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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ble & Church/Shema Isreal

거듭나지 않으면


거듭나지 않으면

요한복음 3:1~5

Introduction

지혜로운 것과 똑똑한 것에는 차이가 있다고 합니다. 어떤 사람은 천재적인 지능을 갖고 태어났습니다. 뭐든지 한번만 읽으면 거의 다 외울 정도입니다. 계산이 얼마나 빠른지 모릅니다. 그러나 지혜가 없으므로 실패하는 인생을 사는 사람이 있습니다. 반면에 어떤 사람은 어리석습니다. 아는 것도 없고, 학식도 짧습니다. 그러나 그는 지혜가 있어서 인생을 성공적으로 살아갑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어떤 사람입니까? 땅에 살지만 하늘을 품고 사는 존재입니다. 땅이 주는 기쁨에 연연하는 자가 아니라, 하늘 기쁨으로 행복한 사람입니다. 땅에 속한 것에 연연하지 않고, 하늘 소망을 인하여 인생을 크고 넓게 볼 수 있는 사람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저는 우리 성도들이 하나님이 주시는 지혜로 충만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이 땅의 보이는 것에 연연하다가 행복을 잃고, 기쁨을 잃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영원한 행복을 바라보면서 그 기쁨으로 인하여 넉넉하고 관대하고, 행복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Main Subject

1.

사람들은 많이 배우면 지혜와 통찰력을 갖고, 행복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많은 것을 가지면 행복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행복을 위해서 공부하고, 또 수고해서 소유하려고 합니다. 자녀들을 교육하면서 뭐라고 말합니까? 지금 행복해라. 이렇게 말하시는 분들은 거의 없습니다. 공부 열심히 해라. 좋은 직장에 취직해야 한다. 그러면 행복할 수 있다. 이렇게 가르칩니다.

저는 공부하는 것 자체를 비관적으로 보진 않습니다. 좋은 대학에 들어가서 공부를 많이 하면, 또 많은 것을 소유하면 다른 사람들보다 더 편리할 수 있고, 또 행복할 수 있는 기회가 많이 주어집니다. 그러므로 많이 공부해야 하고, 또 많이 가질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지식과 소유가 우리를 행복하게 하는 본질인 것처럼 살아가는 것은 문제입니다. 본문 1~2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1 바리새인 중에 니고데모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유대인의 관원이라 2 그가 밤에 예수께 와서 가로되 랍비여 우리가 당신은 하나님께로서 오신 선생인 줄 아나이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아니하시면 당신의 행하시는 이 표적을 아무라도 할 수 없음이니이다 (요한복음 3:1~2)

여기에 니고데모라는 사람이 등장합니다. 그는 바리새인이었습니다. 우리가 성경을 자주 읽으면서 바리새인에 관한 부정적인 생각을 많이 갖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바리새인에 대하여 책망하시고, 심지어는 저주까지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님 당시에 바리새인들은 그렇게 나쁜 사람들만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원래 바리새인이라는 말은 구별된 사람들이라는 뜻을 갖고 있습니다. 세상과 구별된 사람, 거룩한 무리들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하고, 그 말씀을 철저하게 지키기 위해서 혼신의 힘을 다한 사람입니다. 구약성경에 기록된 메시야를 기대하며 소망 중에 기다리던 사람들이었습니다. 혼탁한 세상 속에 말씀으로 빛이 되고, 민족의 꿈을 이루어가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유대인의 종교적 지도자들이었습니다. 율법을 가르치는 교사들이었습니다. 당대의 최고의 영적, 도덕적 지도자들이었습니다. 그런데 니고데모가 바로 여기 바리새파에 속한 사람이었습니다. 율법을 사랑하고, 그 말씀을 따라 하나님을 섬기는 거룩한 삶을 살고자 했던 사람이었습니다.

게다가 니고데모는 유대인의 관원이었습니다. 여기에 관원이라는 말은 당시에 유대사회의 종교적, 정치적 통치기구인 산헤드린 공회라는 것이 있었는데, 그 공회의 회원이었다는 것입니다. 요즘 식으로 말하면 종교와 정치를 통합하는 국회의 국회의원이었다는 것입니다. 국가의 모든 의사결정이 여기에서 이루어졌습니다. 모든 중요한 재판도 여기에서 이루어졌습니다. 한 마디로 니고데모는 막강한 권력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또 예수님의 십자가 장면에서 보면 그는 많은 재물을 갖고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사람이 밤에 예수님을 찾아와서 고백합니다. 랍비여, 당신은 하나님께로서 오신 선생인 줄을 내가 압니다. 그는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지 안다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존경을 받아 마땅하신 분이며, 하나님의 위대한 사역자라는 것입니다.

