켜야 합니다. 아이들의 자치활동을 격려하며, 교회에서 놀 수 있게 해 주어야 합니다.

아이들이 교회에서 노는 꼴을 두고 보지 못하는 부모님들이 많이 있는가 봅니다. 집에 가서 공부나 하라고 합니다. 그런다고 아이들이 공부할 줄로 아십니까? 착각하지 마십시오. 교회에서 못 놀게 하면 아이들을 다른 곳에 가서 놉니다. 게임방에 가고 PC방에 가서 놉니까? 아이들이 교회에서 놀 수 있도록 유도하셔야 합니다. 신앙생활하는 친구들과 함께 예수님의 무릎에서 지낼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이렇게 될 때에 주님이 기뻐하시고, 그 아이들이 행복한 아이들이 될 수 있습니다.

아이들을 예수님께 데리고 나오는 사람들을 보고서 제자들이 꾸짖었습니다. 어찌 생각하면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심히 바쁜 가운데 있었습니다. 예수님을 만나기 위해서 어른들도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는 지경입니다. 이처럼 많은 인파 속에 쌓여있는 예수님, 그리고 심히 바쁜 중에 계신 예수님에게 어린 아이까지 데리고 나와서 소란을 피우니 제자들의 입장에서는 짜증이 난 것입니다. 예수님을 피곤하게 하지 말라고 부모를 꾸짖었던 것입니다. 당신들이 생각이 있는 사람입니까? 예수님이 이렇게 바쁘신데, 예수님의 입장도 생각을 해 주셔야지. 어떻게 어린아이까지 데리고 나와서 예수님을 피곤하게 합니까? 제자들의 말은 참으로 예수님을 염려하는 마음으로 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것에 대하여 달갑게 여기시지 않았습니다. 이를 보고 주님은 심히 분노하셨습니다. 본문 14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예수께서 보시고 분히 여겨 이르시되 어린 아이들의 내게 오는 것을 용납하고 금하지 말라 하나님의 나라가 이런 자의 것이니라 (마가복음 10:14)

제자들이 예수님께 아이들이 오는 것을 가로막자 예수님은 분히 여기셨습니다. 여기에 분히 여기셨다는 말씀이 중요합니다. 예수님이 어디에 분노하십니까? 마귀의 역사에 분노하십니다. 귀신의 역사에 분노하십니다.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는 곳에 분노하십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아이들을 예수님께 나아오지 못하게 막는 일은 마귀짓이라는 이야기입니다. 공부를 핑계삼아 아이들이 주님께 나아오는 것을 막고, 이런 저런 이유로 아이들이 주님 앞으로 인도하지 않는 것은 주님이 분히 여기시는 일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맡기신 자녀들을 주님께로 데리고 나아와야 합니다. 아직도 세상에 숨겨두고, 집안에 숨겨두고, 학원이나 다른 곳으로 보내놓고 아이들을 주님의 품으로, 교회로 데리고 나아오지 않고 있다면 주님이 분노할 수 밖에 없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왜 주님은 분노하셨습니다. 주님께 나아와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을 받지 않고서는 결코 아이들의 행복은 세상에서 찾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세상 어디에서도 아이들에게 건강한 영적 웃음을 줄 수 있는 곳이 없습니다. 오직 주님 품안에서만 가능합니다. 주님께 나아와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을 받을 때에 가능합니다. 그러므로 우리 자녀들을 주 예수께 데리고 나아와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을 받을 수 있게 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2.

