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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ble & Church/Shema Isreal

예수는 주시라


예수는 주시라

로마서 10:9~13

Introduction

인터넷에서 자료를 검색하다가 눈을 사로잡는 단어를 보게 되었습니다. 공시생 이라는 말이었습니다. 난생 처음 듣는 말이었습니다. 궁금증이 생겨 무엇인지 검색해 보았습니다. 공시생이란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수험생을 뜻하는 말이었습니다. 고시생이라는 말은 많이 들어봤어도 공시생이라는 말은 낯설었습니다.

뉴스 보도에 의하면 오늘 8일 오전에 서울시 공무원 채용시험이 치루어진다고 합니다. 그래서 지방에 있는 공시생들이 7급, 9급 공무원시험을 치루기 위해서 서울로 상경을 하는데 그 수가 엄청나다는 것입니다. 전국에서 6만 7000여명의 수험생들이 7일과 8일 새벽에 서울로 향했고, 서울과 수도권 지역 수험생까지 포함하면 총 응시자는 14만4445명. 경쟁률만 83.4대 1이나 된다고 합니다.

8일 새벽에 서울로 향하는 KTX 열차는 매진돼 철도공사는 8일 새벽에 임시열차를 배정했으나 이마저도 모두 매진되었습니다. 이에 따라 지방에서는 여행사와 학원이 공동으로 수험생을 대상으로 아예 1박2일 패키지 상품을 개발해 팔았는데, 이 상품도 날개돋친 듯 팔려 나갔다는 것입니다. 공무원 시험을 치루기 위해서 공무원 구직 대이동이 이루어졌다는 것입니다.

저는 이런 현상을 보면서 우리가 살아가는 인생이 결코 쉽지만은 않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치열한 전쟁터와 같습니다. 잠시만 한눈을 팔아도 생존의 위협을 느끼게 됩니다. 안락한 삶을 보장받기란 하늘의 별따기처럼 어려운 것입니다. 끊임없이 일자리를 찾아야 하고, 또 일을 해야 합니다. 다른 사람보다 앞서 가기 위해서 자기 개발을 꾸준히 해야만 합니다. 그래야 생존할 수 있습니다. 이런 세상을 살려니 피로감이 몰려옵니다. 스트레스는 극에 달합니다. 잠시도 평안을 얻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은 이처럼 치열한 삶의 현장에서 분투하며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에게 위로와 축복의 하나님이 되심을 믿습니다. 생존경쟁이 치열하여 잠시도 눈을 돌릴 수 없는 상황 속에서도 우리 하나님은 우리에게 평안과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이 되심을 믿습니다. 한 주간 동안에 힘들고 어려운 삶을 살아오셨겠지만, 우리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며, 도우실 것을 믿고 위로를 얻고, 용기를 낼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Main Subject

1.

인생은 치열한 전쟁터입니다. 살기 위해서 싸워야 하고, 성공과 승리를 보장받기 위해서 부단히 노력해야 합니다. 이처럼 치열한 전쟁터를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을 향해서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인생의 승리와 성공은 우리의 수고나 노력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있다는 것입니다. 극렬히 타는 풀무가운데서 건짐을 받는 것도, 골리앗과 더불어 싸워 이기는 것도 우리의 힘이나 능력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닙니다. 승리케 하시는 하나님의 손에 있습니다. 가나안을 정복하고, 그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되는 것도 오직 하나님의 손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 살벌한 세상 속에서 영원한 승리와 축복을 얻기 위해서는 우리의 수고나 노력보다 우선적으로 우리 주님을 인정할 수 있어야 합니다. 행복을 주시며,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을 믿어야 하는 것입니다.