니고데모는 세상에서 높은 지위와 신분을 얻고, 재물을 얻고, 또 많은 학문으로 통찰력을 얻었기 때문에 예수님의 행하시는 것을 보면서 예수님이 어떤 분인지 알겠다고 했습니다. 다시 말하면 그는 자기의 수고와 노력으로, 또 자기의 학식으로 행복의 길이 어디에 있는지 안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오늘날에도 이런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조금 많이 배웠으면 행복의 길이 어디에 있는지 아는 것처럼 말합니다. 다른 사람보다 조금 높은 지위에 올라섰으면 성공의 길이 어디에 있는지 아는 것처럼 행동합니다. 그러나 행복의 길과 성공의 길, 축복의 길은 다른 사람보다 많은 지식을 가졌기에 알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다른 사람보다 많이 가졌기에 아는 것도 아닙니다. 바리새인이 되고, 유대의 관원이 되었다고 해서, 랍비로서 훈련을 많이 받았기 때문에 행복의 길을 아는 것이 아닙니다.

2.

니고데모는 자신이 예수님을 안다고 생각했습니다. 행복과 축복의 길을 안다고 생각했습니다. 천국의 길을 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때 예수님은 니고데모의 말을 들으시고, 대뜸 이상한 말씀을 하십니다. 본문 3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요한복음 3:3)

니고데모는 예수님이 얼마나 위대한 분인지 자기가 알겠다고 하며, 칭찬을 아끼지 않는데, 예수님은 뜬금없이 거듭나지 않으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다고 하시는 것입니다. 뭔가 앞뒤가 맞지 않는 말 같습니다. 그러나 자세히 보면 예수님의 말씀에는 의미심장한 것이 숨겨있습니다. 3절의 말씀을 다시 설명하면 이렇습니다. 예수님이 누군지 알고, 하나님의 나라를 보는 것은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다. 거듭난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그런데 네가 거듭났다고 생각하느냐? 너는 아직 거듭난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내가 누군지 정확하게 알 수 없다. 예수님은 니고데모에게 너는 나를 위대한 선생으로 보았을지 모르지만 내가 누군지 아무 것도 모르는 영적으로 무지한 존재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니고데모이 비록 바리새인이고, 유대의 종교지도자라고 해도, 또 많은 학식과 재능을 갖고 있다고 해도 그것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있는 행복한 사람이 되지는 못한다고 했습니다. 천국의 행복, 영원한 기쁨은 아무에게나 주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세상에서 아무리 귀한 신분을 가져도 지위를 가져도, 그런 것으로 천국의 행복을 소유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가 이 사실을 분명히 기억해야 합니다. 천국의 행복을 소유하지 못한 사람은 누구를 막론하고 불쌍한 사람입니다. 큰 기업을 운영하는 Ceo라고 해도, 정치권력을 장악하고 있는 대통령이나 국회의원이라고 해도, 세계 최고의 석학으로 명성을 떨치고 노벨상을 수없이 많이 받았다고 해도 그런 것으로 천국의 행복, 영원한 기쁨을 얻을 수는 없습니다. 주님은 그런 것만을 가지고는 하나님 나라는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주님은 거듭나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거듭나야 합니다. 우리의 심령이 거듭나야 합니다. 우리의 영혼이 거듭나야 합니다. 비록 세상에서는 천덕꾸러기요, 아무것도 배우지 못한 무지랭이라고 할지라도 우리의 심령이 거듭나고, 우리의 영혼이 거듭나기만 한다면 그는 세상 어느 누구도 줄 수 없는 천국의 행복을 얻을 수 있습니다. 니고데모도 제대로 알지 못하는 예수 그리스도를 알게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천국을 보게 되고, 그 기쁨 가운데 살아가게 됩니다.

우리 주변에 그런 일이 얼마나 많습니까? 세상적으로는 잘 되는 사람이지만 영적으로 아무런 축복을 소유하지 못하고 사는 사람을 볼 수 있습니다. 반면에 세상적으로는 보잘 것없지만 영적으로는 풍성해서 항상 행복한 사람들도 있습니다. 무엇 때문에 이런 일이 일어납니까? 세상의 지혜로운 자들이 이처럼 한 없이 무지해 지고, 세상에 무지한 사람이 이처럼 영적 지혜로 무장하게 됩니까? 그것은 바로 거듭남에 비밀이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영원한 행복, 참된 행복을 누리기 위해서는 영적 지혜를 가져야 합니다. 이것은 세상의 학문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세상의 지위나 권세로 취할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오직 방법은 하나 거듭나야 하는 것 뿐입니다. 거듭날 때에 영적 지혜를 얻게 됩니다. 하나님을 알고, 예수 그리스도를 알게 됩니다. 성경을 알고, 창조의 섭리를 알게 됩니다.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이 무엇을 뜻하는지 깨닫게 됩니다. 기적을 창조하는 능력의 사람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거듭난 사람으로 천국의 행복을 날마다 누리며 살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3.