둘째는 우리 자녀들이 영적으로 건강하고 행복한 자녀가 되게 하려면 축복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제사장에게 주신 권세가 있습니다. 그것은 축복권입니다. 동시에 부모에게 주신 권세가 있습니다. 그것 또한 축복권입니다. 축복권이란 어떤 것입니까? 그가 축복하면 그 축복이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제사장이 이스라엘 백성을 축복하면 그 축복이 그대로 이스라엘 백성에게 이루어지게 하셨습니다. 부모에게 축복의 권세를 주셨는데, 부모가 자녀를 향해서 축복하면 그대로 이루어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왜 하나님은 이런 축복의 권세를 주셨습니까? 그것은 바로 자녀를 행복하게 하기 위해서 입니다. 자녀들에게 행복을 주기 위해서 부모는 자녀에게 마음껏 축복하는 사람이 되어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전에도 소개했던 책이 있습니다. 읽어보신 분이 있으신지 모르겠습니다만, 꼭 읽어보시기를 바랍니다. 하루에 한번 자녀를 축복하라는 책입니다. 이 책에서는 치사율 90%이상이 된다고 하는 췌장암에 걸린 마시라는 딸아이가 어떻게 치료되었는가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축복이었습니다. 부모는 그 아이에게 매일 축복했습니다. 그랬더니 하나님께서 그 축복을 들으시고, 그의 병에서 호전되게 하셨습니다. 놀라운 기적이 일어나게 했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축복은 기적을 일으킵니다. 불량한 자식을 건강한 자식이 되게 합니다. 실패한 자녀를 성공적인 자녀로 만들어 줍니다. 하나님의 축복이 늘 그 위에 함께 하는 사람, 형통한 길로 인도함을 받는 사람이 됩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말씀합니다. 은은 풀무로, 금은 도가니로 연단하지만 사람은 칭찬으로 연단한다는 것입니다. 사람을 세우는 것은 칭찬입니다. 축복입니다. 그것이 가득할 때에 우리의 자녀들은 행복한 사람이 됩니다.

본문에 나오는 아이들의 부모가 아이들을 예수님께 데리고 나온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들은 아이에게 축복이 있기를 바랬습니다. 예수님께서 베푸시는 축복의 선언을 듣게 하고 싶었습니다. 그렇습니다. 믿음의 사람들은 아이들을 단순한 꾸지람으로, 폭력적인 비난으로 양육하지 않습니다. 축복으로 양육합니다. 욕설과 저주로 양육하지 않습니다. 거룩한 손을 들고 축복함으로 양육하기를 바랍니다. 그렇게 될 때에 비로소 가정에 참된 행복이 찾아오게 됩니다.

Conclusion & Blessings

이제 말씀을 맺으려고 합니다. 어린이 주일을 맞이하여 우리는 하나님께서 맡기신 우리의 자녀들을 어떻게 양육할 것인가를 생각해 봅니다. 세상의 명예나 권세를 얻는데 욕심을 내지 말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자녀들이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 가운데 행복한 자녀들이 되기를 소원해야 할 것입니다. 이를 위해서 많은 것을 교육해야 합니다. 훈련도 시켜야 합니다. 좋은 구경도 시켜주어야 합니다. 그러나 그 무엇보다도 행복한 자녀들이 되게 해야 합니다. 행복이 무엇인지 알고, 그 행복의 길을 걸어갈 수 있는 자녀들이 되게 해야 할 것입니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우리 자녀들을 건강하게 해야 합니다. 육체가 건강하고, 정신이 건강하고, 또 영혼이 건강할 수 있게 해야 합니다. 그렇게 될 때에 우리 자녀들은 행복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무엇보다도 영적 건강을 위해서 부모는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자녀들을 예수님의 품안으로 데리고 나아와야 합니다. 부모의 욕심에 따라 자녀들을 세상으로 내 몰아서는 안됩니다. 학원으로 내몰고, 또 과외로 내몰고, 다른 곳으로 내 몰아서는 안됩니다. 그것은 주님으로 하여금 심히 분노케 하는 일이 될 뿐만 아니라 자녀들의 행복을 가로막는 것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주님께 데리고 나아와야 합니다.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을 받게 하며, 동시에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을 받게 해야 합니다. 들어가도 나가도 자녀들에게 축복을 선포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렇게 되면 우리 자녀들은 행복한 자녀가 될 것입니다. 우리가 축복한 대로 위대한 하나님의 사람으로 세상 속에 우뚝 선 위대한 인물이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자녀들을 주님께 데리고 나아와 주의 축복 가운데 자라게 하심으로 항상 건강하고 행복한 삶을 살게 하시는 온 교회와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출처 :마포중앙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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