본문은 구원의 길을 우리에게 제시해 주고 있습니다. 구원이라 함은 대개 축복과 행복을 뜻하는 말입니다. 험한 세상을 살아가며 축복을 얻고, 행복한 삶을 살아갈 수 있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 본문은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수고해야 한다. 노력해야 한다. 열심히 살아야 한다.. 이렇게 말씀하지 않습니다. 본문 9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얻으리니 (로마서 10:9)

어떻게 해야 구원을 얻는다고 합니까?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고,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믿으면 구원을 얻는다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구원과 축복은 믿음으로 주어집니다. 그러므로 예수를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때, 인생의 수고하고 무거운 짐이 벗어지게 되고, 염려와 근심이 사라지게 되고, 참된 행복이 임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1.1.

본문에 보니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믿음이란 예수님을 주로 인정하는 것입니다. 라는 말은 원문성경에서 퀴리오스(kuvrio")라고 하는데 이 말은 주인, 왕, 황제를 뜻하는 말입니다. 주권자, 통치자의 개념입니다. 그렇습니다. 믿음이란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주권자가 되시고, 인류를 다스리시며, 온 세상의 왕이 되신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과 명령 앞에 충심으로 순종하는 것입니다.

믿음의 사람이라고 하면서 예수님의 주인되심을 인정하지 못하고, 손님으로 취급해서는 안됩니다. 우리의 마음의 주인이시고, 우리의 삶의 주인이심을 인정하지 못하면 안됩니다. 그런데 성도라고 하면서도 주님의 주인되심을 인정하지 못하고 살아가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내 인생은 내 것이요, 내가 주인이라는 것입니다. 나의 주체성을 어느 누구도 침해할 수 없고, 하나님이라도, 예수님이라도 간섭해서는 안된다고 말합니다. 어떻게 보면 주관이 뚜렷한 것같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결국 망하는 주관이며, 주체성임을 알아야 합니다. 승리와 축복은 결코 사람의 힘으로 주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행복은 사람의 능력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행복의 주인께서 그것을 허락해 주셔야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인으로 인정하고, 그분의 뜻에 전적으로 순종하는 신실한 청지기임을 자처하게 될 때에 우리의 삶 속에 참된 행복과 평안이 주어지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주님을 주인으로 인정하며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모든 것이 우리에게서 비롯된 것이 아니요, 주님의 은혜로 주어진 것임을 고백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사도 바울이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라고 고백하며, 베드로가 그의 일생을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주인됨을 고백했던 것처럼, 우리의 삶 속에서도 예수님의 주인되심을 인정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러므로 우리 주님께서 허락해 주시는 승리와 축복이 우리의 삶에 충만케 되시기를 바랍니다.

1.2.

본문은 믿음을 설명하면서 예수를 주인으로 인정하는 것 외에, 하나님이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것을 마음에 믿는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의 역사적 사실됨을 진심으로 믿는 것을 뜻합니다. 동시에 신령한 의미에서 예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심으로 십자가에 못박혀 죽기까지 하셨고, 또 무한하신 능력으로 죄와 사망의 권세를 이기시고 승리하셔서 영원한 우리의 하나님이 되심을 진심으로 믿는 것을 뜻합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기에 우리를 위해서 기적을 행하시고, 또 능력과 축복을 덧입혀 주실 수 있는 분임을 믿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주님께 온전히 올인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믿음이란 기적과 능력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권세로 일어난다는 사실을 믿고, 주님께 올인하므로 축복을 기대하는 것입니다.

세상의 합리론자, 경험론자들은 한결같이 말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을 믿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어떻게든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을 부인하려고 합니다. 그것을 역사적 사실이 아닌 관념적이고, 영적인 것으로 치부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믿음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것을 진실하게 믿어야 합니다. 죽기까지 사랑했고, 그 사랑으로 말미암아 죽었고, 또한 부활의 능력으로 우리에게 은혜와 축복을 주신다는 것을 진실하게 믿어야 합니다. 의심하지 말아야 합니다.