영적 지혜를 얻고, 행복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거듭나야 합니다. 이것이 주님의 교훈입니다. 그렇다면 거듭남이 무엇입니까? 원문성경에서 거듭나다라는 말은 겐네떼 아노뗀 (gennhqh'/ a[nwqen)이라고 합니다. 이 말은 낳다는 뜻의 겐나오와 다시, 또는 위로부터 라는 뜻의 아노뗀의 조합입니다. 이 말은 이중적인 의미가 있는데, 문자적으로 두번째 태어나다는 뜻이 있고, 또 다른 측면에서 위로부터 태어나다라는 뜻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이 둘을 동시에 설명하는 형식으로 이 용어를 사용한 것같습니다. 땅에 속한 사람으로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위로부터 다시 태어나게 되는 것 즉 위엣 것을 사모하는 사람으로 다시 태어나게 되는 것을 뜻합니다.

그렇습니다. 이 땅에 속한 것에 연연해서 살아가는 사람은 영적 지혜를 얻을 수도 진정한 행복을 얻을 수도 없습니다. 허무한 인생을 살다가 육신의 죽음과 함께 모든 것을 끝내고 말 뿐입니다. 그러나 육신에 속한 옛 사람을 버리고 위엣 것을 소망하는 새 사람으로 다시 거듭나게 될 때에 그는 하나님이 허락하시는 영적 지혜를 얻게 되고, 영원한 축복과 행복을 누릴 수 있게 됩니다.

니고데모는 비록 유대의 종교지도자였지만 그는 거듭난 자가 되지 못하고 땅엣 것을 생각하는 사람이었습니다. 본문에서는 니고데모가 밤에 예수님을 찾아온 것을 중요하게 다루고 있습니다. 신학자들은 이것을 니고데모가 사람들의 눈을 의식했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다시 말하면 그는 땅에 속한 자기의 체면이나 지위를 생각했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께 나오는 것을 부끄럽게 생각했습니다. 은혜를 부끄럽게 생각했습니다. 주님을 믿고, 주님과 교제하는 것에 당당하지 못했습니다. 그는 땅에 속한 것에 연연하는 사람인 것입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땅에 속한 것을 생각하고, 땅 아래만을 쳐다보고 살아갑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축복을 기대하는 사람은 위를 쳐다보아야 합니다. 바울은 말씀했습니다. 땅엣 것을 생각하지 말고 위엣 것을 생각하라(골로새서 3:2) 고 말씀했습니다. 위엣 것을 바라볼 때에 하나님의 보좌가 보입니다. 하나님의 축복이 보입니다. 하나님의 지혜가 보이고, 능력과 권능이 역사합니다. 그러므로 이 땅엣 것을 생각하는 사람을 벗어버리고, 위엣 것을 향해 푯대를 정하고 달려가는 거듭난 사람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거듭난 자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나라를 보고, 또 들어갈 수 있는 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

본문은 옛 사람을 버리고 새 사람으로 거듭나는 길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본문 5절 말씀을 함께 보겠습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요한복음 3:5)

여기의 말씀에 보니 거듭남의 원리가 소개되고 있습니다. 어떻게 거듭나야 합니까?

3.1.

첫째는 물로 거듭나야 합니다.

거듭나는 것은 물로 거듭납니다. 이 말은 해석이 쉽지 않습니다. 학자들에 따라서 여기의 물을 다양하게 해석을 합니다. 그러나 신약적 사고방식에 근거해서 보면 여기의 물은 세례와 깊은 관련이 있는 것으로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리고 세례는 물로 씻음의 형식을 취하므로 죄 씻음을 표상합니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물로 거듭나야 한다는 것은 어떤 형식적인 세례를 받아야 한다는 말이기 보다는 죄씻음을 받아야 한다는 뜻으로 보아야 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죄를 씻을 때에 영적 지혜를 얻게 되고, 그것으로 말미암은 하나님의 나라와 축복을 얻게 되어집니다. 하나님은 죄를 증오하십니다. 아담과 하와가 범죄하였을 때에 하나님은 그들은 사랑하셨지만 에덴 동산에 두시지 않았습니다. 그곳에서 쫓아내셨습니다. 그리고 다시는 에덴 동산을 쳐다보지도 못하게 화염검으로 울타리를 치시고, 천사들로 경계하여 지키게 하셨습니다. 죄를 가지고서는 영적 지혜를 얻을 수가 없습니다. 죄를 가지고서는 하나님의 나라를 바라볼 수 없습니다.