여기에 믿음이란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전부가 되신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주님께 전 생애를 맡기는 것을 말합니다. 내 생각대로 사는 것이 아닙니다. 내 마음대로 사는 것이 아닙니다. 바울은 이와같이 말씀하고 있습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를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갈라디아서 2:20) 그렇습니다.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신을 사랑하시고, 자기를 위해서 십자가를 지시고 죽기까지 하셨음을 진실히 믿었기에 이제부터는 나를 위해서 사는 자가 아닌 모든 것을 주님께 맡기며 사는 사람, 그리스도 안에 사는 사람이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믿음은 바로 그런 것입니다. 마음 속에 있는 세속의 욕심을 비워내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안에 예수 그리스도와 그분의 사랑을 가득히 채우는 것입니다. 주님께 모든 축복과 은혜와 생명과 능력이 있음을 믿고, 모든 것을 맡기고 의지하며 나아가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참된 믿음은 예수님이 나를 사랑한다는 것, 그리고 그분이 죄와 사망의 권세에서 승리하셔서 축복을 주시는 분이신 것을 인정하고, 그분에게 인생 전체를 올인하는 것입니다. 온전히 맡기는 것입니다. 로또에 올인하면 망할 뿐이고, 도박에 인생을 걸면 패가망신하지만, 우리 주님께 올인하면 진정한 행복과 승리가 주어집니다. 이 믿음이 기적과 능력을 만들어 냅니다. 사망의 권세를 이기고 영생의 축복을 누리게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를 사랑하시는 주님께 올인하는 참된 믿음으로 하나님이 주시는 승리와 축복을 누리시기를 바랍니다.

1.3.

본문 10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로마서 10:10)

여기에는 구원이 이르는 믿음을 또 다른 방식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마음으로 믿고, 입으로 고백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말에는 지금까지 설명한 것과는 다른 의미를 함축하고 있습니다. 복음을 부끄러워 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믿음은 복음과 진리를 부끄러워 하지 않는 것입니다. 당당하고 고백할 수 있는 것입니다. 증거할 수 있는 것입니다.

현대교회와 성도들의 특징은 복음을 부끄러워 한다는 것입니다. 자랑하지 못합니다. 복음을 증거하는 것은 부끄러운 것으로 생각합니다. 지혜롭지 못한 것, 미련한 것으로 생각을 합니다. 신기하게 그러면서도 예수를 믿는다고 합니다.

언젠가 제가 아는 어떤 분이 한방의료원에 가서 침을 맞았습니다. 그분은 건강이 좋지 않았기 때문에 늘 병원을 가까이 하며 사셨습니다. 병원에서 수술도 받았고, 많은 검사도 했습니다. 그러나 항상 몸이 약했습니다. 아프고 고통스러웠습니다. 몸을 괴로운데 병원에서 치료를 해주지 못하니 안타까운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떤 잘 아는 분의 소개로 한방병원을 방문하고 침을 맞게 되었는데, 건강이 좋아졌다는 것입니다. 기분이 한결 좋아지고, 먹고 소화시키는 것도 편안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자기를 치료한 의사를 소개해 줍니다. 건강치 못한 분을 만나면 즉시 그 병원을 소개해 줍니다. 곁에서 그분의 이야기를 듣는 사람들이 어쩌다가 보니 그렇게 나았지, 그 병원에서 그렇게 잘 고치겠느냐? 아무리 침술이 대단해도 죽을 병을 어떻게 살리느냐? 이러면서 부정적으로 이야기했지만 아니라는 것입니다. 입에 침을 튀겨가면서 그 병원과 의사를 자랑하고 소개하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그런 모습을 보면서 좋은 의사, 침술에 뛰어난 어떤 한의사를 만나도 입에 침이 마르게 칭찬을 하고, 또 자랑을 하는데 만병의 의사가 되시고, 인생의 문제를 해결하시며, 모든 피조물에게 은혜와 사랑을 베푸시는 주님을 소개하는 복음에 대하여 믿음의 사람들이 자랑하고 있지 못하고, 복음 전하는 것을 부끄럽게 여긴다는 생각을 하게 될 때에 씁쓸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믿음은 예수 그리스도 말미암아 얻은 은혜를 입으로 자랑하는 것입니다. 복음을 결코 부끄러워 하지 않는 것입니다. 어느 누구에게든지, 어디서든지 담대하게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 믿음의 선배들은 사형장에서도 목숨을 구걸하지 않고, 복음을 자랑하고 증거했습니다. 바로 이것이 믿음입니다. 오늘날에 성도들이 복음을 부끄러워 한다는 것은 그 믿음이 지극히 연약하다는 증거입니다. 그렇다면 이제 믿음을 견고하게 해야 합니다.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을 믿고, 복음을 부끄러워 하지 말고, 힘써 자랑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믿음의 위인들에게 허락하시는 구원과 축복이 저와 여러분의 삶 속에 충만히 임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구원과 축복의 길은 예수를 믿는 것입니다. 인간적인 수고나 노력이 많은 성과물을 가져다 주기는 하지만 진정한 행복을 줄 수는 없습니다. 더구나 구원과 하나님의 축복을 가져다 줄 수는 없습니다. 각종 선행도 하나님의 축복을 이끌어내는 데는 무기력할 뿐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를 믿어야 합니다. 예수를 믿는 것만이 유일한 구원의 길이 되기 때문입니다. 본문은 구원의 길을 소개하면서 예수를 믿어야 한다고 합니다. 그리고는 예수 믿음이 가져다 주는 구원이 무엇인가를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2.1.