지난 날 놀라운 영적 체험이 있던 사람이라도 죄에 오염되면 그 순간부터 영혼이 흐려집니다. 구속하신 주님의 은혜가 보이지 않습니다. 아무리 십자가를 떠올려 보아도 십자가 위에서 우리를 위해 베풀어주신 주님의 사랑이 느껴지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하고,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합니다. 천국의 행복은 사라지고 맙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죄를 멀리할 것을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거듭난 사람이 되어서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을 마음껏 누릴 수 있는 그런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그런 성도들이 되어야 합니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우리 교회 안에, 또 우리 가정에, 우리의 삶 속에 조그만 죄악이라도 철저히 괴멸시켜야 합니다. 남김없이 주 앞에 내려놓고 회개해야 합니다. 죄를 깨끗이 씻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러므로 옛 사람은 사라지고, 새 사람을 힘입고, 영적 지혜로 말미암아 천국의 행복을 누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3.2.

둘째는 성령으로 거듭나야 합니다.

주님은 거듭남은 성령으로 거듭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거듭남이 인간적인 수단과 방법으로 이루어질 수 없음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직 성령께서 함께 하시고, 도우시며, 은혜를 허락하실 때에 비로소 거듭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전적으로 성령의 뜻에 달려 있는 것입니다.

어떻게 생각하면 거듭남은 성령의 역사이기 때문에 우리의 능력 밖의 일이며, 우리의 어떤 수고나 노력을 기대하지 않는 것같습니다. 물론 거듭남은 인간적은 어떤 공로때문에 주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성령은 인격적인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성령은 그의 뜻에 복종하는 자에게 임하여 오시고, 성령의 인도하심 앞에 모든 것을 맡기며 나아가는 사람에게 함께 하십니다.

거듭남을 원하는 사람은 자기의 힘과 능력을 부인해야 합니다. 그리고 오직 성령의 인도하심 앞에 복종함으로 성령의 오심을 사모해야 합니다. 오순절 날에 주님의 제자들이 성령을 사모하며 기다린 것처럼 기다려야 합니다. 사모해야 합니다. 그렇게 되면 하나님의 성령은 그의 백성들 가운데 역사하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말씀을 통하여, 또 우리의 양심을 통하여 성령의 뜻을 전하십니다. 그러나 우리가 육신의 소욕을 따라 성령의 소욕을 죽이면 우리는 결코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의 삶을 살 수 없을 것입니다. 영적 지혜의 사람이 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말씀을 따라 명하시는 성령의 뜻을 순종하고, 늘 기도함으로 성령의 임재하심을 사모하며 기다리게 되면 성령은 반드시 임하십니다. 우리의 마음을 완전히 뒤집어 엎으십니다. 우리로 하여금 완전히 새로운 사람이 되게 하시고, 지금까지 알지 못했던 천국의 행복을 누리게 하십니다. 영적인 감격을 얻게 하십니다. 두 눈에 은혜로 말미암은 기쁨의 눈물이 고이게 하시고, 감사함으로 하나님을 찬송할 수 있는 천국의 사람이 되게 하십니다.

Conclusion & Blessings

이제 말씀을 맺겠습니다. 영적 지혜를 갖지 못하면 살아도 죽은 자입니다. 세상에 아무리 많은 부귀와 영화를 누려본들 영적 지혜가 없는 사람은 불쌍할 뿐인 존재들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도 없고, 그 나라에 들어갈 수도 없기 때문입니다. 천국의 행복은 맛도 보지 못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어리석게도 사람들은 이 땅에서 바리새인이요, 유대의 관원이 되는 것과 같이 세상적인 지위와 신분, 또는 교회의 직분과 같은 것으로 천국을 보고, 그 행복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영적 지혜를 가진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주님은 니고데모의 사례를 통해서 말씀하셨습니다. 바리새인 아니라 유대인의 관원이요, 산헤드린 공회원의 할아버지라고 해도 거듭나지 않으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도 없고,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도 없다는 것입니다.

거듭나야 합니다. 이것이 관건입니다. 우리의 신분이 비천해도, 보잘 것없어도, 우리의 소유가 궁핍한 지경에 있다고 해도 거듭나기만 하면 천국의 기쁨이 주어지게 됩니다. 세상이 알지 못하는 평안이 주어지게 됩니다. 어느 누구도 감히 접근할 수 없는 천국의 행복한 곳으로 마음껏 출입할 수 있게 됩니다. 그러므로 거듭난 사람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세상의 것에 목적을 두고 살아가는 사람, 땅엣 것만을 바라보고 사는 짐승과 같은 사람이 되지 말고, 위엣 것을 볼 수 있는 영적 지혜의 사람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늘 물로 몸을 씻음 같이 우리 영혼의 죄를 씻고, 성령의 인도하심 앞에 순종함으로 그의 은혜를 기다릴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이 영적으로 어두운 세상 속에서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서 하나님의 나라에 이를 수 있는 축복이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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