본문 11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성경에 이르되 누구든지 저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아니하리라 하니 (로마서 10:11)

예수를 믿는 자에게 주어지는 구원은 부끄러움을 당치 않는 것입니다. 수치를 당치 않습니다. 주 예수를 믿음으로 고백하며 나오는 사람에게, 많은 사람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왕되심을 인정하며 담대하게 증거하는 믿음의 사람에게 주님은 분명히 약속하셨습니다. 결코 부끄러움을 당치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이 땅을 사는 동안에 아무런 부끄러운 일, 수치, 멸시를 당치 않는다는 말씀이 아닙니다. 물론 하나님은 모든 부끄러움을 변하여 영광이 되게 하십니다. 이 땅에서도 넘치는 복으로 더하여 주십니다. 100배나 되는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으로 갚아주십니다. 그러나 본문이 말씀하고 있는 본질은 그런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게 될 때에 예수님께서 그를 인정해 주시므로 영광을 얻게 된다는 것입니다.

믿음없이 살고, 주여 주여 하던 사람들이 심판대 앞에 이르게 될 때에 그들이 말합니다. 내가 이 땅에 있는 동안에 주의 이름으로 기적을 행하고, 교회에서 직분도 받고, 또 많은 선행도 했습니다. 이러면서 주님의 긍휼하심을 구합니다. 그러나 주님은 그들의 믿음 없음을 기억하시고, 내가 너를 알지 못한다.고 단호하게 거절하시는 것입니다. 복음을 부끄러워 하던 자들에게 주님도 그 천사들 앞에서 그들을 부끄럽게 여기시므로 수치를 당케 하십니다. 그러마 믿음의 사람에게는 이 땅에서 수치와 멸시를 당했을지라도 그 나라에서는, 심판대 앞에서는 하나님이 지극히 영화롭게 하십니다. 심히 존귀하게 하십니다.

원수의 목전에서 상을 베푸시고, 기름으로 머리에 바르십니다. 존귀와 영광으로 관을 씌우십니다. 감히 죄인들이 우러러 볼 수도 없을만큼 귀하고 아름답게 만들어주신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믿음의 결국은 부끄러움을 당치 않고, 주님이 주시는 영광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슬픔대신 찬송을 갖게 하고, 재 대신 화관을 쓰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부끄러움과 수치를 이기고, 주님이 주시는 축복으로 심히 영화롭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2.2.

본문 12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차별이 없음이라 한 주께서 모든 사람의 주가 되사 저를 부르는 모든 사람에게 부요하시도다 (로마서 10:12)

주를 믿는 자에게 주시는 구원은 차별없는 풍요로움입니다. 여기에 부요로움이란 모든 것에 부족함이 없게 하시는 것입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여호와께서 친히 목자가 되시고, 인도자가 되시므로 모든 것에 부족함이 없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고난이 전혀 없다는 말이 아닙니다. 고난이 있고, 걱정거리가 찾아오기도 합니다.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그 문제를 이길 수 있는 능력도 주시고, 힘도 주십니다. 하나님이 공급해 주시는 영육간에 풍성한 축복을 누리게 하십니다.

신분적으로 낮은 지위에 있거나 많은 것을 배우지 못해도 괜찮습니다. 주님을 믿고 나아오기만 하면 그 어떤 사람이든지 구원함을 얻을 수 있습니다. 지난날에 허물과 죄가 크다고 해도 상관없습니다. 어떤 신분, 어떤 처지에 있었든지를 묻지 않습니다. 주를 믿기만 하면 하나님은 그에게 긍휼을 베푸시고, 은혜를 주시는 것입니다. 그들의 하나님이 되셔서 부족함이 없게 해주시는 것입니다. 기도가 응답되게 해 주시는 것입니다.

이런 말씀을 드리면 간혹 반발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흉악한 죄인이 예수를 믿기만 하면 용서함을 받는다는 것을 용납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못된 살인자, 강간자들이 예수를 믿기만 하면 용서함을 받는다는 것은 부당하다는 것입니다. 물론 심정적으로는 이해가 됩니다. 그런데 한번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살인자와 강도와 강간자들이 분명히 나쁜 죄인이지만, 우리의 모습은 그들과 많은 차이가 있습니까? 동일하게 죄성을 갖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살인자, 강도를 용서하신다는 것은 우리를 향한 용서와 사랑이 얼마나 더 풍성할 것인가를 미루어 짐작케 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용서하심을 풍성합니다. 하나님의 자비와 축복은 무한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믿는 자에게는 하나님의 풍요로우심으로 충만히 채워지는 축복이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 모든 풍요가 있습니다. 세상에서 풍요로움을 구하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세상 따라다면 망합니다. 멸망합니다. 세상의 수단과 방법으로는 잠시의 성공을 거둘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영원한 행복과 승리인 구원을 이룰 수는 없습니다. 그러므로 주님을 믿으므로 풍성하신 용서와 풍성하신 사랑, 그리고 축복을 받을 수 있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Conclusion & Blessings

이제 말씀을 맺겠습니다.

우리는 치열한 생존경쟁의 현장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잠시도 한눈을 팔 수 없고, 조금도 게으를 수 없습니다. 때로는 그 경쟁의 늪에 빠져 허덕이기도 하고, 상처를 입고 신음하기도 합니다. 절망하며 좌절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이 살벌한 삶의 자리에서 구원을 얻고, 행복을 얻을 수 있는 길을 찾아 헤맵니다. 그러나 세상 어디에도 구원의 길은 없습니다. 생명과 축복의 길은 없습니다. 잠시 성공한 것같아도 또 다른 실패가 뒤따라옵니다. 좌절과 낙심이 찾아옵니다. 영원한 성공이나 영원한 승리는 없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우리 인생을 향해서 구원을 베푸시기를 원하셨습니다.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시고, 그를 믿는 자는 누구든지 영생을 얻고, 구원을 얻고 축복을 얻는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주 예수를 믿기만 하면 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치열한 생존경쟁의 싸움터에서 예수 믿음으로 말미암아 평안을 얻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주 내 삶의 주인 되심을 인정하고 고백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사랑하셨기에 십자가를 지시고 죽으실 뿐만 아니라 죽음의 권세를 이기고 부활하신 능력의 주님인 것을 믿고, 주님께 온전히 올인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세상 앞에서 주님을 부끄러워 하는 자가 아니요., 담대히 주님과 복음을 자랑하는 믿음의 사람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러므로 우리 주님께서 믿는 자에게 허락하시는 영광과 풍요케 하시는 구원의 축복을 마음껏 소유하며 누리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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